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이현철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놈은 탐욕귀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육체를 옮겨 다니며 살아온 악귀.
기가 약한 인간에게 빙의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 육체를 빼앗은 것밖에 되지 않았다.
퇴마에 의해 몸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고, 영혼 스스로가 자각해 악귀를 몰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수백 년을 이승에서 살아온 탐욕귀는 늘 신중하게 빙의할 인간을 골랐다.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있는 질투심과 분노에 미칠 것 같은 인간.
놈의 목적은 단순히 육체를 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으로 살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서히 영혼과 육체를 잠식해 가야 했다.
악귀가 완벽한 인간으로 사는 방법.
그것은 인간의 허락하에 육체를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간의 욕망을 들어주며 야금야금 영혼을 갉아 먹다 보면 종국에는 악귀가 영혼을 대신해 육체를 차지한다.
그것이 탐욕귀가 원하는 빙의였다.
탐욕귀가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사이, 이현철은 마법어를 적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때를 기다린 탐욕귀가 그의 몸 안으로 스며 들어가 이현철의 꿈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현철의 꿈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최강호의 머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런 추악한 질투심! 아주 마음에 들어. 조금만 자극하면 금방 넘어오겠는데.”
꿈속에서도 이현철은 여전히 엎드려 최강호를 저주하는 마법어를 적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탐욕귀가 한심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
“찌질한 놈. 뒷방 구석에서 이런 저주나 혼자 퍼붓고 있다고 인생을 바꿀 수 있어? 넌 오늘 내 덕분에 아주 큰 행운을 얻게 될 것이다.”
탐욕귀가 뾰족하고 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한 번 슥 훑었다.
맛있는 음식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입맛을 쩝쩝 다시며 이현철의 곁으로 다가갔다.
“네가 나를 불렀느냐?”
조금 전과 전혀 다른, 공간을 울리는 듯한 근엄한 목소리였다.
깜짝 놀란 이현철이 고개를 휙 돌렸다. 그곳에는 검은 탐욕귀가 아닌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양복을 입은 노신사가 서 있었다.
“누……구?”
“인간들은 나를 신이라고 부르더구나.”
이현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에? 신……이요?”
“그래, 너의 강한 신념이 날 부른 것이다.”
검붉은 안광에 피딱지가 떨어진 얼룩덜룩한 피부를 가진 탐욕귀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는 없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탐욕귀는 인간이 가장 믿고 신뢰하는 존재인 신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산신령의 모습으로 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변했으니 모습과 호칭도 달라졌다.
“너는 강해지고 싶은 것이 아니냐? 진실하고 일관된 믿음이 나를 부른 것이다.”
노인의 후광에 눈살을 찌푸린 이현철의 입이 쩍 벌어졌다. 빠르게 몸을 돌려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네, 저는 강해지고 싶습니다.”
“강함에도 종류가 있지. 힘, 권력, 돈……. 그중에서도 넌 어떤 걸 원하는 것이냐?
탐욕귀의 질문에 이현철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가 원하는 강함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
탐욕귀의 눈앞으로 이현철의 망상이 만들어 낸 괴물 같은 최강호의 얼굴이 느리게 지나갔다.
“너는…… 최강호라는 자가 되고 싶구나.”
놈의 말에 이현철의 눈이 점점 커져 갔다.
그동안 수천 번을 되뇌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 죽을 때까지 자신만 알고 있을 욕망이었다.
“어, 어떻게 그걸…….”
탐욕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으나 이현철의 눈에 그게 보일 리가 없었다.
“될 수 있습니까? 최강호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습니다.”
“내가 있으니 물론 가능하다.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어떤 조건인가요?”
“내가 네 육체에 머무르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신이라는 자의 이해 못 할 말에 이현철의 미간에 주름이 지어졌다. 대답 없는 그를 보며 탐욕귀가 후광을 더욱 크게 뿜어냈다.
“최강호 이상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네 육체에 머물며 내 힘을 사용해야 한다. 너는 고작 D급이 아니더냐?”
탐욕귀는 이현철의 콤플렉스를 건드렸다. 예상대로 어금니를 빠득 깨무는 이현철.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탐욕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어리석음은 그대로구나. 하찮은 의심으로 기회를 놓치다니.”
여전히 아무 말 없는 이현철을 향해 혀를 끌끌 차며 뒤돌아섰다. 멀어지는 탐욕귀를 보며 이현철이 놀라 소리쳤다.
“잠, 잠깐만요. 갑자기 어딜 가십니까?”
놈을 급하게 붙잡았다.
“기회가 사라질 것 같으니 이제야 마음이 급해진 것이냐?”
“잠시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
“다들 그렇게 말하지. 처음이라 잘 몰라서, 의심스러운데 일단 확인을 먼저…. 그러면서 모두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지. 너도 그런 인간들 중 하나구나.”
탐욕귀의 말에 홀리듯 이현철의 표정이 달라지고 있었다.
매일 밤 끓어오르는 질투와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마법어를 쓰다가 잠들기를 반복하는 일상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곧이어 탐욕귀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기회를 놓치는 것 또한 너의 선택. 넌 그렇게 평생 동안 최강호의 뒷모습만 바라보다가 죽어라. 네가 아니라도 신을 기다리는 인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다시 돌아서려는 순간, 이현철이 크게 소리쳤다.
“하겠습니다. 저는 최강호를 부러워하다가 죽고 싶지 않습니다.”
이현철의 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제 몸에 머무르시면서 저를 강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저도 최강호처럼 될 수 있는 겁니까?”
탐욕귀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더 강한 인간이 될 것이다. 당장 눈을 뜨자마자 너는 강해졌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몸 안에 신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느끼게 해 주지.”
말을 마친 탐욕귀는 번쩍 빛을 뿜어냈다. 갑작스러운 강한 빛에 눈살을 찡그리며 손으로 가렸다.
“헉!”
웅크린 채 잠들었던 이현철이 눈을 번쩍 떴다.
“꿈……인가.”
얼마나 힘을 주고 잤는지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팠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일어나 앉은 이현철은 꿈에서 신이라는 존재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실없는 웃음을 내뱉었다.
“이제 하다하다 별 괴상망측한 꿈까지 꾸는구나. 드디어 미쳐 가는 건가.”
그 순간, 꿈속에서 들었던 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미치다니. 너는 아직까지도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깜짝 놀란 이현철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구야!”
‘누구긴. 네 몸 안에 있는 신이다.’
당연히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니.
이현철은 놀라 숨을 헉 들이켰다.
“진짜…… 진짜였어.”
‘그래, 모든 것은 사실이다. 곧 네게 힘이 생겼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지.’
신이라는 존재의 호언장담이 여전히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대감이 들었다.
이현철은 오랜만에 분노가 아닌 다른 감정을 느끼며 깊은 잠을 잤다.
* * *
다음 날 아침, 한국 각성자 협회로 가는 이현철에게 탐욕귀가 말을 걸었다.
‘오늘 협회의 긴급 안건 회의가 걱정이구나. 통과되지 않을까 봐 두려우냐?’
놈의 물음에 이현철은 잠깐 놀랐지만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하지 마라. 신과 함께하는 너의 앞길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회의가 시작되자, 이현철은 초조한 심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최강호의 표정도 심각했다.
‘신님, 어떻게 할 계획인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한 이현철이 고개를 숙여 몸 안에 있다는 탐욕귀에게 말을 거는 그 순간.
자신의 발밑에서 검은 연기가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이게 뭐지?’
곧 회의실 안이 검은 연기로 차오르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 나만 보이는 건가?’
이내 가득 채워진 연기는 검은 물결이 되어 회의실 안을 일렁거리며 흘러 다녔다.
‘시작해라.’
탐욕귀의 신호에 이현철은 안건에 대해 발표했다.
‘……표정이 전부 왜 저렇지?’
무조건 반대할 것이라 벼르는 간부들은 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헌데 지금은 번뜩이던 그들의 눈동자가 점점 멍하게 변하고 있었다.
간부들의 시선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지만, 이현철은 마치 혼잣말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입니다. 동의하시는 임원분들은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현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로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동의합니다. 아주 훌륭한 안건이었소.”
“역시 이현철 실장의 능력은 굉장합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현철의 의견이 훌륭하다는 칭찬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최강호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언제나 최강호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던 간부들이었다. 그들이 지금, 회의실 안에 최강호가 없는 듯 모두 이현철의 눈에 들고 싶어 안달했다.
‘날 존경의 눈빛으로 보고 있다.’
평소와 다른 표정을 마주한 이현철. 낯선 상황에 그저 헛웃음만 실실 웃고 있는 그에게 탐욕귀가 물었다.
‘어떠냐? 이제 내가 신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느냐? 나와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확실히 알았겠지.’
탐욕귀의 잘난 체를 듣고 있던 이현철이 입이 찢어져라 미소 지었다.
‘믿습니다. 신이시여. 저는 최강호를 제 발아래에 두고 싶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를 신에게 바치겠나이다.’
이현철의 말에 탐욕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해 주겠다. 네 몸은 이제 내 것이다. 앞으로 네가 만들 모든 부와 권력 역시 나의 것이다.’
탐욕귀의 말대로 이현철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각성자 협회의 이인자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자신을 최강호에게 빌붙어 사는 놈이라 말할 수 없었다.
누구도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단 한 명, 최강호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자는 신념이 아주 강한 자다. 오래전부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부류지.’
이현철이 권력을 휘두를 때마다 번번이 그의 폭주를 막아 세우는 최강호.
반대하는 최강호의 말이 언제나 옳았기에 이현철은 반박하지 못하고 늘 포기했다.
‘최강호보다 강한 자로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놈이 계속 제 앞길을 계속 막고 있습니다.’
이현철의 투정에 탐욕귀의 소름 끼치는 웃음이 머릿속을 채웠다.
‘강한 자보다 더 강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이현철은 대답 대신 미간을 찌푸렸다.
‘강한 자를 앞세워 조종하는 것이다. 그래야 훗날 네가 저지른 악행이 들키더라도 모두 그놈에게 뒤집어씌울 수가 있지.’
탐욕귀의 말에 일그러진 이현철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마법사인 너의 유일한 특성인 마법어는 아주 뛰어난 능력이지.’
‘지금…… 제가 D급이라고 놀리시는 겁니까? 고작 마법어밖에 쓸 수 없다고.’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네가 알지 못하는 네 능력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제…… 능력이요?’
이현철의 오른쪽 어깨 위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둥그스름한 형체를 갖춘 그것은 마치 귓속말을 하듯 이현철의 귓가를 맴돌았다.
‘네가 적은 마법어는 효과가 아주 뛰어나지. 특히 흑마법 쪽으로는 탁월해.’
이현철은 잠자코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던전 안에서는 도움 되지 않겠지만, 잘 생각해 봐라. 그동안 네가 최강호를 생각하며 적은 저주의 마법들. 그걸 놈에게 직접 건다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