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2화 (2/68)

EP.1)상냥한 A급 초미녀 헌터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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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 문을 열고 나온 안나가 거실을 둘러보았다. 지금 시각은 오후 7시. 저녁 먹을 시간이 10분이 지났건만, 늘 이 시간때 쯤 들려오던 호출이 들려오질 않자 방을 나선 것이다.

"…뭐야? 매니저? 아직 저녁 다 안 됐어?"

분명 음식냄새는 나는데, 거실이 너무 고요했다. 안나가 매니저를 한번 부른 후, 미심쩍은 눈초리로 주방으로 향했다.

"매니저? 있으면 대답해."

헌터 생활 4년차, 예민한 감각이 평상시와 무언가 다르단 걸 알려온다.

주방 입구에 내려진 레이스 커튼을 걷으며 들어서는 안나.

후각이 알린대로 진수성찬이 식탁에 차려져있었다.

"…화장실 갔나."

식탁을 둘러보았다.

늘 먹던 대로, 갖가지 음식들이 먹음직스레 차려져있다.

건강한 식단에 강한 집착이 있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10첩 반상을 요구하는 멤버들을 위해 차려진 각각에 맞는 맛있는 음식들.

3년 전, 신입이었던 매니저를 달달 볶아 이룩한 밥상에 안나는 흡족스레 미소지으며 메뉴를 훑어보다, 이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응? 뭐야."

식탁 중앙엔 무조건 찌개류가 있어야한다는 신나희의 요구대로 늘 보글보글 끓는 찌개가 있어야했는데, 왠 종이쪼가리 하나가 냄비받침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을 집어든 안나.

서서히 낯빛이 묘하게 구겨진다.

"…뭐라고? 그, 그만둔다고..?"

종이를 잡은 손이 파리하게 떨린다.

이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지? 장난을 치는 건가? 사고회로가 순간 턱, 막힐 정도로 쪽지의 내용은 가히 충격이었다.

늘 헤벌쭉 웃고 다니던 녀석이, 이렇게 뒤통수를 친다고?

나름 잘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하다못해 말이라도 하던가. 길드에서도 별다른 언질은 없었는데, 감히 이런 무성의한 쪽지 하나를 두고 도망치다니, 화가 났다.

ㅡ꾸깃.

파리하게 떨리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고, 종이는 부질없이 구겨진다.

"얘들아! 나와봐!"

리더의 부름에 각 방문이 열리며 멤버들이 주방으로 다가왔다. 목에 헤드셋을 끼고 나온 소이현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밥 먹을 때가 지났었네, 몰랐어. 아니, 매니저는 다 차려놓고 왜 안 부르는 거야, 빠져가지고."

"그러게, 너무 오냐오냐 해줬다니까."

한마디씩 하면서 다가온 소이현과 박나영. 안나는 제일 먼저 다가온 소이현에게 구깃해진 쪽지를 말없이 건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은 이현의 얼굴도 안나와 엇비슷하게 일그러진다.

"…뭐? 꺼, 꺼져준다고? 갑자기?"

오함마로 뒤통수를 후려맞은 듯한 충격, 알싸하게 당기는 뒷골에 이현이 뒤통수를 짚었고, 성질 급한 나영이 쪽지를 뺏어들었다.

"…뭐? 엑스 같은 년들? 이, 이거 지금 좆 같은 년들이란 거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노발대발하는 나영에 리더 안나가 자중시키며 말했다.

"진정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이강준, 그 자식이 지금 우리 매니저일을 그만둔다는 거라고."

멀뚱히 서있던 나희가 황급히 나영의 손에서 쪽지를 낚아챘다.

믿을 수 없다는듯, 글자를 읽어가는 눈동자가 덜덜덜 떨린다.

불과 두 시간 전만해도 자신의 자동사냥 부탁을 들어준다던, 그런 사람이 쪽지 하나를 놓고 탈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눈빛이었다.

"그, 그럴 리가요. 강준씨가 그럴 리 없어요..! 이, 이건 뭔가 착오가..!"

"착오는 무슨. 그 글씨체 몰라? 초딩이 왼손으로 쓴 거보다 글씨를 못 쓸 수 있는 녀석은 놈 밖에 없다고."

팔짱을 낀 안나의 냉철한 판단에 나희의 손이 풀렸고, 늦가을 낙엽마냥 쪽지는 하늘거리며 주방의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다.

"그, 그럼 어떡해?! 강준 그 자식이 그만두면 우린 어떡하냐구..!"

어떻게하냐는, 겁에 질린 막내 소이현의 물음.

자신마저 동요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안나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유난 떨지마. 매니저 한 명이 그만둔 것뿐이야. 세상엔 널린 게 헌터 시다바리하고픈 매니저들이라고. 한 명 새로 구하면 돼."

소이현이 다소 걱정스러운듯 물었다.

"그, 그치만.. 그 녀석이 아니면…."

늘어진 마침표에 담긴 말이 무엇인지를 다들 알기에 침묵이 찾아온다.

자신들에 대해서 가족보다 더 잘 아는 매니저. 눈빛만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찾아주던 매니저.

그런 매니저의 빈자리가 벌써부터 크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왔다. 당장 내일 A급 던전 레이드만 해도 차질이 생길게 분명했다.

안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자신마저 내색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는 멤버들을 아우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매니저 없으면 다들 아무 것도 못하는 애새끼야? 무슨 큰일이라도 났다고 난리야. 신입 뽑아서 이강준처럼 키우면 돼. 걱정할 거 없어."

"그치만…"

시무룩해하는 소이현을 꾸중하듯 쏘아보며 말을 잇는 안나.

"그만. 대체 왜 갑자기 그만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길드에 가서 알아볼 테니 다들 쓸 데 없는 생각말고 밥이나 먹어. 내일 오전에 부산으로 가야하니까."

안나가 몸을 돌렸고, 나희가 말했다.

"지, 지금 가시는 건가요?"

"응, 밥 먹고 있어. 길드장님이라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시겠지. 어쩌면 이미 차기 매니저를 물색해두셨을지 몰라."

말을 마친 안나가 주방을 빠져 나갔고, 멤버들은 저마다 실의에 빠진, 혹은 화난 듯 얼굴을 굳힌 채 식탁에 앉았다.

나이 순으로 두번 째인 나영이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찌푸린 미간이 다소 화가 난 듯보였다.

"하, 그 새끼가 왜 갑자기 뒤통수쳤는지는 언니가 알아본다했으니 우린 우선 밥부터 먹자. 내일 오전에 당장 부산까지 내려가야한다니까 든든하게 먹어둬."

보란듯이 수저를 든 나영이 소고기뭇국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다. 5성급 셰프도 감히 마추지 못할, 알맞은 간이 된 국물에 괜히 더욱 화가 치밀었다.

"..개새끼, 잡히면 두고봐. 반 죽여버릴 테니까."

"그러니까요.. 이렇게 갑자기 그만두는 게 어딨어.. 힝, 장비 어딨는지도 모르는데."

"아아… 자동사냥이…"

그렇게 나영은 당분간은 먹을 수 없을 음식에 분노를, 나희는 자동사냥의 부재에 따른 걱정을, 이현은 당장 어딨는지 모를 제 레이드 장비를 찾아야한다는 짜증을 느끼며 하나둘씩 수저를 들기 시작했다.

**

ㅡ짠!

시원하게 넘어가는, 목구멍이 확장이라도 한 것처럼 술술 들어가는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크흐ㅡ 짜릿한 청량감에 미간을 기분 좋게 찌푸리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이 맛이야, 그래 이 맛이었다고!

마치 미각을 잃어버렸다 되찾은 것만 같다. 행복하다. 안주 없는 맥주 한잔에도 그냥 맹목적인 행복이 느껴져왔다.

씨발, 인생은 역시 이런 거였지!

이런 맛있는 맥주의 맛을 잃어버린지가 어언 3년이나 지났었다니. 새삼 내가 대견하게도 느껴져왔다.

지금쯤 밥은 먹었으려나. 아니, 내가 무슨 개떡 같은 생각을! 지금은 나의 광복을 축하만 하면 된다고!

ㅡ벌컥벌컥벌컥!

ㅡ탁!

"크하~! 맥주 맛 진짜 죽인다!"

"미친놈, 항상 죽상으로 소주나 마시던 놈이 오늘 갑자기 왠 급발진이냐? 로또라도 됐냐?"

나의 부름에 고맙게도 한달음에 달려와준 친구 최강석. 갑작스런 부름에 무슨 일이냐 물었고, 난 그저 축하만 하면 된다며 일축했었다.

맥주 한잔이 안 들어간, 삭막한 전자통신선으로 나의 이 짜릿한 해방소식을 전할 수 없었으니까.

로또라.

어쩌면 로또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동생의 이식수술비용 마련과 충분한 여비, 그리고 개지랄 미녀사총사에게서의 탈출은 로또보다 더 좋은 것일지도.

자꾸만 세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고 터뜨리며 다시 한 번 맥주를 들이켰다.

"미친놈, 작작 마셔. 아니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

뜸을 들인 밥이 더 맛있는 법.

이런 소식을 전할 사람이 강석이 밖에 없었기에 왠지 골려주고 싶었다.

"크흥."

"미친놈, 콧소리내지마. 소름 돋으니까. 아, 빨리 말하라고. 그래서 축하할 일이 뭔데. 설마 동생 이식수술 잘 끝난 거냐? 근데 아직 수술일도 남았잖아."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터라 나의 사소한 일들까지도 꿰고있는 녀석이었다.

"하하하! 그냥 존나 좋아서! 이제 그 망할 년들 면상판 안 봐도 되니까!"

내가 말한 `망할 년들`이 누군지 알기에, 강석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상체를 당겼다.

"뭐, 뭐? 매니저일 그만둔 거냐?"

"응! 오늘 최후의 만찬 차려주고 거기에 다신 만나지 말자 좆 같은 년들아, 라고 쓴 쪽지 던져버리고 왔어."

그간 나의 고충을 알고 있었기에 강석의 입에 환한 미소가 걸렸지만 이내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근데, 그래서 동생 수술비는 다 모은 거고?"

"그건 진작 다 모았지. 혹시 모를 여분의 목돈이 있어야할 거 같아서 몇 달 더 다닌 것뿐이야."

"하긴, 월 삼천이란 돈이 크긴크지. 이왕 버티는 거 좀 더 버텨보지 그랬냐. 니 주제에 그런 월급 어디가도 못 받을 텐데."

이 놈 자식이, 축하파티에 초를 친다.

하지만 맞는 말이긴 했다.

헌터로 각성도 실패해, 이렇다할 기술도 없는 내가 어디를 가서 빌붙어도 월 삼천이라는 돈을 만져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일순간 씁쓸함이 밀려온다.

3년이란 시간동안 기술 하나 쌓은 거 없이, 아는 거라곤 그 망할 년들의 신체 사이즈, 취향, 가족사, 식성 따위들 밖에 없다니.

이걸 어따 써먹겠는가.

고발하는 책이라도 펴 한바탕 돈이라도 끌어볼까, 하는 망상이 지나갔고 쓰게 웃은 난, 맥주를 한모금 털어놓고 말을 받았다.

"새끼, 초 치지마라. 일자리야 어디든 구하면 되지. 아니, 이제 돈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씨발 그 망할 것들만 없으면 돼."

"…그래, 뭐. 진심으로 축하는 한다. 근데 그럼 일자리도 안 구하고 무턱대고 그만둔 거?"

어깨를 으쓱하곤 대수롭지 않다는듯 말했다.

"뭐, 그 미친년들 밑에서 3년을 구른 이 내가 무슨 일자리든 못 구하겠냐?"

"그렇긴하다만, 대책도 없이 그만 둔 너도 대단하다, 대단해."

"새끼,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적셔."

알콜뉴비가 맥주잔을 들며 허세를 부리자 강석이 피식 웃고는 잔을 부딪혔다. 쨍ㅡ 맥주만큼 청량한 소리가 술집에 울려퍼진다.

그렇게 몇 잔을 더 기울였고, 취기가 거나하게 오기 시작할 때쯤 강석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제 무슨 직종으로 갈 건데?"

직종이라, 사실 강석 말대로 아무 대책 없이 그만두기는 했다.

막대한 퇴직금까지 받고 나온 마당에 조금 쉬고 싶기도 했고.

그렇기에 차기 직종에 대해선 생각 안 해봤는데…

"…흠, 개버릇 남 못준다고, 그래도 하던 일 하는 게 낫겠지?"

나의 말에 강석이 살짝 반색했다.

뭔가를 제안할 듯 눈빛이 초롱거렸다.

"오, 그래?"

"왜?"

"아니, 우리 길드도 마침 얼마 전에 매니저가 그만둔 헌터 한 분이 계시거든."

헌터 매니저, 첫 시작이 그 미친년들이라 그런지 딱히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왠지 매니저를 두는 헌터들은 죄다 미친놈 미친년들 뿐일 것 같은 선입견이 끼었달까.

"…흠, 헌터 매니저라.."

그렇기에 괜히 술잔을 굴리며 중얼대자 강석이 열변을 토해낸다. 이 새끼, 아무래도 스카웃 지령이라도 받은 모양이다.

"뭐 때문에 망설이는지 안다, 설마 새꺄 내가 그 미친년들 같은 것을 소개시켜주겠냐?"

"그건 아니겠지, 근데 그 매니저는 왜 그만뒀대?"

매니저의 퇴사사유가 만약 나와는 다르게 정상적인 사유라면 한번 생각은 해볼 요량은 있었다.

어쨌든, 헌터 매니저란 직종 자체의 월급이 타 직업에 비해 월등히 많기는 했었으니까.

"일하다 허리를 다쳤거든. 그래서 산재처리하고 당분간은 병원에서 치료 받기로 했어."

"그래? 흐음."

살짝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강석이 이때다싶어 치고 들어왔다.

"그리고 A급 헌터인데 우리 길드 유망주라 전담 매니저를 붙여. 그러니까 A급 헌터 한 명만 잘 보필하면 된다는 거지. S급 지랄 맞은 년들 4명도 견뎌낸 너한텐 완전 껌이지 않겠냐?"

맞는 말이다.

S급 헌터(호로쌍년들)를 4명이나 케어한 내게 A급 헌터 1명은 거의 누워서 떡 먹기 수준.

A급 헌터는 3명 정도를 맡는게 일반적인 관례였기에 1명만 맡는다는 건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긴 했다. 하지만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그렇긴하겠지. 근데 그럼 월급 짠 거 아니냐?"

"월 3천만원 받던 놈한테 만족스럽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길드 매니저들 중에선 탑일 거다. 그리고 그 헌터 분이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신다더라고."

"…그런 헌터가 있다고?"

S급 헌터라는 년들한테 3년간 그 어떤 떡고물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뜯기면 뜯겼지.

그렇기에 자선나눔도 하는 A급 헌터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취기가 올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왜인지 점점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그럼, 성격도 좋아서 길드에서도 평판이 엄청 좋다고. 실력도 좋아서 이 삼 년 이내에 S급으로 진급할 거 같다는 예측도 있고."

"오… 대박이네."

솔직히 어디 회사에 들어갈 자신도, 장사를 할 자신도 없긴 했었다.

그저, 그 미친년들한테 빅엿을 선사하고 도망치고 싶었을 뿐.

결심을 굳혀가던 찰나, 강석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겁나 예쁜 여자야."

성격 좋고, 실력 좋고, 자선나눔도 하는데다 예쁘기까지한 A급 헌터가 있다고?

아, 그럼 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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