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13화 (13/68)

EP.12)이사벨라와의 불편한 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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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야?"

나를 보며 환하게도 웃는 이사벨라.

5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굉장히 길었고,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 없는 그녀의 모습은 무뎌진 내게 시큰둥하게 다가왔다.

매몰차게 차버릴 때는 언제고, 시간이 흘렀다고 친한 척이라도 할 셈인가?

5년이 지나도 내 마음 속엔 `능력 없는 남친의 최후`라는 수치스런 저장명으로 남아 있었기에, 그녀의 환한 미소와 악수가 무안해지리만큼 냉랭히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유서윤 헌터님 매니저 이강준이라고 합니다."

"어, 어? 왜, 왜이래."

인사를 마치곤 더 이상 용무가 없다는듯 손을 놓고 다른 헌터들에게 인사를 돌렸다. 이 파티의 유일한 남자 헌터인 최도군이 나의 인사에 놀라며 말했다.

"어? 이강준씨요?"

"…절 아시나요?"

뭐야, 괜한 남자 관심까지 받고 싶지는 않은데.

"그, 그럼요! 헌터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 유명한 미녀사총사 파티를 맡으시지 않으셨어요?"

아, 미친년사총사. 잊으려해도 아주 꼬리표처럼 쫓아다니는구나. 어쩌면 평생 쫓아다닐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거머리 같은 것들이라니까.

머쓱하게 웃으며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뭐, 맞습니다. 이제 그만뒀지만요."

"크~ 존경스럽습니다. 그 4인방 성격 진짜 지랄 맞아서 아무도 매니저를 안 맡는다던데, 어떻게 3년이나 버티셨대요?"

"몰랐죠 뭐, 하다보니 3년이 지나갔고."

진짜 몰랐었다.

처음 이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는 미녀사총사란 파티의 악명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저, 대기업도 뛰어 넘는 압도적인 월급에 혹해 사전검색 한번 안 하고 덜컥 맡았다가 결국 이렇게 돼버렸지.

"크~ 매니저님 나가자마자 A급에서 중상자가 나왔다면서요? 3년간 S급 토벌에서도 경상자만 있었다던데. 진짜 대단하십니다. S급 4명을 한번에 케어하시다니."

그래도 날 차버린 전여친이 있는 자리에서 어깨뽕을 심어다주니 고맙긴하다.

힐긋 시선을 돌리자 역시나 오묘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이사벨라.

왠지 복잡미묘해 보이기도 하고.

최도군이 유서윤을 보며 호쾌하게 말했다.

"하하, 유서윤 헌터님 좋으시겠어요~ 이런 능력자분을 매니저로 두시고."

음, 그의 말에 옆에 쭈뼛거리며 서있는 매니저의 어깨를 흠칫 떨렸다.

언뜻 봐도 신입티가 좔좔 흐르는 갓뉴비였는데, 은근히 돌려까는 것을 알았는지 그렇잖아도 움츠린 어깨가 더욱 움츠러든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호호, 그렇죠. 우리 강준이 꽉 붙들어 매려고 캐스터를 맡아주는 대신에 전리품 수익도 반씩 나누기로 했거든요."

최도군이 감격에 겨운듯 박수를 치며 오버를 해댔다. 레이드를 나가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3번 리트라이된 던전의 레이드는 그들에게 동네 마실을 나가는 것과도 같은 일인 것이다.

"크으~! 이강준 매니저님 드디어 고생길 대신 꽃길로 올라타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와...! 전리품 수익의 반을요? 이강준 매니저님 로또 되셨네요!"

유서윤의 말에 일순간 장내가 술렁인다.

그만큼 A급 헌터의 전리품 수익을 반씩 나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복지혜택이기 때문이다.

이사벨라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굳어 있었다.

5년만에 만난 전남친이 쌀쌀맞은데다 그를 향한 온갖 칭송마저 나오니 배알이 꼬이기라도 하는 거겠지.

마치 전여친 결혼식에 환골탈태해 등장한 것 같은 통쾌함도 들었다.

뭐, 그 통쾌함도 결국 헌터의 매니저 일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빠르게 사라지고 말았지만.

어쨌든 난, 그녀가 버렸던 이유인 각성 실패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실패에 순응해 매니저의 삶을 사는 내가 한심해보일지도 모른다.

"…수, 수익의 절반…?"

유서윤을 보며 황망히 무언갈 중얼거리는게 아직 그럴 정신머리는 없어보인다만.

"자, 그럼 준비 다 되셨으면 출발할까요?"

A급 헌터 유서윤이 당연하다는듯 파티의 리더를 맡게 되었다.

최도군은 B급, 강나리도 B급, 그리고 이사벨라는 C급 헌터였으니까.

3번 트라이된 던전이기도 하고, 평균 등급은 맞췄기에 입장에 걸림돌은 없었다.

쯧, 서로 다른 세상 운운하며 환상에 절어서는 날 차버리더니, 5년이 지난 아직도 C급의 저급 헌터인 그녀는 나를 한심스레 생각할 겨를이 없을 듯했다.

용의 꼬리도 되지 못한 흔히디 흔한 헌터와 뱀의 머리가 된 흔하지 않은 매니저의 간격은 그다지 크지 않은 듯했으니까.

그리고 A급 헌터의 전리품 수익의 절반을 가진다면 어쩌면, C급 헌터보다 월 수익이 많을 것 같기도 했고.

"그럼, 포션 점검 한번 해주시고, 끝나면 출발할게요!"

""네!""

마지막 점검을 하는 그들에 나 역시 잡념을 치우고 캐스터장비를 확인했다.

이미 만반의 준비는 갖춰둔 상태였다. 너튜브를 보며 장비사용에 대해선 충분히 숙지해둔 상태였으니까.

"그럼 출발할게요!"

흐읍, 심호흡을 가다듬고, 그들을 따라 던전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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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게 미스릴인가."

"오, 이게 가넷? 색깔 예쁘네."

"오, 언더록 가죽이다. 저번 레이드파티가 못 챙긴 모양이네, 개꿀."

"오호, 이건 아다만티움."

바쁘다.

근데 너무 재밌다.

천직이라도 찾은 것마냥 레이드 파티를 뒤따라 파밍을 해대는 손길이 즐거운 리듬을 타며 마나포켓을 채워간다.

아낙네가 농작물을 캐듯, 곡괭이 형식으로 생긴 도르크는 쉴 새 없이 휘둘려지며 갖가지 광석들과 보석들을 발굴해냈다.

역시 비싼 장비는 뭐가 달라도 다르긴하네.

너튜버 영상에 하급 장비로 캐는 것도 보았었는데, 광석과 지면, 벽면 틈 사이에 도르크가 잘 들어가지를 않아 꽤 고전하기 일쑤였었다.

던전 진입한지 1시간도 안 되서 마나포켓 용량이 10%가 차올랐다.

앞전 레이드 파티의 캐스터가 제대로 파밍을 하지 않은 건지 생각보다 광석들이 많았다.

3번의 트라이로 파밍할게 그리 많지 않을지 알았는데, 제법 쏠쏠하겠는데?

"히야압!"

힐러인 이사벨라는 최후방에, 탱커인 김도군과 근거리딜러인 강나리가 최전방, 그리고 우리 유서윤 헌터님은 원거리딜러기에 이사벨라의 전방에서 열심히 궁을 당겼다.

ㅡ후웅!

활을 쏘는 소리라 믿기 힘든, 어마무시한 파공음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순식간에 마물들의 머리통을 관통했다.

콰직! 두개골을 깨부수는 듯한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뇌수를 터뜨린 사족보행형 마물들이 도미노마냥 쓰러진다.

시위 한번에 마물 한 마리, 어쩔 땐 두 마리.

원샷원킬의 강한 살상력과 백발백중의 정확도.

S급 원거리딜러인 박나영과 견주어도 손색 없을 듯한 실력이었다.

그덕에 이사벨라는 최후방에서 가끔 상태이상치료만 할 뿐, 딱히 할 게 없을 지경이었다.

최도군이 탱킹하는 순간, 어그로 끌기도 전에 마물들은 픽픽 쓰러져댔으니까.

그리고 그탓에 최후방을 따르며 파밍하는 나와 애매한 상황이 이따금씩 찾아왔다.

"…"

그녀가 혹여나 말 걸 새라, 입을 꾹 닫고 바닥에 고개를 파묻은 채 파밍에 집중했다.

제 아무리 C급의 하급헌터라해도 아카데미 졸업 후 실무에 시작한 그녀와, 그들이 잡은 마물들의 가죽을 해체하고 있는 난, 왜인지 모르게 묘한 하등관계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쾌하지 않은, 불쾌한 느낌이었다.

"…오빠."

입을 열지 않기를 바랬건만, 나를 부르는 이사벨라에 애써 못들은 척, 무시하며 사체의 가죽 중 쓸만한 부위를 벗기고 있었다.

역시 비싼 장비는 값어치는 하는 듯싶다. 일반 해체칼보다 10배 정도는 비싼 구르카는 닿는 족족 사체가죽을 벗겨냈는데 그덕에 서투른 칼솜씨도 조금 무마되는 듯했다.

만약 일반 구르카였다면 거의 쥐어뜯고 있었겠는데?

캐스터가 특히 장비빨이 심하다는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들리는 거 알아."

"하, 서로 일에 집중하시죠. 이사벨라 헌터님. 그리고 호칭은 서로 확실히 했으면 좋겠네요."

"…"

끈질긴 그녀에 결국 선을 그었다.

5년이란 시간은 길다.

그리고 긴 시간은 슬픔을 무뎌지게 만든다. 그리고 무뎌진 감정은 단단해지기 마련이고.

그녀에게 더 이상 미련도, 그리움도 없었다.

솔직히 파밍에 집중되지 않을 정도로 그냥 불편하기만 했다.

하필이면 첫 캐스터 임무가 전여친과의 레이드 파티라니. 인생 운빨 좆망이네, 진짜.

"왜 그러는 거야? 5년이 지났는데도 내가 미운 거야?"

무시했다.

혼자 떠들다 말겠지. 밉지도, 화나지도 않는다. 그저 서로의 영역 안에서 서로가 지향하는 방향을 각자 바라보기만 했으면 좋을 뿐.

"…반갑지도 않아?"

"염치도 없네."

하지만 자꾸만 조잘대는 그녀에 결국 참지 못하고 속내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삭히고 싶은 말이었지만, 토해내고나니 뭔가 시원하긴하네.

덕분에 잠시 포근한 적막도 찾아왔고.

"힐! 뭐합니까 힐러!!"

"아앗! 죄, 죄송합니다!"

내 가시 돋힌 말에 충격이라도 먹은 건가. 탱커 최도군의 윽박에 화들짝 놀란 이사벨라가 급히 힐을 시전했다.

"제 아무리 4번째 트라이라도 정신차리세요, 이사벨라씨."

그런 그녀에게 날아오는 가시 돋힌 A급 유서윤의 꾸짖음에 C급 이사벨라는 고개를 수그려야했다.

헌터의 계급은 선후배 사이와도 비슷한 맥락이었었다. 군인이 기수를 따지듯, 헌터들에겐 지금이 현역이었고 계급은 위아래 서열을 만드는 것이었다.

같은 직군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죄송합니다…"

금세 풀이 죽어버리는 이사벨라.

그 모습이 딱히 통쾌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녀는 한때 뜨겁게 사랑했었던 상대였었으니까. 비록 결말은 좋지 못했다하더라도.

"…"

"…"

유서윤의 호통에 경각심을 가졌는지 다행히도 레이드가 끝나는 동안, 이사벨라는 내게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던전의 공터에 앉아 막간을 이용해 식사시간을 가질 때에도, 그녀는 묵묵히 식사만 했었다.

헌터들의 식사는 매니저들이 준비한 식사를 캐스터에게 인도하고 캐스터는 마나포켓에 그것들을 넣은 채로 레이드를 따르다 지금처럼 파티 리더의 지시에 식사를 꺼내주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다채로운 식사는 불가했다.

언제 마물 습격이 있을지 모르고, 무엇보다 마나포켓에 넣으면 죄다 섞이기 때문에 주로 김밥류, 샌드위치나 햄버거 류 같은 간편취식품이 다였다.

"유서윤 헌터님 너무 강하신 거 아니에요? 정확도도 미치셨던데. 급소에서 벗어나질 않더라고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미니 골렘을 한 방에 쓰러뜨리실 수가.. S급으로 진급하셔야하는 거 아닙니까?"

미니 골렘이 그녀의 화살 한방에 산산히 부서지던 장면이 떠오른 건지 강나리가 소름 돋는듯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햄버거를 한 입 예쁘게 베어문 유서윤이 입을 가리고 호호 웃었다.

볼에 빵빵하게 머금은 햄버거에 마치 햄스터 같기도해 피식 따라 웃고 말았다.

그녀와 있으면 왜인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아니에요. 도군씨도 탱킹 능력 좋고, 나리씨도 엄청 민첩하시던데요?"

말을 잇던 유서윤이 잠깐 넋이 나간 채로 우물대는 이사벨라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사벨라씨도 잘하시고요."

잠시 머뭇하며 애써 내뱉는 칭찬.

하지만 그들과 달리 구체적인 지목 없이 두루뭉술하게하는 칭찬은 당연히 칭찬일 리 없었다. 서로 민망해지지 않게 최소한의 예의만 차려주는 것.

그에 이사벨라는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음, 왠지 견제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내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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