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99화 (199/226)

199화

일어서는 최강호를 보며 은석이 말했다.

“회장님, 그런 자들은 죽는 것보다 갇혀 있는 게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

최강호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현철은 돈과 권력에 욕심이 어마어마한 자입니다. 그래서 회장님을 중독시킨 거고요.”

“그렇지.”

“그러니 자신이 모아 둔 돈을 쓰지 못한 채 권력에서 가장 멀어진 바닥에 있는 것이 더 큰 벌이 아닐까요?”

최강호의 불같은 성격으로 보아 기회만 있다면 이현철을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원하는 것이 바로 탐욕귀. 죽음으로 놈은 다시 자유를 얻게 된다.

은석은 그걸 막기 위해 최강호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했다.

“음,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그리고 회장님. 지금은 이미 잡혀 있는 이현철보다 협회를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현철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던 최강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내 생각이 어리석었네. 그런 놈 따위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겼어. 이제 그걸 모두 제자리에 돌려놔야지.”

‘이제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군.’

은석은 그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 던전이 생긴 후에 지구 내에 마력의 농도가 점점 짙어졌습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던전의 수도 많아지고 랭크 또한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최강호는 진지하게 은석의 말을 경청했다.

“그럼 던전에 대한 대비를 해야겠군.”

“맞습니다. 앞으로 더 강한 던전과 몬스터가 출현할 수도 있습니다. 길드 간의 협동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그렇지. 알았네. 그럼 협회의 썩은 가지부터 쳐 내야겠군.”

최강호가 풉 웃음을 내뱉었다.

“이현철 그놈 덕분에 썩은 가지는 잘 보이겠구만.”

최강호가 야수의 송곳니 같은 긴 덧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 저기…… 회장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태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장님, 잊으셨나 본데 오늘 깨어나셨습니다. 아직 치료를 더 해야 하고요. 여기서 말입니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지태웅의 말. 최강호와 은석은 서로 마주 보며 멋쩍은 웃음만 내뱉었다.

“지 선생님 말씀처럼 우선 회복에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예전 그 집으로 돌아가시는 것보다 여기에서 계속 지내시는 건 어떠십니까?”

그의 집에는 아직 여러 가지의 마법이 걸려 있었다.

더군다나 성하의 시신이 마당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은석은 그가 하데스 길드에 머무르도록 할 생각이었다.

“아닐세. 여긴 우리 지 선생님의 숙소가 아닌가. 치료가 끝나면 내가 살던 집으로 가야지.”

“그럼, 그 주택으로…….”

최강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거긴 너무 쓸데없이 큰 집이야. 이현철이 구입하라고 해서 산 거지, 내가 원했던 집도 아니고.”

“그럼 다시 집을 구하셔야겠군요. 저희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되네.”

“네?”

“협회 근처에 예전에 머물던 작은 아파트 하나가 있어. 이제 다시 일도 바빠질 텐데 위치도 가깝고 거기가 딱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주소를 알려 주십시오. 청소를 해 두겠습니다.”

“고맙네. 아, 그리고 여기서 쉬는 동안 현재 협회 내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좀 보고 싶은데. 내부 자료라 구하기 힘들겠지?”

은석은 황희준을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내부 자료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구해다 드릴 수 있습니다.”

“오, 그런가?”

“협회 자료는 제가 말해 두겠습니다. 혹시 다른 게 더 필요하시면 2층에 있는 황희준 헌터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유능한 헌터인가 보군.”

“네, 아주 능력 있는 친구입니다.”

오랜 이야기로 최강호의 얼굴에 피곤함이 내려앉았다.

“이제 그만 쉬십시오. 회장님.”

일어서려는 은석을 최강호가 잡았다.

“저기, 부탁이 하나 있는데.”

“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내가 들어갈 만한 던전 하나만 구해 줄 수 있나?”

곁에 서 있는 지태웅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아, 물론 회복이 다 되고 지 선생님이 된다고 허락하실 때 들어갈 걸세.”

“회장님, 던전은 왜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쑥스러운 듯 옆머리를 슥슥 긁었다.

“요즘 던전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동안 갇혀 있었더니 몸이 너무 뻐근해. 던전 안에서 한번 날뛰고 나면 후련할 것 같아서 말이지.”

은석이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지 선생님이 허락하시면 바로 레이드에 들어가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니 빨리 회복하십시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밝아진 최강호가 지태웅을 돌아봤다.

“지 선생님, 약 더 없습니까? 많이 먹으면 회복도 더 빨리 되는 거 아닌가요?”

지태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약도 중요하지만, 환자에게는 잠도 보약입니다. 이제 침실로 들어가시지요. 약을 준비하겠습니다.”

최강호를 부축하고 들어가는 지태웅이 은석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김은석 헌터님, 회장님 레이드 들어가셔도 됩니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지태웅에게서 연락이 왔다.

“괜찮을까요?”

“네, 김은석 헌터님이 만나셨던 날도 이미 충분히 회복되신 상태였습니다. 다만 조금 더 쉬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아, 그런 거였군요.”

은석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검사 결과, 회장님의 몸 안에 남아 있는 마법 독도 없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지 선생님.”

은석은 전화를 끊고 황희준의 사무실로 갔다.

“제일 빨리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이 언제지?”

“마침 A급 던전 하나를 받아 둔 게 있습니다. 여기 들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음, 그럼 여기로 준비해 줘. 내일 오전에 들어가는 거네. 시간도 괜찮고.”

“그런데 형님, 회장님은 육십이 넘으셨습니다. 거기에 레이드에 들어가 본 지도 오래되었고, 최근까지 중독인 상태였고요.”

“그 부분이 나도 걱정되기는 하지만 내가 같이 들어가니까, 문제없을 거다.”

* * *

[검은 곰의 던전입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 던전 정보 메시지가 떴다.

“내가 최초의 S급, 야수 최강호와 레이드를 뛰다니…….”

게이트 들어오기 전까지 담담했던 은석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용병이었을 때의 감정이 떠올라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은석의 앞에 선 최강호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역시 던전 냄새는 언제나 참 좋아.”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검은 곰은 일반 곰에 비해서 덩치는 작은 편이었지만, 겨드랑이 아래에 두 개의 팔이 더 달려 있었다.

네 개의 팔을 휘두르는 놈들의 공격력은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다른 곰형 몬스터와 달리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헌터들도 꺼리는 종류였다.

검은 곰의 던전은 습하고 꿉꿉한 편인데, 먹다 버린 동물의 사체 썩는 냄새가 늘 진동했다.

최강호는 그런 냄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더 숨을 들이켰다.

그 모습에 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냄새가 좋다고? 던전에 미쳤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군.’

급기야 최강호는 제자리에서 뛰며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검은 곰의 던전답게 낮은 관목림 사이에 수많은 습지가 작은 연못처럼 드러나 있었다.

“이 냄새는 축축한 땅에서 미처 다 썩지 못한 동물의 사체 냄새지. 이런 냄새가 나는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는 십중팔구 네 개의 팔을 마구 휘둘러 대는 검은 곰이지.”

경험을 통해 정확하게 몬스터의 정체를 말하는 최강호. 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게 바로 관록이라는 걸세. 내가 들어간 던전이 헤아릴 수 없는데 늘 새로운 몬스터만 나왔겠는가.”

“역시 최초의 S급은 다르군요.”

은석이 손뼉을 마주치며 혀를 내둘렀다.

“하하! 자네도 아부를 할 줄 아는가?”

“아부가 아닙니다. 회장님. 진심으로 놀랐고 존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입니다.”

최강호가 고개를 젖히며 즐거운 듯 껄껄 웃었다.

“그건 그렇고, 듣자 하니 힐러지만 네크로맨서라는 히든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면서?”

“네, 그렇습니다.”

“자네가 싸우는 영상을 보고 정말 놀랐네. 그걸 보니 더 빨리 레이드에 들어가고 싶어지더군.”

“그러셨습니까.”

“지금까지 자네처럼 뛰어나고 이상한 헌터는 보지 못했어. 오늘 레이드가 정말 기대되는데.”

순간, 던전 바닥이 울리기 시작했다. 주변을 천천히 살피던 최강호가 오른쪽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몰려오는군. 내가 찢어 죽일 몬스터들이.”

최강호는 던전 안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포효했다.

몬스터들을 향해 빨리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도발하는 것 같았다.

동시에 인간에서 야수로 변하는 최강호.

제대로 변한 모습을 본 것은 은석도 처음이었다.

최강호는 더욱 거대해졌고 소름 끼칠 정도로 엄청난 힘을 뿜어내는 야수, 그 자체였다.

은석은 저도 모르게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이게 S급 야수의 진짜 모습이군.’

놀란 표정의 은석을 돌아본 최강호가 이빨을 드러내며 그르렁거렸다.

“직접 보니 놀라운가?”

“소문 이상입니다. 정말 굉장한데요.”

“후후, 오랜만에 제대로 변신하니 기분이 색다르군.”

최강호가 단단하고 뾰족한 양손의 손톱을 부딪치며 스파크를 만들어 냈다.

“빨리 이 손으로 몬스터를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군.”

그의 모습에서 성하가 싸우기 전에 주먹을 부딪치는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역시 핏줄은 속이지 못하겠는데.’

은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검은 곰이 몰려오는 쪽을 노려봤다.

여섯 개의 팔과 다리로 미친 듯이 달려오는 놈들이 검은 먼지를 일으켰다.

은석은 아공간에서 적룡검을 꺼내 들었다. 동시에 해머와 창왕, 그리고 성하를 소환했다.

야수로 변한 최강호를 보고 흠칫 놀란 해머와 창왕이 슬그머니 성하를 돌아보았다.

마스크를 쓴 상태였기에 그녀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은석은 정신 감응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불편하면 말해. 훈련장으로 보내 줄 테니까.’

‘아니에요. 불러 주셔서 감사해요. 아빠랑 한번 같이 사냥을 해 보고 싶었거든요.’

번쩍이는 강화복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귀속령을 마주한 최강호가 휘파람을 불었다.

“소환수들의 위압감이 영상에서보다 더 대단하군.”

“이들은 단순히 명령에만 따르는 소환수가 아니라 각자의 의지로 전투를 합니다.”

“오, 그런가? 특이한 소환수군.”

“회장님의 사냥에 방해되지 않도록 이들은 곁에서 서포트만 할 겁니다.”

최강호가 기분이 좋은 듯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울음을 흘려냈다.

“고맙네.”

인사를 건넨 최강호는 빠르게 검은 곰의 무리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A급 던전의 몬스터답게 강했지만, 상대는 S급의 야수였다.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한 무리의 검은 곰이 순식간에 최강호의 손에 찢겨져 죽었다.

그의 옆에서 성하도 빠르게 검은 곰의 머리를 터트렸다.

“크아악!”

최강호의 포효를 마지막으로 던전에서의 첫 사냥이 끝났다.

“후……. 오랜만의 사냥이라 숨이 조금 차는군. 아니면 내가 늙어서 그런가? 하하.”

숨이 찬다는 최강호의 말에 해머가 고개를 흔들었다. 최강호는 땀에 흠뻑 젖은 털을 세게 흔들고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근처에서 사냥을 마친 성하의 곁으로 걸어갔다.

“이보게, 김은석 헌터.”

“네, 회장님.”

“여기 이 소환수의 전투 특성은 복싱인가?”

최강호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둘을 향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 싸우는 걸 보니 동작이 복싱이더라고. 내 딸이 국가 대표 복싱 선수거든. 그래서 내가 이쪽을 잘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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