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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214화 (214/226)

214화

성하는 저승 훈련장에서도 가끔 돌돌과 함께 그록의 무리에 섞여 다니기도 했었다.

은석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의 건조함이 피부에는 정말 최악이거든요.”

성하의 농담에 은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최강호와의 일이 있었던 후, 한동안 눈에 띄게 우울해 보였었다.

그사이 회복되었는지, 아니면 그런 척을 하는지 몰라도 예전 같은 텐션을 보여 줘 일단 안심이 되었다.

차라리 몬스터들과 함께 마구 부수며 다니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었다.

“그록, 돌돌이. 나와라.”

나오자마자 괴성부터 지르던 그록이 웬일인지 조용히 던전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대장. 이 던전, 이상하군. 여기 있는 몬스터의 종류가 뭔가?”

“만티코어.”

“뭐? 만티코어? 진짜 그 괴수 놈인가?”

“그래. 왜? 무서워?”

그록이 느닷없이 던전을 향해 포효했다.

“야! 시끄러워. 갑자기 소리를 왜 지르는 거야?”

“만티코어라니. 위대한 전사인 나 그록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상대라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대장, 빨리 출발하자. 놈의 흉측한 대가리를 뜯어내고 싶다.”

“너희는 성하, 돌돌이와 함께 밀림 쪽을 맡아라. 나무는 오우거와 돌돌이가 모조리 부숴 버릴 수 있을 거고.”

그록이 도끼를 치켜들며 괴성을 내질렀다.

“열대 밀림이야말로 전사의 싸움터로 완벽한 곳이다!”

“와!! 그록, 멋지다!!”

성하도 그록의 옆에 서서 밀림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 밀림을 노려보는 그록과 성하.

그들의 잔뜩 흥분한 뒤통수를 보며 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제든지 도와주러 갈 수 있으니까 위험한 상황이면 빨리 연락하고.”

은석의 말에 그록이 콧방귀를 세게 뀌었다.

“도움이라니……. 흐흐. 대장이 먼저 내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그럴 일이 생기면 네가 빨리 구하러 와 주든지.”

의기양양한 그록의 모습에 은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팀원들을 돌아봤다.

“S급인 만큼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싸우는 맛이 있겠지.”

팀 고스트의 얼굴에 흥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다들 마음껏 싸워 봐.”

돌돌의 어깨에 올라탄 성하가 밀림을 향해 손을 내밀며 외쳤다.

“출격하라!”

돌돌을 선두로 그록이 불러낸 오크 부족과 오우거가 뒤를 따라 달려 나갔다.

밀림 입구에서부터 나무를 부수는 그들을 보며 해머가 말했다.

“누가 보면 저들이 이 던전의 몬스터인 줄 알겠습니다.”

“이제 우리도 출발하자.”

은석과 남은 팀원들도 건조하고 누런 사막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고운 모래바람을 가르며 한참을 걸어 들어갔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만 계속 펼쳐졌다.

“너무 똑같은 장면이 계속되니 마치 환각에 빠진 것 같습니다.”

걸음을 멈춘 창왕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여긴 놈의 영역이니까.”

“대장, 아무리 멀리 떨어졌다고 해도 오크의 포효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도 이상하네요.”

해머의 말처럼 사막에 들어선 후로는 밀림 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은석의 정신 감응을 통해 나무가 많다는 성하의 투덜거림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밀림 쪽도 아직 만티코어를 찾지 못한 모양이군.’

아무 이정표가 없는 그저 사막 언덕뿐이었다. 계속 무작정 걸어갈 수는 없었기에 잠시 멈추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떤 놈이길래 한 마리뿐인데도 S급 던전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만큼 흉폭하고 잔인한 놈이라는 거겠지. 뭐,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만 말이야.”

은석의 뒤에 서서 창왕과 이야기를 나누던 해머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대장, 우리가 있다는 걸 알 텐데…….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까요?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놈이 이렇게 신중한 것도 이상하고.”

“아마 내 기척만 느꼈다면 그랬겠지. 수는 많은데 느낌이 이상하니 살펴보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그때, 잠시 바람이 멈추고 모래가 바닥으로 가라앉자 주변이 조금 더 깨끗하게 보였다.

“대장, 저기 사람이…….”

창왕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그의 말처럼 사람 머리 같은 것이 보였다.

“어? 진짜네. 모래에 파묻힌 건가?”

모래찜질을 하는 모양으로 둥근 모래 더미 위에 머리만 쏙 내밀고 있었다.

“노……인 같은데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짧고 엉성하게 남은 머리카락이 엉켜 있는 노파의 얼굴이었다.

인상을 잔뜩 쓴 채로 눈을 꽉 감고 있는 노인의 얼굴은 마치 미라 같아 보이기도 했다.

“혹시 살아 있지 않을까요?”

이현이 노파의 머리를 향해 다가가려고 하자, 은석이 그를 막아 세웠다.

“놈이다.”

“네? 놈이라면…… 만티코어요?”

“그래. 저건 사람들을 유인하려는 놈의 얼굴이다.”

“다시 봐도 진짜 노인 같은데 저게 만티코어의 얼굴이라니……. 끔찍한데요.”

은석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염력을 이용해 놈의 얼굴에 모래를 흩뿌렸다.

한쪽 눈썹이 순간 더 깊게 일그러지는 걸 본 은석이 픽 웃음을 흘렸다.

“먹히지도 않은 쇼는 그만하고 공격이나 하지?”

다시 한번 더 모래를 들어 세게 후려쳤다.

까득-

그때 이빨을 갈아대는 듯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은석이 아공간에서 적룡검을 꺼내 들자, 팀원들도 모두 전투 준비를 했다.

“끼이익!”

감은 눈을 뜨니 모래만큼이나 누런 눈알이 희번덕거렸다.

둥근 모래 더미를 해치고 쑥 솟아오른 노파의 얼굴 아래로, 모래 안에 감추고 있던 거대한 모습이 드러났다.

“헉! 저, 저게 무슨…….”

모두 처음 마주하는 만티코어의 모습에 경악했다.

얼굴은 모래 위에 올려져 있던 주름진 노파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얼굴 아래로 기이할 정도로 긴 목이 이어졌고 몸통은 사자와 흡사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솟아 있는 날개가 양쪽에 달렸고, 치명적인 독을 가진 거대한 전갈 꼬리가 위협적으로 흔들거렸다.

끔찍한 혼종의 모습에 그저 마주하고 있을 뿐인데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정말 끔찍한 모습이네요. 이건 뭐, 심장 약한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쓰러지겠는데요.”

완전히 몸을 드러낸 놈은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으로 몸을 띄우기 시작했다.

공격 태세를 갖춘 팀 고스트를 내려다보며 만티코어가 괴음을 내질렀다.

“이현, 놈을 끌어내려라.”

“네, 대장.”

은석의 명령에 이현이 채찍을 휘두르자, 주변의 모래가 모여들어 거대한 사람의 형태를 만들었다.

모래로 만들어진 사람의 형상은 곧바로 만티코어의 가늘고 긴 목을 부여잡고 아래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끼에엑!”

거대한 모래 인간에게 붙잡혀 있는 만티코어를 향해 다크엘프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계속 쏴라!”

해머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화살을 쏘는 다크엘프의 옆에는 창왕의 듀라한이 서 있었다.

“장전. 날개를 노려.”

이현이 만든 모래 인간이 놈의 날개에 조금씩 부스러지고 있었다.

라이플 연사에 만티코어의 한쪽 날개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찢어진 날개 쪽으로 몸이 기우뚱하게 기울더니 이내 날기를 포기한 듯 놈이 모래 위로 내려왔다.

동시에 이현의 모래 인간도 순식간에 바스러졌다.

“끼아악!”

날지 못하게 되자 놈의 분노가 더욱 짙어졌다. 던전을 울리는 듯한 괴음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이제 날 수 없으니 제대로 싸워 볼까.”

놈은 앞에 서 있는 은석을 누런 눈빛을 번뜩이며 노려보았다.

독을 잔뜩 품고 있는 거대한 꼬리를 내려칠 듯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은석의 옆으로 귀속령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놈이 노리는 것은 은석뿐이었다.

“그렇지. 뭐니 뭐니 해도 살아 있는 인간 맛이 최고니까.”

긴 목을 앞으로 쑥 늘이고는 입을 벌려 양쪽으로 쫘악 찢었다.

그대로 은석을 집어삼키려는 듯 빠르게 돌진하는 만티코어.

“대장!”

은석이 놈의 목을 베기 위해 적룡검을 그러쥐었으나 그전에 이현이 마법진을 펼쳤다.

씩 입꼬리를 올리는 은석의 눈앞에서 만티코어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반대편 모래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낸 놈이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은석을 발견한 놈이 더욱 큰 괴성을 내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독이 바짝 올랐군.”

구멍 뚫린 한쪽 날개를 바닥으로 질질 끌며 달려오던 놈이 빠르게 몸을 틀어 거대한 꼬리를 휘둘렀다.

앞을 지키고 있던 승형의 부하 수십이 날카로운 꼬리에 베여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라지지 않은 몇은 독에 당해 몸이 보랏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독은 금세 해독되었지만, 온몸을 관통하는 고통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으악!”

마법진을 그리던 이현 역시 놈이 휘두른 꼬리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잘린 오른팔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연기로 사라지고 있었다.

놈은 다시 한번 더 이현을 공격했지만, 채찍으로 만든 모래 인간이 몸으로 독침을 막았다.

바스러지는 모래 인간 뒤로 고통스러워하는 이현을 보고 바로 소환 해제했다.

은석은 귀속령과 싸우는 만티코어를 찬찬히 살폈다.

S급 던전의 몬스터답게 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저 꼬리부터…….’

가장 위협적인 것은 독이 뿜어져 나오는 꼬리였다.

은석은 은신으로 몸을 감춘 후 만티코어의 뒤로 조용히 이동했다.

귀속령에게 정신이 팔린 놈이 은석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휘두르기 위해 꼬리를 둥글게 세우는 그 순간.

은석이 뛰어올라 적룡검으로 꼬리를 단번에 내리쳤다.

퍽-

외피가 무척 단단해 적룡검이었음에도 마치 둔탁한 망치로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만티코어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대장, 조심하십시오!”

잘린 꼬리가 바닥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단면에서 검보랏빛의 독이 뿜어져 나왔다.

“쉴드!”

은석은 빠르게 왼팔에 보호막을 만들어 쏟아지는 독을 막았다.

치이익-

웬만한 공격에도 끄덕없었던 보호막에 독이 떨어지자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은석은 방패처럼 만든 보호막을 바닥으로 내던지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키에엑!!”

고통에 몸부림치는 만티코어의 꼬리에서 나오는 독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윽!”

창왕의 어깨 위로 독이 떨어져 강화복을 뚫고 들어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왼쪽 몸이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독이 줄어들지가 않는데…….’

이제는 고통스러운 몸짓이 아니라 더 많은 독을 뿌리려는 것 같았다.

‘우선 저 독부터 막아야…….’

은석은 염력을 이용해 모래 덩어리를 뭉쳐 들었다.

그대로 만티코어의 잘린 꼬리 쪽으로 모래를 뿌린 후, 곧바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들어 떨어뜨렸다.

뿜어져 나오던 독이 모래와 흙더미에 막혀 잠시 멈추었다.

“쉴드.”

은석은 조금 전처럼 왼팔에 방패를 만들었다. 꼬리에 묻은 모래와 흙을 털어내기 위해 몸을 마구 흔들고 있는 놈을 향해 질주했다.

흔들어대는 꼬리에서 튀어나온 독이 은석의 옆구리에 닿았다.

마치 얇고 긴 창에 몸을 관통당하는 듯한 고통이 느껴져 은석은 저도 모르게 이빨을 빠득 깨물었다.

팔귀의 재생력으로 상처는 곧 회복되겠지만 이마에서 금세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짜 아프네. 일반 헌터였다면 몇 방울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겠는데…….’

은석은 적룡검을 잡은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한 번에 잘라야 한다. 최대한 가까이.’

잘린 꼬리를 흔들고는 있지만, 놈도 힘이 빠진 듯 보였다.

빳빳하게 세운 긴 목이 점점 아래로 내려왔고 번뜩이던 두 눈 역시 감기고 있었다.

‘지금이다!’

은석의 눈앞까지 내려온 만티코어의 주름진 얼굴.

적룡검을 들어 빠르게 얼굴과 긴 목의 경계선을 내려쳤다.

“끼아악!”

순식간에 거물거리던 놈의 누런 눈동자가 허공을 한 번 훑고는 땅으로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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