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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85화 (185/226)

185화

이현이 만든 공간이동 방패가 천명 길드 헌터들 앞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 이게 뭐죠?”

낯선 물건에 놀란 헌터들은 그저 눈만 껌뻑거렸다.

“여러분들 앞에 있는 건 방패입니다.”

“방패요?”

“네, 거기에 부딪히는 것들은 다른 곳으로 순간이동이 됩니다. 듀라한 다섯을 모두 상대하기에는 위험하니 그 방패를 사용하십시오.”

은석의 말을 듣고 난 후, 눈앞에 떠 있는 마법진 방패를 팔에 착용했다.

오선에게는 은석이 직접 방패를 가져다주었다.

“조심하십시오.”

방패는 상체를 완전히 막을 수 있는 크기였다. 은석의 배려에 감동한 듯 오선의 눈빛이 반짝였다.

“먼저 제 소환수들이 앞장서겠습니다. 총에 맞으면 아프기는 하겠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헌터님들보다는 타격이 훨씬 적습니다.”

은석의 말에 오선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김은석 헌터님.”

팀 고스트를 향해 걸어가는 은석의 뒷모습을 오선이 바라보고 있었다.

뒤돌아선 은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먼저 나서서 천명 길드의 방패가 되어 준다는 그의 제안. 하지만 은석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천명 길드가 듀라한을 죽일 경우, 놈은 은석에게 귀속될 수가 없었다.

‘숫자도 적은데 한 마리라도 아깝지.’

생존 퀘스트라고 해도 모든 몬스터를 죽이면 클리어가 된다.

은석은 빠른 시간 안에 듀라한을 귀속시키고 사냥을 끝낼 생각이었다.

“듀라한은 창왕이 관리하게 될 몬스터다. 그러니 무조건 너희가 다 죽여야 한다.”

성하는 소환되고 난 후 계속 양쪽 귀를 손가락으로 꽉 틀어막고 있었다.

“대장, 저 아줌마들 울음소리 진짜 마음에 안 드는데 설마 저 밴시도 귀속시킬 건 아니죠?”

“밴시는 필요 없어.”

“그럼 죽여도 돼요?”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럼 같은 여자니까…….”

자기가 말하면서도 뭐가 재미있는지 킥킥 웃었다.

“흠흠, 같은 여자니까 밴시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울고 있는 밴시를 찾기 위해 성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은석도 이번에는 사냥에 참여하기 위해 아공간에서 적룡검을 꺼내 들었다.

멀리서 은석의 검을 본 오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을 보고 놀란 모양인데? 귀감이 뛰어나니 적룡검에서도 뭔가를 느낀 건가.”

오선은 은석을 향해 주춤거리며 다가오려는 듯 보였다.

타앙-

그때, 성 밖으로 달려 나온 듀라한이 그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천명 길드 헌터를 향해 날아간 총알은 그대로 마법진 방패를 통과했다.

“오! 진짜 사라지는데?”

공간을 이동한 총알은 그들의 뒤편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공격!”

달려오는 듀라한을 향해 팀 고스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듀라한 다섯 놈은 수십 발을 연사했지만, 쓰러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곧 놈들은 자신의 총알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라이플을 잡고 휘둘러 댔다.

“총이든 활이든 원거리 공격에 익숙한 것들은 달려드는 놈에게는 정신을 못 차리지.”

천명 길드 헌터들도 집요하게 공격을 했지만 듀라한은 덩치만큼이나 힘도 대단했다.

방패에 라이플이 부딪히자, 헌터들 중 몇은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듀라한이 타고 있는 머리 없는 말의 난폭한 발길질에 다가가다가 멈추는 자들도 보였다.

“다크엘프.”

해머가 지난 던전에서 만든 그의 부대를 불러냈다.

사방을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는 높은 나무 위에 모습을 드러낸 다크엘프.

놈들은 해머의 명령에 따라 듀라한에게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크아악!”

온몸에 화살을 관통당한 듀라한이 고통스러운 괴성을 내질렀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해머가 놈의 목 안으로 철정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은석은 밀리고 있는 천명 길드 쪽으로 달려갔다.

넘어진 헌터에게 라이플을 내려치려는 듀라한을 향해 적룡검을 그어 올렸다.

놈과 타고 있던 말이 순식간에 두 동강으로 잘려 연기로 사라졌다.

천명 길드 헌터들의 얼굴에서 놀란 기색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직 오선만이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 밖으로 나온 듀라한을 모두 죽인 후에 더 이상의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를 툭툭 털어내며 걸어 나오는 성하가 보였다.

“여자 대 여자로 잘 싸우고 왔냐?”

은석의 물음에 성하가 오른팔을 앞으로 빠르게 뻗어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더 죽이지 못해서 아쉬울 뿐입니다요.”

“다 죽이고 나오지, 왜?”

“갑자기 전부 성안으로 막 들어가더라고요. 닫힌 문을 열어 보려고 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아서 그냥 나왔어요.”

성하의 말을 들으며 은석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들이 듀라한과 싸우는 사이 던전의 낮이 찾아온 것이었다.

은석이 천명 길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공격은 멈춘 것 같습니다. 잠시 쉬십시오.”

천명 길드의 힐러가 돌아다니며 다친 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은석은 오선에게 다가갔다.

“낮이 오면 놈들은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밤이 찾아와서 성문이 열리면 이번에는 저희가 먼저 공격하는 건 어떠십니까?”

오선이 쉬고 있는 헌터들을 살펴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친 자들도 좀 있고……. 듀라한이 숫자가 많지 않는 몬스터라고 하지만 성안에 몇 놈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숫자가 적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공포심 때문에 먼저 공격할 생각을 못 하는 거죠.”

오선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김은석 헌터님은 보시는 시각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아! 이건 칭찬입니다.”

“그런가요.”

“보통 생존 퀘스트는 공격보다는 방어를 우선으로 하는 게 일반적이라 드리는 말씀입니다.”

“방어도 좋지요, 안전하고. 하지만 굳이 클리어할 실력이 되는데 시간을 다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대답을 듣고 있는 오선의 표정이 흐뭇해 보여 은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이런 식으로 말하면 싫어하던데. 오선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일단 웃고 나중에 더 크게 먹이려고 하는 건가?’

오선이 감추고 있는 생각을 읽기 위해 정보탐색 스킬을 사용하려는 순간.

“저는 헌터이기 이전에 퇴마사입니다.”

오선이 먼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 * *

“식사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들 오십시오.”

은석은 가지고 온 육포를 먹으면 된다고 했지만, 오선은 함께 식사하기를 권했다.

은석과 오선은 헌터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저희는 던전에서 간단하게 먹는 편이라…….”

“아닙니다. 육포에 비하면 진수성찬입니다. 잘 먹겠습니다.”

음식을 먹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오선이 물었다.

“김은석 헌터님, 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십니까?”

“네? 뭘 말입니까?”

“제가 조금 전에 퇴마사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랬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 왜 퇴마사가 헌터가 되었는지 묻는 게 순서 아닙니까?”

은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보통은 그렇겠지만……. 오선 헌터님이 먼저 말씀해 주셨으니 저도 하나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은석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헌터님이 퇴마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기 계신 천명 길드 아홉 분 모두 박수무당이라는 것도요.”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뜨던 오선이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김은석 헌터님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다시 웃기 시작했다. 은석은 잠자코 그의 웃음이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저는 세상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귀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낙으로 살고 있었지요.”

“그러셨군요. 그런데 어떻게…….”

“하하, 이제야 제가 듣고 싶었던 질문을 하시는군요.”

처음 만났을 때의 무뚝뚝한 표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선은 환하게 웃으며 은석을 바라보았다.

“산속에서 움막을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귀신 잡는 놈이 필요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산의 정기가 최고지요.”

“산의 정기만 드신 것치고는 근육이 상당하신데요.”

은석의 농담에 고개까지 젖혀 가며 유쾌하게 웃는 오선.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는 천명 길드 헌터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아니, 꿈이라기보다 계시라고 할까요?”

“계시요?”

“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나타나서 그러더군요. 나가서 세상을 구해라.”

“세상을 구하라……. 헌터를 말하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아, 그럼 각성도 그때 하신 거군요.”

“아뇨, 각성은 그 이전에 했습니다. 던전이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요.”

“초기 각성자셨군요. 그럼 던전에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으신 건가요?”

“아뇨, 용병으로 레이드에 들어가 보긴 했었습니다.”

“A급 헌터 아니신가요? 초기 각성자에 A급이신데 용병을 하셨다고요?”

“길드에 들어가 볼까도 생각했었는데 어디 메여 있는 건 영 성격에 맞지 않아서 말이죠.”

“그럼, 용병은 왜 그만두신 건가요?”

“그 세계도 참 더럽더군요.”

은석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구정물 속에 있느니 다 때려치우고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퇴마만 하다가 어느 날 계시를 받고 다시 내려온 거죠.”

“그럼, 저분들은 일부러 모으신 건가요?”

“계시에서 악귀가 판치는 세상이 올 거라고 하더군요. 그걸 막기 위해서는 귀감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야 했죠.”

“그럼 왜 저한테 레이드 제안을 하신 건가요? 저도 천명 길드로 스카우트할 생각이셨습니까?”

오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김은석 헌터님은 천명 길드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나신 분인데요.”

“과찬이십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은석 헌터님은 다르신 분이니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계시를 받으셨나요?”

“아니요. 이번에는 꿈속에서 미래를 보았습니다.”

“미래요?”

“네, 계시를 받았을 때 들었던 말과 똑같은 세상이 꿈속에 나타났습니다. 지옥에서 나온 악귀들이 휘젓고 다니더군요.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오선이 은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악귀 무리 사이에 긴 검을 든 김은석 헌터님이 서 계셨습니다.”

“음……. 꿈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선이 미소를 지으며 낮게 웃었다.

“그 검, 조금 전에 김은석 헌터님이 듀라한을 벤 그 검이었습니다.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검.”

그제야 은석은 오선이 적룡검을 보고 놀랐던 이유를 알았다.

“그럼 제가 악귀들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오선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미 아시겠지만 헌터에게 빙의한 악귀들이 꽤 있습니다.”

“그렇지요.”

“던전도 클리어해야 하고 그들의 퇴마도 해야 하기 때문에 저희들은 늘 바쁩니다.”

아무리 귀감이 뛰어나다고 한들, 은석처럼 한눈에 빙의된 헌터를 찾을 수도, 몸에서 악귀를 뽑아낼 수도 없었다.

오선은 그동안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악귀를 소멸시켜 왔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까지, 저는 김은석 헌터님의 이름과 얼굴만 알고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꿈에서 헌터님을 보고 영상을 찾아봤습니다. 그런 장면은 처음 봐서 눈을 뗄 수가 없더군요.”

“그런 장면이라면?”

“헌터님의 소환수가 악귀를 뽑아내는 순간 말입니다. 정말 굉장하더군요.”

은석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영상인데도 그게 다 보이셨다니, 오선 헌터님도 귀감이 무척 뛰어나시군요.”

오선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선명하게 보지는 못합니다. 오랫동안 퇴마사로 일한 덕분에 다른 분들보다 조금 더 잘 보이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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