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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96화 (196/226)

196화

윤혁의 눈웃음에 김도운은 공포에 온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에게 했던 짓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자신을 죽이겠다 울부짖던 그의 처절한 비명이 귓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의 공포, 지금껏 겪어 보지 못했던 두려움이 순식간에 그를 휘감았다.

김도운은 윤혁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혁아……. 내가 미안했다.”

“응? 갑자기 무슨 말이야? 난 그저 형이 보고 싶어서 온 건데?”

“내가 정말 잘못했어. 잠시 미쳤던 모양이다. 우리 옛날에 좋았잖아. 옛정을 생각해서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

빌어야 한다, 지금은 무조건 빌어야 한다.

김도운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고개를 조아리며 잘못했다는 말을 쉴 새 없이 내뱉는 그의 어깨에 윤혁이 손을 올렸다.

순간 어깨를 움츠리며 주눅 든 그를 보며 윤혁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형, 이러니까 내가 진짜 나쁜 놈 같잖아.”

그의 말에 김도운이 고개를 들었다.

“혁아, 날 용서해 줄 거니?”

윤혁이 싱긋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꽉 힘주어 잡았다.

“설마 그럴 리가. 내가 그랬지? 너 죽인다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따귀가 날아왔다. 눈앞이 번쩍거리며 입 안에서 무언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윤혁은 수십 번의 따귀를 때렸고, 김도운의 얼굴에는 금세 시커먼 멍이 들었다.

곧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입과 코뿐만 아니라 얼굴 곳곳이 터져 피가 흘러내렸다.

김도운은 뺨을 맞는 동안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더는 살려 달라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후……. 때리는 것도 힘드네.”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김도운을 잡은 손을 놓자, 무너지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맞는 동안 무뎌졌던 감각이 돌아와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들었다.

“윽…….”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는 김도운.

“도운이 형, 많이 아파?”

윤혁은 다정하게 물으며 누워 있는 김도운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커헉!”

뒤로 빠르게 밀려 벽에 부딪힌 김도운은 몸을 잔뜩 움츠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겨우 이 정도로 아파? 난 이것보다 훨씬 더 아팠어. 배신자 새끼야!”

김도운은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윤혁의 발 앞으로 기어가 엎드렸다.

무조건 비는 것만이 그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단……. 살고 보자.’

김도운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도련님, 살려 주십시오! 제발, 뭐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자신의 발을 잡으며 애원하는 김도운을 보며 윤혁이 비웃음을 흘렸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도련님, 살려만 주십시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앞으로 절대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요양 병원을 출발할 때만 해도 윤혁은 김도운을 보자마자 생명력을 흡수하고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불산 길드로 가는 사이,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윤혁은 이전부터 스스로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늘 김도운이 옆에서 모든 걸 도맡아 해 왔기 때문에 윤혁에게는 그가 필요했다.

죽이려는 생각은 없어졌지만 당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갚아 줘야 했다.

그래야 다시 배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윤혁이 바짝 엎드린 김도운의 양팔을 잡고 일으켜 앉혔다. 그사이에 더 부어오른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러니까 도운이 형, 주제를 알고 덤볐어야지.”

“맞습니다, 도련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천하의 윤혁이 고작 손 잘렸다고 사라질 줄 알았어?”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도련님.”

“걱정하지 마. 죽일 거면 벌써 죽였어. 형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난 형이 필요해.”

윤혁의 말에 김도운의 부어올라 보이지도 않는 눈 안에서 희망이 반짝였다.

억지로 미소 지어 보이는 김도운의 오른손을 잡았다.

“형, 오른손잡이야?”

“……네.”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니 다시 왼손을 잡아들었다.

왜 자신의 손을 번갈아 잡는지 이해할 수 없어 김도운은 그저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 순간.

“으아악!”

말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그의 목구멍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윤혁의 손에 잡혀 있던 그의 왼손이 빠르게 말라 가고 있었던 것.

“악! 내 손! 내 손!”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비명만 지르는 그를 보며 윤혁이 빙그레 웃었다.

“괜찮아. 안 죽인다니까. 죽이지는 않고 왼손만 없앨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라비틀어진 김도운의 왼손. 마치 마른 나뭇가지를 잘라내듯 그의 손목을 뚝 떼어냈다.

자신의 왼손이 순식간에 말라 잘린 것도 믿을 수 없는데,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떼어낸 손목 끝은 종이를 구겨 놓은 듯 마른 피부가 엉겨 붙어 있었다.

“흑흑…….”

고통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지만,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에 결국 김도운은 눈물을 쏟아냈다.

말라붙은 왼쪽 손목을 움켜쥐며 벽에다 머리를 마구 찧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김도운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는 윤혁.

“사람은 말이야. 자신이 겪어 보지 않은 일은 절대 알 수가 없어.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건 그냥 말뿐이야. 난 그저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형도 공감해 줬으면 해. 어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형도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지?”

김도운은 윤혁의 병실에 갈 때마다 소리 지르는 그에게 엄살을 피운다며 괴롭혔었다.

윤혁은 김도운의 행동 하나, 말 하나까지 기억해 그대로 돌려주는 중이었다.

의자를 가져와 힘없이 벽에 기대어 있는 김도운의 앞에 앉았다.

눈을 감은 채 눈물만 흘리고 있는 김도운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야, 적당히 엄살 피우고 일어나라. 내가 인내심이 없는 건 잘 알지?”

그의 말에 김도운은 벽을 짚으며 힘겹게 일어났다.

“내가 병원에 갇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읊어 봐. 하나도 빠짐없이.”

* * *

윤혁은 병원에서 나왔지만, 반대로 이현철은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최고의 자리에서 바닥으로 순식간에 추락한 이현철.

하지만 철장 안에 갇힌 그의 표정에서 초조함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수감 첫날 밤, 모두 잠든 구치소 안 안에서 그는 졸고 있는 직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만 빠져나가면 끝이다.’

그는 악귀의 연기를 흘려 직원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작정이었다.

“어리석은 인간 놈아, 빨리 일어나 이 문을 열어라.”

탐욕귀는 눈을 감고 있는 직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왜 이래? 너무 오랜만에 힘을 사용해서 그런가?”

몇 번이고 다시 힘을 뿜어내려 했지만, 그의 손끝에서는 흐린 연기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때, 고개를 크게 끄덕이다 놀라서 잠에서 깬 직원이 탐욕귀를 쳐다봤다.

철장 밖으로 양손을 내밀고 있는 탐욕귀의 앞으로 걸어갔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빨리 돌아가서 자리에 누우십시오.”

자신이 힘을 쓸 수 없음에 놀란 탐욕귀가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내가, 내가 왜 이런 거지? 왜 아무런 힘도 사용할 수가 없지? 진짜 인간이라도 된 건가? 설마, 아니겠지?’

돌아서는 직원을 향해 다시 한번 더 손을 내밀어 힘을 줬지만, 역시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런, 미친!’

인간처럼 변한 자신의 모습에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왜! 도대체 왜!’

갑작스러운 변화의 이유를 알지 못해 괴로워하는 탐욕귀.

놈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은석의 의도라는 것을 탐욕귀가 알 리가 없었다.

인간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던 놈이니 처벌도 인간처럼 고통스럽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은석.

이현철의 몸을 탐욕귀가 완전히 차지했음을 알게 된 이후, 은석은 와인을 좋아하는 탐욕귀에게 정기적으로 고급 와인을 선물로 보냈었다.

물론 순수한 호의는 아니었다.

놈에게 보낸 와인 병에는 이현이 적은 마법어가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은석은 탐욕귀가 최강호에게 했던 방법 그대로 돌려주었다.

탐욕귀는 그저 은석이 보내 주는 고급 와인을 좋아라 마셔댔다.

와인에 걸린 봉인 마법은 이현철의 마법뿐만 아니라 악귀의 힘까지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탐해 왔던 인간의 삶.

이제 탐욕귀에게 남은 것은 그동안의 대가를 치러야 할 삶뿐이었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내가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거지. 이래서 어떻게 빠져나간단 말이야.”

힘이 사라졌으니 이제 그가 철장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손에 죽는 것뿐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면 육체에 묶여 악귀로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탐욕귀는 이현철의 몸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혼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린 그의 방에 오랜만에 새로운 수감자가 들어왔다.

“야, 너 사람 죽여 봤어? 날 좀 죽여 줘. 내가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 날 좀 죽여 줘.”

“경찰관님, 저 다른 방으로 좀 옮겨 주세요. 저 사람 이상해요.”

“이봐, 아직 사람도 안 죽여 봤어? 병신 같은 놈. 그럼 이번에 날 죽여. 내가 허락할 테니까.”

탐욕귀가 다급하게 바닥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여긴 칼도 없고 찌를 만한 게 없네. 자, 그럼 목을 졸라.”

탐욕귀가 남자를 향해 목을 내밀었다.

“피도 안 튀고 이게 더 좋을 것 같네. 처음에 피가 막 흐르면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자, 빨리.”

남자는 구석으로 도망치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아저씨, 나한테 왜 이래요? 저기요! 저 좀 다른 방으로 옮겨 달라니까요?”

남자는 철창 사이로 손을 내밀며 문 앞에 서 있는 경찰을 애타게 불렀다.

문 앞에 서서 그들의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던 두 명의 경찰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조용하다 싶어서 저기 넣었더니만. 또 저러네. 이현철 저 새끼, 일부러 미친 척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보는 놈들마다 죽여 달라고 하는 게 꼭 정신 병원에 가고 싶어서 수 쓰는 것 같단 말이지.”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빠져나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놈이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던 경찰 중 한 명이 짜증스럽게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이봐, 오늘 들어온 저 자식, 건넛방으로 옮겨.”

구치소를 관리하는 직원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저길 보시고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 방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이미 꽉 찼습니다. 한 곳이 저렇게 텅텅 비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요.”

“야! 나도 눈이 있거든. 그걸 모르겠냐? 옮기라면 옮겨. 저러다가 진짜 누가 죽으면 네가 책임질래?”

툴툴거리던 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알겠습니다. 당장 옮기겠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수감자들이 아우성쳤다.

“조용히 안 해? 골치 아파 죽겠는데, 네놈들 방으로 넣어 줄까?”

경찰의 말에 구치소 안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현철을 담당하는 경찰이 제일 구석방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우리 헌터님. 오늘도 실패하셨네. 계속 살아 계셔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탐욕귀가 앞으로 훅 다가와 철창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그 총, 그걸로 한 방만 싸 줘, 돈 줄게. 제발 죽여 달라니까.”

탐욕귀의 말에 경찰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미친 새끼, 이봐요. 헌터님.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내가 너님을 죽이면 감옥에 간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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