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쌓이는 후회, 쌓이는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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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두근두근.
초인종을 누른 유안나는 쿵쾅대는 심장에 호흡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만 2시간. 거리상으론 20분이면 오는 거리지만 마음 먹는데만 1시간 40여분이 걸린 탓이다.
그리고 반협박으로 대표에게 집주소를 알아내느라 10여분도 소모했었고.
'하… 제발.'
손에 들린 작은 박까스 박스.
떠난 이를 잡기 위한 선물로 너무 소박하지만서도, 무엇이 좋을지 몰라 사온 것이었다. 이런 물건 따위에 딱히 더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나쁜 놈… 이 치욕은 꼭 갚아줄 거야.'
유안나는 자신의 모든 죄를 사죄하고 용서받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그저, 멤버들을 위해. 당장 내일부터 허둥대야할 파티를 위해 찾은 것 뿐.
물론 미안하다는 마음은 있었다. 돌이켜보니 자신의 행동이나 언행이 좀 심하다 싶은 것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자존심이 아직 허락치 않았다.
자신은 누구나 우러러보고 떠받드는 고귀한 S급 헌터. 하물며 대통령도 고개를 조아리는데, 제 까짓게 뭐라고 그딴 쪽지 하나로 뒤통수를 친단 말인가.
오히려 감히 자신에게 그런 엿을 선사한 놈에게 참교육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맏언니이자 파티 리더인 자신이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해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만약 파티에 그가 돌아와준다면 이제 이런 탈주를 하지 못하게 약점을 잡아버릴 것을 다짐한 안나는,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그가 나오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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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문 너머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하지만 `배달이요`라는 말에 그저 여성배달원이 착각했으리라 여기고 문을 열었고, 눌러쓴 모자와 코끝까지 올린 마스크,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둘러 중무장한 여성과 마주해야했다.
얼굴의 99.9퍼센트를 가려도 알 수 있었다. 미친년들의 리더 유안나라는 것을.
단 1의, 단 일말의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이 미친년이 나를 찾아오리라곤 말이다. 진짜 진짜 진짜, 꿈에서도 상상 못했었다.
말문이 턱 막히고, 혐오스런 벌레라도 본듯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아니, 시발.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냐고.
근데 여기까지 왜 찾아오고 난리야,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그리고 찾아오지 말랬는데 고작 4시간도 안 지나서 찾아와? 이건 나의 능멸과도 같은 것이었다.
"뭐야, 씨발."
그에 3년간 내뱉지 못했던, 하루에도 목구멍에 수백 차례 차올랐었던 그 욕이 서슴없이 터져나왔다.
흠칫, 그런 나 자신에 놀랐지만 이내 통쾌함이 밀려와 전율적인 쾌감을 온 몸에 터뜨린다. 그래, 이제 욕해도 되잖아, 남인데.
꼬우면 신고하라지.
어차피 뒤가 구려 하지도 못하겠지만.
하지만 통쾌함도 잠시, 유안나의 피사체가 시선에 선명히 담길수록 왼손에 들고 있던 맥주 유리병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짧은 통쾌함 대신 마치 원수를 만난 것도 같은 불쾌한 분노가 일순간 치밀었다.
그러고보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찾아와? 주소지를 알려준 적도 없는데.
이제와서 미안하기라도 하다는 건가?
"미.. 미안해."
막 유안나의 뚝배기를 향해 전능한 참회 오브 심판의 철퇴가 내려쳐지려던 찰나, 그녀의 입이 열렸고 난 내 귀를 의심해야했다.
뭐…?
지, 진짜 미안하다고…?
3년간 미안하단 말이라곤 결단코 하지 않았던 년이? 하물며 자신의 실수로 내가 크게 다쳤을 때에도 사과 한 마디 안 하던 년이?
오히려 `조심 좀 하지`라며 책임전가를 시전한 년이?
이제와서 사과를 한다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아니고, 외양간 다 무너지니까 소라도 붙잡아두겠다는 심보인가?
하여튼 괘씸한 년, 끝맺음을 짓는 순간까지 이기적인 모습에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미안해. 그간 우리가 심했어. 장난이 과했던 부분, 인정할게. 그러니까 돌아와줘."
게다가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목소리의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를 하대하고, 핍박하던 그 고고하던 목소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었다. 진심이 묻지 않은 그저 상황모면용 가짜 사과라는 것.
그리고 뭐, 진심으로 사과를 한들 받아줄 생각은 1도 없었다. 같잖은 사과 따위로 3년이란 시간을 보상받기엔 내 자신이 아까웠다.
이글대는 눈으로 유안나를 노려보았다.
S급 헌터와의 무력충돌은 걱정없었다. 마나가 없는 이곳에서 우린 그저 평범한 여성 대 평범한 남성일 뿐이었으니까.
"장난? 하, 다 필요 없고. 그냥 꺼져. 다신 마주치지 말자고 경고 했을 텐데."
싸늘한 경고에 유안나의 호흡이 한번 크게 떨렸다. 내게 위협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껴 떨리는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대하던 내가, 노예였던 내가, 감히 자신에게 겁박하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것일 터.
하지만 리더라는 책임감에 애써 삭히고 있는 거겠지. 같잖은 인내심이 얼마나 갈런지는 모르겠다만.
"…미안하다고."
"그게 사과하는 사람 태도야? 양심은 지나가던 똥개한테 나눠주고 왔어?"
"…미안하다고 하잖아..! 사람이 사과를 하면 받아줘야할 거 아냐! 애들 대표해서 내가 미안하다고!"
거듭된 비아냥에 유안나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날이 서기 시작한다. 헌터만 아니면 인성폐급 쓰레기 주제에, 제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억지로 사과를 하러온 꼴이라니.
역시 시작부터 끝까지 제 멋대로에 이기적인 쓰레기인 그녀였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 오늘도 조상님께 한 수 배워가는 듯싶다.
세탁기에 넣고 원심분리를 시켜버릴까, 진짜.
"사과? 방금 한 게 사과였어? 몰랐네, 사과 따윈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고. 다신 마주치지 말자는 마지막 부탁도 개무시하는 거냐?"
"…!"
감정이 담기지 않은 사죄는 되레 나를 조롱하는 것과 같았다.
제발 마주치지 말자던, 떠나는 이의 마지막 청조차 제 마음대로 거슬러놓고는 사과를 받으라고 명령하는 꼴이지 않은가.
아직까지도 상황 파악 하나 못하고 나를 자신의 시종으로 취급하는 처사에 주먹이 부들댔다.
"개, 개무시라니..! 니가 먼저 우리를 무시했잖아..! 어떻게 쪽지 하나 두고 갈 수가…! 3년간 든 미운 정이라도 없어? 어떻게 우리를 봤으면 그딴 식으로…!"
치졸하게 변명하는 그녀에 다시금 참회의 뚝배기가 마려웠지만, 최대한 이성줄을 부여잡으며 오른 손을 치켜들었다.
대화는 깔끔하게 포기한다. 애당초 대화란 게 통하질 않았던 년들이었으니까.
그럼 남은 건 역사적으로도 답이었던 폭력 뿐.
앞서 내가 싸다귀를 칠만큼 모질지 않다고 했던가?
ㅡ짜악!!
아무래도 미친년들에게 조리돌림 당하며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냥 싸다귀도 아니고, 이렇게나 시원하게 귓방망이를 후려치는 것을 보면.
아아, 이게 손맛이지.
방금 핸드크림을 발라서 그런지 손맛이 더욱 찰지다.
어차피 두려울 것도 없었다.
헌터는 마나가 있는 곳에서만 각성이 되기에, 마나가 없는 이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여성 대 남성일 뿐이니까.
그리고 옛말에 그런 말도 있잖은가.
미친년은 자고로 매가 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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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얼하게 느껴지는 통증보다 강한 정신적 충격에 유안나는 뺨을 감싼 채 떨리는 눈으로 이강준을 쳐다보았다. 두 차례의 귓방망이에 선글라스가 날아가버렸고,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는 눈동자는 고스란히 현재의 심경을 담아낸다.
"아직도 내가 너네 따까리인 줄 알아? 사과를 하러 왔으면 자존심 세우지 말고 똑바로 해야지. 그딴 게 사과라고 들고 왔어?"
"아… 어… 아…"
실어증에 걸린 것마냥 말을 잇지 못하는 유안나.
이제껏 자신의 아래였던 이강준이 쏘아올린 뺨따귀에 목구멍에 고구마가 한 트럭 박힌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아니, 왜 갑자기?
그냥, 그냥 일을 그만둔 옛 직장동료사이일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구는 거지?
자신이 모질게 굴었다고는하나 어떻게, 사과하러 온 사람의 뺨을 후려친다는 말인가…!
하지만 들끓는 울분과 달리 이상하게도 이전처럼 분노, 패악질 따위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난생처음 후려맞은 귓방망이에 이제껏 살아온 인생마저 부정 당하는 기분이었다.
"…어, 아니.."
"왜, S급 헌터 뺨따귀 올리는 사람 첨 봐? 그간 밑에서 벌벌 기어주니까 막대해도 상관없는 노예로 보였어?"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고막이 터진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귓전이 멍해지고 부풀어오른 뺨은 아파왔다.
그 누구도 감히 자신에게 손찌검을.. 아니, 손조차 대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이 눈 앞에 놓인 남자는 일벌백계하는 선생님마냥 호되게 후려쳐버렸다.
처음이었다, 이런 감정은.
불과 이틀 전만해도 자신에게 알랑방귀를 뀌며 허허 웃던 사람이, 그런 사람이 자신을 욕하고 때리기까지 하다니.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귀신이라도 씌인 게 아닐까?
불현듯 그에게서 뜻 모를 위압감마저 느껴져왔다.
분노일지 모를, 두려움일지 모를, 떨림이 온 몸에 퍼져나간다.
"재수없으니까 꺼져. 한번만 더 찾아오면 경찰에 신고할 줄 알아. 뭐, 다신 찾아오지도 못하겠지만."
"어? 그, 그게 무슨 말…"
"귀찮으니까 들러붙지마라. 소금 뿌려버리기 전에."
"아… 아니, 아니 잠깐..!"
얼타는 사이, 자신을 잡귀 쯤으로 매도한 이강준이 문을 닫아버렸다.
쿵! 한창 날이 섰던 사춘기의 자신마냥 거세게도 닫히는 현관문.
이런 문전박대는 결단코 상상해본 적도, 당해본 적도 없었다.
자신을 연모하던 하찮은 남자들을 문전박대하며 통쾌해했던 적은 있어도,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으리라곤 결코 짐작하지 못했었다.
비참했다.
이런 걸 예상하고 온 게 아니었는데.
"아… 아니… 이게 무슨…"
현실감이 아득해진다.
꿈일 거야, 그래. 악몽을 꾸고 있는 거야.
하지만 뺨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현실도피를 하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는다.
아아, 이게 그가 느꼈던 감정이었구나.
3년이 지난 이제서야 깨달은 비참함이란 감정에 이름 모를 역한 느낌이 올라왔다.
"아니… 잠깐만. 다신 찾지 못할 거라고…?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문득 그의 마지막 말이 께름칙했지만 더 이상 아니, 당장은 굳게 닫힌 저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유안나는 의문을 거둔 채, 박까스 박스를 현관 앞에 두고 걸음을 돌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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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을 당한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하우스로 돌아온 유안나.
터덜대는 걸음은 이따금씩 휘청였다. 일을 더 그르친 것 같아 속상하고, 또 앞으로의 일들이 두려워왔다.
그가 없는, 그놈이 없는 레이드 파티가 과연 무사히 돌아갈까?
아니다, 절대 잘 돌아갈 리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가 해주었던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ㅡ철크덕, 삐릭.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안나는 허망한 표정으로 방으로 향했다.
멤버들에게 무어라 말해야할지 생각조차 정리하지 못했었다.
뺨을 맞고 왔다?
아니면 다시 얘기해보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그것도 아니면 새 매니저를 뽑으면 된다며 되레 호통을?
아니다, 모르겠다.
그만큼 이강준에게 얻어맞은 충격은 유안나의 정신머리를 통째로 흔들어버릴 정도로 강했다.
그리고 자존심에 너무나도 막대한 스크래치가 가버렸다. 마치 다시는 아물지 못할 것 같을 정도로.
씻을 생각도 나지 않았다. 도망치듯 얼른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싶었다. 오늘 하루는 그만큼 엉망진창이었으니까.
하지만 방문을 열고 나오는 신나희에 안나의 계획은 차질을 빚어야했다.
"리더님? 이제 왔어요? 어떻게 됐어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렸대요?"
차마 하우스로 바로 돌아오지 못했던 탓에 시간은 벌써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나가 나희의 시선을 급히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자존심을 굽히고 찾아간 이강준에게 뺨다귀를 얻어맞고 온 것을 결코 멤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S급 헌터 파티의 리더인 자신이 매니저에게 뺨이나 얻어맞고 왔다는 사실은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들어가. 얘기는 내일하자. 늦었어."
냉담한 리더의 말에 나희가 주춤했다. 더 말을 붙여보기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나갔던 외출과 달리, 지금의 어깨는 축 쳐져있었다.
안색도 제법 지친 듯보였고.
"네, 리더님 먼저 들어가세요."
"..그래."
안나가 나희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려했다.
헌데 나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 이건 이강준 냄새인데..?'
평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강준의 핸드크림 냄새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나희의 후각을 자극한 건, 다름아닌 진짜 이강준의 핸드크림 냄새였다.
평소 개코라며 놀림을 받을 정도로 후각이 예민했던 그녀기에 잊을 수 없는 냄새였다.
밤샘사냥이나 던전 레이드를 도는 동안 사냥을 부탁해두면 마우스와 키보드에서 늘 그의 핸드크림 냄새가 진동을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싫지 않은 냄새였었다.
그렇기에 절대 혼동하지는 않았으리라.
헌데 왜 그 냄새가 안나 리더에게서 나는 거지? 분명 길드에 갔다온다고 했었는데.
거기다 저녁에 나가놓고는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왔고.
"어? 리더님?"
나희가 몸을 돌려 방에 들어가려던 안나를 불러세웠다. 그녀에게서 그의 핸드크림 냄새가 날 이유가 없었다.
만나고 온 것이 아니라면.
하지만 만나고 왔다기엔 안색도 초췌했고, 뭔가 시선을 피하는게 숨기는 것이 있는 것도 같아보였었다.
"…응?"
게다가 자신의 부름에 살짝 당황하는 기색까지. 평상시 둘러 말하는걸 좋아하는 나희지만, 이번엔 직설적으로 묻기로 했다. 여자의 촉이 무언가 있다는걸 알려왔다.
"이강준씨 만나고 오셨어요?"
나희의 물음에 안나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안 거지?
설마 뒤를 따라온 건가?
그렇다기엔 아무런 낌새가 없었는데..!
잠시 당혹감에 굳어있던 안나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급히 말을 받았다. 지체했다간 늘 하대하던 종놈에게 뺨이나 맞고 온 한심한 리더라는 걸 들킬 지도 몰랐다.
"아, 으응. 아니, 근데 못 만났어. 문을 안 열어주더라고…"
"아, 그래요?"
나희가 대답을 예상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곤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만나지도 못했는데 핸드크림 냄새가 난다는건 말이 안 됐다. 그렇다는 건 만났다는 건데, 굳이 숨길 이유가 있을까?
'왜 숨기려는 걸까..'
하지만 나희는 당장의 취조 대신 차후를 도모하기로했다.
어차피 숨기려든다는 것은 어쭙잖게 취조한다해서 불 것이 아니라는 걸 테니까.
괜히 어설프게 파고 들었다간 쓸 데 없는 불화만 키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단정짓고 의심하기엔 이르기도 하고. 아직까진 심증 뿐이니까.
"으응.. 그럼 들어간다."
"네, 들어가세요."
방으로 들어가는 안나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나희. 그녀의 마음 속에 의심싹이 살며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강준을 만나고 온 사실을 숨기고는 시선도 피하는데다 당황스러워하기까지 했다.
무언가 있는 듯했는데, 그게 무엇일지 짐작이 가지는 않았다.
그녀의 몸에서 핸드크림 냄새가 날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는가?
'설마 리더님이 뺨이라도 맞고 왔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우선 이 사실을 함구하기로 한 나희는 주방으로 들어가 물을 한잔 마신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당분간 그녀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할 듯싶다.
숨기는 이유가 무엇이든, 좋은 의도는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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