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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44화 (144/226)

144화

‘복수심에 당장 싸울 것 같았는데 왜 가만히 보고만 있지?’

그 순간, 보덴은 무릎을 꿇고 앉아 시멘트 바닥에 손바닥을 댔다.

“깊고 어두운 땅속에 갇혀 있는 썩은 생명들이여. 죽음을 다루는 흑마법사인 나의 명을 듣고 깨어나라.”

보덴은 무언가를 깨우기 위해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은석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후, 귀속령들을 소환했다.

“어! 나 여기 알아요. 친구들 만날 때 모였던 곳인데. 아……. 던전 때문에 다 깨졌구나.”

눈에 익은 번화가 풍경에 성하가 신이 난 듯 두리번거렸다.

성하뿐만 아니라 승형 부대를 제외한 나머지 귀속령들도 감회가 남다른지 둘러보기 바빴다.

주로 시 외곽이나 던전 안에서 싸웠던 그들이 귀속된 후 처음 와 보는 번화가였다.

“집중.”

은석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려 고개를 돌렸다.

“던전 폭발이 일어났고, 코볼트는 그록과 보덴이 맡고 있다.”

은석이 보호막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뚫린 곳으로 악귀와 원귀들이 들어오고 있는 게 보이지?”

모두 고개를 들자, 그의 말대로 수많은 귀가 서로 들어오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대장, 저희는 저놈들을 맡으면 되는 겁니까?”

“그래, 마력 때문에 계속 몰려올 테니까 빨리 해치우자.”

말을 마친 은석이 아공간에서 적룡검을 꺼내 들었다.

스릉-

귀검보다 더 길고 날렵한 검은 검신을 휘감고 있는 붉은 용. 이미 검을 봤던 팀원들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정말이지 몇 번을 봐도 굉장한 검인 것 같습니다.”

은석이 턱짓으로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를 가리켰다.

“발칸이 만들어 준 무기도 보통은 아니야.”

해머가 철장을 빠르게 돌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싸울 생각을 하니 없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해 모두 고개를 돌려 보덴을 쳐다봤다. 그의 앞, 땅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솟아 나오고 있었다.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시멘트 조각들이 보였다.

은석이 그것을 가리키며 이현에게 말했다.

“저 시멘트를 채찍으로 내려쳐. 이번 사냥의 보디가드로 만들면 되겠다.”

이현이 허리에 걸어 둔 채찍을 꺼내 들었다.

“지팡이 외에는 잡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기분이 굉장히 색다릅니다.”

이현은 발칸이 채찍을 휘두르던 모습을 떠올리며 바닥으로 내려쳤다.

조각난 시멘트들이 이리저리 움직여 덩어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곧 그들의 앞에 인간을 흉내 낸 2미터가 넘는 시멘트 덩어리가 일어섰다.

구멍으로 들어온 악귀들이 그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새로운 무기를 휘둘러 보고 싶은 팀 고스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 나갔다.

크고 투명한 돔 형식의 보호막 안에서는 두 개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하나는 시민들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보고 있는 몬스터들의 싸움.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볼 수 없는 귀속령과 악귀의 싸움이었다.

“죽여라!”

깊은 땅속에서 썩은 생명을 소환한 보덴이 소리쳤다. 그가 불러낸 것은 좀비나 스켈레톤이 아니라 엄청나게 엉켜 있는 나무의 뿌리였다.

인간이 살기 전부터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나무들.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깔리면서 잘려 죽은 나무뿌리들이 보덴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바싹 마른 나무뿌리는 흡사 잘 갈아 놓은 칼처럼 보였다.

땅속에서 솟아 나온 뾰족한 뿌리들은 그대로 코볼트의 몸통을 꿰뚫기 시작했다.

오크에게 달라붙어 있는 코볼트를 정확하게 찾아내 뿌리로 휘감아 찔렀다.

보호막 밖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땅속에서 솟아 나온 뿌리들이 보호막 안에 가득했던 코볼트를 순식간에 꿰어 죽였다.

하지만 곧 게이트 안에서 달려 나오고 있는 놈들의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오자마자 죽음을 맞게 해 주지.”

보덴은 나무뿌리의 뾰족한 쪽을 게이트를 향하도록 뽑아냈다. 코볼트는 나오는 즉시 뿌리에 찔릴 것이다.

나무뿌리로 만든 무기를 본 그록이 불만 가득한 소리를 질렀다.

“쪼그만 영감! 그거 치워라. 코볼트는 오크가 죽인다. 그런 나뭇가지로 전사의 사냥감을 훔치지 마라.”

그록의 외침에 보덴은 고개를 돌려 슬쩍 쳐다볼 뿐이었다.

“영감! 감히 오크 군단장인 그록을 무시했다. 지금 그 눈빛, 그것은 나에 대한 도전이냐!”

막 악귀 하나를 벤 은석이 그록의 곁으로 다가갔다.

“좀 그냥 싸워. 시끄러워 죽겠네. 코볼트가 저렇게 많이 나오는데 뭐가 문제야?”

그록이 보덴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동안, 이전보다 더 많은 코볼트가 나타났다.

보덴의 나무뿌리를 피해 달려오는 놈들을 보며 그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너 저렇게 싸우는 헌터 봤어? 난 처음이야.”

“미친놈, 헌터는 던전 안에서 싸우는데 어떻게 보냐?”

“오늘처럼 던전 폭발이나 브레이크 때 볼 수 있잖아. 나도 진짜 헌터들 영상 많이 봤는데 저렇게 싸우는 헌터는 처음이다.”

“대단하긴…… 대단한 것 같다.”

코볼트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거리와 건물 안에서 은석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마치 눈앞에서 가상 전투 게임을 보는 듯 시민들은 그들의 전투를 즐기고 있었다.

인터넷에 실시간 영상이 올라가자 사람들은 일부러 던전 폭발 현장에 찾아오기까지 했다.

코볼트의 수만큼이나 강한 마력에 이끌린 악귀들이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계속 베어 냈으나 그들을 피해 코볼트에 빙의하는 놈들이 나타났다.

“어! 저, 저기 저 몬스터 왜 저래?”

휴대폰으로 확대해 가며 영상을 찍고 있던 시민의 눈에 띈 빙의된 코볼트.

두 발로 꼿꼿이 선 채로 기이한 형태로 변하는 중이었다.

“보덴!”

은석의 외침에 보덴이 빙의된 놈들을 향해 나무뿌리를 화살처럼 날렸다.

사방에서 꽂힌 뿌리에 악귀는 순식간에 소멸해 버렸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베어 내자, 어느새 게이트에서 나오는 코볼트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 갔다.

악귀가 빙의해 코볼트를 조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덴은 놈들을 꼬치처럼 꿰어 돌돌 감았다.

수백 마리의 코볼트가 꽂혀 있는 뿌리는 마치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처럼 괴기스러운 모양을 갖췄다.

‘상황 보고해.’

‘곧 보호막 안에 들어온 악귀들은 모두 소멸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해머가 말을 멈추자 은석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저길 보십시오. 대장.’

해머가 가리키는 곳은 보호막 바깥이었다. 그곳에는 보호막으로 다가오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보였다.

일반 던전이었다면 길드 스태프들이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을 것이다.

던전 폭발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길드에서 도착하지 않은 상황.

남자들은 무언가 재미있는 거라도 발견한 듯 키득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폭발로 던전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력에 취한 악귀들이 평소보다 더욱 흉흉한 귀기를 뿜어냈다. 다행이라면, 대부분의 악귀가 보호막 안에 있다는 것.

마력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이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대장, 이런 마력이라면 일반인에게도 빙의할 수 있겠는데요.”

악귀들은 주로 마력을 가진 헌터에게 빙의하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보호막 주변은 마력이 가득한 상태. 이 상태라면 헌터든 일반인이든 상관없이 악귀에겐 똑같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이현의 말에 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야! 새끼야! 뭐 하는 거야? 싸워야지. 왜 안 싸워?”

남자들이 보호막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종격투기 경기라도 보러 온 듯 보호막에 얼굴을 들이대며 소리를 질렀다.

손으로 두드리는 것도 모자라 발로 보호막을 차기 시작했다. 진동을 느낀 악귀들이 남자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당연히 보이지 않으니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남자들은 휘파람을 불며 낄낄거렸다.

“뭐 하냐? 우리가 보고 있으니 부끄럽냐? 빨리 싸우라고. 우리가 제대로 봐 준다니까.”

“이봐! 헌터 놈아! 칼을 요래, 요래 휘두르란 말이야.”

남자 하나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구겨진 지폐 한 장을 꺼내 흔들었다.

“구경값 줄 테니까 최선을 다해서 싸워 보라고, 병신아!”

은석의 곁으로 다가온 해머가 남자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뭐가 저렇게 재미있는 걸까요?”

은석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안전하다고 믿는 거겠지. 저렇게 즐거워들 하시는데…… 내가 더 재미있게 해 줘야겠는데.”

해머가 고개를 돌려 은석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네? 더 재미있게요?”

소란을 일으키는 남자들 앞에 잔뜩 몰려 있는 원귀와 악귀들.

놈들은 마력에 둘러싸여 있는 남자들을 맛있는 먹잇감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난 몬스터가 김은석을 죽인다에 내 손모가지를 걸겠다. 이겨라! 몬스터!”

남자들이 양팔을 들어 보호막을 두드리려는 순간, 은석이 그들 앞을 막고 있는 막을 없애 버렸다.

갑자기 막이 사라지자 보호막을 치려던 남자 2명이 휘청이며 앞으로 넘어졌다.

동시에 넘어진 남자들 위로 악귀가 엎드려 빙의를 시도했다.

“새끼야! 자냐? 왜 안 일어나?”

서 있던 남자가 엎어진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그들을 툭툭 찼다.

“으, 어…….”

넘어져 있던 남자들이 몸을 뒤틀고 괴음을 흘리며 일어섰다.

마력이 없는 일반인에게 빙의한 악귀는 빠르게 그들의 영혼을 잠식했다.

이미 남자들의 얼굴은 그들이 알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뭐야! 이 새끼 왜 이래?”

놀란 남자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직 바닥에는 완전히 빙의되지 않는 남자 하나가 몸을 활처럼 휘며 괴로운 비명을 내뱉었다.

그 장면에 놀란 몇 명은 후다닥 뛰어 그 자리를 벗어났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는지 움직이지 못하는 자가 있었다.

“좀비! 좀비다!”

기괴하게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은 흡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좀비의 모습과 같았다.

멀리서 구경하던 시민들까지 비명을 질렀다.

막 빙의된 남자가 벌벌 떨고 있는 자의 어깨를 덥석 물었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어깨를 문 남자가 눈을 치켜뜨자, 검은 눈동자가 사방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누, 눈이…….”

다리가 얼어붙어 도망가지 못한 남자의 바지 아래로 뜨끈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바로 앞에서 마주한 악귀의 모습은 평범한 시민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다.

공이 튀듯 사방으로 움직이는 악귀의 눈동자를 마주한 남자는 급기야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두려움의 냄새를 맡은 악귀는 더욱 흥분해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멀리서 그들을 치켜보던 시민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떡해……. 저 남자 죽일 건가 봐!”

조금 전까지 함께 은석을 조롱하던 친구가 입에 잔뜩 피를 묻힌 채 걸어오고 있었다.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냐? 인마, 있으면 내가 미안하다. 용서해 줘…….”

남자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작정 비는 것뿐이었다.

걸어오는 악귀의 뒤로, 막 빙의가 끝난 또 다른 악귀가 일어서고 있었다.

그 장면에 남자는 공포심에 질려 더욱 격하게 몸을 벌벌 떨었다.

보호막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은석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겁 없이 다가오길래 기대했었는데 겨우 악귀를 마주한 것만으로 저렇게 오줌까지 싸다니. 실망인데.”

재미있게 구경하는 은석과 달리 해머와 이현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장, 저 상태로 놔두실 건가요?”

한 사람은 어깨가 물려 쓰러져 있었고, 나머지도 곧 악귀에게 먹힐 모양새였다.

남자가 피를 잔뜩 묻힌 입을 쫙 벌리며 달려드는 순간.

은석이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 어……. 저, 저기 왜 저래?”

곧 시민들이 뭔가를 쳐다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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