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조형민은 침대에 다리가 묶인 채 앉아 있는 윤혁을 쳐다봤다.
“충분히 풀 수 있으면서 왜 그러고 있는 걸까?”
“넌, 누구지?”
윤혁은 탁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조형민은 그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혀를 끌끌 차며 윤혁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고개만 돌려 조형민을 노려보던 윤혁이 몸을 완전히 틀어 그와 마주했다.
조형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지금껏 그가 느껴 보지 못한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낯선 기운에 희뿌연 윤혁의 눈동자에 생기가 흐르기 시작하자, 조형민이 짧은 콧바람을 내쉬었다.
“역시 그릇답게 내 힘을 느낄 수 있나 보군. 인간 주제에 말이야.”
하지만 윤혁은 아직 그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노려보고만 있었다.
조형민의 눈이 손목 아래가 사라진 뭉툭한 윤혁의 팔로 향했다.
그가 자신의 팔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안 윤혁의 눈빛이 번뜩였다.
순간, 그의 몸 안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빠르게 조형민에게로 향했지만,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뭐……뭐야? 넌!”
“쯧! 이런 더러운 분노 덩어리 따위.”
조형민은 마치 벌레를 쫓듯 손을 휘둘렀다.
“왜? 손이 없는 네 팔이 부끄러운 것이냐?”
“내가? 내가 부끄러워한다고?”
조형민의 비꼬는 말투에 화가 난 윤혁은 다시 한번 더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더럽다니까!!”
조형민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짜증 나는 듯 손을 휘저었다. 연기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흩어졌다.
‘왜, 공격이 먹히지 않는 거지?’
윤혁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분명 병원 직원과 김도운에게는 타격을 준 방법이었기 때문.
윤혁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병실 가득 그의 분노로 자라난 지옥 이끼.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가 되돌아와 그의 몸 안에 쌓여 갔다.
어느 날 병원 직원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는 직원들.
그때부터 자신의 분노가 타인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
‘왜 저 새끼한테는 효과가 없는 거야!’
갑자기 병실에 들어온 조형민에게는 그의 공격이 소용이 없었다.
벌레를 쫓아내듯 손을 휘저을 뿐,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어 윤혁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혹시 각성자인가?’
조형민이 일반적인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윤혁의 눈 안에 공포심과 호기심이 동시에 떠올랐다.
“정체가 뭐야?”
“넌 저급한 악귀 따위에 둘러싸여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야.”
“누구냐고 물었는데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조형민은 윤혁의 물음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말만 계속 이어 갔다.
“네게 아주 귀하고 귀한 선물 하나를 줄까 하는데……. 아! 물론 공짜는 아니야.”
“선물? 선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뭐라는 거야? 저 미친 새끼가.”
“쯧쯧, 명색이 최고의 헌터였다는 놈이 말하는 본새하고는. 시궁창으로 떨어진 네 인생을 구원해 줄 은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윤혁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조형민을 죽일 듯이 노려볼 뿐이었다.
“분노가 가득한 눈빛, 아주 마음에 들어.”
조형민은 천천히 걸어 그의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궁금해 미치겠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말을 해 줘도 넌 그걸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알아듣지 못할 말만 내뱉는 조형민을 보는 윤혁의 머릿속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다시 힘을 가지고 싶으냐?”
“뭐?”
“예전처럼 다시 강해지고 싶냐고 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형민의 갑작스러운 질문.
“알아듣게 똑바로 말해, 미친 새끼야!”
“외형만 달라졌을 뿐 역시 너의 더러운 입은 그대로군.”
조형민은 뭐가 재미있는지 잠시 킥킥거리며 웃음을 내뱉었다.
“아, 오랜만에 참 재미있어.”
웃음을 멈춘 조형민이 윤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한번 더 묻겠다. 너는 다시 강해지고 싶으냐?”
“시발! 당연한 거 아니야? 너라면 이 꼴로 살고 싶겠냐?”
윤혁이 소리를 지르며 뭉뚝한 자신의 양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강해지면 뭘 하고 싶지?”
순간, 윤혁의 눈동자에 안광이 번뜩였다.
“죽일 거다.”
“죽여? 누구를?”
“김은석.”
은석의 이름을 듣자, 조형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 지었다.
“좋군. 그렇다면 내가 그리할 수 있게 만들어 주지.”
“미친 새끼…….”
윤혁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까불지 말고 꺼져라.”
“김은석을 죽이고 싶다면서? 그런 힘을 내가 줄 수 있다니까?”
“네가 신이라도 된다는 거야?”
“만약에 신이라고 한다면……. 힘을 주는 대신 넌 뭘 줄 수 있지?”
조형민의 이상한 물음에 윤혁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 거짓이었나 보구나. 김은석을 죽일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판다고 하더니.”
윤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병실에 갇힌 후 수도 없이 되뇌었던 말이었기 때문.
“……뭐야? 너? 그걸 어떻게?”
“이제 말장난은 그만하고 마지막으로 묻겠다. 힘을 가질 수 있다면 넌 무엇을 줄 수 있지?”
윤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뭐든. 네놈이 원하는 건 뭐든 주지. 영혼을 원하면 영혼을 주고, 육체를 원하면 육체를 주겠다. 김은석을 죽일 힘만 준다면 말이야.”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조형민이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미소 지었다.
윤혁은 느끼지 못했지만, 말을 하는 동안 조형민의 손안에서 흘러나온 검은 연기가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내 윤혁의 이마에 맺을 결(結)이라는 검은색의 한자가 나타났다.
윤혁은 지금 막, 조형민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지옥귀왕의 힘과 계약을 한 것이었다.
‘이제 너는 지옥귀왕님의 그릇이다. 봉인석이 모두 깨어지고 귀왕님이 현현하시는 순간, 너는 사라질 것이다.’
이마에 나타난 글자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조형민은 윤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런 의지, 아주 마음에 드는군. 네가 원하는 그 힘을 주지. 단, 전부는 아니야. 극히 일부일 뿐이지.”
윤혁은 조형민이 내민 손을 잠시 내려다보고는 픽 웃음을 흘렸다.
“악수? 지금 장난해?”
“아! 미안. 자꾸 잊어버리네.”
조형민은 싱긋이 웃으며 그의 팔 하나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지옥귀왕의 힘 일부를 넣어 주었다.
“허억!”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윤혁의 입이 쩍 벌어졌다.
팔을 통해 느껴지는 엄청난 힘. 그리고 뒤이어 몸 안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고통이 따라 들어왔다.
조형민이 손을 놓자, 윤혁은 그대로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박았다.
고통은 갈수록 강해졌고 이내 윤혁은 속을 텅텅 비워내듯 마구 게워내기 시작했다.
“인간들이란…….”
병실 바닥으로 토하기 시작하는 윤혁을 피해 조형민은 뒤로 빠르게 물러섰다.
그러기를 한참. 겨우 몸속을 헤집는 고통이 진정된 윤혁의 눈이 점점 커져 갔다.
“……이건.”
고개를 번쩍 들어 멀찌감치 서 있는 조형민을 쳐다보았다.
“이제 느껴지는 모양이구나.”
윤혁은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낯선, 하지만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무슨 힘이지?”
“일부분일 뿐인데 겨우 이 정도로 그렇게 놀라다니……. 최고의 헌터라고 해서 기대했더니 실망이구나.”
조형민의 빈정거림이 윤혁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은석에게 베여 사라진 그의 양손이 생겨나 있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 살폈다.
“손, 손이…….”
울먹이는 듯한 윤혁의 목소리에 조형민은 혀를 끌끌 찼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손이 다시 생긴 거야?”
“그게 바로 네게 준다는 힘의 일부다. 어떠냐? 마음에 드느냐?”
윤혁이 빠르고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네게 준 힘이 완벽하지 않으니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게 뭐지?”
“손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명력이 필요하다.”
“생명력?”
“그래, 인간의 생명력을 흡수해야 네 손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인 네가 그걸 할 수 있을지가 문제지만.”
조형민의 설명에 윤혁은 큰 소리로 웃었다.
“흡수? 그 정도쯤이야.”
조형민은 그가 다른 헌터의 마력을 흡수하고 죽여 최고의 헌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예전 그가 마력을 흡수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라는 말에 윤혁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새로 생긴 손을 꽉 움켜쥐며 윤혁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우선 김도운, 그 새끼부터.’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죽일 듯한 윤혁의 눈빛에 조형민은 피식 웃음을 뱉었다.
“고작 그 정도 힘에 만족하는 것이냐?”
“무슨 말이지? 이 정도 힘?”
“그래, 그것은 내가 찾아낸 힘의 일부분이다.”
“이것보다 강한 힘이 숨겨져 있다고?”
“그렇다. 봉인된 힘 중 겨우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4개의 봉인을 더 깨면 이 세상을 파괴하고도 남을 힘이 생기는 거지.”
윤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다.
“그런데 왜 그런 힘을 내게 준 거지?”
“네 분노가 마음에 들었거든. 힘은 말이야. 있어 본 놈들이 더 갈구하는 법이지.”
조형민의 말에 윤혁이 머리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그래, 내가 뭘 하면 되는 거냐?”
“그건 차차 알려 주겠다. 지금은 그동안 미뤄 왔던 일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
조형민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반응을 살폈다.
‘병실 안에 가득 찬 지옥 이끼에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아직 귀안은 열리지 않았나 보군.’
윤혁은 침대에서 내려와 조형민의 앞에 섰다.
“나는 할 일이 있으니 이만 가 보겠다.”
“잠깐, 앞으로 어떻게 연락하면 되지?”
떠나려는 조형민을 보며 윤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내가 필요할 때 너를 찾아갈 것이다. 물론, 그전에 네가 날 애타게 찾는다면 한 번쯤은 찾아가 줄 수도 있지.”
“미친 새끼…….”
입술을 삐뚤게 올리는 윤혁을 보며 웃던 조형민이 순식간에 병실에서 사라졌다.
“뭐야, 진짜 신이야?”
병실 안을 두리번거리던 윤혁은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은석에게 처참히 패배하고 정신을 잃은 채 들어온 병실을 처음으로 벗어나는 것이었다.
복도로 나간 그의 발에 툭 걸리는 무언가.
고개를 내려 보니 조형민이 들어오기 전에 죽인 덩치 큰 가드였다.
“하하! 꼴좋다. 이 새끼. 그렇게 나를 놀려대더니.”
말라비틀어진 가드의 시신을 마구 밟아대자, 이내 모래처럼 부스러졌다.
윤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맛을 다셨다.
“생명력 흡수라……. 어떤 맛인지 궁금한데. 마력과는 전혀 다른 맛이겠지?”
낄낄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윤혁.
1층 복도에 있던 악귀들이 윤혁의 등장에 혼비백산 사방의 벽 안으로 도망쳤다.
윤혁에게 지옥귀왕의 힘 일부가 들어갔으나, 아직 귀안이 열리지 않은 탓에 그 장면을 볼 수는 없었다.
복도 곳곳에 쓰러져 있는 직원들의 시신들이 보였다.
“올라오면서 많이도 처먹었네. 미친 새끼.”
화풀이하듯 발로 걷어차며 걸어가던 그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흑흑.”
어디선가 아주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서서 소리가 들리는 쪽을 찾았다.
“저기군.”
고개를 돌려보니 직원 휴게실이라고 적인 팻말이 보였다.
조금 열려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흑.”
또다시 짧게 들리는 울음. 직원 휴게실의 책상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윤혁의 입꼬리가 삐뚤게 올라갔다.
‘드디어 먹어 볼 수 있는 건가. 그 생명력이라는 거.’
윤혁은 책상 앞으로 걸어가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고개를 옆으로 숙여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