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11화 (11/68)

EP.10)캐스터 등록 & 잊었던 그 이름

ㅡ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게하지, 모든 걸 이겨낼 것처럼.

최애드라마 이태원클라스의 최애 OST인 곡의 첫 시작대목이다. 캐스터란 새로운 직업의 병행에 썩 어울리는 곡이기도 하지.

오전 일과도 결국 `병가`처리를 하게 된 유서윤은 방에서 아직 녹다운 중이었고, 난 그 틈에 어디론가 향하는 중이었다.

"여긴가…"

도심의 심장부, 번화가에 있는 으리으리한 건물. 그 건물의 2층에 붙어있는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 캐스터 협회 & 상점 ]

캐스터로 활동하기 위해선 협회에 무조건 등록이 되어 있어야 했다. 헌터 협회에 등록된 헌터 활동이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세금이나 뜯으려는 고약한 술수, 하지만 사회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법이기에 협회 사무실로 들어섰다.

제법 큰 사무실의 한 쪽에는 캐스터 전용 장비들이 진열 되어 있었고, 중앙 끝쪽에는 파티션이 처진 사무공간이 있었다.

사무공간으로 다가가 직원에게 말했다.

"저, 캐스터 등록하러 왔습니다."

"네~ 여기 등록신청서 작성해서 신분증이랑 주시면 됩니다~"

귀찮은듯 종이 한장을 건네는 직원. 등록신청서가 제법 쌓여있는 걸 보니 등록신청이 하루에도 수십 건에 달하는 듯했다.

하긴, 낮은 등급의 던전을 도는 캐스터의 경우 부업으로 삼기에 아주 좋아 인기가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었다.

"여깄습니다."

등록신청서와 신분증을 제출하자 신분증을 복사하고는 다시 돌려주는 직원.

그리곤 정보들을 컴퓨터에 입력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등록이 완료됐다며 가보란다.

"…끝인가요?"

"네~ 끝났습니다~"

이렇게나 간단하다고?

재차 등록여부를 물어보려다 다시 모니터에 집중하는 직원에 물음을 거두기로 했다.

간단해서 좋긴 하네, 1시간가량을 예상하고 왔었기에 시간이 조금 남았고 한쪽 편에 진열된 캐스터 장비들을 둘러보았다.

"캐스터 장비 보러 오셨나요~?"

쇼핑하듯 둘러보고있자 직원 한 명이 들러붙는다. 씁, 부담스러운데. 그냥 혼자 쇼핑하는 편이 좋은데 이미 직원은 제품 소개에 여념이 없었다.

"주로 활동하실 던전 등급이 어떻게 되시죠?"

"아.. 음, 주로 A급이나 B급일 듯합니다."

"오~ 높은 등급에서 활동하시는군요~ 그럼 여기 쪽으로 둘러보시면 됩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부스를 이동했다.

확실히 이전 부스보다 장비들이 화려하고 가지 수가 많았다. 언뜻 봐도 값어치가 제법 나가는 물건들이었다.

"이건 도르크, 라고 하는데 광석 채집할 때 굉장히 유용하죠. 값은 좀 나가는데 오리하르콘으로 코팅이 되어 있어서 왠만한 광석은 모두 캐낼 수가 있거든요."

"아, 이건 스텔라 사에서 만든 마나포켓인데요, 용량이 크고 무엇보다 전리품 보관 시 경량화가 90퍼센트까지 극대화되어 있어서 A급 던전 이상의 레이드에서 사용 시에 피로감이 굉장히 덜하거든요~"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어떤 마물의 가죽도 쉽게 해체할 수 있는 도구인데요~"

그 이후로도 한번 쳐다만 봤다하면 열심히 설명해대는 직원.

…결국 난 900만원을 쓰고 말았다.

"통이 크시네요~ 이건 특별 서비스랍니다~"

일시불로 결제하고 물품들을 챙기고 있자 직원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작은 브로치 같은 것이었다.

"뭐죠?"

"특별한 브로치에요~"

900만원을 일시불로 긁어줬는데 주는 서비스가 고작 브로치? 금으로 된 건가, 싶어 둘러보았지만 중앙에 박힌 푸른 원석말고는 특별한 것도 없는 캐스터 협회의 브로치였다.

딱히 캐스터로서 소속감도 열정도 없는 내겐 그저 쓰레기일 뿐인 그 브로치를 쓰게 웃으며 주머니에 넣었다.

"호호,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희귀 푸른 브리카스 심장으로 만든 브로치에요~ 그 브로치를 들고 파밍을 하다 각성석하고 오리하르콘석가 동시에 뜬 캐스터도 있었죠~"

자랑스레 웃으며 손가락으로 V를 하는 직원.

"그것도 2개씩이나요~"

오… 희귀 푸른 브리카스의 심장으로 만든 브로치라고? 그렇담 얘기는 달라지지.

브리카스는 S급 던전에 뜨는 네임드 보스급 마물인데 전체 외형이 붉은색이 일반적인 브리카스라면 외형이 푸른색을 띄는 브리카스를 희귀 브리카스라 부른다.

네잎클로버와 같은 것이다.

붉은 브리카스는 흔한 마물이지만, 푸른 브리카스는 세계적인 토벌 사례로도 많은 건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푸른 브리카스는 행운의 상징이었었고, 이 브로치를 받은 캐스터가 각성석과 오리하르콘석을 동시에 2개씩이나 파밍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었다.

1개만 뜨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감사합니다~"

그렇기에 기분 좋게 웃으며 물품들을 챙겨 나왔다. 광석채집 도르크, 마나포켓, 해체용 구르카와 잡다한 장갑, 신발 등등.

메이커 장비들을 사느라 900만원이 들기는 했지만, 유서윤이 약속한 전리품 보상의 절반이면 금방 채울 돈이기에 아깝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뭔가.

각성에 실패했던 내가 드디어 던전에 첫발을 내딛는 것에 대한 모험심과 설레임이 느껴져왔다. 두근두근, 심장고동이 기분 좋게 뛴다.

미친년4총사 파티에서 탈출한 이후 왠지 모르게 일이 잘 풀리는 느낌이다.

'유서윤 헌터님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푼돈이나 벌자고 던전에 들어갈 생각은 못했을 텐데.'

주머니에 고이 넣어둔 브로치를 꺼내 괜히 만지작해보았다.

일반적인 캐스터 문양인 동그라미 안에 십자가가 있는, 그리고 그 십자가의 중앙에 작고 푸른 원석이 박힌 브로치는 제법 특별해보이기는 했다.

"잘 부탁한다."

브로치에 가볍게 입술을 맞춘 후, 서둘러 유서윤의 하우스로 향했다.

**

하우스로 돌아온 난, 태블릿을 이용해 내일 있을 레이드 스케줄 확인을 위해 파티원들의 매니저들이 모인 단톡방을 열었다.

길드 내에 A급 헌터가 4명, 거기다 탱딜힐을 갖추고 있다면 이런 연락을 돌릴 필요가 없겠지만은 A급 쯤 되면 중형길드가 아니고서는 탱딜힐 각 포지션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었다.

그렇기에 하루 전 타 길드의 파티원들의 스케줄 확인은 필수였었다.

당장 내일 출발 전에도 확인을 하긴 할 거지만, 미리 확인을 해두어야 선제적 대응이 가능할 테니까.

[ 유서윤 헌터님 매니저 ]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유서윤 헌터님 매니저를 맡게 된 이강준 입니다. 내일 스케줄 확인차 연락드립니다. 일정에 차질 있으신 분은 안 계시죠?

잠시 기다리고 있자 답변들이 도착했다. 레이드 스케줄이 잡힌 헌터 매니저들 사이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단톡방의 연락은 서로 빠르게 받아야한다는 것.

[ 강나리 헌터님 매니저 ]

▶반가워요~ 저희는 문제 없습니다.

[ 최도군 헌터님 매니저 ]

▶저희도요~

헌데 10여분을 기다려도 한 명의 매니저는 답이 없었다. 뭐, 다들 바쁠테니 그러려니하고 넘기고는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찰나, 띠링하는 알람음이 들려왔다.

[ 이사벨라 헌터님 매니저 ]

▶ 저희도 문제 없습니다.

짧고 간단하며 사무적인 답변.

하지만 그 답변에 난 심장이 철렁내려 앉는게 느껴졌다.

"어…? 이사벨라…?"

느닷없이 떠오른 잊을 수 없는 그 이름에, 그리고 흔치 않은 그 이름에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잊고 있었었다.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흘렀었으니까.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이사벨라를 본명으로 쓰는 한국인은 흔치 않기에 심장고동이 서서히 빨라진다. 게다가 그 이름을 가진 헌터는 더욱이 드물 터.

이사벨라 헌터 매니저의 프로필을 눌렀다.

그리고 개인톡방으로 들어갔다.

▶ 저.. 한가지 묻고 싶은게….

하지만 머뭇대며 적혀가던 개인톡은 방문을 열고 나오는 유서윤에 막히고 말았다.

"어, 일어나셨어요?"

팅팅 부은 얼굴을 연신 마사지하며 내 시선을 피하는 유서윤.

어젯밤 필름이 끊겼으니 아마 불안할 터다.

"으, 으응.. 나 어제 기억이 없엉… 호, 혹시 실수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어젯밤의 그 귀여운 모습이 떠올라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뇨, 그런 건 없었어요."

"힝.. 다행이다…"

"해장국 끓여놨어요, 드실래요?"

"진짜?"

유서윤의 어여쁜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린다.

태블릿을 덮었다.

그래 뭐, 진짜 이사벨라든 아니든 상관할게 뭐야.

이제 내 알바도 아닌데.

**

'이렇게 많을 줄이야….'

반성문 50장, 솔직히 터무니 없는 장수라고 생각했었다. A4용지가 작은 색종이도 아니고, 그 광활한 백지에 자신의 잘못을 50장이나 적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적을 게 없어서 복사붙여넣기를 해야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였으니까.

헌데 3년간의 잘못을 적는 유안나의 손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학창시절에도 써본 적, 아카데미에서도 써본 적, 그 어떤 상황에서 잘못을 저질렀어도 써본 적 없는 반성문이란 것을 매니저 한 명 때문에 적고 있는 자신이 비참했다.

'근데…'

하지만 더욱 비참한 것은 3년간 저지른 잘못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과, 잘못인줄 몰랐던 일도 서서히 잘못이라 인식되고 있다는 것.

'어휴… 손이야…'

어느새 적힌 10장.

반성문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녀의 마음 속엔 진심어린 반성이 각인처럼 새겨지고 있었다.

'이강준… 미안해…'

늘 환대 받고 늘 칭찬만 들었기에 몰랐었다. 자신의 패악질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반성문에 새겨지는 지난 날의 과오들에 이제야 잘못된 것이란 걸 깨달았고, 부디 그가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주길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스케줄 짜증난다고 뒤통수를 때리던 잘못.

레이드 후의 스트레스에 작은 꼬투리에도 지랄을 해댔던 잘못.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을 차릴 때면 그릇째 버려버리던 잘못.

레이드 돌 때면 쉬는게 아니꼬워 멤버들의 잡일까지 모두 지시했던 잘못.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시작으로 멤버들의 패악질까지 종용한 잘못.

쓰다보니 50장으론 모두 담아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매니저란 이유로, 자신을 무조건 떠받들여야한다는 이유로 그만큼 3년간 저지른 악행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

손이 아파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 고통 또한 반성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열심히 써내려갔다.

이렇게라도 그가 돌아올 수 있다면 50장이든 100장이든 쓸 각오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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