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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55화 (155/226)

155화

악귀 체포부 차사는 오래전부터 이승에 머물며 악귀를 잡아 지옥으로 보냈다.

명성만큼 망자를 비롯해 악귀와 원귀는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언제나 명확했지만, 간혹 절기에 맞춰 틈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 저승과 지옥에서 빠져나온 놈들을 잡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임무 중 하나.

물론 이승에 머물며 원귀로 변한 망자들을 잡아 보내는 것도 그들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던전이 생기고 나니 예전만큼 못하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던전에서 흘러나오는 마력 때문에 악귀 잡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마력을 가진 인간인 헌터가 나타났고 그들에게 빙의한 악귀는 찾기도 어려웠다.

거기에 수백 년을 이승에 머물던 그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몬스터라는 이계의 생물.

던전은 인간들뿐만 아니라 저승에 속한 자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력을 흡수한 악귀들은 점점 더 강해져 갔다.

차사들은 예전과 변함이 없지만, 주변 상황은 빠르게 변했다. 그리고 결국 무저갱에서 악귀가 나오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었다.

은석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포호귀의 몸통을 적룡검으로 찔렀다.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는 놈의 몸통이 순간 반으로 쩌억 갈라졌다.

몸 안에서 무언가 빠르게 솟아 올라왔다.

“죽기 전에 다른 모양으로 변했군.”

말 대가리 같은 머리에 등에는 나방의 날개를 닮은 것이 퍼덕거렸다.

기이한 모습에 은석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차사들도 인상을 찌푸렸다.

은석의 주위를 날아다니던 놈이 커다란 주둥이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놈의 벌린 입에서 달걀 썩는 냄새가 터져 나왔다.

“윽!”

차사들은 손으로 코와 입을 급하게 막으며 고개를 휙 돌렸다.

한껏 벌어진 포호귀의 입 안에서 누렇고 시커먼 것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유황!’

은석은 왼팔을 들어 방패 모양의 쉴드를 쳤다.

동시에 놈의 입에서 벌건 유황불이 쏟아져 나와, 보호막에 부딪히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은석이 서 있는 바닥 양쪽으로 유황불이 흘러가는 길이 생겨났다.

포호귀에 이끌려 온 원귀 하나가 유황불에 닿자, 그대로 녹아 사라져 버렸다.

영체가 사라지는 걸 본 체포부 차사들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몸 안에 가지고 있는 모든 걸 토해 내려는 듯 포호귀의 입에서 끊임없이 유황불이 흘러내렸다.

마치 용암처럼 보호막을 흘러내리는 것을 보던 은석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알아서 먼저 불을 쏟아내 주니 고맙네.”

손안에 작은 불꽃을 피워내 바닥으로 툭 떨어뜨렸다.

화악-

붉은 유황불에 붙은 은석의 푸른 불꽃은 순식간에 양방향으로 퍼져 나갔다.

흘러내리는 불덩이를 집어삼키며 타고 올라가 포호귀의 벌어진 입 안까지 태우기 시작했다.

“꾸아악!”

입에 붙은 불길이 몸 전체로 번진 것은 잠깐 사이였다. 얇은 날개가 재가 되어 사라지고 놈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포호귀와 바닥에 길게 이어진 유황불을 활활 태우는 푸른 불꽃이 장관을 이뤘다.

차사들은 그저 불이 붙어 괴성을 지르는 악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염라대왕님이 처음 악귀 잡는 데 인간을 쓴다고 하셨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유준한 차사가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죠? 헌터라는 자들이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김은석은 그들을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조형민 차사도 혀를 내둘렀다.

오직 권승범 차사만이 이빨을 꽉 깨물며 은석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상급 악귀 포호귀가 소멸하였습니다.]

화염에 녹아내린 포호귀의 영체가 재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사이, 악귀를 모두 해치운 청안이 체포부 차사들 곁으로 다가갔다.

“저 무저갱 악귀 놈은 어디서 찾은 것이냐?”

유준한이 검을 꽂으며 대답했다.

“우리도 모른다. 다른 악귀를 쫓던 중에 우연히 발견해 따라온 것이다.”

“발견해?”

“그래, 떠도는 망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있더군.”

“그럼, 무저갱의 균열이 어디에 생겼는지는 모르겠구나.”

“그렇다. 그걸 알고 있다면 지금 이렇게 한가히 이야기나 나누고 있지 않겠지.”

청안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던 권승범이 짜증스럽게 욕을 내뱉었다. 청안이 그를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뭐지? 지금 지옥 수문장인 나에게 하는 말인가?”

이빨을 드러내며 권승범을 노려보자, 유준한이 다급히 청안을 막았다.

“자네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육체로 돌아가야 하는 신호가 와서 그런 것이야.”

옆에 서 있던 조형민은 뭐가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깨우고 있는 모양이군.”

악귀 체포부 차사들은 영혼이 잠시 떠난 인간의 육체에 빙의했다. 그들의 생명력을 빌려야만 이승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었다.

육체를 빌려 쓰는 대신 빙의한 인간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유준한 차사님이 협회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처럼요?”

“그래, 인간의 모습으로 하루 종일 악귀만 쫓아서도 안 되고 원래 그들의 생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도 안 되지.”

육체와 생명력을 빌려 쓰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은석이 조형민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지난번 협회 총회에서 유준한 차사님은 갑자기 육체에서 빠져나와 악귀를 잡으셨는데요?”

그의 물음에 유준한이 도끼눈을 뜨고 은석을 노려봤다. 조형민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 차사님, 그렇게 자꾸 규칙을 어기시면 언젠가 큰 벌을 받으실 겁니다.”

“아, 갑자기 육체를 빠져나가 빙의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규칙 위반이군요.”

당황하는 유준한의 모습에 은석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하, 진짜 미치겠네. 이 새벽에 왜 방에 들어오는 거야.”

권승범은 한마디 내뱉고는 인상을 잔뜩 쓴 채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조형민이 더욱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은석을 향해 말했다.

“이승에서 권 차사는 고등학생이거든.”

“고등학생이요?”

은석은 순간 불량한 고등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형민은 은석이 뭘 생각하는지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고등학생이 아니야. 무려 전교에서 1, 2등을 다투는 아주 우수한 학생이지.”

“네에?”

무저갱에서 악귀가 나왔다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말이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권 차사가 꽤 적응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단 말이지. 신기해.”

“그럼 엄마가 깨운다는 게 농담이 아니었군요.”

“아마 공부하다가 악귀 잡는다고 책상에 엎드려 놓고 나왔을 거야. 부모님이 깨우러 들어오셨겠지.”

“한 명은 고등학생, 다른 한 명은 각성자 협회 직원. 그럼 조 차사님은 이승에서 어떤 사람이십니까?”

은석의 물음에 조형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씩 웃었다.

“나를 꽤 많이 봤었을 텐데.”

“저와 같은 동네에 사십니까?”

조형민은 대답 대신 입술을 오므리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니다. 모를 수도 있겠네. 여자라면 모르겠는데 남자들은 대부분 관심이 없으니까.”

그는 계속 알 듯 모를 듯한 말만 내뱉었다.

은석은 혹시 그가 헌터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렇다기에는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아. 일반인인 건 분명한데.’

조형민이 은석과 청안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고. 나도 오늘 꽤 바쁜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 봐야겠어.”

유준한은 특별한 말 없이 가볍게 고개만 숙이고는 조형민과 함께 사라졌다.

차사들이 다 사라지자 청안이 적룡검을 아공간에 넣고 있는 은석을 보며 말했다.

“셋째 인간, 넌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나는 저승에 내려가 봐야겠다.”

“무저갱 악귀 때문에?”

“그래, 저놈은 무저갱 악귀 중에서도 약한 축에 든다. 그러니 빨리 균열이 생긴 곳을 찾아서 막아야 한다.”

심각한 표정의 청안을 보며 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갔다 와.”

팔찌를 찬 팔을 흔들자, 이내 청안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로 이현을 소환했다.

“작업복이 아니네. 오늘은 그림 안 그렸어?”

팀원들에게 전투를 준비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현은 강화복을 입고 있었다.

“대장이 싸우시는 것 같아 모두 대기 중이었습니다.”

은석을 통해 포호귀의 기운을 느낀 팀 고스트. 저승 훈련장에서 은석이 부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악귀 체포부 차사들이 있어서 너희를 부르지 않았다. 밥그릇을 뺏긴다고 생각하는지 우리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거든.”

은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랬군요. 미약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악귀 같아서 걱정했습니다.”

“맞아. 꽤 세더군. 나도 처음 보는 놈인데 무저갱에서 나왔더라고.”

“무저갱이요?”

일반 망자였던 그가 무저갱, 무저 지옥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앞으로 그들이 싸워야 할 상대이기도 하니, 은석은 이현에게 무저갱에 대해 설명했다.

“대장, 점점 더 강한 악귀가 나타나고 있군요. 최근에 만난 놈들만 봐도…….”

“그렇지? 상급 악귀뿐만 아니라 무저 지옥에서도 악귀가 빠져나오다니 말이야.”

이현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문제는, 깊은 곳에 있었던 놈일수록 이승의 마력에도 반응한다는 걸 알았다.”

“던전이 아니라 이곳의 마력에도요?”

“그래, 이승에 떠돌던 놈들은 이미 마력에 적응한 상태지. 그런 놈들은 던전 안의 강한 마력에 노출되어야 반응하잖아.”

“대장, 만약에 무저갱에서 악귀가 계속 빠져나온다고 한다면…….”

“우리의 사냥터는 던전 안뿐만 아니라 바깥까지 확장되는 거지.”

이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날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겠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마법진을 그렸다.

조금 전까지 악귀, 저승차사와 지옥 수문장의 싸움으로 시끄러웠던 공사장.

마지막으로 은석이 사라지자,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흙먼지 바람만 날렸다.

* * *

“지금쯤이면 일어났겠지?”

눈을 뜨자마자, 은석은 황희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일어났냐?]

[네, 형님. 물론이죠. 새벽에 기사 올렸습니다. 열심히 쓴다고 썼는데 마음에 드시려나 모르겠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첨부된 링크를 클릭하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황희준의 기사가 떴다.

짧고 감각적인 문장과 잘 나온 사진과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편집한 영상을 첨부해 굳이 기사를 읽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야! 황희준 기자님, 실력이 굉장해지는데. 이러다가 진짜 언론사라도 차리는 거 아니야?”

기사의 시작은 은석이 25세의 김은석이 된 후, F급 힐러라고 적힌 헌터 자격증을 받을 때부터였다.

은석은 기사를 읽으며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놈 봐라. 기사들이 전부 소설 같다고 난리 치더니. 이건 딱 봐도 팬클럽 회원이 쓴 것 같잖아.”

그래도 적당한 선을 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을 강조하려고 노력한 티가 났다.

“신경 많이 써서 적었구나.”

은석은 읽던 걸 멈추고 황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 신호음이 끝나기 전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어떠십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이상한 데 있으시면 바로 고치겠습니다.”

은석의 말을 듣기도 전에 폭포수처럼 질문을 쏟아 냈다.

“아직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는데, 잘 썼더라. 고생했다. 희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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