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겨우 F랭크 던전에서 두 팀 전멸. 그리고 윤혁에게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자료에는 던전의 위치와 랭크, 레이드에 들어간 팀에 대한 간단한 설명뿐이었다.
“주변에는 귀물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고…….”
던전에 대해 알수록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점만 늘어갔다.
“불산 길드에서는 윤혁 포함 20명의 헌터가 참여. 일본에서는 10명의 헌터가 들어간다.”
F랭크 던전, 세 번째 레이드에 은석 포함 무려 31명의 헌터가 들어간다.
일반 헌터였다면 불길한 이번 레이드를 다시 한번 더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은석은 달랐다.
“알면 알수록 더 빨리 들어가고 싶어지네. 던전 안에 어떤 놈들이 숨어 있을지 궁금하군.”
은석이 방에서 자료를 읽고 있을 때, 아침 뉴스에서 그의 이름이 나왔다.
[불산 길드 윤혁과 하데스 길드 김은석의 첫 연합 레이드!]
소파에 앉아 청안을 쓰다듬고 있던 김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은돌, 이 자식. 윤혁을 만나는 이런 엄청난 일을 말도 안 하고!”
윤혁의 광팬인 둘째 누나 김은영. 노크도 없이 은석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야! 김은돌! 너……!”
하지만 은석은 이미 그의 방에 없었다.
“어? 언제 나갔지? 벌써 공항으로 간 거야? 이씨, 나도 좀 데려가지.”
하지만 은석이 간 곳은 윤혁과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공항이 아니었다.
* * *
그 시각, 윤혁의 검은색 밴이 공항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기자들은?”
“이미 도착해 공항 입구에서 대표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더 많이 온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인터뷰 한 번 하지 않은 김은석이 나온다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있나.”
창밖을 내다보던 윤혁이 가볍게 기침을 뱉었다. 김 비서가 얼른 가방을 열어 포션 하나를 꺼냈다.
“나가시기 전에 이걸 드십시오.”
윤혁이 받아 든 포션은 이전에 그가 먹던 것과 색깔이 달랐다.
“새로 만든 거야?”
“지태웅 헌터가 만든 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제작된 포션입니다. 한 병이면 일주일은 걱정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몇 병 더 준비했습니다.”
병을 입에 물고 나머지 포션은 받아서 바로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예전 것보다 훨씬 강한 쓴맛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김은석은 아직 도착 안 했어?”
“조금 전에도 전화했는데 받지 않으십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김 비서가 말하는 도중, 문자 도착음이 울렸다. 은석이었다.
[김은석입니다. 저는 먼저 일본에 가 있겠습니다. 조심히 오십시오. 던전 앞에서 뵙겠습니다.]
문자를 확인하던 김 비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모습에 윤혁이 휴대폰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왜? 김은석한테 문자라도 온 거야?”
“그게, 어…….”
김 비서가 윤혁과 휴대폰을 번갈아 쳐다봤다.
“진짜 문자가 온 거야? 왜, 늦는데?”
“김은석 헌터님이 먼저 일본에 간다고……. 게이트 앞에서 보자고 하는데요.”
“뭐?!”
뒤로 한껏 젖힌 채 앉아 있던 윤혁이 김 비서 쪽으로 상체를 빠르게 내밀었다.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휙 낚아채 은석의 문자를 읽어 내려갔다.
“이 미친 새끼가 뭐라고? 일본에 먼저 간다고?”
휴대폰을 뚫어질 듯 쳐다보는 윤혁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대표님, 곧 기자들 앞에 나가셔야 합니다. 진정하십시오.”
김 비서의 말에 윤혁은 어금니를 빠득 소리가 나도록 깨물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기를 몇 번 반복하자, 얼굴의 붉은 기가 사라졌다.
지금 이런 쓸데없는 흥분은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가 곁에 없으니, 김은석 헌터를 만나면 흥분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대표님.”
최근 들어 윤혁의 마력 제어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김 비서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지금처럼 기자들 앞에 서야 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후……. 그럼 김은석은 앞선 비행기를 타고 갔다는 거야?”
“알아보겠습니다.”
김 비서가 누군가에게 연락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됐어. 이미 갔다는데 필요 없어. 도착했는데 없기만 해 봐, 이 새끼.”
윤혁과 함께 출국하는 불산 길드 헌터 19명이 공항 입구에 도착했다. 기자들이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쫓아가며 인터뷰하는 게 보였다.
밴에서 내려온 윤혁은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쉰 후, 주차장을 가로질러 공항 입구로 걸어갔다.
“저기! 윤혁 헌터님이 오신다!”
모여 있던 윤혁의 팬클럽 중 한 명이 소리치자, 모두 주차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윤혁은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기자들 사이에 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윤혁 헌터님, 김은석 헌터님은 어디 계신 건가요? 같이 출국하시는 게 아니었나요?”
그에게 가장 먼저 날아든 질문은 역시 은석에 대한 것이었다.
순간 이마에 핏대가 올라왔지만, 윤혁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낮은 웃음을 내뱉었다.
“저도 김은석 헌터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일본으로 떠나셨다고 하시더군요.”
“네? 김은석 헌터님 혼자요?”
윤혁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조금 전에 문자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기자님들도 이렇게 기다리지 않으시고 좋았을 텐데…….”
윤혁의 옆에서 따라오던 그의 팬클럽에서 은석을 욕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자 몇 명의 입에서 은석에 대한 불만이 들리자, 윤혁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출국장에 들어가기 전, 윤혁은 기자들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던전은 이전과 같은 의미의 원정 레이드가 아닙니다.”
“그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요?”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일본의 던전은 F랭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상 현상이죠?”
기자의 질문에 입술을 꾹 다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지금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하지만 제가 일본에 가는 이유는 오직 한국을 위해서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누르는 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최근 들어 이상 현상이 보고되는 던전이 증가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원인을 이번 일본 던전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 봅니다.”
던전 이상 현상이라는 말에 기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각성자 협회를 제외하고 누구도 던전에 대한 정보를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윤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던전 이상 현상에 대한 이야기.
모두 대박 기삿거리를 물었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윤혁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김 비서. 윤혁이 그와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었다.
밴에서 내리기 직전,
“대표님, 출국장에 들어가시기 전에 던전에 대해 말씀하십시오.”
국민들에게 불안감 조성과 유언비어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원칙적으로 던전에 대한 정보는 한국 각성자 협회를 통해서만 보도되었다.
“던전 정보를 말하라고?”
윤혁이 깜짝 놀라 김 비서를 쳐다봤다.
“네, 일본 던전에 이상 현상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던전 현상의 원인이 거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민들을 위해 일본에 가서 원인을 찾아오겠다고 말씀하십시오.”
당연히 윤혁이 일본 레이드를 가는 이유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오직 은석을 완벽하게 죽이기 위해 일본에 가는 것이었다.
“왜 그런 말을 해야 하지?”
“첫 번째, 기자들은 대표님보다 김은석 헌터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
“화제를 돌리지 않으면 계속 김은석 헌터에 대해 물을 거고요.”
윤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일본 던전이 위험한 상태임을 알려야 김은석 헌터가 사망해도 크게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김 비서의 말을 듣고 있는 윤혁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주 괜찮은 방법인데, 협회 쪽은 어떻게 할 거지?”
“기사가 나갈 때쯤이면 대표님은 한국에 계시지 않을 거고. 협회도 두 번이나 실패한 던전을 클리어해서 돌아온 대표님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윤혁의 한쪽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이미 일본 던전이 이상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건 인터넷에 돌고 있는 딱 그 정도입니다.”
다 알고 사실이었지만 윤혁의 입을 통해 듣게 되면 새로운 소식인 양 생각할 것이다.
김 비서의 계획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윤혁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밴에서 내렸다.
“다녀올게. 도운이 형.”
“윤혁 헌터님! 일본 던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저도 이 이상은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그 이유는 기자님들이 잘 아실 테고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반달 눈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 진지하고 심각한 윤혁의 모습에 기자들도 덩달아 차분해졌다.
“이제 들어가셔야 하니, 마지막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앞으로 한국에도 이상 현상 던전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윤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레이드의 목적이 바로 그겁니다. 철저히 조사해 훗날 한국에 위험한 던전이 나타나더라도, 국민들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윤혁의 대답에 그의 팬과 구경하던 시민들의 함성과 박수가 이어졌다. 기자들의 머리에서 이미 은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몇몇 기자들은 기사를 쓰기 위해 윤혁이 출국장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윤혁은 나라를 위해 위험한 일본 던전에 들어가는 애국 헌터가 되었다.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러넘쳤다.
“대표님, 이제 들어가셔야 합니다.”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 김 비서.
윤혁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기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곧장 출국장 안으로 사라졌다.
* * *
은석은 김 비서에게 문자를 보낸 후, 곧바로 일본 던전 근처로 이동했다. 게이트 앞은 어젯밤과 다른 부산함으로 정신이 없었다.
불산 길드가 머무를 천막을 설치하는 등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 은석과 함께 들어갈 일본 헌터 10명은 이미 도착해 준비 중이었다.
“대장, 저건 그냥 동굴이 아닌가요?”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F랭크라고 하니, 내 생각에는 아마 마정석 던전이 아닐까 싶다.”
어젯밤에 던전을 살펴보고, 안 실장이 보내 준 자료를 읽었다.
은석이 내린 결론은 마정석 던전.
“겨우 마정석 던전에 왜 두 팀이나 전멸한 거죠?”
“그러게 말이다.”
마정석 던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의심스럽기는 했다.
일반 던전의 입구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 낯선 모양의 게이트가 생성되는 게 대부분이었다.
흔하지는 않지만, 지구의 지형 그대로 나타나는 던전이 있었다. 주로 아주 낮은 랭크나 마정석 던전일 경우일 경우가 많았다.
“마정석 던전은 보통 몬스터가 없거나, 있어도 아주 하위 레벨만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현의 말에 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여기 던전이 일반적이지 않은 거지.”
마정석 던전은 헌터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마정석을 캐는 것만으로 클리어를 할 수 있었고, 몬스터가 나오더라도 손쉽게 사냥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그들이 들어갈 일본 던전 역시 겉으로 봐서는 던전인 걸 알 수 없는 동굴일 뿐이었다.
그때, 게이트를 쳐다보고 있는 은석의 다리를 누군가 툭툭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