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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97화 (197/226)

197화

탐욕귀는 자신의 담당 경찰에게까지 죽여 달라고 졸랐다.

“감옥에 들어가 있을 동안 내가 돈을 줄게. 네가 평생 만지지도 못 해 볼 돈을 준다니까?”

경찰은 입술을 비릿하게 올리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돈? 돈보다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소중한 시간을 그깟 돈으로 바꾼다고요?”

순간, 탐욕귀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돈보다 중요하다고? 돈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 세상에서 돈이 최고야. 아주 오래전부터 늘 돈이 최고였어.”

“아이고, 그 좋은 돈 쓰지도 못하고 그 안에 계셔서 어쩝니까?”

빈정거리며 돌아서려던 경찰이 탐욕귀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여기 있을 동안 조용히 살자. 자꾸 소란 일으키면 헌터고 뭐고.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으니까. 알겠어?”

철창 밖으로 내민 손을 슬그머니 거둬 드린 탐욕귀는 치욕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내가 인간 따위에게 협박을 받다니…….”

경찰들이 구치소 밖으로 나간 후, 다른 방 수감자들의 원망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탐욕귀처럼 인간의 몸을 완전히 차지한 악귀는 수명대로 살든, 타인의 손에 죽어야 다시 악귀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혼자가 된 탐욕귀는 망연자실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놈을 향해 방구석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살려 줘. 난 아니야. 난 죽기 싫어. 제발 살려 줘…….”

구치소의 원귀가 오늘도 어김없이 탐욕귀의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저리 꺼져! 내가 지금 네놈 이야기를 들고 있을 기분이 아니라고!”

원귀를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저기 봐. 또 저러네. 혼자 뭐 하는 거야? 아주 지랄을 하는구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탐욕귀가 허공을 향해 손을 내젓고 혼자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보였다.

“살려 줘. 난 죽기 싫어. 제발 이현철 실장님에게 말 좀 전해 줘. 내가 그동안 그 새끼한테 준 돈이 얼만데. 내가 여기 갇혀 있다고 말 좀 전해 줘…….”

원귀는 망자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그저 하나의 길고 물컹거리는 덩어리처럼 구치소 벽에 스며들어 있었다.

철창 안에서 살해당한 억울함에 떠나지 못하고 있는 원귀의 정체는 정종렬이었다.

인스턴트 던전 비리 고발로 잡혀 들어간 정종렬과 이상균.

겁이 많은 이상균과 달리 정종렬의 성격은 불같았다.

절대 혼자 죽지 않을 거라고 매일같이 소리 지르는 그를, 위에서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정종렬을 자살로 가장해 죽이라고 지시한 자는 그들에게 상납을 받고 묵인해 주던 이현철이었다.

“살려 줘. 목이 너무 아파. 이거 좀 풀어 주면 안 될까?”

원귀가 된 정종렬은 자신을 죽이라고 지시한 이현철의 모습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고 싶어 떠나지 못한 그는 구치소의 지박령이 되어 있었다.

아무도 듣지 못할 억울함을 중얼거리던 어느 날.

탐욕귀가 자신을 볼 수 있고 말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탐욕귀의 등에 붙어 흐느끼고, 짜증을 내며 욕을 내뱉기도 했다.

“억울해. 내 이야기 좀 들어 봐. 난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 진짜 나쁜 놈은 따로 있다니까.”

“시끄러워. 꺼져! 원귀 새끼야.”

“원귀? 아니야. 난 원귀가 아니야. 음……. 내가 뭐였더라?”

“하……. 진짜 미치겠네. 이제 이따위 허접한 지박령 하나 죽이지도 못하다니.”

힘을 봉인당한 탐욕귀는 원귀를 보고 듣는 것 외에는 아무 짓도 할 수가 없었다.

정종렬의 치근덕거림에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 잠들기조차 힘들었다.

잠시 눈이라도 붙이려고 하면 정종렬이 그의 몸 위에 올라타 목을 눌렀다.

“최상급 악귀인 내가 하급 원귀에게 가위가 눌려?”

탐욕귀는 어이가 없어 그저 헛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이봐, 난 억울하다니까. 내 말 좀 들어 봐. 난 잘못한 게 없어. 아, 답답하군. 목에 감긴 줄부터 풀어 줄래?”

이제는 반응하는 것조차 귀찮아 그저 짜증스럽게 팔만 휘저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사방에서 잠든 사람들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늘어 갔다.

어둠을 노려보고 있는 탐욕귀의 눈빛이 번뜩였다.

“내가 오늘 당한 치욕. 그대로 돌려주마. 어르신만 오시면 너희들은 모두 끝이야. 그리고 너!”

옆에 서서 몸을 흔들며 중얼거리고 있는 원귀 정종렬을 노려봤다.

“그때가 되면 너 같은 하급 악귀는 이 손가락 하나로 끝이야. 알아?”

얼굴이 사라졌으니 놈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원귀 정종렬은 그저 탐욕귀의 주위만 빙글빙글 돌며 억울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뉴스에 내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으니 어르신도 이쯤이면 아실 텐데. 설마 협회에 갔다가 내가 없어서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탐욕귀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자는 조형민이었다.

터널 봉인석을 깨러 가는 조형민과의 통화에서 그는 일이 끝나는 대로 탐욕귀를 찾아간다고 했었다.

“조형민 차사님만이 날 여기서 빼내실 수 있다. 오신다고 하셨으니 반드시 오실 것이다. 내가 그동안 갖다 바친 게 얼만데.”

탐욕귀는 기도를 하듯 양손을 모아 간절히 빌었다.

‘어르신만 오시면 난 자유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몸을 찾으면 되는 거야.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어르신만 오시면…….’

* * *

탐욕귀가 뇌물 수수 혐의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은석은 지태웅을 찾아갔다.

그는 최강호가 중독된 마법에 대해 물었다.

“네? 환상 속에 빠지게 만들고 몸 안에 가두는 마법이요? 마법어로 적은?”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중독된 상태입니다. 이런 종류의 마법도 치료가 가능 할까요?”

“잠시만요.”

지태웅은 여러 편의 보고서와 정리해 둔 파일을 뒤적였다.

“물론 마법 독을 치료하는 방법은 수십 가지입니다. 그런데 마법어를 이용해 그런 저주를 걸었다는 건 저도 처음 들어 봅니다.”

“……어려운가요?”

지태웅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렵지는 않습니다. 일단 마법어 자체가 하급 마법이고요. 얼마나 반복해서 걸었을지는 몰라도 기본은 단순한 마법이니 곧 치료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대답에 은석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 그리고 부탁 하나만 더 드려도 될까요?”

“어떤 부탁입니까?”

“지 선생님 숙소에 환자분을 머무르게 했으면 합니다. 그동안만 이중우 화가님과 함께 쓰셔도 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제 숙소를 사용하십시오. 제가 잘 곳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치료약이 준비되면 연락을 주시겠습니까? 바로 환자를 모셔오겠습니다.”

지태웅의 말대로 며칠 지나지 않아 치료약을 만들었다는 연락이 왔다.

은석은 곧바로 이현과 함께 최강호의 집으로 이동했다.

그의 집에는 여전히 수많은 아티팩트가 뒤덮여 있었지만, 이현철이 잡혀 들어갔으니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은석과 이현은 넓은 마당 안으로 바로 들어갔다.

“대장, 저는 마당에 잔뜩 얽혀 있는 아티팩트를 제거하겠습니다.”

“그래. 난 최강호 회장님 상태를 확인해 볼게.”

거실에 들어가니 최강호가 이전보다 더욱 흐려진 눈빛으로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회장님.”

은석이 곁에 다가가 그를 불렀지만 역시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더 심해졌군.”

소파에 힘없이 걸쳐 있는 최강호의 손을 잡았다.

“회장님, 곧 깨어나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십시오.”

최강호의 손안으로 소량의 생력을 흘려 넣자, 그의 몸이 옆으로 스르륵 넘어갔다.

은석이 최강호의 몸을 소파에 똑바로 눕히고 있는데 이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대장!’

‘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거실 창을 통해 보니 이현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마당 구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장, 빨리 나와 보십시오.’

떨리기 시작하는 그의 목소리.

“뭔데?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이현이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은석은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그것은 마법 천에 둘둘 말려 있는 성하의 시신이었다.

“후우…….”

은석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가 길게 내쉬었다.

“대장, 성하가 맞나요?”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는지 이현이 물었다.

“그래, 탐욕귀가 죽여서 여기 묻어 둔 모양이다.”

그녀의 시신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 상태였다.

“시간이 꽤 흘렀을 텐데 시체가 썩지 않았습니다.”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 성하를 감고 있는 저 마법 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집 안 전체에 흐르는 마법의 영향일 수도 있고. 거기에…….”

이현이 말을 멈춘 은석을 돌아봤다.

“분했겠지. 그 마음이 시신을 썩게 하지 않는 옛날이야기도 있거든. 당연히 믿지 않지만 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현은 침통한 표정으로 다시 잠자듯 누워 있는 성하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어떡하죠? 지금 시신을 꺼낸다고 해도 처리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은석은 잠시 입을 꾹 다물며 생각에 잠겼다.

“성하를 불러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묻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회장님 상태도 저러니…….”

이현 역시 답답한지 혼자 계속 중얼거렸다.

“일단 다시 덮어 놔라.”

“네? 다시요?”

“그래, 이건 최강호 회장님이 깨어나셔서 결정하실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알겠습니다. 대장.”

“그리고 마법진 제거는 여기서 멈춰라.”

“네? 마법진은 왜……?”

“혹시 마법의 영향으로 성하의 시신이 썩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이대로 놔둬야지. 그리고 다른 자가 들어올 수 없게 집 전체에 보호막을 쳐 둘 거다.”

이현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대장, 그래도 전 성하가 부럽네요. 이렇게 온전한 시신이라도 찾았으니.”

이현은 던전 안에서 죽는 순간 마법진을 밟은 발을 통해 영혼만 빠져나왔다.

그의 몸이 아직 던전 안에 있을지, 이미 몬스터의 먹이가 되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은석 역시 던전 깊은 곳에 떨어져 돌무더기에 깔려 죽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 성하의 시신 위로 다시 흙을 덮기 시작했다.

손등으로 슬쩍 눈물을 훔친 이현도 곧 은석을 따랐다.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최강호의 집 전체에 보호막을 쳤다.

“이제 이 집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다. 만약에 들어오려는 자가 있으면 내가 먼저 알게 될 거고.”

은석은 거실로 다시 들어가 최강호를 들쳐 업고 곧장 하데스 길드 4층에 있는 지태웅의 숙소로 이동했다.

“지 선생님, 숙소를 빌려 달라고 부탁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연구실도 있고 병원에도 쉴 곳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환자분이 우선이죠.”

은석의 문자를 받은 지태웅은 침대 커버를 바꾸고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해두었다.

“이분이십니까?”

은석이 업고 온 환자를 그의 침대에 눕혔다.

“네,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지금은 잠든 상태입니다.”

지태웅이 침대에 누워 있는 자가 최강호라는 걸 확인하고는 빠르게 은석을 돌아봤다.

놀란 듯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기……. 헌터님. 이분은 설마, 그런가요? 맞나요?”

당황한 지태웅은 그의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아 질문만 반복했다. 그의 모습에 은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그분 맞습니다. 한국 각성자 협회 최강호 회장님.”

지태웅의 입이 쩍 벌어지며 다시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정말이군요. 최강호 회장님. 그럼 그 마법 독에 중독되었다는…….”

“네, 그 환자가 바로 최강호 회장님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환자의 등장에 지태웅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

의사답게 금세 마음을 진정시키고 최강호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눈동자가 굉장히 탁한 상태군요. 이것도 마법의 영향인 것 같고.”

간단하게 문진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난 지태웅.

“지금 살펴본 바로는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정확한 결과는 의료원 진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퇴근 후에 쉬지도 못하시게 일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지 선생님.”

은석의 말에 지태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강호 회장님을 치료할 수 있어 제가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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