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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21화 (121/226)

121화

“여자다. 여자!”

“미친놈, 바다에 갑자기 여자가 왜 나타나?”

“저거 인어 아니야?”

용병들은 조금 전 물속에서 날아올라 머리를 뜯어 간 몬스터에 놀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휙 돌렸다. 그들과 멀지 않은 바닷속에서 여자의 얼굴이 불쑥 솟아올랐다.

푸른 바다 색깔만큼이나 짙고 긴 풍성한 머리카락이 파도와 함께 출렁거렸다.

물 밖으로 하얀 어깨까지 드러낸 여자는 그들이 서 있는 돌섬을 향해 천천히 헤엄쳐 오고 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에 용병들은 넋을 잃고 바라봤다.

급기야 여기가 던전이고, 방금까지 몬스터에게 목숨을 잃어버릴 뻔한 것도 잊은 채 휘파람을 불어 댔다.

“이봐! 아가씨! 위험한 던전에서 무슨 수영이야. 어?”

“여기로 올라와. 이 오빠가 안전하게 보호해 줄 테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말간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를 보며 용병들이 낄낄거렸다.

여자는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그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고 신비스러워 보였다.

“진짜 인어면 얼마를 받을 수 있지? 산 채로 잡아 가는 게 더 비싸게 팔리겠지?”

몬스터의 공격에 의기소침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모두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인어를 산 채로 포획하느냐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들에게서 거리를 두고 서 있던 은석은 픽 웃음을 흘렸다.

‘세이렌이니까 인어가 맞기는 맞네.’

급기야 서로 자신의 포획 방법이 맞다고 핏대를 세우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사이, 푸른 머리를 가진 세이렌은 돌섬 가까이 다가왔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원래부터 있던 섬이었다면 바다와 육지가 완만하게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은석의 귀속령인 보덴이 만든, 말 그대로 바다에서 그대로 불쑥 솟아오른 섬이었다.

바다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백사장 대신 섬의 모든 끝은 절벽처럼 수직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세이렌이 섬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희고 가는 어깨 아래가 어떤 상태인지 아무도 확인할 수 없었다.

세이렌이 비교적 높이가 낮은 쪽에 다다랐다는 걸을 알아챈 용병 하나가 걸어갔다. 히죽히죽 웃으며 세이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머리카락도 기니까 머리채를 확 잡고 건져 내면 안 될까? 인어는 어차피 다리도 없으니까 땅에 올라오면 끝 아니야?”

어느새 그의 주변에 도착한 다른 용병들.

“이봐, 그래도 조심해.”

“뭘?”

“여자잖아. 새끼가 매너가 없어, 매너가. 머리채를 살포시 잡으란 말이야.”

용병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의 웃는 모습을 따라 하는 듯 세이렌 역시 입을 오므리며 웃어 보였다.

얌전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세이렌을 향해 용병이 손을 뻗었다.

“자, 착하지. 이리 올라……아아아악!”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용병의 괴로운 비명이 이어졌다. 바닷물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잡기 위해 내민 용병의 오른손을 세이렌이 덥석 집어삼킨 것이었다.

세이렌의 앵두처럼 작고 붉었던 입술은 순식간에 아귀처럼 양쪽으로 쭉 찢어지며 벌어졌다.

잔뜩 벌어진 입 안에는 수백 개의 뾰족한 이빨이 겹겹이 솟아나 있었다.

“으악! 내 손!”

오른손을 물린 용병은 고통에 소리를 질렀고, 세이렌은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휙휙 돌렸다.

뼈와 근육이 찢어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용병이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손이 떨어져 나간 오른쪽 손목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피는 그대로 짙푸른 바닷속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포션! 빨리 포션 가져와!”

근처에 서 있던 백훈섭이 달려가 용병을 섬 중앙으로 끌고 들어왔다. 배낭에서 꺼내 온 포션을 뼈가 훤히 드러난 손목 절단면에 들이붓자, 흐르던 피는 금세 멈췄다.

다들 갑작스러운 공격보다 아름다운 인어라고 생각했던 세이렌의 모습에 더 놀란 듯 보였다.

‘지금 겨우 그거에 놀라고 있을 상황이 아닐 텐데.’

은석은 세이렌이 용병의 오른손을 삼키고 사라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손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다른 세이렌을 부르고 있음을 용병들이 알 리가 없었다.

“저기! 저기!”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용병이 가리키는 곳 외에도 돌섬 주변으로 수십 마리의 세이렌이 몰려들었다.

진짜 사람처럼 모두 다른 얼굴, 다른 색깔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놈들은 전설 속 인어처럼 용병들을 유혹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다가왔다.

하지만 두 번은 속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모두 무기를 꺼내 치켜들었다.

유혹이 통하지 않자, 돌섬을 둘러싼 세이렌들이 입 안 가득한 이빨을 드러내며 괴음을 내질렀다.

“걱정할 필요 없어. 인어는 땅으로 못 올라와.”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가장 가까이 다가온 세이렌 하나가 빠르게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제야 던전 몬스터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한 용병들. 기괴한 세이렌의 모습에 용병뿐만 아니라 은석조차 혀를 내둘렀다.

아름다운 얼굴과 바닷물에 흔들리는 긴 머리, 보호 본능을 자아내는 여리여리한 어깨선.

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것은 끔찍한 혼종의 모습이었다.

“대장, 저게 도대체 무슨 몬스터입니까?”

은석의 옆에 서 있던 해머도 기어 올라오는 세이렌의 모습에 기겁했다. 놈의 가녀린 어깨 아래는, 거대한 악어와 흡사한 형상이었다. 물갈퀴가 달린 4개의 다리, 길고 두꺼운 파충류의 꼬리도 보였다.

자이언트 악어의 몸에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한 몬스터, 세이렌.

조금 전까지 매력적이었던 풍성한 머리카락마저 괴기스럽게 보였다.

한 놈이 섬 위로 올라와 포효하자, 사방에서 기다렸다는 듯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이렌의 모습에 놀라 멈칫했던 용병들은 괴성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싸울 자세를 갖췄다.

막 섬에 올라온 갈색 머리를 한 세이렌이 커다란 꼬리를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급하게 막았지만, 꼬리의 힘에 밀린 용병은 그대로 날아가 바위 사이에 처박혔다.

오합지졸처럼 보여도 그들은 백훈섭과 오랜 시간 함께 인스턴트 던전을 돌던 정예 용병들. 잠시 우왕좌왕했을 뿐, 이내 기어 올라오는 세이렌을 하나씩 죽여 나갔다.

“머리! 머리를 잘라. 가죽은 질겨서 칼이 안 들어가.”

“뒤를 조심해. 한 놈이 더 올라온다.”

그 시각, 은석 역시 그를 향해 달려오는 세이렌을 칼로 베는 중이었다. 그때 무언가 은석의 머리 위로 바닷물을 흩뿌리며 휙 지나갔다.

“윽! 차가워.”

오크 군단이 바닷속에서 죽였던 놈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무리로 몰려온 놈들이 다시 돌섬을 휙휙 넘어 다니며 용병들의 머리를 노렸다.

“대장, 이것들은 조금 전에…….”

“그래, 세이렌의 새끼들이다.”

“네? 새끼요?”

창왕이 은석의 말을 듣고는 날아가는 한 놈을 낚아챘다. 물고기와 악어를 섞어 놓은 듯한 형태였다.

“얼굴은…….”

“자라면서 물고기 대가리가 인간의 얼굴처럼 변하는 거지.”

창왕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쥐고 있던 세이렌의 새끼를 터트려 죽였다.

은석도 정보탐색을 통해 보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던전 클리어 조건은 세이렌의 전멸이니 보이는 대로 다 죽여 버려.”

바다가 짙어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더 많은 새끼가 몰려온 것은 분명했다.

은석은 오크 군단을 물속에 소환해 세이렌의 새끼들을 죽이라 명령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이렌의 새끼들이 바닷속에서 튀어 올라 은석의 머리를 툭 건드리고 반대쪽으로 떨어졌다.

“아, 이거 신경 거슬리게 하네.”

막 세이렌 하나를 죽인 은석은 왼손에 푸른 화염을 피웠다. 돌섬 끝으로 가 활활 피어오르는 화염을 바닷물 위로 흘려보내듯 놓았다.

처음에는 손안의 작은 화염이었으나, 이내 확 번져 돌섬 주변을 에워쌌다. 짙푸른 바다 위를 이글거리는 푸른 불꽃이 뒤덮고 있는 신기한 광경.

빠지직-

물속에서 튀어 올라오던 새끼 한 놈이 화염의 높은 온도에 순식간에 타 다시 떨어졌다.

“하하하. 대장, 물고기구이입니다.”

은석이 피운 화염 덕분에 세이렌들이 더는 섬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튀어 올랐다가 그대로 구이가 되어 떨어지는 새끼들도 보였다.

그러기를 잠시.

‘대장, 물고기를 모두 죽였다. 더 죽일 물고기는 없는가?’

물속 사냥이 끝났음을 알리는 그록의 보고가 들려왔다. 계속해서 더 사냥할 거리를 달라는 그록의 칭얼거림에 은석은 빠르게 소환 해제해 버렸다.

“너희도 일단 내려가서 쉬어.”

동시에 해머와 창왕도 돌려보냈다. 돌아선 그의 눈앞에 돌섬의 돌멩이만큼이나 곳곳에 쌓여 있는 세이렌의 사체가 나타났다.

“후, 엄청나게 잡으셨네요. 역시 인스턴트 던전을 들어가시는 분들이라 실력이 남다르신데요.”

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세이렌의 사체 사이를 걸어갔다. 걸리적거리는 세이렌의 잘린 머리를 툭툭 차서 바닷속으로 떨어뜨렸다.

“다들 무사하십니까?”

하지만 은석의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13명의 용병 중 살아남은 자가 겨우 6명뿐이었다. 더군다나 그중의 한 명은 오른손이 잘려 전투가 불가능한 용병.

백훈섭과 박대국은 죽은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나머지 3명은 세이렌의 몸통을 한곳으로 모으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들의 모습에 은석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나석을 꺼내고 싶은 모양인데 어쩌나, 세이렌의 마나석은 거기 없는데…….’

세이렌의 마력을 담고 있는 마나석은 놈의 목울대 중앙에 박혀 있었다.

“야! 꼭 사람 죽인 것 같잖아. 징그러워. 머리는 빨리 바다에 버려. 마나석은 몸통에 있을 거니까.”

물론 용병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은석은 처음부터 이 던전에선 마나석을 빼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친절하게 머리를 버려 주니 생각이 바뀌었다.

‘스켈레톤.’

바닷속에 스켈레톤 몇 놈을 소환해 용병들이 버리는 세이렌의 목에서 마나석을 뽑도록 시켰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세이렌의 몸통을 옮기는 용병들의 옆에 널브러진 머리를 바닷속으로 빠르게 버렸다.

처음 그들은 웃으며 다가온 은석이 마나석을 나누자고 할까 경계했다. 하지만 몸통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머리를 버려 주는 그의 모습에 고맙다는 말까지 건넸다.

“뭘요. 여러분은 여러 명이 들어오셨는데 마나석을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고 가셔야죠.”

은석의 얼굴에 개구진 미소가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세이렌의 사체를 옮기는 사이, 던전 안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역시 일몰은 죽이네.”

머리를 모두 바닷속으로 버린 은석은 용병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아공간에서 육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으며 일몰을 감상했다. 그의 옆에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현이 앉아 있었다.

“희준이 말처럼 몬스터가 있어도 던전 안 풍경은 정말 아름다워.”

이현은 일몰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장.”

이현의 인사에 은석은 싱긋이 웃었다.

“예술가는 아름다운 걸 자주 봐야 하는 거다. 다른 놈들은 눈이 동태라 이런 걸 봐도 아무 느낌도 없을 거야.”

그의 말이 재미있는지 이현이 쿡쿡 웃었다. 그때, 은석의 곁으로 세이렌의 몸통을 모으던 3명의 용병이 다가왔다.

“저기, 김은석 헌터님?”

은석이 고개를 돌렸다.

“이것 좀 드시라고…….”

용병들 중 한 명이 내미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식량이었다.

말린 육포를 이미 꽤 먹은 후라 은석은 그것을 받지 않고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이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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