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F등급을 받은 윤혁의 눈에 술을 마시고 있는 헌터가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매니저는 혹시라도 헌터들이 그의 말을 들을까 전전긍긍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방이 나오면 바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바에서……. 오늘 드시는 술은 저희가 대접하겠습니다.”
매니저의 말에 윤혁의 가는 눈이 치켜올라 갔다.
“새끼야, 내가 돈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제가 잘 압니다. 이건 저희들이 너무 죄송해서, 그래서…….”
각성자 센터를 나온 후부터 모든 것에 화가 났다.
심지어 술도 원하는 곳에서 마실 수 없게 되자 잠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들어가 봤자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윤혁은 매니저의 어깨를 강하게 치며 안으로 들어가 바에 앉았다. 가장 독한 술을 주문해 연거푸 들이켰으나 술에 취하지도 않았다.
“F등급인 것도 미치겠는데 이 쓰레기 같은 스킬은 뭐야. 하……. 아버지한테 뭐라고 말하지.”
윤혁은 짜증이 치밀어 올라 머리를 마구 흩트렸다.
옆에 앉은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그것마저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노려보는데,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이상한 모양의 물체가 눈에 띄었다.
‘저게 뭐지?’
모양부터 색깔까지 평범한 것이 아님을 눈치챈 윤혁은 몸을 슬쩍 기울여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네가 말한 게 이거야?”
“그래. 이번에 들어간 레이드 용병이 가지고 있던 거야.”
“그걸 어떻게 네가 들고 있어?”
“그 새끼가 조용히 오더니 묻더라고.”
“뭘?”
“자기가 이걸 인스턴트 던전에서 구했는데 팔고 싶다고.”
“팔아? 힘들게 구한 걸 왜 안 쓰고 팔아?”
아티팩트를 들고 있던 헌터가 손가락을 둥글게 말았다.
“돈이 궁한 거지. 정확하게 어떤 용도인지 알려면 감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하려면 또 돈이 드니까.”
“그래서 이걸 너한테 팔려고 했다고?”
헌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신 같은 게 그동안 레이드 몇 번 같이 들어갔다고 용병 주제에 나랑 친한 줄 아는 모양이더라고? 수수료를 얼마 떼 줄 테니까 나보고 팔아 달라네?”
헌터의 말에 듣고 있던 남자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네가 좀 착해 보이긴 하지. 그 얼굴로 사람 죽이고 도둑질한 새끼란 걸 누가 알겠냐?”
헌터가 술잔을 비우며 웃었다.
“참 사람 볼 줄 몰라. 그러니까 용병이나 하고 있는 거겠지만.”
“그래서? 네가 이걸 팔아 줬을 리는 없고. 죽였냐?”
“던전 안에서 용병 하나 죽었다고 누가 신경이나 쓸 것 같아?”
“하하. 미친 도둑놈 새끼.”
즐거운 듯 크게 웃으며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그건 무슨 기능이 있는 거야?”
헌터가 손바닥을 쫙 펴며 둥글고 납작한 아티팩트를 내려다봤다.
“인간을 순간 발화로 연기로 만들어 버리는 거란다.”
듣고 있던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뭔 말이야? 연기로 만들어서 어쩌겠다고.”
헌터가 아닌 일반인인 그가 금방 이해하기 힘든 기능이었다.
“만약에 헌터라면 마력이 가득 담긴 연기가 남게 되는데, 그걸 흡수하면 마력이 증가하게 되는 거지.”
“나 같은 일반인은?”
“죽이고 싶은 인간을 죽였는데 시체 처리가 힘들잖아. 그럴 때 이걸 사용하면 시체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거지.”
헌터의 말에 남자의 눈이 점점 커져 갔다.
“헌터를 죽인 후 연기를 마셔서 마력이 증가하게 되면, A급인 내가 S급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
“연기로 변했다고 해도 사람을 죽여서 먹는 거나 마찬가진데, 식인 아니야?”
남자의 질문에 헌터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식인 맞지. 뭐 그래도 어떠냐? 그렇게라도 마력이 증가하면 땡큐지.”
마력 증가라는 말에 윤혁이 몸이 그들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졌다.
“그래서 이걸 먹을 거야?”
“사실 고민 중이야. 감정사도 이런 아티팩트는 처음이라고 하더라고. 자신도 잘 모르겠고, 위험한 종류 같으니 조심하라고 하더라.”
“찝찝하긴 찝찝하겠네. 지금도 넌 A급인데 굳이 이런 걸 먹을 필요가 있냐?”
헌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마력 증가라는 확실하지 않은 감정만 믿고 먹기도 그렇고……. 알잖냐, 한 번 각성하면 등급은 절대 변동 없는 거.”
재킷 주머니에 아티팩트를 집어넣었다.
“그런데 용병 따위가 구한 아티팩트로 등급이 올라? 하하! 그럼 누가 하위 등급으로 남겠냐고. 이거 다 구라야.”
“마력 궁한 하급 헌터들한테 속이고 팔면 되지 않냐? 빚져서라도 사려고 할걸?”
한바탕 웃던 둘은 술잔을 부딪쳤다.
그때, 매니저가 다가와 방 하나가 비었으니 곧 옮길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말을 했다.
윤혁은 안주머니에서 불산 그룹이 새겨진 허울뿐인 명함을 꺼내 들고 그들 쪽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혹시 헌터님들 되십니까?”
꽤 많은 술을 마셨는지 둘 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헌터? 헌터는 이 친구가 A급 헌터지.”
남자가 몸을 흔들거리며 헌터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시군요. 저는 불산 그룹의 윤혁이라고 합니다.”
불산 그룹이라는 말에 금방이라도 잠들 듯 껌뻑거리던 두 눈을 번쩍 떴다.
“불산? 그 불산 그룹?”
“네, 맞습니다. 아직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저희 불산에서 길드를 설립할 계획 중에 있습니다. 저는 총괄 팀장이고요.”
길드라는 말에 술이 확 깬 헌터의 눈이 반짝였다. 매니저가 다가와 룸으로 옮겨도 된다는 말을 건넸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 여기는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이봐, 이 분들 룸으로 안내해 드려.”
매니저가 윤혁의 말에 즉각 움직이는 걸 본 남자들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늘 제대로 된 물주를 잡았구나 싶어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룸으로 들어온 세 사람.
윤혁은 그곳에서 가장 독하고 비싼 술과 안주를 테이블 위에 가득 채웠다.
A급 헌터라 해도 쉽게 마실 수 없는 가격이었기에 헌터와 그의 친구는 기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 일단 술 한 잔 받으시고.”
윤혁은 그들에게 연거푸 술을 권했다. 이미 거나하게 취했지만, 공짜로 주는 비싼 술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
“제가 지금 A급 헌터님을 스카우트하려고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귀인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좀. 크윽……. 잘하지, 끄윽.”
윤혁이 계속 권하는 술에 친구는 이미 인사불성이 된 지 오래였다. 헌터 역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목이 타는지 물을 찾아 손을 허우적거리는 헌터에게 윤혁이 큰 컵을 건넸다.
“여기 얼음물 드십시오. 헌터님, 아직 마셔야 할 술이 이만큼 남았는데 벌써 취하신 겁니까?”
“아니, 내가 취, 꺼억! 안 취했어. 아직…….”
윤혁이 건넨 컵에는 물 대신 여러 종류의 술을 섞은 폭탄주가 가득 담겨 있었다.
물인지 술인지 알지도 못할 만큼 취한 헌터가 단숨에 잔을 들이켰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야! 야! 일어나!”
윤혁이 발로 헌터와 남자를 툭툭 쳤지만, 미동조차 없었다.
“여기에 넣는 것 같았는데…….”
아티팩트를 넣어 둔 재킷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만지는 순간 온몸이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운 물체 하나가 잡혔다.
“이게 마력을 증가시켜 준단 말이지.”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헌터의 말이 떠올라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S급이 아니면 말하지 말라던 아버지와 경멸의 눈빛을 쏘아 댈 가족들의 시선이 떠올랐다.
“죽든 살든 평생 F급으로 무시당하며 사는 것보다는 낫겠지.”
검고 둥근 아티팩트는 두께는 얇았지만, 성인 남자 손바닥 정도 되는 넓은 크기였다.
먹어서 섭취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쉽게 삼키기 힘들어 보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얼음을 담아 둔 철제 통으로 강하게 내려쳤다.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가 났지만 아티팩트에는 자그마한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하, 어쩔 수가 없네. 설마 먹다가 죽기야 하겠어?”
윤혁은 침을 꿀꺽 삼키고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다.
아티팩트를 삼키고 마시기 위해 물병을 한 손에 쥐었다.
비장한 눈빛으로 손 안에 든 아티팩트를 한 번 쳐다본 후 그대로 입 안에 넣어 꿀꺽 삼켰다.
“컥!”
예상대로 넓은 부분이 목 중간에 딱 걸려 버렸다. 윤혁은 뱉어 내기 위해 연신 컥컥거렸으나 꼼짝하지 않았다.
그사이 그의 얼굴은 점점 새파래져 갔다.
주먹으로 목을 세게 치며 연거푸 물을 들이켰지만, 목에 걸려 다시 뿜어져 나왔다. 이내 콧물과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결국 아티팩트 먹다가 뒤지는 거냐?’
가슴을 강하게 내려치면서 토해 낼 듯 칵 소리를 뱉었다.
꿀꺽.
걸렸던 것이 순간 목 아래로 쑥 내려갔다. 동시에 막혔던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허억. 허억…….”
그제야 주먹으로 때린 목과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때, 온몸에 낯선 기운이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헉!”
목에 걸린 것은 내려갔지만, 다시 숨이 막힌 듯 답답해져 왔다. 명치가 칼로 쑤시는 듯 아파와 가슴을 부여잡으며 벽에 기대어 섰다.
그러기를 한참.
온몸을 휘젓던 통증이 사라지자 윤혁은 가슴 속에 텅 빈 무언가가 자리 잡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곧 참을 수 없는 극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음식을 먹고 싶다는 배고픔이 아니었다. 가슴 속 비어 있는 곳을 채워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윤혁은 홀린 듯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는 헌터에게 다가갔다.
그의 목을 움켜잡자, 헌터의 마력을 알 수 있었다.
“찌질해서 A급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네.”
한 손으로 헌터를 쉽게 들어 올리는 윤혁. 이전의 그였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티팩트가 좋긴 좋구나.”
윤혁이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쳐다보자, 목이 막혀 컥컥거리던 헌터가 힘겹게 눈을 떴다.
술에 진탕 취한 상태지만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너, 지금…….”
순간, 목을 잡고 있는 윤혁의 손안에서 강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A급 헌터의 몸이 순식간에 연기로 변해 버렸다.
“하, 하하. 진짜였잖아!?”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는 연기는 윤혁의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숨을 살짝 내쉰 후 크게 들이켜자 조금 전까지 헌터였던 검은 연기가 윤혁의 콧속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허기가 사라짐과 동시에 비어 있던 가슴 속에 A급의 마력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옆에서 잠들어 있던 헌터의 친구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눈을 떴다. 하지만 자신의 친구가 보이지 않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봐, 불산. 내 친구 어디 갔어?”
자신에게 헌터의 행방을 묻는 남자를 향해 윤혁이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빵!”
총을 쏘듯 남자의 복부 쪽으로 손짓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손가락 끝에서 마력이 총알처럼 발사되어 남자의 복부에 박혔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남자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고, 윤혁은 그의 목을 잡아 연기로 바꿔 버렸다.
“후, 멋진데.”
윤혁은 소파에 앉아 따라 주기만 했던 술을 한 잔 들이켰다.
방금까지 룸 바닥에 내려앉고 있던 남자의 연기가 흩어져 더는 보이지 않았다.
“크크. 2명이 죽었는데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니.”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윤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마력만 섭취하면 S급 헌터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거지.”
룸 안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었다.
“이런 걸 바로 기연이라고 하는 거야!”
아티팩트를 구한 용병은 헌터가 죽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헌터와 친구는 윤혁이 없애 버렸다.
이제 이 세상에서 그의 능력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