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미녀사총사 파티의 분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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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죠? 내 말이 맞죠? 진짜라니까요."
노피아 상가 쪽 버스정류장의 뒤편. 모자와 마스크로 신변은폐를 시도한 소이현과 신나희가 빌라로 들어가는 유안나를 보고 있었다.
ㅡ길드에 갔다올게.
그녀는 길드에 갔다온다고 했다.
물론 맞는 말이었다. 길드는 갔었으니까. 하지만 공중전화부스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 유안나는 곧장 이곳으로 왔다.
처음 보는 빌라 건물이었다. 아마도 이강준의 집인 듯했는데, 멤버들은 그의 집을 몰랐었다.
헌데 리더 유안나는 제 집인 것마냥 서슴없이 건물로 들어가버렸고, 이현과 나희의 의심은 바이러스마냥 확산되어갔다.
"근데… 저기가 강준 오빠 집인지는 확실하지 않잖아."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 리더님께서 저희한테 무언가 숨기고 있는 거에요, 아니면 저희한테 얘기 못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혹시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희에게 `리더님이 이강준씨와 몰래 만나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던 이현은 처음엔 나희가 그저 착각하는 것이라 치부했었다.
나희 역시 강준의 갑작스런 퇴사에 충격을 받았었으니까. 하지만 조목조목 이유를 읊는 나희에 이현은 조금은 혹할 수 밖에 없었었다.
핸드크림 냄새.
강준에게 허구헌 날 마사지를 받았던 자신이기에 손에 묻은 핸드크림 냄새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었다.
달콤하면서도 산뜻한 향기.
헌데 그가 그만둔 당일에 바깥에 나가 핸드크림 냄새를 뭍혀 왔다는 것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었다.
더욱이 만나지 않았다는 거짓말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희의 의견에 따라 미행을 했고, 눈 앞에서 이름 모를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복잡해… 언니가 숨길 이유가 없잖아? 오빠를 만났으면 만났다고 하면 되지, 설마 둘이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닐 테고…?"
이현이 마지막 말끝을 부자연스레 올렸다. 그리곤 나희를 쳐다보며 놀란듯 눈을 떴다.
"서, 설마?"
"아직은 몰라요. 정황이 그럴 뿐, 물증이 없으니까. 그러니 이현 씨는 하우스에서 리더님을 떠보세요. 저는 리더님이 나오면 빌라에 가볼 테니까."
이미 어느 정도 시나리오를 짜둔듯, 계획을 설파하는 나희. 하지만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건 아닐 거야. 언니가 미쳤다구 강준 오빠를 좋아해? 말도 안 돼. 언니 남친들 봤잖아, 하나 같이 A급 이상 헌터 였던 거."
"알죠, 그러니 확인을 해보는 거에요. 강준씨에게 물어본다면 답이 나오겠죠."
"그건 그렇겠지… 아니, 근데 만약 사귀게 됐다면 우리에게 얘기하면 되잖아? 우리가 막 반대라도 할까봐 그런 건가?"
나희가 턱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흠… 아무래도 사내커플의 끝이 좋지 않다는걸 알았겠죠. 게다가 저희가 강준씨를 솔직히 못 살게 굴기는 했잖아요?"
나희의 말에 이현은 깨달음을 얻은 것마냥 아, 하는 탄성을 내지르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해도 될 허드렛일에 허구헌 날 마사지를 요구했었기에 결코 잘 살게 군 것은 아니리라, 라고 그가 떠난 후부터 느끼고 있는 그녀였으니까.
"근데… 그건 언니도 그랬잖아. 따지고 보면 우린 처음에 안 그랬어. 언니가 시작하니 동생들이 따라 배운 거지, 모."
"아마 그러다가 미운 정이 든 거겠죠? 정 중에 가장 무서운 정이 미운 정이라는 말이 있으니."
"흐응… 그런가, 알다가도 모를 언니네. 자신은 되고, 우린 이제 안 된다, 이건가?"
"모르죠. 속내는. 그러니까 이현씨는 하우스에서 기다리다 슬쩍 떠보세요. 어디 갔다 왔냐고, 저는 강준씨한테 가서 떠볼 테니까. 숨기려 들 테니까 추궁하는 느낌이 안 들게 조심, 알겠죠?"
"으, 으응. 어렵지만 해볼게."
"좋아요, 이건 꼭 짚어야 돼요. 만약 둘의 사이 때문에 강준씨가 그만둔 거라면, 나영씨의 중상에 안나 리더님이 큰 기여를 하게 된 거니까."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안나 언니를 잘 따르던 자신이었지만, 이건 확실히 짚어야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알겠어. 그럼 난 하우스로 가볼게."
"네. 강준씨 만나고 나면 연락할게요."
그렇게 이현은 안나를 기다리기 위해 하우스로, 나희는 안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버스정류장 뒤편에 은신한 채 빌라를 주시했다.
이유 없는 거짓말은 없는 법.
오늘 기필코 그 이유에 대해 파헤치겠단 일념으로, 그녀는 눈이 뻐근해질 정도로 빌라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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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준의 집에서 나온 유안나는 심연의 나락까지 떨어진 자존감, 그리고 발목을 붙잡은 절망감에 현관문에 기댄 채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늘만 굴욕감을 느끼길 두번째다.
늘 환대 받던 자신이 이제는, 길드에서도 매니저에게서도 천대 받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건지, 뇌정지가 올 정도로 막막하기만 한 상황.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에 눈물이 자꾸만 흘러댔다.
당연한 줄 알았다, 매니저란 헌터를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그렇기에 제 집의 가정부마냥 막대해도 되는지 알았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단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누구나 동경하는 S급 헌터.
그렇기에 그 누구도 자신을 홀대하지 않았었다. 어딜 가나 칭찬과 흠모, 동경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어딜가든 주목을 받았다.
헌데 저 남자만은 자신을 홀대한다.
세상에서 유일할 것이다.
자신에게 비참함이라는, 평생에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남자는 그가 처음이었으니까.
그런데, 절망감과 함께 뭐라 형언하기 힘든 기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미묘한 감정이었기에, 아직까지 그녀는 이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반성문이랬지.'
다행히 그는 자비롭게도 기회를 주었었다.
반성문 50장.
A4용지에 가득 손으로 직접 반성문을 써오라는 미션이 떨어졌고, 반성문이 마음에 들면 돌아올 용의가 있다고한 것이다.
어차피 당분간은 근신처분으로 할 것이 없었기에, 눈물을 훔친 안나는 반성문을 쓰기 위해 서둘러 하우스로 향했다.
어느샌가 그에게 인정 받고 싶었다.
이 참회가 이제는… 진심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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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저런 헛짓거리 하지 말고 가만히만 있어도 성공은 못해도 실패는 하지 않는다는 거다.
헌데 유안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길드의 문책과 세상의 비난을 피할 곳이 나의 그늘 아래란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진심 어린 참회가 빠르긴 했다.
아니면 성격답게 화통한 건지도. 하긴 그녀는 모 아니면 도 식의 극단적인 성향이 조금 있었으니까.
그게 이럴 땐 화통해서 좋네, 계속 자존심 세우며 애매한 태도로 신경을 긁었다면 참회의 기회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녀가 진심으로 참회를 했다하더라도 이미 늦었다.
난 유서윤 헌터를 모시는 매니저가 되었고, 계약을 파기하고 그들에게 돌아갈만큼 호구는 아니었었으니까.
그년들 밑에서 호구처럼 악착같이 버틴 것도 동생의 수술비용을 급하게 마련해야 했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진작 싸다귀를 날리고 나왔었을 것이다.
"흐음…"
쇼파에 몸을 기대고 등받이에 목을 얹었다. 한숨이 세어나왔다.
마냥 통쾌할 줄 알았던 그녀의 참회는 역시나 마냥 통쾌했다.
처량하고 비굴한 모습이 극도로 통쾌하긴 했지만, 내 모습이 자꾸만 겹쳐져 묘한 측은함이 조금 들기는 했는데 그렇다고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끔 만든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돌아간다해도 똑같이 그녀의 눈에 눈물즙을 짜낼 거니까.
단지, 끝맛이 무언가 씁쓸하다는 것.
물론 그 끝맛도 참회의 눈물을 떠올릴 때면 달콤함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쓸 데 없는 상념이다.
거창한 복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나 찾지마라`는 마지막 부탁마저 어기고 들러붙는 거머리에게 땅콩 한 대씩은 놓아줘도 되는 거겠지.
"그나저나 소이현, 신나희 이것들은 끝까지 뒤에 숨어있겠다는 건가?"
박나영은 중상이니 넘어가더라도, 리더가 개판난 파티를 수습하기 위해 눈물즙을 짜내고 있는데 사과할 생각이 하나도 없는 걸까?
굳이 사과 받는 것에 집착할 의도는 없지만, 유안나의 뒤에 숨어 그저 틀어진 일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오만한 행태는 내게 썩 달갑게 다가오진 않았다.
다 같이 손 잡고 찾아와 무릎 꿇어도 늦은 마당에, 아직 살만한 모양인 건가.
나 없다고 A급에서 다치기나하는 주제들이, 쯧.
그렇게 3명의 미친년들을 떠올리며 있던 그때.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ㅡ딩동.
"응? 누구지?"
유안나가 돌아왔을 리는 없다. 반성문을 어떻게 쓰는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택배가 잘못 온 건가? 아니면 이웃주민인가?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은 채 말했다.
"누구세요?"
"…."
헌데 고요한 바깥.
환청을 들었을 리가 없는데, 뭐지?
잠시 기척을 기다리고 있자 문 너머로 기척 하나가 느껴졌고, 이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ㅡ저, 저 그, 신나희에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게임에 미친 힐러님께서 제 발로 와주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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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 강준씨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라, 고작 3일 지났는데 누가 들으면 반 년은 지난 줄 알겠다.
남보다도 못한 냉랭한 어투로 말했다.
"쉬고 싶은데, 용건만 말해."
"아… 그, 지, 진짜 그만두신 건가요?"
"그럼 내가 쪽지를 뭐한다고 적었겠냐? 이제라도 생각 좀 하고 살지 그래."
신랄한 힐난에 나희의 얼굴에 당혹감이 깃든다. 3년간 존댓말로 자신을 떠받들어주던 내가 돌변하자 충격을 먹은 듯도 보였다.
음, 새하얀 얼굴이 사색이 되니 썩 보기 좋은 걸.
"…아, 아니. 믿기지가 않아서요."
"너희들은 안 믿기겠지. 나니까 이렇게 조용히 그만둔 거야, 나 아니면 너네들 독살 당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 그, 그 말은 저희를 죽이고 싶으셨다는 건가요?"
"죽이고 싶기만 했겠어? 능지처참으로 사단 분리시켜 여물로 던져버리고 싶기도 했지."
사지분리의 겁박에 소름 끼친듯 표정을 일그리는 신나희. 늘 오만하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지자 희열감이 샘솟는다.
"보기 좋은 얼굴이네, 처음 보는 걸."
"…자, 장난마시고요."
"장난? 너네들 장난은 장난이고, 내가 하면 장난이 아냐? 진짜 역겹다, 역겨워."
"돌아와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막무가내식 복귀부탁에 헛웃음이 나왔다.
문맥 파악도 못할 정도로 지능이 처참했었나, 그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시답잖은 소리할 거면 꺼져. 피곤하니까."
처음 이곳을 찾은 유안나처럼 딱히 사과할 생각은 없어보였기에 그냥 문을 닫으려 했다.
사과할 마음이 없다면, 문을 열고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이유가 없었다.
"자, 잠깐만요!"
하지만 다급히 문을 잡고 외치는 신나희에 미간을 찌푸려야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들러붙는 거람. 니들이 언제부터 이랬다고.
"뭐."
"아… 한 가지 여쭐 게 있어요."
"빨리 말해라."
"…그, 혹시 그만 두신 이유가 안나 리더님과 연관된 거는 아닌가요?"
…뭐?
갑자기 이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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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맞죠? 대답을 못하시는 거 보니 맞는 거 같은데."
"…."
내가 그만둔 게 유안나와 연관된 일 때문이냐고?
대체 왜 저딴 말을 하는 걸까?
설마, 여기를 몇 번 들락날락했다고 그런 오해를 하는 건가?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연관된 일이라, 리더로서 사죄하러 온 것 외엔 특이점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착각을 단단히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헌데, 확신에 찬 신나희를 보고 있으니 묘수 하나가 번뜩 스쳐 지나갔다.
우선 그녀가 정확히 어떤 착각을 하고 있는지 먼저 떠보기로 했다.
"그럴 줄? 무슨 소리지?"
모르는 척 되묻자 신나희가 `요놈 잡았다`는 듯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나 리더님과 사귀시는 거죠? 그러니 강준씨를 그만두게끔 짠 거고."
…이게 진짜 무슨 개소리야.
내가, 내가 그년하고 사귄다고?
대체 뭘, 어떤 오해를 하면 그런 정신 나간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난 진짜 결백하게 그런 오해를 심어줄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나의 퇴사소식이 꽤나 충격이었나보다. 망상증세라도 보이는 걸까?
"충격이라도 받은 표정이시군요."
…그럼 그딴 개소리를 듣고 충격에 안 빠질 인간이 어딨겠어. 지나가던 똥개도 똥싸다 끊을 정도로 개소리인데.
'가만… 그럼 유안나가 여기서 일어난 일을 숨기고 있다는 건가?'
왜 숨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안나는 숨기고 있고 신나희는 그탓에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도 아주 크나큰 오해를.
"대체 언제부터죠?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이건 중대한 사항이니까요."
잠시 고민하던 난, 떠오른 묘수를 머릿 속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착각의 늪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쉽지가 않다. 착각의 늪에 빠질 정도면 이미 믿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있을 테니까.
그것은 곧, 맛있는 미끼를 던져주면 앞뒤 생각 없이 물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난 묘수를 꺼내기로 했다.
어차피 묘수가 들통난다해도 내게 피해올 일은 일절 없었다.
"흠, 역시 제법 눈치가 빠르네. 근데 그거 알아? 곧 내사랑 안나도 너희들을 버리고 파티에서 나올 거라는 거. 리더가 빠진 파티는 공중분해되버리겠지. S급 중에서 실력도 없는데다 성질머리 더럽기로 소문난 너희들이 제대로 된 매니저도, 리더도 없이 과연 다른 파티를 구할 수 있을까?"
미친년사총사 파티에 강한 균열을 만든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처럼 스스로 자멸하게 만든다.
난 그 자멸을 방관하며 즐긴다.
완벽한 계획이다.
신나희, 그 배의 선장으로 임명해주마.
빙산으로 돌진하게 조타를 잘 부탁한다.
"아아…! 여,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착각과 충격에 빠진 신나희의 표정을 즐기며 문을 닫았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격언, 이번에 잘 깨닫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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