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유안나의 참회
ㅡ파티 리더란 새끼가 포션 하나 제대로 안 챙겨서 파티원을 다치게 만들어?! 그것도 A급 던전에서?! 이따위로 파티 이끌라고 니년한테 돈을 쏟아붓는지 알아, 어?!
사고를 수습하고 보고를 위해 길드로 돌아온 유안나는 된통 깨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바지사장 대표가 아닌, 회장이 와있었던 것. 처음이었다. 가온 길드로 영입된 이래,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쓴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그만큼 S급 헌터의 중상은 길드 입장에서도 막대한 손실이었기 때문이다.
ㅡ죄송합니다….
변명할 건덕지가 없었다.
매니저가 없어서 포션을 못 챙겼다는 변명은 자신이 생각해도 황당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 변명은 매니저가 없으면 A급 던전도 못 도는 S급 헌터란 오명을 만들 뿐일 테니까.
이미 박나영의 부상은 기사화되어 온갖 가십거리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기에 길드 이미지, 그리고 미녀사총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었었다.
게다가 초점은 매니저의 부재.
길드에서 모면용 기사를 뿌리겠지만, 한번 이미지에 타격을 입으면 던전 토벌 경쟁권에서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었었다.
S급 헌터들은 국가전력이기도 했고, 국가는 그 전력의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실력이 부족한 S급들을 철저히 관리하려들 테니까.
더군다나 A급 던전 따위에서 큰 부상을 당했으니 박나영이 복귀하기 전까지는 던전 토벌 금지령까지 떨어질지도 몰랐다.
그만큼 박나영의 중상은 큰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유안나는 이번만큼은, 콧대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노발대발하는 회장의 분노를 삼켜낸지 어언 1시간. 썩 꺼지라는 말에 길드를 나선 유안나는 일순간 울컥 치솟는 울음에 입술을 깨물어야했다.
비참했다.
고작 매니저 한 명 때문에 자신의 위신이 이렇게나 꺾이게 될 줄이야.
눈물이 흘렀다.
참회의 눈물일까, 울분의 눈물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등신 같은 눈물일까.
모르겠다, 그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창피하고 또 창피했다. 매니저 한 명이 그만뒀다는 이유로 이런 개망신을 당하고, 박나영은 중상을 입고 말았다니.
황당함에 헛웃음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안 되겠어.'
유안나가 휴대폰을 꺼냈다. 답이 없었다. 회장에게 듣자하니 전담할 헌터가 미녀사총사 파티라는 이야기를 들은 지원자들이 모두 학을 떼고 도망간다고 했었으니까.
그것도 임원급 월급에 혼자가 아닌, 서브매니저를 더 붙여주겠다는 조건을 걸었는데도 말이다. 매니저도 뽑히지 않고, 멤버는 중상을 당했으니 아마 당분간은 징계로 근신처분이 내려질 터다.
비참하고, 쪽팔렸다. 이강준 한명이 떠났을 뿐인데, 세상이 등을 진 듯한 극도의 소외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만 돌아온다면 세상도 돌아올 것만 같았다. 그가 너무나도 필요했고, 그것을 깨닫자 3년 간 그가 지었던 표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 시작했다.
발코니에서 한숨을 쉬던 모습, 욕을 듣고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던 모습, 그런 자신을 맞추기 위해 세심함을 잃지 않던 모습.
그 모습들이 지나가며 가슴에 비수가 꽂힌다. 왜 그랬을까, 왜 막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여겼을까. 왜 그가 떠나게끔 만들었을까.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의 가슴에 꽂혀 있을 수백 개의 비수를 뽑아주고 싶었다.
아니,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당장 뽑아주고 싶었다.
안나가 이마를 짚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결국 유안나는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안내멘트는 자신의 비참함에 기름을 들이붓는다.
"…차, 차단한 거야?"
차단당한 충격에 허망히 주변을 둘러보던 유안나의 시야에 공중전화부스가 보였다.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회장도 무슨 짓을 해서든 이강준 매니저를 데려오라고, 아니면 연봉을 대폭삭감해버리겠다는 겁박까지 했었으니까.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간 안나는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근두근, 전 남친에게 연락하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과하리만큼 쿵쾅댄다.
그리고 이윽고,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땐 심장이 철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반갑고도 미안한, 그리고 그리운 목소리였다.
ㅡ여보세요.
"…나, 나야, 유안나. 한번만 만나줘.. 진짜 너가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까."
**
잠든 유서윤의 폰에 문자 한 통을 남겨두고 택시를 불렀다.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온다고, 아침엔 좋아하는 황태해장국을 끓여주겠다고. 문자를 남기고 하우스를 나선 난, 미리 불러둔 택시에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노피아 상가 쪽으로 가주세요."
"네."
기사가 미터기를 찍었고, 택시는 노피아 상가로 향했다. 목적지는 노피아 상가 맞은 편의 3층짜리 빌라 건물.
그곳은 나의 집이었다.
*
집에 도착한 난 별달리 할 것이 없었기에 쇼파에 앉았다. 취기와 피로가 엉겨붙어 쇼파에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신은 너무나도 또렷했다.
심장고동도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걸까, 뭐 따지고 보면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다만.
"흐음…"
눈을 감자 택시를 타고 오며 기사가 건넨 말들이 떠올랐다. S급 헌터가 A급 던전에서 중상을 입었다는 라디오가 들리자마자 그는 `쯧쯧, 어떤 머저리 같은 녀석이길래 A급에서 당한담?`이라며 혀를 찼었지.
아무래도 택시기사분들이 그런 가십거리를 좋아한다지만, 그분은 그뒤로 과하리만큼 내게 자신의 생각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었다.
ㅡS급이라면 대한민국의 자랑아니요, 자랑. 근데 쪽팔리게 A급에서 중상이라니 쯧쯧.
ㅡ듣자하니 미녀사총사인지 뭐신지 그녀석들인 거 같은데 아무리 실력이 없어도 A급에서 중상이 말이 된답니까?
말이 된다는 건 오직 나밖에 모를 터기에 묵묵히 들어만 주었다.
씨익,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숨긴 채로.
ㅡ에잉 쯧! 쪽바리녀석들 또 조롱거리 생겼다고 득달같이 달려들겠구만!
역사적으로 그래왔으니, 그놈들에겐 좋은 먹잇감이겠지. 그나저나 탱커가 멀쩡한데 원거리 딜러가 중상이라니.
유안나, 그 멍청한 년이 어그로를 제대로 못 끌었던 모양이다.
ㅡ근데 듣자하니 매니저가 그전 날 그만뒀다더라고.
소문 참 빠르네.
ㅡ그래서 그런 건가? 왜, 자네도 알잖은가. 미녀사총사 그 파티년들 성질머리 더럽다는 거.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갑질이 대기업 회장도 뛰어넘는다고.
정확히 알고 계시네. 회장보다 더 했음 더 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았으니까.
ㅡ그래서 매니저가 퇴사하면서 엿이라도 먹였나보군, 크허허!
엿이라, 음.. 엿이 아니라 그년들 실력이 그정도 수준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술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내가 매니저인 줄도 모르는 양반한테 무슨 항변을 하겠는가.
그래도 그년들이 당했다는 소식에 호탕하게 웃는걸 보니 마음이 푸근하기도 했고.
"박나영.. 복부 중상이면 죽지는 않겠지."
이렇게 쉽게 죽으면 안 된다, 차라리 반신불구가 되어 휠체어 신세를 지든 배때지에 호스관을 달고 평생을 살든, 등신이 되어 살아야 내 3년간의 지옥을 보상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쉽게 죽는 건 오히려 나에 대한 능욕과도 같은 셈.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그저 잘됐다, 쌤통이다. 그냥 그 생각 뿐.
이제 우린 남남이니까.
[ 하라는 대로 다 할게 ]
하지만 유안나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그 생각에 후회 한스푼을 끼얹었다.
생각해보니 너무 억울하기도 했다.
그런 갑질과 구박과 모욕과 폭력까지 당한 내가 왜, 그년들에게서 도망쳐야한다는 말인가? 오히려 반대가 되어도 모자랄 판에?
ㅡ집으로 와, 지금.
그렇기에 난, 유안나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이젠 내가 갑이고 그녀는 을이다. 원래 아쉬운 쪽이 을이 되는 건 세상의 이치였다.
동생 수술비가 필요했던 그때의 난 아쉬운 쪽이었고. 하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진 셈.
내가 그만두자마자 A급 던전 따위에서 중상자가 나온 것을 길드에서도 유안나를 크게 문책을 했을 것이다. 길드 자산이 당분간 일을 못하게 되어 손실을 입으니 그 관리책임자를 문책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기에 그녀가 내게 다시 전화를 건 것이다. 아마 나를 다시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았겠지.
나 아니면 누가 그 미친년들을 보필하겠는가. 그걸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많이 늦었버렸다만.
ㅡ딩동.
그래도, 빨리 오기는 빨리 왔네.
**
"…들어가도 될까?"
그래도 뺨따귀를 맞은 후로 많은 성장을 이룩한 것 같다. 들어간다, 가 아닌 들어가도 되냐 묻는 걸 보니.
말없이 길을 터주자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유안나. 마치 잘못을 들킨 학생마냥 고개를 숙인 채 쭈뼛대는걸 보니 서서히 유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용건이 뭔데."
싸늘한 말에 유안나가 나를 쳐다본다. 연한 습기가 어린 눈망울이 달빛에 일렁인다.
"…미안해, 진심으로. 너한테 너무했었어. 진짜.. 후회될 정도로."
"후회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지않아?"
"알아, 너무 늦었다는 거.. 그치만 이렇게라도 사과할게.. 진짜 미안해."
"그래? 알았어. 사과받아줄게."
사과를 받아준다는 그 헛소리에 유안나가 반색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저, 정말?! 사과 받아주는 거야?"
"응, 받아준다고."
"…역시, 넌 착한 놈일 줄 알았어!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맞지..?"
비릿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진짜 사과를 받아준 줄 알고 좋아하는 꼴이라니, 같잖기 짝이 없었다.
"그, 그럼 길드장님한테 얘기해놓는다? 내일부터 출근 다시 한다고?"
하지만 이내 잔뜩 들떠서는 또 옛버릇 튀어나오는 유안나에 욕지기가 치밀어오른다. 제 멋대로 판단하고 제 멋대로 단정짓는 건 어쩜 그리 4명이서 닮았는지, 역겨울 정도다.
나의 비릿한 조소에 뭔가 께름칙함을 눈치챈 유안나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조롱이 담긴 미소란 걸 눈치챈 듯했다.
"왜.. 왜?"
"내가 언제 돌아간다고 했어?"
"아, 아니..! 사과를 받아준다는 건 화가 풀린 거니까! 그, 그러니까 돌아온다는 거 아냐?!"
"넘겨짚고 화내는 건 역시 여전하네."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하다못해 진심으로 반성하기라도 한다면 사과라도 받아줄 요량이 있었는데, 역시나 반성보다는 상황만 모면하려는 모습에 씁쓸함만이 가득차올랐다.
"…돌아가."
현관문을 다시 열고 길을 터주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반성은 나를 능욕하고 모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당장 뺨따귀를 올리고 싶은 심정이 가득했지만, 3년간 쌓은 인내심으로 참고 있는 것 뿐.
만약 또 헛소리를 지껄이면 손이 나갈 것만 같았다.
"…! 미, 미안해! 진짜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넘겨짚어서 미안해..!"
다행히 유안나는 제 알량한 자존심을 굽히며 내게 무릎을 꿇는다.
때로는 분노보다 냉담이 상대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법이다.
분노가 있다는 것은 풀릴 건덕지가 있다는 것이지만 냉담하다는 것은 풀릴 건덕지가 없다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나의 냉담한 배웅에 그녀는 다급해진 것이다.
"…."
무릎을 꿇은 채 선처를 구하는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유안나. 노예를 지배하고 하우스를 군림하던 그녀가 이젠 나의 집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꼴이라니,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다.
사과하러 온 사람이라면 자존심은 버려야하는 법이니까. 죗값을 홀로 지는 그녀의 모습이 문득 가정을 홀로 책임지던 내 모습과 엇비슷해 측은해보이기도 했지만 이정도로 내 3년의 고역을 보상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다시는 나를 찾지 말라는 마지막 부탁마저 어겼기에 죗값은 늘어났다.
그냥 시원하게 서로 잊고 각자 갈 길 가면 좋을 텐데 이 미친년4총사는 마침표를 찍고도 나를 놓아주지를 않는다.
ㅡ철크덕.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골목 양아치마냥 사타구니를 벌리며 앉았다.
참회의 길은 열려 있었다.
다만 닫히기 일부 직전일 뿐.
아무래도 그 촉박함을 그녀에게 인지시켜주어야할 듯했다.
"하… 아까운 시간 낭비하게 만들지마. 마지막 기회다. 잘못한 일, 낱낱이 읇어봐. 마음에 들면 사과는 받아주지."
"저, 정말? 정말이야?"
"십, 구, 팔…"
카운트다운은 사람을 극도로 초조하게 만든다. 느닷없이 터진 카운트다운에 변 마려운 똥개마냥 하부를 들썩이며 급박해하던 안나가 급히 3년간의 과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 사과할게…! 너한테 욕한 거.. 장난이라며 때린 거… 스케줄 짜증난다고 신경질 부린 거.. 내가 해야될 일도 떠넘긴 거… 괴롭힌 거… 또.. 또… 레이드 도는 기간에 너 쉬는게 아니꼬와서 잡일시킨 거… 다.. 진짜 흐흑.. 미안해, 너무 미안해 흐흑…."
마음 속으로 되뇌이는 것과 육성으로 되새기는 것이 다르듯, 조목조목 육성으로 자신의 잘못을 읊던 그녀의 눈에 참회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읊다보니 느껴지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마음 속에 어렴풋이 지니고 있던, 그 잘못들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자 깨달은 것이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는 유안나. 눈꺼풀에 맺힌 눈물이 거실바닥을 적신다.
고즈넉한 야밤에 이게 무슨 카타르시스란 말인가. 사소한 잘못에도 늘 고개를 숙여야했던 내가 이제는 받는 신세가 되었다니.
사람 앞 길 한 치 앞을 못 본다더니, 정말인 모양이다. 불과 3일 전만 해도 그녀의 스케줄 타령을 달래느라 급급했던 내가 단 3일만에 그녀의 머리 위에 군림하게 되다니 말이다.
그녀의 턱을 잡아 들었다.
"흐흑… 흐아앙…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몰랐어,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미안해에… 흐으윽…"
진심이다.
드디어 진심 어린 사과가 내 마음의 비수를 뽑아낸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턱에 맺힌 눈물방울들을 닦아주었다.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흐윽… 미안해… 정말, 애들한테도 얘기할게… 그러니 제발 사과 받아줘… 이렇게 빌게. 이렇게 빌 테니까 제발 돌아와줘. 우린 너 없으면 안 돼."
자존심을 내려 놓자 이젠 파리마냥 합장하곤 싹싹 빌어대기까지하는 유안나.
그 누구에게도 빌어본 적이 없을, 그옛날 귀족마냥 고귀했던 그녀의 처절하고 처량한 모습에 짜릿한 유열감의 폭죽이 사방에서 터져댄다.
"이제 알았어?"
"으응…! 제발 그러니 제발 돌아와줘…! 다신 안 그럴게. 애들도 안 그럴 거야, 그러니 흐흑… 제발…!"
사정없이 매다꽂히는 소름에 한 차례 몸을 떤 후,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거짓 한 점 없이 참회를 하고 있는 순결한 눈동자. 그 눈동자의 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또렷히 노려보며 뇌까렸다.
"근데… 아직도 내가 호구로 보여?"
그녀의 흑갈빛 동공이 암전된듯 확장된다.
그 확장된 면적에 진한 절망감이 오롯이 차오르며, 이내 오한이라도 든듯 떨린다.
3년간 보았던 그녀의 눈동자 중, 가장 어여쁜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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