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임사 체험이라는 말에 조형민의 눈빛이 반짝였다.
“음, 죽었다 살아난 자란 말이지.”
“맞습니다. 그리고 이 영상이 어르신이 말씀하신 그 여우굴에 관해서 찍은 것입니다.”
윤혁의 설명이 흥미로운지 재생되는 영상에 집중했다.
“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여우굴이라는 말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일반적인 굴이 아닐 수도 있겠더라고요.”
영상의 앞부분은 여우굴이 있다는 깊은 산촌을 찾아가는 여정과 BJ의 쓸데없는 설명뿐이었다.
윤혁은 그 부분을 빨리 넘기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파의 인터뷰 부분을 틀었다.
“할머니, 이 마을에서 오래 사셨죠?”
“그렇지. 내가 제일 나이가 많어.”
“할머니, 혹시 여우굴이라고 들어 보신 적 있으세요?”
“여우굴?”
“네, 여우가 산다는 굴이요.”
“무슨 소리야? 여우가 굴에 왜 살아?”
“네? 이 마을 뒷산에 여우굴이라고 있잖아요.”
“여우굴은 있지. 그런데 여우가 그 안에 살지는 않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디서 뭘 주워 듣고 왔는지 모르겠는데, 여우굴은 여우가 사는 동굴이 아니야.”
“그럼 여우굴이 뭐예요?”
“매구야. 매구.”
“매구요?”
“그래, 천 년 묵은 여우, 매구! 매구가 밤마다 휙휙 날아다니다가 나무에 요렇게 똬리를 틀고 앉아 있거든. 멀리서 보면 꼭 그게 거무스름한 게 동굴 입구처럼 보인단 말이지. 그걸 여우굴이라고 하는 거여.”
이후에는 BJ의 시답잖은 멘트가 이어져 윤혁은 바로 영상을 멈췄다.
조형민의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며 윤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여우굴이라는 걸 꼭 동굴이라고 볼 필요는 없는 거지. 무저갱의 구멍이 의미에 불과한 거처럼 말이야.”
뭔가를 알아낸 듯 중얼거리는 조형민의 곁에서 윤혁은 눈치를 살폈다.
“말이 되는구나. 천 년 묵은 매구를 누가 건드리겠느냐.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봉인석이 되겠지.”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던 조형민이 윤혁을 바라보며 껄껄 웃기 시작했다.
“역시 이 세상을 지배하는 데 부족함이 없구나. 그리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맨 나보다 더 빨리 봉인석의 정체를 눈치채다니.”
조형민이 이승의 인간에게 빙의해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고 해도 그는 원래부터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자였다.
모아 온 정보를 취합해 검색해 볼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한 것이었다.
‘찾아보면 비슷한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이걸로 찾아볼 생각을 왜 못 해? 보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가?’
속으로는 조형민을 비웃었지만, 윤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비굴하게 웃었다.
“이게 다 어르신이 주신 힘 덕분입니다.”
“오냐. 기다려 보아라. 모든 봉인이 열리면 더 강한 힘을 얻게 될 터이니.”
조형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르신, 드디어 봉인을 깨러 가시는 겁니까?”
조형민이 멈춰진 영상 속 BJ를 가리켰다.
“저 남자를 찾고 싶은데.”
“아, 잠시만요.”
윤혁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메모지에 주소 하나를 옮겨 적었다.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혹시 찾으실까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는 봉인석의 재료로 BJ를 사용할 계획에 주소를 조사해 두었다.
윤혁의 발 빠른 행동이 만족스러운지 조형민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5번째 봉인석이 있는 산은 조형민이 이미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여우굴’이라는 단서대로 산속의 굴이란 굴은 모두 찾아다녔었다.
여러 겹의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촌에는 거주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마을 입구에 내려선 조형민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이 기운……. 저번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잠들어 있던 매구가 깨어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내가 올 줄 알고?”
조형민이 입꼬리를 삐뚤게 올리며 매구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마을 뒷산을 노려봤다.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그곳을 향해 날아가는 조형민의 손에는 정신을 잃은 남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윤혁의 사무실에서 본 영상 속 BJ였다.
남자는 몇 해 전 죽었다 살아나면서 저승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이후에 그 주제로 방송을 시작했는데 결국 그것 때문에 진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윤혁 이놈,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단 말이지.”
지옥귀왕의 힘을 얻기 위해 저보다 더 열심히 움직이는 윤혁이 썩 흡족한 조형민이었다.
“매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단 말이지.”
천 년을 산 여우는 꼬리 아홉인 구미호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천 년을 살아도 구미호가 되지 못하고 요귀가 된 것을 매구라고 불렀다.
매구는 아홉 개의 꼬리도 없을뿐더러 변신을 해도 인간보다는 짐승에 더 가까웠다.
오래전, 마을은 여우골이라고 불렸다.
이름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깊은 산에는 꽤 많은 여우가 서식했다.
그중 천 년을 살고도 구미호가 되지 못한 매구 하나가 마을을 휘저으며 살육을 일삼고 있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밤마다 낡은 문을 꼭 붙잡고 요귀를 잡을 도사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의 바람이 닿은 것인지, 어느 날 도사와 그의 제자 하나가 마을에 들어섰다.
그들은 무저갱을 막기 위해 나선 도사들이었다.
본래 그들이 찾은 5번째의 무저갱은 도깨비불처럼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검은 구멍이었다.
무저갱을 봉인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간곡한 청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도사님, 봉인석이 있어야 한다면 그걸 매구로 사용하면 어떠십니까?”
“매구를 봉인석으로 쓰자는 말이냐? 어떻게?”
“매구의 꼬리 중 하나에 무저갱의 구멍을 집어넣고 막아 버리는 겁니다.”
제자의 기발한 제안에 도사는 귀가 솔깃했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누가 매구의 꼬리에 무저갱의 구멍이 있다고 생각하겠느냐?”
“맞습니다. 그리고 어떤 인간이 천 년 묵은 매구를 건드릴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도사는 마을의 골칫거리인 매구를 포획했다. 그러고는 미리 잡아 둔 무저갱의 구멍을 꼬리에 넣고 봉인해 버린 것이었다.
봉인과 동시에 요귀의 힘도 잃어버린 매구. 놈은 그때부터 꼬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놈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 산 저 산을 마구 뛰어다니는 것뿐이었다.
몸을 잔뜩 말아 꼬리를 지근지근 깨물었다.
달빛에 비친 매구의 똬리가 마치 굴 입구처럼 검게 보여, 사람들은 그것을 움직이는 여우굴이라고 불렀다.
“인간들에게는 그저 허황한 옛날이야기에 불과하겠지.”
봉인석이 된 매구가 숨어 들어간 진짜 여우굴이 있는 뒷산 정상에 도착한 조형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중에서 가장 지형이 험악한 곳이었다.
“기운을 뿜어내는 걸 보니 무저갱이 열렸다는 걸 알아챘다는 건데.”
조형민은 거대한 암반으로 된 절벽 앞에 내려섰다. 땅에 박혀 있는 부분 중에 검붉은 색을 띠는 곳이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지 못할 만큼 작고 흐렸지만, 조형민은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매구의 기운을 느꼈다.
“여기군.”
조형민의 손에 잡혀 있던 남자가 의식을 차리려는 듯 작은 신음을 흘렸다.
조형민이 남자의 어깨를 날카로운 손톱으로 긁어 깊은 생채기를 냈다. 금세 바닥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구야, 천 년 동안 그 안에 숨어 있느라 남자의 간을 먹어 보지 못하지 않았느냐. 어서 나와서 신선한 남자의 간을 먹어 보아라.”
조형민은 남자를 암반 앞으로 툭 던지고는 자리를 피했다.
딱딱한 땅에 부딪히는 충격에 남자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으윽!”
이내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몸을 잔뜩 웅크렸다. 어깨에 손을 대자 불에 댄 듯 화끈거림이 느껴졌다.
손을 떼어 보니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피가 묻어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남자는 누운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의 집이 아닌 것은 분명했지만 너무 어두워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윽!”
어깨가 끊어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남자는 이빨을 깨물며 일어나 앉았다.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어깨를 누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설마 산속이야?”
눈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바람에 흔들리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흘려대는 나뭇가지뿐이었다.
어딘지도 모를 깊은 숲속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상황이 파악되자, 남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휴대폰! 휴대폰 어디 있지? 119에 전화를 걸어야…….”
남자는 남은 한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거렸지만 휴대폰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겁에 질린 남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아무도 없어요? 사람 살려!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멀리서 겁에 질린 남자를 지켜보며 조형민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라. 너의 피 냄새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매구가 굴 안에서 뛰쳐나오고 싶게 마구 소리를 질러라.”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어느새 땅을 축축하게 적셨고 남자는 눈앞이 점점 흐려짐을 느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혼자 허무한 구조 요청을 계속했다.
“제발…….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
땅에 쓰러진 채 중얼거리던 남자의 앞으로 누군가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저……기요. 저 좀, 저 좀…… 살려 주세요.”
남자는 안간힘을 다해 다가오는 형체를 향해 손을 뻗어냈다.
그의 간절함이 무색하게도 남자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굴에서 나온 매구였다.
그걸 모르는 남자가 애타는 손길을 내미는 그 순간.
“아악!”
어깨에서 느낀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관통했다.
남자가 내민 손을 매구가 덥석 물어 씹어 삼킨 것이었다.
“으아악!”
짧지만 강한 비명이 시작 신호가 되었다.
천 년 만에 맛보는 남자의 피에 매구가 긴 울음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곧장 피가 흐르는 남자의 어깨를 물어뜯었고, 이내 매구가 가장 좋아하는 간을 파먹기 시작했다.
인간의 맛에 취한 놈은 근처에 조형민이 내려선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매구의 등 뒤에 있는 나무에 몸을 숨긴 채 놈을 노려보고 있는 조형민.
매구의 꼬리는 고작 3개뿐이었다. 두 개는 회색빛을 띠었지만 하나가 유난히 검고 길었다.
‘저것이 5번째 봉인석이군.’
조형민은 품에서 칼을 꺼내 곧바로 먹는 데 정신이 팔린 매구의 검은 꼬리를 내려쳤다.
“끼아악!”
순식간에 몸통에서 떨어진 검은 꼬리가 파르르 떨었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매구는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꼬리가 잘린 단면에서 검은 구멍이 생겨나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찾았다. 무저갱의 구멍.’
뱅글뱅글 돌던 작은 점은 금세 커졌고 단번에 매구의 몸을 그대로 집어삼켜 버렸다.
허공에 둥둥 떠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구멍을 보며 조형민이 고개를 젖히며 큰소리로 웃었다.
“으하하! 성공이다. 드디어 무저갱을 완벽하게 열었다!”
소리 높여 부르짖는 조형민의 앞으로 무저갱의 악귀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오너라. 마구마구 나와 이승을 미친 듯이 휘젓고 다니거라!”
다섯 번만의 완벽한 성공에 조형민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악귀 체포부 놈들과 김은석이 오기 전에 여길 벗어나야지. 후후…….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허공에 떠 있는 무저갱 구멍 안에서 빠져나오는 악귀들을 보며 기쁨의 포효를 내뱉은 후 자리를 벗어났다.
조형민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성운 차사를 필두로 한 악귀 체포부 차사들이 나타났다.
“이, 이게 무슨!”
공중에 떠 있는 무저갱의 검은 구멍 앞에 최 차사는 할 말을 잃었다.
“결국 봉인이 완벽하게 깨졌구나.”
최 차사는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봤다.
악귀 체포부 차사들은 이미 검을 꺼내 들고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악귀들을 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