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22화 (122/226)

122화

손을 내밀고 있는 용병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늘 저희를 구해 주신 것도 고맙고, 내일 사냥도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다가……. 하하.”

얼버무리며 큰 소리로 웃었다.

‘내 쪽에 붙어야 살아서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겨우 이런 빵 부스러기 몇 개 들고 와서?’

그들은 낮에 세이렌과 싸우는 은석을 보고 꽤 놀랐었다.

용병으로 일하며 내로라하는 헌터들과 많은 던전에 들어가 봤지만, 은석은 그들 모두를 뛰어넘는 실력자였다.

비록 질긴 가죽 때문에 마나석을 뽑아내는 것은 실패했지만, 몸통을 모으기 쉽게 징그러운 머리를 버려 준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백훈섭과 따로 앉아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머리 치워 주는 거 봤지? 백 팀장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거지. 우리한테는 나쁜 감정이 없다니까.”

“맞아. 그러니까 낮에 화염으로 다가오는 세이렌을 막아 준 거지. 그거 아니었음 우리도 죽었을 거야.”

“가서 인사나 하고 오자. 혹시 알아? 내일 사냥에서 도움이라도 받을지.”

“들어올 때 보니까 배낭 하나 없이 맨몸으로 들어왔더라고. 저기 봐. 등 돌리고 앉아 있잖아.”

“큭큭. 배는 고픈데 먹을 걸 달라는 말은 못 하고 저렇게 앉아 있는 거였네. 이거라도 줘. 고맙다고 넙죽 받아먹겠구만.”

그렇게 그들은 먹다 남은 빵 조각 몇 개를 들고 은석을 찾아온 것이었다.

“보니까 저녁도 못 드신 거 같은데, 이거라도 요기를 좀 하십시오.”

“더 드리고 싶은데 저희도 식량을 많이 준비해 오지 못해서 이게 전부입니다.”

용병이 은석의 얼굴 쪽으로 손을 더 가까이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빵 조각을 힐끗 쳐다본 은석은 들고 있던 두툼한 육포를 그들 앞에 내밀었다.

“어쩌죠. 저는 이미 식사를 다 해서 배가 부른 상태라…….”

그들의 마르고 거친 빵과 비교할 수 없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육포. 용병은 내밀었던 손을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하하, 배낭이 보이지 않아 준비 없이 급하게 들어오셨나 했는데, 역시 김은석 헌터님은 준비도 철저하시군요!”

먹을 걸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 보려던 것에 실패하자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아부였다.

“세이렌을 베는 동작이, 캬! 완전 영화더군요.”

“어디서 검술을 배우셨습니까? 저도 던전을 나가면 그 도장에 당장 등록을 해야겠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은 용병들이 귀찮았지만, 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듣고 있는 척했다.

그들 뒤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훈섭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박대국은 은석과 이야기하는 자들을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 새끼들. 김은석 옆에 붙어 있으면 살아 나갈 것 같아 저러는 거죠?”

“그렇겠지. 수중형 몬스터는 흔하지 않으니까. 이미 위험하다는 것도 경험했고. 빨리 줄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의리 없는 새끼들. 형님! 다음 던전부터는 저 새끼들 부르지 마십쇼.”

말을 마친 박대국은 바닥에 벌러덩 누워 눈을 감았다.

그사이 해가 졌고 모닥불마저 꺼지자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고요했지만 간간이 돌섬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용병들의 코 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은석도 이현을 보낸 후 바닥에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밤에 세이렌이 습격하며 어쩌려고 보초 하나 세우지 않고……. 이제 다 포기한 거야?’

돌아가며 경계를 서야 할 5명도 이미 편이 갈린 상태.

세이렌과의 전투로 육체적, 정신적 피로함이 극에 달한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

백훈섭만 제외하고.

그는 피로하고 몸이 무거웠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별 하나 뜨지 않은 컴컴한 하늘을 쳐다보던 그가 조용히 일어나 앉았다.

“이 새끼들. 몬스터가 언제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데 잠이나 쳐 자고…….”

백훈섭은 하던 말을 멈추고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15명이 들어왔지만 남은 자는 6명. 그것도 싸울 수 있는 멀쩡한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5명뿐이었다.

“시발, 보초는 무슨. 몬스터 나오면 다 같이 뒈지는 거지.”

입 안에서 짠맛이 느껴져 바다를 향해 침을 뱉어 냈다.

‘어? 누가 일어났어?’

은석 역시 누워 있기만 할 뿐, 잠이 들지 않은 상태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암안 스킬을 사용했다.

‘백훈섭? 꼴에 팀장이라고 보초를 서는 거야?’

하지만 정보탐색으로 본 그의 생각은 그것과는 전혀 관련 없는 것이었다.

‘김은석 저 새끼를 잠들어 있을 때 죽일까? 아니야, 오늘 저놈이 없었으면 전멸했을 수도 있었어.’

그때, 바닷물이 돌섬에 크게 부딪혀 철썩거리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백훈섭은 옆에 내려 둔 검을 집어 들며 소리가 나는 쪽을 노려봤다.

바다는 이내 다시 잔잔해졌다.

‘참나.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뭐 보고 놀란다더니. 이제는 물소리만 들어도 이 모양이냐.’

긴장한 스스로가 한심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

다시 생각에 잠긴 백훈섭.

‘일단 여기를 살아서 나가는 것만 생각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김은석이 필요해. 저 새끼들은…….’

주변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박대국과 다른 자들을 쳐다봤다.

‘짐이나 될 뿐이지. 아이템이든 뭐든 살아서 돌아가는 게 우선이지. 나간 다음에 다시는 윤혁의 일을 맡지 말아야지. 그놈의 돈이 뭔지.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뭘 해? 죽으면 다 소용없는데.’

백훈섭의 생각을 보고 있던 은석은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 돈도 살아 있어야 쓸 수 있지. 그런데 어쩌나. 나는 너희들을 보호해 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은석은 피식거리며 다시 돌아누웠다. 깜깜한 던전의 밤하늘에는 여전히 별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 * *

수평선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자, 돌섬 주변에 세이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신처럼 아름다웠던 외모가 오늘은 소름 끼칠 정도로 섬뜩하게 느껴졌다.

“덤벼! 이 괴물들아! 어제처럼 당해 주지는 않는다 이거야!”

박대국이 물 밖으로 눈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세이렌을 향해 소리쳤다. 마치 그의 고함에 반응하듯 세이렌 하나가 이빨을 드러내며 섬으로 기어 올라왔다.

한 번 싸워 봐서인지 어제보다 세이렌의 목을 날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백훈섭이 남자의 얼굴을 가진 세이렌의 목을 자른 후 다른 놈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눈에 여유롭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은석이 들어왔다.

6명의 용병이 모여 있어서인지 그들 주변에 세이렌들이 더 많이 몰려들고 있었다. 반면 은석의 주변에는 기껏해야 두세 놈 정도뿐이었다.

마치 검술 연습을 하듯 칼을 휘두르는 은석의 모습.

‘저 새끼 지금 뭘 하는 거야? 빨리 죽이고 이쪽으로 합류해야지!’

화염까지 피우며 싸우던 어제와 다른 모습에 화가 난 백훈섭이 성큼성큼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은석은 막 세이렌 한 놈의 목을 베고, 떨어진 머리를 축구공처럼 바다 쪽으로 뻥 찼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백훈섭이 은석을 향해 칼을 내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뭐가요?”

“지금 여기 놀러 왔어? 왜 이딴 식으로 싸우고 있는 거야! 우리가 저기서 고생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은석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백훈섭을 가만히 바라봤다.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후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팀이었나요?”

은석의 말에 백훈섭은 순간 아차 싶었다. 급한 마음에 은석을 예전처럼 자신이 데리고 들어온 용병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씩 웃고 있는 은석을 보며 백훈섭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돌아서려는 그때.

“윤혁이 인스턴트 던전에서 찾고 있는 게 뭐죠?”

은석이 다시 물었다.

착각한 자신이 부끄러워 짜증이 치밀어 오른 백훈섭의 이마에 핏대가 올랐다.

“어제부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백훈섭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마력과 관련된 건 분명한데, 정확히 마력 어떤 부분인지는 모르겠다는 말이죠. 혹시 아세요?”

마력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백훈섭의 얼굴에 당황하는 표정이 스쳐 갔다.

“뭘 그렇게 감추십니까. 혹시 윤혁과 의리라도 있는 사이예요? 아, 맞다. 의리는 있겠구나. 돈으로 맺어진 의리.”

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백 팀장님. 돈도 살아 있어야 쓰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백훈섭이 은석의 말에 뭐라 대꾸하려는 순간, 박대국의 고함이 들려왔다.

“거기서 뭐 하십니까! 이거 안 보여요!?”

좀 전보다 더 많은 세이렌이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설상가상 바닷속에서 다시 튀어 올라오기 시작하는 세이렌의 새끼들.

오른손을 잃은 용병은 기력을 회복해 왼손으로 검을 쥐고 휘두르고 있었다.

“으악!”

바닷속에서 튀어 오른 세이렌의 새끼가 그의 왼쪽 어깨를 덥석 물었다.

“누가 이것 좀!!”

오른손이 없어 어깨에 붙은 놈을 떼어 내기 쉽지 않았다. 점점 살을 파고드는 고통에 용병은 온몸을 뒤틀었다.

그때, 기어오던 세이렌 한 놈이 큰 입을 벌려 용병의 종아리를 물었다.

“도와……. 나 좀 도와줘!!”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강한 고통이 밀려오자, 용병은 더 크게 고함쳤다.

하지만 그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당장 눈앞의 세이렌을 막기에도 버거운 상태였다.

종아리를 물린 용병은 세이렌의 강한 힘에 끌려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은석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세이렌의 새끼를 쳐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록, 나와.’

오크 군단을 바닷속에 소환했다.

‘대장, 오늘도 물고기를 잡으면 되나?’

‘그래, 오늘은 씨를 말려 버려. 할 수 있겠어?’

‘당연하다. 오크가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적의 전멸이다.’

어차피 백훈섭과 용병이 모두 죽더라고 던전을 클리어하려면 없애야 했다.

오크가 물속에서 세이렌의 새끼들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용병들은 세이렌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어제저녁, 은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먹다 남은 빵을 가져온 용병들의 시신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망자들.

“이제 남은 건 백훈섭과 박대국, 저놈들뿐이군.”

인스턴트 던전을 오랫동안 다닌 경험 덕분에 세이렌을 상대로 꽤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무섭게 달려든 세이렌에게 옆구리가 뜯겨 나간 박대국.

발악하듯 내지르는 그의 마지막 목소리와 함께 영혼이 빠르게 그의 육체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백훈섭뿐이네.”

그가 은석을 쳐다보며 외쳤다.

“살려 줘! 김은석, 제발 살려 줘! 제발……!!”

백훈섭의 애절한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세이렌 한 놈이 벌떡 일어나 그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 모습에 은석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멸이군.”

백훈섭을 죽인 세이렌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은석이었다.

시신을 물어뜯어 얼굴이 피로 얼룩진 세이렌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은석을 향해 달려왔다.

“나와라.”

물속에서 새끼들을 잡는 오크, 마나석을 뽑아내는 스켈레톤을 제외한 귀속령을 돌섬 위로 소환했다.

“죽여. 모조리.”

돌섬 위에서 세이렌과 팀 고스트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뒤에 서서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은석. 그리고 15명의 망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은석과 팀 고스트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줄어들 것 같지 않았던 세이렌의 수가 적어지던 그때, 그록이 은석을 불렀다.

‘대장, 물고기는 전멸했다.’

‘확실해? 바다가 그렇게 넓은데 확신할 수 있어? 깊은 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잖아.’

‘흠. 그렇군. 알았다. 바닷속을 샅샅이 뒤져서 다 잡아 죽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