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A급 헌터 유서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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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차 안,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붉은 노을로 하늘을 수놓는 저녁 즈음의 난, A급 헌터 유서윤의 벤을 몰고 그녀의 하우스로 향하는 중이었다.
매니저 일을 그만둔지 이틀 만에 또 매니저 일이라니, 아무래도 내 천직이 아닌가싶다.
딱히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제 자리를 찾은듯 안정적인 기분도 들었으니까.
"운전도 잘하시네요, 강준씨는."
사선 뒤편 좌석에 앉아있던 유서윤이 내게 칭찬을 건넸다. 룸미러로 그녀와 눈을 맞추며 머쓱하게 웃었다. 잊을만하면 내게 건네는 그녀의 칭찬은 미친년들로부터 짓밟힌 나의 자존감을 북돋아주었다.
미친년들을 3년간 겪고와서 그런지, 사소한 칭찬과 배려에 감동마저도 느껴진다. 그래, 최선을 다해 그녀를 보필하리라.
"감사합니다, 헌터님들을 안전하게 모시려면 안정적인 운전실력은 필수니까요."
"어쩜… 역시 강준씨는 변함 없이 매니저 일에 자부심이 대단하신 거 같아요. 멋져요."
변함 없이? 우리 초면 아닌가?
하지만 입가에 멤돈 물음은 붉어지는 얼굴에 묻혀 다시 기도로 넘어가고 말았다.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눈만 마주쳐도 왠지 쑥스러웠다.
"아, 아닙니다, 당연한 걸요. 그보다…"
"네?"
"그… 강준이라고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나이도 저보다 두 살 많으신데 편하게 대하셔도 돼요."
매니저 일을 하며 헌터에게 편하게 불러달라는 말은 처음 하는 거 같다.
그 4명의 미친년들은 보자마자 반말패시브를 깔고 갔었으니까.
뒤편에서 고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 고마워. 그럼 편하게할게. 너도 편하게 불러, 누나라고."
"아, 아닙니다. 매니저는 헌터님을 모시는 자리라 그런지 저는 헌터님이라고 부르는게 편합니다."
"흐응… 그래? 편한대로 해."
뭔가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유서윤의 말이었지만, 더 이상 내게 편의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행동 하나하나, 마침표를 찍는 끝까지 그녀의 에튀튜드엔 배려와 상냥함이 가득했다.
그래, 이게 바로 서로간의 유대관계지.
하여튼 그 미친년들하고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비교되는 그녀였다.
"배는 안 고파?"
"음, 저녁을 안 먹기는 했죠? 조금 고픈 것 같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하우스에 도착한 우리. 미친년4인조를 태운 벤은 바퀴에 본드라도 바른 것마냥 유달리 느리더니만, 유서윤을 태운 벤은 마치 아우토반을 달린 것만 같았다.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로.
뭐, 이젠 매일 붙어지내야할 사이긴하지만.
"와… 하우스가 엄청 크네요."
으리으리한 저택과도 같은 2층 집인 유서연의 개인하우스는 A급 헌터만 되도 수입이 대단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했다.
이런 집이면 근처 시세로 봐서 20억은 할 거 같은데, 나는 10년을 모아도 못 살 것 같았다.
새삼 가온 길드에서 받은 3천만원이란 월급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 실감된다.
뭐, 그렇다고해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년들이 싹싹 빈다해도, 절대로.
인간은 고쳐쓰는 거 아니다,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시 거기로 돌아가면 내가 개새끼다, 그것도 똥개새끼.
차를 주차하고 차문 자동 개폐 버튼을 눌렀다. 내일부터 합숙이기에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해야했다. 딱히 챙길 게 없기는 했지만.
고개를 돌려 유서윤에게 가볍게 목례하며 인사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헌터님."
"헌터님, 헌터님, 피.. 언젠가는 누나라 불러줄거지?"
나의 딱딱한 태도에 유서윤이 눈을 익살스레 흘기며 핀잔을 주었다.
귀엽다, 뭔가 성숙한 듯하면서도 앙증맞음까지 갖춘 천의 얼굴이 따로 없는 듯했다.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근무하며 짓는 미소가 처음이었기에, 조금 낯설었지만.
"하하.. 언젠가는요..?"
헌데 유서윤의 눈가에 찰나지만 슬픔이 지나갔다. 미친년들 사이에서 눈칫밥을 3년이나 처먹다보니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들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읽을 수가 있었는데, 방금 그건 분명 아쉬움보다 진한 무언가였다.
…근데, 왜?
"…그래, 알겠어. 내가 너무 들떴나봐, 호호. 언제든 편하게 대하고 싶을 때 편하게 대해. 알겠지?"
"넵, 그럼요."
유서윤이 차 밖으로 매끈한 다리를 내뻗고 윗손잡이를 잡으며 하차하려다말고는 멈칫해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치였다.
"필요하신 거라도?"
"아… 음…"
몇 번 입술을 옴짝이며 머뭇거리던 유서윤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 아냐. 내일 봐. 짐 잘 챙겨오고."
그리곤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차에서 내려버렸다. 뭔가를 덮기 위해 애써 웃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모르겠다.
아니, 굳이 알아야할까? 미친년들 사이에서 있다보니 사소한 행동과 표정에도 내가 과민반응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해야하나.
잡념을 지우고 차창으로 멀어져가는 유서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그녀는 이기적일 정도로 뒷모습마저 아름다웠다.
미의 경지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도달하면 뒷태만 봐도 앞태가 예상되는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유서윤이 딱 그랬다.
늘씬하게 빠진 팔다리와 잘록한 허리, 발달된 골반과 허리춤까지 오는 풍성한 머리칼은 언뜻 보아도 미녀임을 과시하고 있었으니까.
"하, 저런 여자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려나. S급은 되어야겠지?"
그런 그녀의 아름다움에 괜스레 푸념을 하고는 후진기어를 넣었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차를 몰았다. 흥흥흥, 정체 모를 멜로디의 콧노래가 차 안을 가득 메운다.
미친년4총사 파티 탈주 이틀 차, 여전히 너무 행복한 하루다.
룸미러에 비친, 멀어져가는 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유서윤의 시선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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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토시가 어디갔지?"
방안을 샅샅이 뒤져보지만 도저히 나오지 않는 건틀렛 토시. 살이 쓸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꼭 입는 것이지만, 20여분을 뒤져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내일 오전에 써야하는 것이기에 지금 주문을 한다해도 늦었다.
어떻게든 찾아야한다는 것. 어제 이강준이 분명 방에 뒀다고 했는데, 숨겨버리기라도 한 건지 도저히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 진짜 짜증나. 좀 보이는 곳에 둬야지. 어디에 처박아둔 거야..!"
이럴 때 이강준의 한마디면 만사해결인데. 그가 그만둔지 고작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그에 마치 갓난아기가 되버린 비참함도 들었다. 내가 토시 하나 못 찾는 병신이었던가? 라는 생각에 소이현은 오기가 생겨 다시 10여분을 뒤진다.
하지만 역시 나오질 않았다.
"아악! 대체 어딨는 거야! 숨긴 거 아냐? 나 엿 먹으라고?!"
기어이 떠난 자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소이현. 하지만 씩씩대던 분노는 급울적모드로 변경되었다.
"아, 아냐… 매니저 오빠가 그럴 리 없지.."
3년간 지켜본 매니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었다. 모진 말에도 사람 좋게 웃으며 자신을 챙겨주던 매니저, 그는 이런 심술 따위를 부릴 사람이 아니었었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이제야 뒤에 `오빠`란 단어가 붙이는 자신이 미웠지만, 이제라도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버스가 떠난 뒤에야, 얼마나 편안했던 버스였는지 깨달은 것이다.
"히잉… 내가 못 됐어.. 그러는게 아니었는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방문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 늘 전화로 호출을 했던, 그 [ 매니저 ]라는 저장명을 터치했다.
불과 4시간 전만해도 같은 집에 있음에도 전화를 걸어 마사지 호출을 했었었지.
"왜 그랬을까.. 푸…"
긴 한숨을 내쉰 소이현이 전화버튼을 터치하려다 멈칫했다.
또다. 그를 떠나게 만들었음에도, 또 자신의 편의를 위해 그를 찾는 모습에 역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 짜증나..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 좀 하지.. 몰랐다고.. 진짜…"
이제와 드는 후회가 야속했다. 그렇기에 떠난 이를 원망하고 탓을 하며 속을 삭히는 소이현.
하지만 이러다간 밤을 샐 것 같았기에 입술을 잘근 씹으며, 기어이 전화버튼을 터치했다.
전화를 받아준다면, 우선 사과부터 해야겠지. 사과하면 받아줄 거야, 난 그래도 그렇게 많이 괴롭히지는 않았으니까, 라며 자기합리화를 한 소이현은 초조한 마음에 제 버릇인 손톱을 물어뜯으며 연결음이 끊기길 기다렸다.
하지만….
[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시길 바랍니다. ]
연결음은 시작조차하지 않았고, 사무적인 안내멘트가 소이현의 초조한 마음을 긁었다.
"뭐? 나.. 차, 차단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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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삐리릭, 철크덕.
집에 도착한 난 휑한 집 안을 둘러보았다. 불과 1년 전만해도 어린 동생이 신나게 뛰어놀던 집은 1년 사이 삭막하게 가라앉았다.
언제 와도 적응되지 않는 고요함이다. 그래서 더 헌터 매니저의 일이 내게 힘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이 고요한 집에 혼자 있었다면 꽤나 울적했을 테니까.
다행인 것은 아직 장기이식지원자분께서 지원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조만간 수술이 거행된다는 것.
그에 위안을 삼으며, 한개씩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챙기다보니 제법 짐이 많다.
미친년4총사에게서 탈주하느라 거기 놓아둔 짐들을 미처 챙겨나오지 못한 탓이었다.
"흠.. 얼추 끝났나?"
그래도 작은 캐리어 하나면 끝이었다.
자잘한 생필품 같은 것들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ㅡ털썩.
캐리어를 현관에 두고, 바닥에 앉았다.
불과 이틀 전만해도 한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던 미친년들에 잠이 들기 전까지 늘 시달렸는데….
고요한 집에 홀로 있는 것이 새삼 어색하게 느껴져왔다. 집이란 공간에서 휴식이란 것을 취해본지가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게 휴식이지. 째깍대는 시계소리와 무겁지만 잔잔하게 가라앉아 마음을 진정시키는 집안의 공기.
그 사소한 것들을 느끼고 있자 그년들과 지내던 그 하우스는 진짜 지옥이었구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3년의 시간이 이렇게 끝난 것에 탄식이 나왔다.
"하…"
기쁨의 탄식일까?
아니면 화가 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후회라도 되는 걸까?
아니, 절대 후회는 아니다. 수십 번 그날로 돌아간다해도 난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오히려 더 신랄한 방법으로 탈주해 빅엿을 선사했으면 했지, 절대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 인생에서 3년이란 귀한 시간이 허무하게 날아가버린 듯한 허탈감이 들었다.
그래, 허탈감이다. 그냥 그런 허탈감.
시원섭섭하지도 않았다. 그냥 좃나 시원하지만, 내 인생이 아까워 느끼는 허탈감.
그래도 뭐, 월 1,500만원에서 시작해 말년엔 3,000만원까지 몸값을 올렸었으니 남는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년들에게 인정 받지 못했어도, 길드에선 나의 가치를 인정해줬던 거니까.
잠도 못 자가며 고행의 연속이었었지만 그덕에 무일푼이었던 내가 동생의 수술비를 충분히 모을 수도 있었고.
"하, 생각을 말자."
이것 봐, 이것 봐.
집에 혼자 있으니 이런 쓸 데 없는 생각만 든다. 바닥에서 일어서 잡념을 떨치기 위해 냉장고로 다가가 맥주를 꺼냈다.
당분간 오지도 않을 집인데, 잠시간의 이별과 새출발을 축하하기엔 맥주 정도면 안성맞춤이지.
그런데, 그때.
ㅡ딩동.
현관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 시간에."
왼손에 맥주 *유리* 병을 든 채, 성큼성큼 현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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