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그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ㅡ목적지까지 30분이 소요됩니다.
차에 올라 네비를 찍었다. 목적지는 라온제나 길드와 프리드 길드의 합동 실내 A급 훈련장.
돔 형식의 거대한 훈련장으로, 지구의 대기에는 없는 마나란 물질을 인위적으로 형성시켜 헌터들이 각성능력을 훈련할 수 있게끔 만들어둔 곳이었다.
마나가 있어야 헌터들의 각성 능력이 발휘되었기에 던전의 대기구조를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었는데 즉, 던전과 훈련장이 아닌 곳에선 헌터도 일반인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유안나의 뺨다귀를 시원하게 걷어올릴 수 있었고.
'각성상태로 마주치면… 어우..'
다행히 유서윤이 A급이었기에 그 미친년들을 훈련장이나 던전에서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던전의 경우 길드들이 스케줄을 조율해 중복입장이 되지 않게끔 처리를 하고 있었고, 훈련장 역시 같은 급을 제외한 헌터는 출입조차 불가했으니까.
유서윤이 S급으로 진급하게 된다면 조심은 좀 해야겠지만.
근데 뭐, 각성상태로 만난다해서 내게 손을 데지는 못할 것이다. 각성상태로 던전짐꾼을 폭행했던 헌터는 영구자격박탈에 철창신세까지 졌었으니까.
"피곤하시면 잠시 주무세요, 헌터님. 30분 정도 걸리네요."
"아, 으응.."
아침식사 후, 우리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구면이냐는 물음에 갑자기 터진 기침, 그것이 진정되고난 후 유서윤은 `초면이지, 초면`이라며 답변을 일축했고, 그 뒤부터 묘한 어색함이 자리 잡은 것이다.
한번 더 묻고는 싶었지만, 그녀의 기색이 물음을 꺼려하는 듯해 더 묻지는 않았다.
뭐, 때가 되면 뭐든 알게 되겠지.
"…."
"…."
고요한 차 안.
노래취향 정도는 미리 파악해둔 터라, 어색한 기류도 풀어볼겸 다운 받아두었던 노래를 틀었다.
잔잔한, 그리고 서정적인 노래를 좋아하는 유서윤이었기에 아이뮤(IMU)의 노래들이었다.
노래가 나오자 유서윤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는 시트에 몸을 기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네."
"아 정말요? 서정적인 노래 좋아하신대서 다운받아둔 건데, 저도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 어쩜 우린 취향도 잘 맞는 거야. 호호."
역시 한민족답게 노래 한가닥에 풀어지는 어색한 기류. 잠시 노래를 감상하던 유서윤이 눈을 감은 채 편안히 내게 말했다.
"강준아."
"네?"
"헌터 매니저 일을 해봤으니, 캐스터에 대해서도 알겠네?"
모를 리 없었다.
캐스터, 세련되게 영어이름을 붙여놔서 그렇지 한글로 번역하자면 짐꾼이었었다.
레이드 파티의 최후방을 따르며 헌터들이 처치한 마물사체에서 전리품들을 수거하는 일을 하는 짐꾼, 그들을 캐스터라고 부른다.
짐꾼 노조 연합에서 짐꾼이란 단어가 비하의 의미도 담겨있다며, 캐스터 노조 연합으로 바꾸며 사회적으로 캐스터란 단어가 자리 잡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요. 알죠, 근데 왜요?"
개연성 없이 툭 튀어나온 캐스터에 궁금한듯 룸미러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눈을 살며시 뜬 유서윤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니, 사실 아까부터 얘기하려던 건데, 너가 괜찮으면 제안 하나 할까해서."
"저야 뭐든 괜찮죠. 헌터님의 제안인데."
"아니 진짜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상관없어. 강요하는게 아니라 진짜 그냥 제안을 하는 것 뿐이니까. 부탁도 아냐. 제안이야, 제안."
대체 무슨 제안이길래 저러시는 걸까?
갑(甲)인 헌터가 을(乙)인 매니저에게 강요 대신 제안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기에 정말 난 괜찮은데.
그리고 제안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서로에게 긍정적인 의미일 때 쓰는 것이 아니던가?
그에 잠시 기다리고 있자 머뭇거리던 유서윤이 조심스레 그 제안이란 것을 꺼냈다.
"그, 혹시 괜찮으면 캐스터 일도 해줄 수 있어? 당연히 보수는 두둑히 챙겨줄게!"
…응? 제가요?
멀쩡한 캐스터들을 놔두고 굳이 저를?
**
"진짜 그냥 제안만한 거니까 너무 부담가지지 말구 편하게 생각해. 알겠지? 그럼 갈게!"
훈련장에 도착한 유서윤은 환한 미소로 내게 손을 흔들며 멀어져갔다.
제안을 한 뒤로 그 제안을 한 이유에 대해서 열변을 펼쳤는데, 합당한 이유기는 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반 캐스터들은 소위 말해, 삥땅을 자주 쳤었다.
짐꾼이다보니 최후방에서 헌터들이 전투에 여념이 없을 때 몰래 짐을 빼돌리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레이드 전리품의 경우, 파밍 수확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캐스터가 전리품을 마나장비로 빼돌리고 `오늘은 수확이 좋지 않았다`라고 말하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의심정황이 없는데도 몸수색이나 마나감지 행위를 하면 노조 연합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그렇기에 삥땅치는 캐스터가 허다했던 것이다.
간혹 기사도 나왔었고. 2년전 쯤 미친년4총사 파티에서 감히 삥땅을 치려다 걸려 곤죽이 되었던 캐스터를 눈앞에서 목도했던 적도 있었었다.
그때 내가 안 말렸으면 아마 그 미친년들은 지금쯤 살인죄로 깜빵에서 벌레나 잡고 있었겠지.
'괜히 말렸어.'
여하튼, 그녀는 어차피 이름도 모를 남에게 전리품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내게 캐스터 임무를 맡기고 보상을 나눠주겠노라고 제안한 것이었다.
굉장히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강제성도 없었으며 더욱이, 캐스터를 맡아주면 자신의 몫을 `무려 절반`이나 준다고 했으니 말이다.
A급 캐스터의 평균 수익률이 1.5퍼센트임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초초 파격제안인 셈.
일반 매니저였다면 당장이고 수락했을 제안인 것이다.
거기다 옛날처럼 보따리를 이거나 캐리어를 질질 끌고 파밍하러 다니는 생노가다 방식이 아닌, 마나장비를 이용해 편하게 파밍하기 때문에 목숨 걸고 전투를 벌이는 헌터들에 비해 힘든 것도 없었었다.
물론 전투능력도 없이 위험한 던전에 들어간다는 부담은 있지만 캐스터의 던전 내 사망률이 같은 조사표본 대비, 일반 심장마비 사망률보다 낮다는 점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
거절할 이유는 단지, A급 던전 레이드를 도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의 휴식이 사라진다는 것이랄까.
그마저도 S급 던전에 비해 턱없이 짧은 휴식기간이기에 거절 메리트도 없기는 했다.
거기다 솔직히, 가온 길드에서 받았던 3,000만원이 아쉽기는 했었다.
다만 3,000만원보다 건강과 내 자존감이 중요했을 뿐. 그곳에서 더 버텼다면 내가 진짜 미쳐버렸을 테니까.
만약 캐스터 업무를 맡아 전리품 소득의 절반을 받는다면 월 3,000만원이 무슨 말인가. 각성석 같은 희귀템이 뜬다면 그 곱절 이상도 될 것이기에 구미가 당기긴 했다.
자본주의사회에 어쨌든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긴 하니까.
그렇기에 유서윤의 제안은 내게 큰 이득인 셈이었다. 어느 누가, 어느 헌터가, 어느 협회가 캐스터 업무를 맡아주는데 소득의 절반을 주겠는가. 어찌보면 제안이 아닌, 그냥 내게 퍼주겠다는 것과 같았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할 터.
그 미친년들 아래서 온갖 스트레스와 구박을 당해 머리털 빠져가며 3,000만원 받느니 유서윤의 아래서 온갖 엔돌핀과 칭찬을 당하며 버는게 훨씬, 아니 백만 배 천만 배 나을 테니까.
고로,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레이드도 한달에 고작 두세번 정도였었으니까.
헌데 왜 나한테 이런 파격제안을 한 것일까? 그녀 정도면 신뢰할 사람은 충분할 텐데, 전리품 수익의 반이라면 나 아니어도 줄을 설 테고.
단지 내가 자신의 매니저란 이유로 그런 퍼주기식 제안은 한다는 건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고.
하지만 의중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뭐, 무슨 이유가 있었다면 제안이 아닌, 강요를 했겠지.
감사한 제안에 쓸 데 없는 상념을 하지 말자, 라고 생각한 난 차를 몰아 다시 하우스로 향했다.
캐스터라, 헌터 각성 실패 후 이제껏 던전에 들어가본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왠지 설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다 챙겼어? 빠진 거 없지?"
대형벤의 앞좌석에 탄 유안나가 뒤에 앉은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운전이야 길드 측에서 긴급대응인원을 붙여주었지만, 전투물품을 챙기는 일은 스스로가 해야 했었기에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대형벤이 출발하는 순간까지 잊어먹은 것을 찾느라 허둥댔었으니까.
"…몰라.. 뭐가 빠졌는지도 모르겠는걸."
"뭐 좀 빠지면 어때. A급 던전 토벌 따위의 시시한 일인데 몇 개 빠졌다고 큰일 나겠어?"
"저는.. 빠진 거 없는 거 같긴 해요."
망연자실한 소이현, 거드름 피우는 박나영, 그리고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신나희까지.
던전 토벌을 나가며 이처럼 사기저하된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적어도 이강준이 있었을 때는.
'그래.. A급 던전인데.. 무슨 일 생기겠어.'
결국 유안나는 한숨을 푹 내쉬곤 고개를 돌려 전방을 응시했다. 이제 와서 던전 토벌을 무를 수도 없는 노릇.
대형벤은 그런 그들을 태우고, 던전을 향해 내리달리기 시작했다.
*
"포션! 마나포션 하나만 줘! 나 다 썼어!"
"야이 정신 나간 년아! 마나포션을 다 쓰면 어떡해! 나도 안 들고 왔다고!"
"여, 여기요! 저 몇 개 챙겨왔어요! 저 쓸 거 였지만..! 급하게 이거라도..!"
"마나 없으면 일단 평타라도 날려! 내가 탱킹하고 있을 테니까!!"
아비규환의 보스방.
하필이면 A급 보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 알려진 키메라의 등장으로 유안나 일행은 허둥대기 급급했다.
흩어진 장비를 챙기느라 포션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이었다. 그리고, 몇몇은 다른 사람이 챙겨왔을 거라 대충 넘겨버린 탓도 있었고.
소 모씨와 박 모씨.
하지만 무엇보다 A급 던전이라 모두가 안일하게 생각한 게 큰 탓이었다.
ㅡ키에엑!
사자 머리 뒤에 있던 뱀머리가 아가리를 벌려 쇄도했고, 안나의 팔을 물어버렸다.
"크흑!"
S급 탱커기에 체력 소모는 심하지 않았다. 강하다곤해도 결국은 A급 보스였으니까. 우악스런 이빨도 각성능력이 발휘된 S급 탱커의 살갗을 제대로 뚫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 포션부족으로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더욱이, 자신도 숄더태커를 깜빡해버려 어깨 쪽을 공격당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힐!"
"아앗, 잠시만요! 마나가 곧 회복될 것..!"
"크흡! 아니면 배리어라도 걸어!!"
"그, 그것도 마나가..! 포션을 다 나눠주는 바람에..!"
"아악, 씨바알!!"
그 순간, 약점을 파악이라도 한 건지 키메라의 다른 뱀머리가 어깻죽지를 물고 말았다. 그 공격에 방패 뒤에 숨어 어그로를 끈 채 탱킹을 하고 있던 안나의 한쪽 무릎이 기어이 굽혀진다.
S급 헌터가 된 이래, A급 보스 따위에게 무릎 꿇린 적은 처음이었었다.
하지만 그 굴욕감을 느낄 새도 없이 강한 고통이 엄습했고, 입가엔 비릿한 피맛이 느껴져왔다.
만약 던전 내에 포진된 마나로 발현된 육체각성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어깻죽지가 뜯겨져 나갔을 것만 같은 강한 치악력에 체력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져왔다.
위험했다. 이대로라면 어처구니 없게도 진짜,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파티의 리더로써, 절대 쓰러질 수는 없었다. 탱커가 쓰러지는 순간, 파티의 궤멸은 예정된 수순처럼 진행될 테니까.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티길 5분, 그녀의 처절한 탱킹으로 마나 회복 시간을 번 두 딜러의 마지막 총 공세에 기어이 키메라가 쓰러지고 만다.
ㅡ쿠웅!
ㅡ끼에에엑!
최후의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는 키메라.
하지만 토벌 성공의 쾌재도, 탄성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탄식과 절망이 가득했다.
만약 너튜브용 던전 토벌 영상 촬영이 잡혀있기라도 했다면 두고두고 `미녀4총사의 굴욕영상`이라며 인터넷에서 조리돌림 당했을, 그만큼 치욕적인 토벌이었으니까.
"하아.. 하아…"
땀이 비오듯 내리고 피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강준 매니저의 부재, 그 간단한 부재는 결코 간단지 못하다는 것을 실감한 안나는 비통한 표정으로 바닥에 퍼질러져 앉았다.
전투물품은 모두 그가 챙겨주었었고, 3년간 던전 앞에서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채비를 할 때에 무언가 빠진 적이 단 한번도 없었었다.
단 한번도.
더욱이 전투물품을 챙기는 건… 헌터들이 해야할 일이었었는데 말이다.
그가 없다고해서 던전을 오며 장비도, 포션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니, 토벌준비수준이 황당할 정도였다.
그의 부재 하나로 A급 던전에서 이렇게나 고전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늘 마나포켓에 포션이 가득했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의 노력이 깃들어 있었던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안일하고, 무지했다.
토벌 준비를 너무 얕봤던, 그리고 그를 떠나보낸 것이 뼈저리게 후회스러웠다.
그런데, 그때.
좌절감을 느낄 새도 없이 뒤편에서 불길한 부름이 들려왔다.
"어, 언니이…"
고개를 돌린 유안나의 눈동자에, 키메라의 날개서 뻗친 가시를 맞은 박나영의 하복부에서 피가 흐르는게 보였다.
성인 팔뚝만한 가시는 박나영의 하복부에 깊숙히 박혀 있었고, 결국 박나영은 외마디 비명도 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키메라의 날개가시는 맹독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빨리 응급처치를 안 하면 위험한 상황.
하지만 아직 마나가 회복되지 않은 나희는 리커버리를 시전하지 못하고 있었고, 포션을 다 써버린 그들은 발만 구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좌절을 넘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S급 파티가 꾸려진 후, 누군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나, 나영아! 정신차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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