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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206화 (206/226)

206화

‘종놈?’

익숙하지 않은 단어에 주변을 살피던 지태웅이 다시 조형민을 쳐다봤다.

‘설마 김 비서를 말하는 거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에 조형민이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우리 의사 선생님께서 너무 공부만 하셔서 그런가. 참 순진하시군. 진짜로 그 종놈의 말만 믿고 치료를 해 주러 여기까지 오다니 말이야.”

그제야 지태웅은 자신이 김도운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 비서, 이 자식이…….”

지태웅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김도운에게 속았다고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앞에 앉아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남자의 곁을 떠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찌푸리던 인상을 풀며 지태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여기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겠네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빠르게 몸을 돌려 입구로 걸어가려는 순간.

“어! 몸이, 왜…….”

온몸이 굵은 밧줄에 결박당한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힘을 줘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휙 돌아가며 조형민의 앞으로 이동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우리 의사 선생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난 조형민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하자, 지태웅은 침을 꿀꺽 삼켰다.

멀리서 봤을 때는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피부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검은 덩어리들이 보였다.

‘이놈은 아주 위험한 악귀다.’

지태웅은 결박을 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몸은 더 옥죄어 왔다.

“그만.”

낮고 섬뜩한 조형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지태웅은 마치 꽁꽁 얼어붙은 생선처럼 고개를 빳빳이 든 채 꼼짝할 수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지태웅의 두 눈동자에 두려움이 피어오르는 것을 본 조형민이 삐뚤게 웃었다.

“그래, 무서워해야지. 귀감이 있다면 더욱 그래야지.”

조형민은 품 안에서 작고 날카로운 칼과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의사 선생, 이게 뭔지 알아? 선생의 목을 뚫고 피를 담을 주머니야.”

지태웅의 눈앞에서 칼을 휙휙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내가 고통 없이 순식간에 몸 안에 모든 피를 뽑아내 줄 테니까. 따꼼하기만 할 거야. 의사니까 잘 알지? 따꼼.”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조형민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낄낄 웃어댔다.

“자, 환자분. 시술 들어갑니다.”

의사 놀이라도 하듯 조형민이 칼을 들어 올리자, 지태웅은 눈을 질끈 감았다.

“거기까지.”

목이 잘릴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의 귀에 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니 자신의 목을 향하던 작은 칼이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뭐, 뭐야!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조형민도 놀랐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태웅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형민이 지태웅의 목을 찌르려던 순간, 은석이 나타나 칼을 쳐 올린 것이었다.

지태웅이 산장에 도착해 김도운과 통화하던 그때.

그의 옆에 서 있던 병사 40호는 산장 안에서 흘러나오는 흉흉한 기운을 감지했다.

‘대장님, 지 선생님이 도착하신 곳에서 악귀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알았다. 넌 들어가지 말고 근처에 있어라. 내가 곧 갈 테니까.’

잠시 후, 이현과 함께 나타난 은석이 산장 안으로 이동해 조형민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은 것이었다.

거실 안에는 은석뿐만 아니라 이현과 병사 40호도 함께였다.

조금 전까지 잔뜩 신난 조형민의 얼굴이 그들을 보자 야차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네 이놈들…….”

은석이 그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고작 힘없는 인간이나 죽이려고 악귀가 된 거냐?”

은석의 빈정거림에 그가 이빨을 드러내며 그르렁거렸다.

“이현, 가라.”

은석이 아공간에서 적룡검을 꺼내 들며 말했다.

“네, 대장.”

이현은 빠르게 마법진을 그려 굳어 있는 지태웅과 함께 사라졌다.

“네 이놈! 감히 재료를!”

지태웅이 사라지자 분노에 찬 조형민이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옆에 서 있던 병사 40호가 그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렸다.

은석이 적룡검의 끝을 조형민에게로 향했다.

“감히 우리 지 선생님에게 재료라니, 기분이 아주 나쁜데 말이야. 너 때문에 레이드도 포기하고 여기 온 거거든. 네놈이 보상을 해 줘야겠어.”

“헛소리 집어치워라.”

얼굴이 점점 검붉게 변하고 있는 조형민이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은 연기가 그의 손안에 모여 장검의 형태를 갖추었다.

“오, 지옥귀왕의 졸개가 되더니 무기까지 바뀌었네?”

은석의 말에 조형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네놈이 어떻게 지옥귀왕님을!”

“그렇게 알아 달라고 티를 내고 다니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새삼스럽게 비밀인 척은.”

은석의 조소 섞인 비아냥에 조형민이 장검을 치켜들었다.

“네 이놈!”

괴성을 내지르며 은석을 향해 달려가 칼을 휘둘렀다.

검고 붉은 두 개의 칼이 부딪치는 소리에 병사 40호는 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깊은 산속의 산장이었다. 하지만 굉음이 계속되자 병사 40호는 저도 모르게 창밖을 내다보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칼을 부딪칠수록 조형민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강하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더 강해졌어.’

자신은 칼을 잡고 있는 팔이 떨려 왔지만, 은석의 입가에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김은석 저 새끼, 지금 날 가지고 놀고 있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자 조형민은 어금니를 빠득 깨물었다.

‘난 분명 예전 체포부 차사였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는데…….”

조형민이 은석을 처음 만난 것은 첫 무저갱의 균열이 열렸을 때였다.

그전까지 염라대왕과 계약을 한 인간이 있다는 소문만 들어왔다.

무저갱에서 나온 악귀들을 없애는 은석의 모습에 적잖이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지옥귀왕의 힘을 받아 더욱 강해졌다.

‘그리 믿었는데…….’

조형민은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은석의 검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조형민을 보며 은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야? 지옥귀왕의 힘을 받았다기에 기대했었는데, 실망이야.”

비웃는 그의 표정에 조형민이 조금 전의 두려움은 잊고 검을 휘둘렀다.

“감히 귀왕님을!”

은석은 씩 웃으며 그의 검을 가볍게 피했다. 그대로 놈의 오른쪽 허벅지를 향해 적룡검을 그어 내렸다.

“으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다리가 잘린 조형민은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은석의 검에 잘린 오른쪽 다리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아! 맞다. 악귀였지? 자꾸 잊어 먹네. 혈색이 너무 좋아서 말이야.”

고통이 밀려와 조형민은 이빨을 꽈드득 깨물었다.

“이까짓 다리 하나쯤이야.”

없어진 다리를 다시 만들어 내기 위해 온몸에 힘을 줬다.

“어?”

하지만 그의 뜻대로 잘려 나간 다리가 생겨나지 않았다.

조형민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남아 있는 오른쪽 다리를 더듬거렸다.

지옥귀왕이 다시 이승에 나타나 제일 처음 힘을 준 자가 조형민이었다.

비록 완전한 힘이 아니었지만, 은석은 지옥귀왕의 힘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네놈 장단에 맞춰 주느라 레이드 들어가긴 글렀고. 네가 레벨 업을 대신해 줘야겠어.”

은석이 쓰러진 조형민을 노려보며 적룡검을 세워 들었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느라 조형민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지태웅을 묶은 결박이 떠올랐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닐 텐데.”

조형민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주먹을 꽉 쥐었다.

“무슨 소리야?”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 이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큰일 났습니다. 지 선생님을 묶은 줄이 강하게 조여와 지금 선생님께서 숨을 못 쉬십니다.’

놀란 은석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조형민이 지태웅을 묶어 놓은 결박을 이용해 도망칠 기회를 만든 것이었다.

은석이 다시 바닥을 내려다보자, 조형민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산장으로 급히 돌아온 이현과 함께 지태웅이 누워 있는 그의 숙소로 이동했다.

지태웅은 얼굴이 붉게 변하며 숨이 막혀 컥컥거리고 있었다. 은석이 그를 감고 있는 밧줄을 빠르게 잘라냈다.

“흡……! 하, 이제야 살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김은석 헌터님.”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지태웅에게 은석은 미지근한 물 한 잔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외진 곳에는 혼자 왜 가신 겁니까?”

은석의 물음에 지태웅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김 비서가…….”

“김 비서요? 김도운 말입니까?”

“네, 김 비서가 윤혁에게 맞고 도망친 상태라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마력 상처를 좀 치료해 달라고…….”

한숨을 내쉬며 말끝을 흐리는 지태웅.

“그만큼 당했으면서도 또 이렇게 당하네요. 저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려내는 지태웅을 보며 은석이 싱긋이 웃었다.

“의사시니까요.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헌터님. 그자는 누구입니까? 인간이 아니던데요.”

“예전에는 저승차사였으나 지금은 그저 악귀일 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를 왜 불러낸 건가요? 김 비서도 한패입니까?”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윤혁과 한통속입니다. 지 선생님을 불러낸 건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지 선생님과 같은 사람의 피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태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혁이 절 죽이려고 할 때 말려 준 게 고마워 상처를 치료해 주려고 했었는데……. 참, 저도 어리석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또, 연락이 오지는 않겠죠?”

“그럼요.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다시는 나가지 않으실 것 아닙니까.”

지태웅이 낮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집 밖은 위험한 게 맞나 봅니다.”

* * *

다음 날, 은석은 이현을 불러내 지도가 켜져 있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여기로 가자.”

“대장, 여기에 게이트가 열린 건가요? 지도상으로 봐서는 빌라촌 같은데요.”

“맞아. 빌라촌이야. 찾아야 할 사람이 이 동네에 살거든.”

“아, 혹시 그…….”

“그래, 인스턴트 던전 찾는 그놈.”

윤혁이 조형민과 함께하니 분명 놈도 이창범을 필요로 할 것이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이창범이 도망쳐 숨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윤혁보다 그를 먼저 찾아야 했다.

“대장, 이 건물입니다.”

그들이 이동한 곳은 4층짜리 빌라가 빽빽하게 들어선 동네였다.

창문을 통해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하게 세워진 빌라촌.

이창범은 그곳에서도 가장 구석진 빌라의 지하에 살고 있다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이현이 휘파람을 불었다.

“여기에 그 던전을 찾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거죠?”

“그래, 희준이가 준 주소가 맞다면.”

“돈을 엄청 많이 벌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네요. 숨어 있다고 해도 이런 곳일 줄은.”

인스턴트 던전 사이트에서는 길드도 등급도 상관없었고 오직 돈이 최고였다.

윤혁과 김도운이 사이트를 활성화하기는 했지만, 시작은 이창범이었다.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벌었던 건 아니야. 윤혁이 뛰어들면서 판이 커진 거니까.”

“그래도 소문으로는 그전에도 용병들이 그 사람한테 돈을 주고 던전을 구입했다고 하더라고요.”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다가 윤혁의 눈에 걸린 거니까.”

은석이 빌라의 공동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이창범이 숨어 있다는 빌라의 이름은 ‘해피 하우스.’

몇 글자는 지워져 흐릿했고 ‘피스’ 두 글자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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