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유서윤 하우스 입성, 베일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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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일찍 차를 몰아 유서윤의 하우스로 향하는 중이었다. 아침식사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선 식자재 시장도 가야했기에 꼭두새벽부터 움직일 필요가 있었던 탓이었다.
헌데 미친년들 매니저일 때는 그저 짜증나는 일과일 뿐이었는데, 오늘은 왜인지 설렘이 가득한 새벽길이다.
문득 유안나의 피사체가 떠올랐다. 겁에 질린 듯도 보였던 모습, 그 모습에 전율적인 통쾌함이 느껴져 잠도 제대로 못잤는데.
희안하게도 몸은 날아갈듯 가볍다.
핸들을 잡은 손끝에 아직도 유안나의 뺨을 후려친 감각이 남아있었다. 짜릿한 유열이 가득한 감각이다.
미친년4총사를 일렬로 세워놓고 뺨따구를 후려치고픈 망상이 들 정도로 손끝에 남은 감각은 짜릿했다.
ㅡ끼익.
시장에 도착한 난 미리 적어둔 대로 장을 보았다. 신선한 한식 식재료와 후식으로 즐긴다는 요거트 하나를 사서 다시 차에 올랐다.
길드 내에 정리되어있는 유서윤의 자료와 인터넷 기사, 커뮤니티 정보들, 그리고 전 매니저의 인수인계 파일까지 받았던 터라 그녀에 대한 음식취향, 식습관까지 모두 파악해둔 터였다.
4마리의 지랄견들의 입맛도 맞춘 내게 1명의 성인의 입맛을 맞추는 건 식은 죽 먹기.
기분 좋은 흥얼거림을 흘리며 곧장 하우스로 향했다. 현재 시간은 이제 막 동이 트는 6시 3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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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즈음, 하우스에 도착한 난 짐을 정리할 새도 없이 장을 봐온 것들부터 주방에 날라 급히 요리를 시작했다. 비밀번호는 어제 공유되었던 터라 아직 유서윤은 곤히 자고 있을 것이다.
그년들과 달리 음주가무를 즐기지 않는 스타일인 그녀는 하루 루틴이 정확했는데, 자료 토대로라면 기상시간은 7시 30분.
그전에 서둘러 요리를 완성시켜야했다.
서프라이즈랄까, 그녀에게 점수를 따고픈 욕심도 조금 들었으니까. 서두른 덕에 시래기국과 더덕무침이 빠르게 식탁에 올랐다.
한식파 외길인생이었던 신나희 덕에 이정도 쯤 차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게임에 미친 힐러년이 이럴 땐 또 도움이 되는구나, 싶었다.
"음, 딱 좋아."
다행히 시래기국의 간도 딱 맞다.
맵짠단을 즐기는 그년들과 달리 약간 슴슴한 맛을 즐기는 유서윤이었기에 간을 맞추느라 긴장했는데, 다행히 한번에 맞춘 듯했다.
ㅡ삐비빅.
7시 28분, 알람이 울렸고 거실에 내려진 커튼을 걷고 그녀의 기상준비를 시작했다.
길드 내의 자료나 전 매니저의 자료는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상세히 적혀있지는 않았었다.
특히 길드자료는 그저 신상정보나 신체사이즈 등이 있을 뿐이었고, 전 매니저의 자료는 조금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다지 성에 차지 않았었고.
그를 탓하지는 않는다.
그런 자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일했다는 반증이니까.
아침식사 역시 전 매니저가 직접 차리던 것은 아니었었다. 요리엔 소질이 없었던 건지, 아침마다 음식점에서 포장을 해와 그릇에 담아둔다고 했었으니까.
주 메뉴가 한식에 슴슴한 맛을 좋아한다는 것이었고. 부디, 입맛에 음식이 맞길 바라며 태연히 거실정리를 하고있자 이내 부스스한 머리를 한 유서윤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간밤에 꿀잠이라도 주무신 건지, 땡땡 부은 얼굴에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있었다.
그리고 내가 왔는지 몰랐던 듯 흐트러진 잠옷바람으로 나온 유서윤이 나를 발견하곤 팅팅 불은 눈두덩을 끔뻑댔다.
5초 정도 우리 사이엔 적막의 기류가 흐른다.
그러다 이내, 못 볼 것이라도 본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호다닥 방으로 다시 들어가버리는 유서윤.
"헌터님?"
엥?
왜 저러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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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아, 아니잇! 버, 벌써 와있었던 거야?
방문을 두고 펼쳐지는 고요 속 외침.
방음이 제법 잘 되는지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유서윤의 목소리가 웅웅거려 또렷히 들리지 않았다. 그에 방문으로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일어나시면 물 한잔 하시고 늘 아침 드시잖아요, 그래서 늦지 않게 왔었죠. 비밀번호도 공유해주셨고 해서."
ㅡ아.. 그, 그래. 깜짝 놀라서… 나, 나 조금 있다가 나갈게! 얼굴도 팅팅 부었다구..! 잠깐만 기다려줄래?!
"흠, 국 식는데. 그럼 국 데워놓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나오세요."
ㅡ으, 으응! 고마워!
주방으로 돌아간 난, 국을 다시 냄비에 담고 약불을 켰다. 국은 식으면 금방 짜진다. 슴슴한 맛을 좋아하는 유서윤에겐 쥐약과 같을 지도.
그러니 음식의 생명인 온도는 칼 같이 지키는 편이 좋았다. 그나저나, 저렇게 귀여운 여자였는줄 몰랐네.
팅팅 불은 눈으로 금붕어마냥 끔뻑대며 나를 쳐다보다 도망치듯 들어가버리는 모습은 꼬마소녀 같기도 했었다.
게다가 부스스한 머리와 반만 삐죽 나온 잠옷상의가 그녀의 인간미까지 뽐내 사랑스러움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는데, 당연히 나란 놈을 남자로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닐 터다.
'김칫국 드링킹은 절대금물이지. 우린 비지니스 사이니까.'
그저 A급 헌터라는 국내 정상급 헌터인 자신이 누군가의 앞에서 명성에 걸맞지 않는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일 터다.
게다가 오늘은 헌터와 매니저로서, 제대로 된 첫 대면업무를 시작한 날이기도 하기에 조심스러웠겠지.
근데 전 매니저의 기록에 그런 내용은 없었는데.
흠, 아니면 뭐 깜짝 놀라서 그런 거겠지.
일단 잠귀가 어둡다는 건 잘 기억해두어야겠다.
"나오셨어요?"
잠시 주방에서 서성이고 있자, 유서윤이 나왔다. 흐트러진 잠옷도 말끔히 정리하고, 헝클어진 머리도 빗질해 단정한 모습이었다. 얼굴도 살짝 하얘진 것 같기도 하고? 원래 하얀 피부이긴하다만.
흠, 인간미 넘치는 모습도 좋지만 역시 단아한 모습도 정말 예쁘다니까.
거기다 채 가라앉지 못한 눈두덩은 한 떨기 귀여움도 과시하고 있었다.
"와…! 이, 이게 뭐야?"
쑥스러운지 머리를 조신하게 귀 뒤로 넘기고는 식탁에 놓인 진수성찬만 쳐다보며 다가오는 유서윤.
4명의 미친년들에게 올리던 아침상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지만, 밝게 웃어주는 유서윤에 덩달아 미소가 나왔다.
"오는 길에 장 좀 봐왔거든요. 음식점 요리도 좋지만 아무래도 직접하는게 믿음도 가고 해서.. 하하. 요즘 식재료로 장난치는 가게들이 많잖아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하듯 그녀에게 고하는 내 모습이 퍽이나 찌질해보였다.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는 직언 대신, 식재료 타령이나 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유서윤은 말없이 감동 받은 눈으로 식탁에 앉았다.
"와.. 이 많은 걸 다한 거야? 나 깨우지 그랬어, 도와줄 수 있는데. 아침부터 고생 많았어."
고생했다고?
도와준다고?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 곱씹어봤지만, 그녀는 내게 아침식사에 대한 고마움과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어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인간이 아니다. 선녀다, 선녀.
아니면 그 미친년들이 악마새끼들일지도. 그년들은 아침식사가 1분만 늦어도 비글새끼로 빙의해 온갖 지랄들을 떨어댔었는데 말이다.
감사인사? 도움? 그딴 건 고사하고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었었다. 아무래도 후자가 맞는 듯했다.
"뭐, 금방했어요. 4인분 차리다 1인분 차리니 금방 끝나던 걸요?"
"응? 이게 1인분이야? 왜? 그러고 보니 밥이 한그릇 뿐이네?"
진심으로 믿기지 않는다는듯 순수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는 유서윤.
그에 나는 무슨 소리냐는듯, 순수히 반문해야했다.
"네? 헌터님뿐이니까 1인분이죠? 당연한걸."
"으응? 왜..?"
근데 이 오묘한 반응은 뭐지?
아니, 설마…!
이 집에 남자친구가 같이 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재빠르게 어제 읽은 자료들을 되짚어봤지만 결단코 그런 내용은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런 내용이 있었다면 기억 못 할 리가 없었었다.
애시당초 자료에 남자친구는 없었는데?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설마… 대식가였던 건가?
1인분으론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그런 대식가? 하지만 그런 내용이라면 전 매니저의 기록에 분명 있었을 텐데….
혼란에 빠진 나를 빤히 쳐다보던 유서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넌 사람 아냐?"
아.
**
ㅡ후루룩.
따끈한 시래기국 국물이 식도를 뜨끈히 데운다. 맛있다. 역시 국은 따뜻하게 먹어야 제 맛이지.
말라비틀어지지 않은, 신선한 더덕무침을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 맛있는 소리가 고막을 두드린다.
역시 맛있다.
간을 보며 몇 개 먹긴 했었지만 역시, 사람과 마주앉아 같이 먹는 반찬이 더욱 맛있는 거였구나.
눈물 젖은 빵이 아닌, 눈물 젖은 더덕이 목구멍을 힘겹게 넘어간다.
"호호, 잘 먹네. 강준이도 아침파구나?"
그런 나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는 유서윤. 괜히 머쓱해 입으로만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가슴 한켠이 뭉클해져온다.
3년간 그 미친년들이 먹고 남긴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했던 내게, 따뜻한 밥상을 사람과 겸상한다는 건 먹지 않아도 심적으로 포만감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년들이 먹고 남긴 걸 다시 데워서 먹어도 됐겠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지쳐있었었다.
맛있는걸 즐긴다는 생각이 아닌, 빠르게 배만 채운다는 생각으로 허겁지겁 밥을 먹어야했으니까. 그리고 식탁엔 늘, 혼자였었고.
집이란 공간에서 식탁에 도란도란 앉아 같이 먹는 즐거움을 잊어버렸던 내게, 따스한 온기가 남은 식탁에서의 식사는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아, 돈이란 게 뭔지….
대체 난 어떤 삶을 살아왔던 걸까, 회한이 들 정도로 유서윤과의 아침겸상은 눈물 겨운 한상이었다.
물론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다 큰 사내가 밥상머리에서 질질 짜는 것만큼 보기 흉한 것도 없으니까.
"이런 밥상 나도 정말 오랜만이야. 차려줘서 진짜 고마워, 힘들었을텐데… 그래두 진짜 엄마밥 먹는 거 같아서 너무 좋았어."
"하하.. 아뇨, 과찬이십니다."
"아냐, 정말이야. 반찬 하나하나 내 입맛에 딱 맞는걸. 어떻게 알았대?"
"헌터님을 모시는 매니저라면 식성 정도는 파악해둬야죠. 목숨 걸고 일하시는데 밥은 제대로 먹어야하니까요."
유서윤이 눈썹을 팔(八)자로 만들며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어머… 진짜 여전하구나, 강준이는."
여전하다?
어제도 그렇고, 뭔가 의미심장한 말들이 이따금씩 스치듯 튀어나왔는데 눈칫밥 3년차의 촉이 허투루 흘릴 것이 아니란 걸 알려왔다.
뭔가 들으면 들을수록 목소리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저, 헌터님."
"웅?"
"혹시 저희 구면인가요?"
ㅡ쿨럭쿨럭!
입술을 오므린 채, 어여쁘게 오물대고 있던 유서윤이 나의 질문에 별안간 사래에 걸린듯 기침을 해댔고 난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급히 물을 떠다 날라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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