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12화 (12/68)

EP.11)이사벨라와의 조우

ㅡ똑똑.

안나의 방을 노크한 소이현의 심장이 쿵쿵 뛴다. 누군가의 거짓말을 추궁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긴장된 탓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목격한 안나 언니의 행동은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었다.

만약 신나희의 추리가 사실이라면, 그녀는 사랑에 눈이 멀어 3년간 함께한 파티를 등지는 배신자이니까.

믿고 싶지 않은 진실에 거짓이 차라리 나와주길 바라며 그녀는 안나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안나의 방문이 열렸다.

"왜?"

3년간 동고동락했던 사이기에 이현은 당장 느낄 수 있었다. 평상시와 다르다는 것을. 방문을 열고 그 틈을 막아서고 있는 모습부터, 왜인지 모르게 시선을 피하는 듯한 모습은 확실히 평상시와 달랐다.

"아.. 그, 길드 갔다온다고 했었잖아? 길드장님이 별 말 없으셨나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유안나는 길드에 보고를 하고 돌아온 날이면 멤버들을 불러모아 재깍 얘기를 해주었었다.

보고로 인해 결정된 사항이라던지, 길드장의 전언들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하우스에 들어온 안나는 자신과 나희를 아예 찾지도 않았던 것이다.

특히나 나영의 중상으로 인한 보고였기에 길드장의 전언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 화내시지 뭐. A급에서 중상이 왠 말이냐고. 아마 당분간 근신처분이 내려질 거야."

"역시… 그거 말고는 뭐 없었어?"

"없었는데? 왜?"

"아니, 늦게 들어왔으니까. 혹시 뭐 길드에서 다른 말이 있었나싶어서."

"없었어, 그냥.. 생각 정리 좀 할겸 산책 좀 하고 왔어."

소이현의 눈빛이 희미하게 떨렸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방금 안나는 거짓말로 진실을 만들어버렸으니까.

빌라 건물로 들어간 것을 똑똑히 봤는데, 그녀는 몇 시간을 산책을 했다며 거짓말을 했다.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이 들었다.

의심이 확신이 되어서 그런지, 이강준의 핸드크림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기 시작했다.

'…맞아, 이건 진짜 오빠 냄새잖아.'

이현이 살짝 고개를 들어 안나 너머 방 안을 살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종이들을 볼 수 있었다.

'…서, 설마? 편지지인가?'

작은 종이에 빼곡히 무언가 적혀 있었다. 분명, 자필로 적은 글씨들이었는데 3년간 안나가 글씨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었다.

헌데 매니저가 그만 두고, 매니저의 집에 다녀와 핸드크림 냄새를 풍기며 편지를 적는다?

'…아, 제발 아니길 바랬는데.'

이현의 시선을 눈치챈 안나가 급히 몸을 더 당기며 말했다. 아직 그를 종놈으로 보고 있을 이현에게 반성문을 쓰고 있는 리더란 사실을 숨기고 싶은 그녀였다.

그가 돌아온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멤버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결과가 없는 과정은 쓸 모 없는 법이니까.

"왜 그래? 언니 지금 좀 바빠서 그런데."

"아아, 아니. 알았어."

안나의 말에 이현이 한걸음을 물렸고, 안나는 기다렸다는듯 방문을 닫는다. 이현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정도 정황으로 단정 지을 정도로 자신은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었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게 사춘기소녀마냥 수줍게 시선을 피하며 방 내부를 커버하는 것부터 이강준의 집에 다녀와 편지까지.

이건 분명, 그녀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정황이 합리적인 의심을 일으키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이강준이 그만둔 것도 너무 뜬금없었다. 게다가 쪽지도 안나 언니가 제일 먼저 발견했었고. 마치 서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현이 굳게 닫힌 안나의 방문을 쳐다보았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언니가 그런 사람일 리 없다고. 일단 기다려보자.. 나희는 뭔가 알겠지…'

방으로 돌아간 이현은 나희가 들고올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

"준비 다 됐어?"

"넵, 준비할 것도 없던데요? 준비를 다 하셔가지고."

대형벤의 뒤에 앉은 유서윤의 물음에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녀가 물은 준비의 의미는 `캐스터 장비`에 관한 것이었었다.

자신의 준비는 자신이 하면 된다고, 캐스터 장비를 챙기게끔 한사코 거절을 했었던 그녀였다.

덕분에 얼마나 쾌적하고 여유로운 준비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진짜, 그 미친년4인조랑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그녀다.

어제 미리 유서윤이 직접 이번 레이드 파티원들에게 자신의 매니저가 캐스터를 해줄 것이라 언질을 넣어두었었다.

처음엔 반발이 있을 줄 알았었다.

어쨌든 제 3자가 아닌, 자신의 사람을 쓰겠다는 건 뉘앙스가 곱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헌터들은 하나같이 믿을 만한 사람이면 상관 없다며 기쁘게 동조를 해주었었다. 아무래도 유서윤의 이미지가 8할은 작용한 탓일 것이다.

A급 랭킹 3위에 주변 평판도 칭찬일색인 그녀였으니까.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응!"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여.

첫 캐스터의 임무를 맡고, 각성 실패 이후 첫 던전 진입에 긴장감과 설렘이 기분 좋게 심장을 두드린다.

**

도착지는 대전시 도마동 인근 산의 던전.

총 3번의 토벌이 이루어진 던전이었는데, 얼마 전에 마물들이 재등장했다고 했다.

전문용어로 리트라이라고 한다던데, 뭐 중요한 건 아니니 굳이 머릿 속에 새기지는 않았다.

던전은 최초 토벌 시에만 보스를 잡을 수가 있다.

보스의 경우엔 리젠이 안 되는 탓이었는데 그렇기에 한번 잡으면 그뒤엔 리젠되는 중간 보스급 마물이나 일반 마물을 토벌하는 리트라이를 진행하는 것이다.

당연히 보스가 없는 레이드라 희귀 보상은 얻을 수가 없었는데, 대신 그만큼 안전한 레이드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었었다.

그래서 각 등급별 실력 있는 상위 랭커들이 `최초 토벌권`을 가지게 된다.

실력이 부족한 하위 랭커들의 선구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겸사겸사 보스 전리품도 얻고.

여하튼 우리가 온 곳은 무려 3번이나 리트라이된 던전으로 일반 마물들도 그리 많지 않을 던전이었기에 딱히 긴장되지는 않았다.

내게 거의 안성맞춤인 던전인데, 쫄 것 뭐 있겠는가.

"…어?"

"어…"

헌데 던전 초입에 도착한 난 한 여성과 마주치며 침음을 흘려야했고, 여성은 나를 보며 반가운듯 미소를 지었다. 풍성하게 물결지며 내려온 붉은색 머리칼과 잘 어울리는 뽀얀 얼굴, 그리고 늘 착용하고 다니는 연붉은빛 서클렌즈는 여전히도 착용하고 다니는, 5년 전 모습 그대로인 여성이었다.

"오빠…"

이사벨라.

그녀는 나의 전 여자친구였다.

**

ㅡ오빠, 미안해.. 정말.

"왜…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은 따뜻하면서도 매몰찼다. 360일 가량 매일 같이 들려온 그 아름다운 음성. 이제는 종지부를 찍으려는 그 차가워진 음성에 무언가 울컥 올라오려한다.

ㅡ각성 실패 했잖아… 아빠가 더 이상 만나지 말래….

안다.

그녀는 각성에 성공했고, 나는 실패했다는 것을.

하지만 인정할 수가 없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이별을 통보한다고?

아빠가 만나지 말라 했다고?

20살의 성인이라 믿기 힘든 황당한 변명에 울컥 올라오려던 울음 대신 울분이 치솟았다.

"…남자친구 생겼냐?"

각성에 성공한 이후, F등급을 인정 받은 그녀는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녀의 연락은 뜸해졌다.

밤마다 조잘대며 귀를 간지럽히던 그녀의 음성은 듣기 힘들어졌고, 내 전화는 단번에 받는 경우가 드물어져갔다.

다르겠지.

멋진 헌터들이 모인 아카데미 생활에 시야가 달라졌겠지. 이해한다. 다만, 좆 같은 건 어쩔 수 없을 뿐.

들려오지 않는 항변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아니라고 항변이라도 하지.

사람 더 비참하게 만든다.

"…진짜구나. 어쩐지, 연락도 없더라니."

ㅡ미안… 우린 이제 다른 길을 걷는 거야, 어쩔 수 없어.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끼린 서로 이해하기 힘들어 지니까..

환승이별을 하는 년이 깨어있는 척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끼린 서로 이해할 수 없는게 아니라, 더 이상 나를 이해해주기 싫은 거겠지.

각성했다고는 하나 고작 F급, 최하급 헌터 주제에 벌써 일류헌터 마인드를 장착이라도 한 모양이다.

아카데미만 나서면 A급이고 S급이고 금방 진급할 거 같은 기대감이라도 가득한가보지.

세상이 그리 호락하지 않다는 걸, 늘 몰랐던 그녀기에 이해는 한다.

대학생이 졸업하고나면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을 거란 오만한 기대감과 같은 거겠지.

"그래, 알았다. 헤어지자."

ㅡ어..? 뭐? 자, 잠깐만!!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

이별통보엔 맞수를 놓아야지, 아니면 분해서 어떻게 하루를 보내겠는가.

전화를 끊기 전에 무언가 놀란 듯한 그녀였지만,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서 그럴 터다.

구차하게 눈물콧물 질질 짜기라도 할 줄 알았던 건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었기에 심적으로 큰 타격은 없었었다.

단지, 각성 실패 했다는 이유로 버림 받은 것이 조금은 쓰라릴 뿐. 아니, 꽤나 쓰라릴 뿐.

그녀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번호도 차단해버렸다. 인터넷에 들어가보았다.

각성석을 검색하자 각성석으로 각성에 성공해 S급 헌터까지 오른 성공신화 뉴스가 상단에 링크된다.

각성석, 각성에 실패한 사람에게 강제로 마나를 주입해 강제각성을 시켜주는 로또와 같은 원석.

그탓에 파밍되었다하면 대기업, 공공기관, 대형길드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매입하고 있었었다.

경매 시작 가격만 10억.

평균낙찰가는 20억.

소시민인 내겐 그저 꿈과도 같은 각성석이었었다. 답답함에 휴대폰을 던지듯 놓고는 담배를 꺼냈다.

후ㅡ 회한에 찬 뿌연 연기가 시야를 흐린다.

각성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우리 동생도 떵떵거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해줄 텐데.

"하, 인생 쓰다 써."

이제는 전여친이 되버린 그녀를 잊기 위해, 마음 속에서 완전히 털어내기 위해 담배 연기를 계속 내뱉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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