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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223화 (223/226)

223화

마지막 무저갱인 만큼 악귀의 수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천명 길드를 찾아온 이유였다.

“평범한 헌터들은 악귀를 볼 수조차 없습니다. 천명 길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오선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만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악귀에 빙의된 헌터들도 해결해야 합니다. 던전 안에서의 일 역시 헌터님들만 하실 수 있는 거고요.”

천명 길드의 막내 헌터가 손을 번쩍 들어 물었다.

“김은석 헌터님, 그럼 지옥귀왕을 같이 없앤 다음에 빙의된 자들을 잡으면 되지 않습니까?”

은석이 싱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도 좋지만 그 전에 다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은석의 옆에 앉아 있던 오선이 숙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김은석 헌터는 지옥귀왕을 죽이는 데 목숨까지 바칠 생각이구나.’

은석에게 지옥귀왕에 대해 들은 오선 역시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당연히 자신들도 은석과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남은 악귀를 처리하는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옥귀왕을 죽이면 함께 빠져나온 악귀들은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싸움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다는 거겠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김은석 헌터가 진다면…….’

은석의 말대로 그의 뒤를 맡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겨우 이십 대인 은석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선 헌터님은 퇴마를 계속 해오셨으니 잘 아실 테죠. 악귀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요.”

오선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차라리 함께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자고 하시지…….’

은석은 오선이 빙의된 사람들을 내버려 두지 못한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잘 알기에 오선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같이 가자는 말은 소용없겠군.’

은석이 함께하자고 했다면 오선과 천명 길드는 당연히 목숨을 바쳤을 것이다.

은석 또한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침통한 표정의 오선을 보며 옅은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곧 레이드에 들어가신다고 하셨지요?”

“네, 이제 출발해야 합니다.”

“하데스와 함께하면서 너무 일만 하시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헌터가 해야 할 일을 하는걸요.”

은석과 오선 사이에 흘렀던 긴장감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일어난 은석이 오른쪽에 앉아 있던 헌터에게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느닷없는 은석의 악수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얼른 그의 손을 맞잡았다.

“어…….”

은석이 잡은 손을 통해 생력을 불어넣어 주기 시작했다.

낯선 느낌에 놀란 헌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은석을 쳐다보았다.

“상처가 많으시네요. 함께 들어갔으면 제가 바로 치료해 드렸을 텐데…….”

손을 뗀 헌터가 자신의 찢어진 얼굴 상처를 더듬거렸다.

은석은 차례대로 천명 길드 헌터들과 악수를 하며 생력을 넣어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그들 중에도 힐러가 있었고 효과 좋은 포션도 있었다.

하지만 힐러의 치료와 포션으로 회복되기도 전에 계속 상처를 입으니 회복이 점점 더뎌졌다.

계속 던전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을 시간도 없었다.

“신경 써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오선의 손을 잡았다.

몸 안에 들어오는 낯설지만 강하고 따뜻한 기운에 오선은 저도 모르게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김은석 헌터님의 힐러 능력이 대단하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이런 기분이 드는 힐은 처음입니다.”

은석이 피식 웃으며 손을 놓으려 하자, 오선이 그의 손을 양손으로 덥석 잡았다.

“김은석 헌터님, 저는 이렇게 좋은 힐을 받으며 오래오래 헌터님과 함께 레이드를 뛰고 싶습니다. 다음 던전에는 꼭 함께 들어가시는 겁니다?”

오선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은석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명 길드 헌터들과 헤어진 은석은 이현을 다시 불러냈다.

팀 고스트에게는 내일 새벽 무저갱의 봉인을 열 것이라 이미 말해 두었다.

그래서인지 이현의 표정이 무거워 보였다.

“지옥귀왕과 싸울 생각을 하니 겁이라도 나는 거야?”

“아니요. 겁나는 게 아니라…….”

이현이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뭔데. 말해 봐.”

“이런 말 하는 게 말도 안 되지만…….”

이현은 계속 우물쭈물했다.

“말이 안 돼도 욕 안 할 테니까 해 봐. 뭐야?”

“그게, 전 대장이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믿는데……. 만약에, 정말 만에 하나 큰일이 생긴다면…….”

“왜? 죽을까 봐 겁나?”

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겁나는 게 아니라, 무섭습니다.”

“무서워?”

“네, 이미 죽은 놈이 이렇게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산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데……. 그림도 원 없이 그리고 있고…….”

아래로 툭 떨어뜨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은석을 바라봤다.

“그런데 대장. 이렇게라도 살아 있으니 조금 더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욕심이라는 건 알지만…….”

은석이 다시 고개를 숙인 이현의 뒤통수에 무심히 손을 올렸다.

“욕심이 아니다. 당연한 거야. 넌 지금 죽었지만 살아 있는 상태니까, 살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게 아니다.”

“이렇게 팀원들과 함께 던전을 돌고 악귀를 잡으며 그림을 그리는 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제가……. 좀 우습기는 합니다.”

“우습지 않다. 육체만 없을 뿐 내게 귀속되어 다시 태어난 게 맞아. 그러니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팀 고스트의 복지가 좋아서겠지.”

눈물이 많아 이야기하던 도중에 훌쩍이던 이현이 풉 웃음을 터트렸다.

“맞습니다. 직원 복지가 좋은 곳이죠.”

은석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하데스 길드로 가자.”

* * *

하데스 길드에 도착한 은석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저승 구멍이 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주변을 정리하고 음식과 물을 깨끗한 것으로 바꿨다.

“음, 이걸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을까. 오선 헌터님이면 괜찮으려나.”

저승 구멍은 숨을 쉬듯 위를 덮고 있는 하얀 막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잠시 그 장면을 바라본 후 은석은 사무실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갔다.

안 실장의 사무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는데, 그 사이로 웃고 떠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은석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대신 조용히 다가가 안을 살폈다.

안 실장과 황희준, 이창범이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늘 그렇듯 황희준의 말도 안 되는 농담과 리액션에 안 실장은 구박했고, 그걸 보고 있는 이창범은 웃기에 바빴다.

‘처음보다 많이 밝아졌네. 창범이.’

은석은 조용히 문을 닫고 하데스 길드 밖으로 나왔다.

더 강해진 좌우신장의 나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앞으로도 계속 여길 잘 지킬 수 있겠지?”

대답하듯 울창한 나뭇가지가 강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에 은석은 피식 웃으며 김은영이 일하고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늘어난 던전 때문인지 병원에는 이전보다 환자들이 더 많았다.

‘저 많은 환자를 다 진료하다니. 대단해 둘 다…….’

하데스 길드를 한 바퀴 돌고 난 은석은 다시 그의 방으로 돌아왔다.

“새벽에 출발할 거니까 쉬고 있어.”

이현을 저승 훈련장으로 돌려보내고 침대에 누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건 뭐, 꼭 죽기 직전에 주변 정리하는 사람 같잖아.”

그때, 손잡이가 돌아가며 방문이 열리더니 청안이 천천히 들어왔다.

“야! 고양이가 방문 열고 들어오는 걸 엄마가 보시면 어쩌려고 그래. TV 동물농장에 나가고 싶은 거야?”

“흥! 식사 담당 집사는 지금 마트에 가고 없다. 내가 바보인 줄 아느냐?”

청안은 침대 위로 뛰어올라 누워 있는 은석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방도 넓은데 왜 하필 여기 앉는 거야?”

“TV를 보니 인간들은 고양이에게 위로를 받는다고 하더구나. 너도 지금 마음이 혼란스러울 테니 귀여운 날 보며 위로를 받거라.”

청안의 말에 은석은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큰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던 은석이 일어나 앉아 청안을 내려다봤다.

“와, 진짜 오랜만에 실컷 웃었네.”

은석이 뒤룩뒤룩 살이 오른 청안의 등을 손으로 쓱쓱 문질렀다.

“그래, 네 말대로 위로가 많이 된다. 이 안에는 흉측한 괴수가 들어 있지만, 일단 지금은 뚱뚱해서 귀여우니.”

청안이 이빨 한쪽을 삐뚤게 드러내며 그르렁거렸다.

“흉측한 괴수라니?! 지옥 제1감옥 수문장의 위엄 있고 강인한 모습을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느냐?”

“위엄 있고 강인한 수문장님, 새벽에 갈 거니까 너도 준비해.”

“오냐, 네놈이 특별히 부탁하니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도와주러 가도록 하지.”

은석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은영이 퇴근하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녀의 소소한 병원 에피소드를 들으며 식구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자주 집을 비우는 은석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기 위해 반찬을 계속 올려 주었다.

늦게 들어오신 아버지의 손에 은석이 처음 가족들을 위해서 산 치킨이 들려 있었다.

저녁은 먹었지만 모두 첫 끼인 것처럼 둘러앉아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치킨에는 맥주가 빠지면 안 되지.”

김은영이 가져온 맥주를 하나씩 들고 ‘위하여’를 외쳤다.

특별한 건 없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저녁이었다.

* * *

“지금 출발하려는 것이냐?”

침대에 누워 뜬 눈으로 밤을 보낸 은석이 일어났다.

의자에 앉아 있던 청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며 물었다.

“그래. 팔찌로 들어갈래?”

“싫다. 거긴 너무 답답하다.”

“그래, 편할 대로 해.”

이현을 소환하니 기다리고 있었는지 강화복을 입고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가자. 불산 길드로.”

“알겠습니다. 대장.”

새벽이라 하더라도 불산 길드 주위에 인적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에 정리하느라 힘드셨겠네.”

불산 길드 주변에 길드가 많아서 괜찮다고 했지만, 상가 역시 많은 번화가 중의 하나였다.

그런 곳을 쥐새끼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비워 준 것.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제일 위층에서만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기가 윤혁의 사무실인가 봅니다.”

최강호에게 하나 더 부탁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윤혁이 눈치채지 못하게 정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윤혁은 저 안에서 조형민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겠군요.”

“그렇겠지. 변한 날씨를 보고 7번째 무저갱이 깨졌다는 사실은 알 테니.”

은석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들어가자.”

그들은 불산 길드 로비를 지나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불산 길드 지하는 1층부터 3층까지로, 모두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대장, 3층이 제일 밑인데 주차장에 봉인석이 있는 건가요?”

“아니, 거기보다 더 깊은 곳이 있어. 거기에 가야 한다.”

첫 번째 무저갱에 균열이 생겼을 때부터 최 차사는 가끔 8번째 봉인석을 살피러 갔었다고 했다.

혹여나 다른 봉인석이 깨지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을씨년스러운 텅 빈 지하 주차장에 선 은석은 암안 스킬로 주변을 살폈다.

가장 구석진 곳에 낡고 작은 철문 하나가 있었는데, 굵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저기다.”

철문은 녹이 잔뜩 끼어 제대로 열릴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현, 이 문 안쪽으로 이동하자.”

하지만 이현은 대답 대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은석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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