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흐헙!”
갈비뼈가 부러진 게 아닐까 싶었다. 지태웅은 순간 심장에 가해지는 강한 충격에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별것도 아닌 게. 대표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이지? 뭐? 할 수 없어?”
다시 한번 더 지태웅의 가슴으로 내리꽂히는 그의 발길질.
윤혁을 말리는 비서의 소리가 들렸지만 지태웅의 의식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빡-
어딘가 부러지는 듯한, 그것이 그가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 * *
“흠. 그렇군요. 그때 사망하신 겁니까?”
“아니요. 다행히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공식적으로는 의식 불명 상태였습니다.”
지태웅도 윤혁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은석은 몇 번이나 가슴에서 불덩어리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아 연거푸 찬물을 들이켰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 충동이 여러 번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화풀이를 다한 윤혁이 사라지고, 김 비서가 제 상태를 확인하더군요. 잠시 후 구급대원이 도착했고, 저는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죽지는 않았지만, 영혼이 빠져나온 상태였군요. 옆에서 그걸 다 지켜보셨고요.”
지태웅은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로 일하면서 사망 선고를 내리거나, 옆에서 지켜본 적이 많았습니다. 저처럼 죽은 환자 역시 자신의 시신 옆에서 다 듣고 계셨다고 생각하니…….”
“경험해 보지 않으셨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럼 의식 불명인 상태로 오래 지내셨나요?”
“음, 2주 정도 지나고 깨어났습니다.”
“그동안 뭘 하셨는지 기억하시나요? 깨어난 후에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지태웅은 다 식은 커피 한 모금을 입 안에 머금다가 꿀꺽 삼켰다.
“전 특별히 세상에 의문이 없었습니다. 당장 공부하고 시험 치고, 의사가 된 후에는 일하느라 바빴거든요.”
그의 말에 은석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같지만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죠?”
“그렇더군요. 그걸 모르고 살았을 때도 제 옆에 그들이 머물렀다고 생각하니…….”
영혼이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숨을 쉬고 있는 그의 육체는 호흡기를 달고 1인실 병실에 누워 있었다.
호흡이 안정된 걸 확인한 후, 지태웅의 영혼은 병실 밖으로 나왔다.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던 죽은 자들의 세계. 모든 것이 놀라웠고 두려웠다.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떠돌고 있는 수많은 망자. 지태웅 역시 그들 사이를 2주 동안 헤매고 다녔었다.
“목적 없이 병원 복도를 걷고 있는데 거기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 * *
병원 밖으로 나간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 안에서 보냈다.
그날도 호흡기를 달고 있는 자신의 몸을 한번 살펴본 후, 복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병원답게 그곳에는 늘 죽은 자의 혼령들이 넘쳐났다.
어디선가 응급 벨이 울렸고, 지태웅의 눈앞에 뛰어오는 간호사들이 보였다.
몇 번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자가 자신을 통과하는 것은 적응되지 않았다.
지태웅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선생님? 지태웅 선생님 맞으시죠?”
눈을 뜬 그의 앞에 70대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와, 선생님을 이렇게 만나다니…….”
남자는 마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했지만 이내, “아, 선생님도…….”
지태웅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남자가 누군지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환자복을 입고 자신의 이름을 아는 걸 보면…….
“아!”
“기억나십니까? 선생님?”
그제야 주름 가득한 눈웃음이 기억났다. 그는 지태웅이 불산 길드로 옮기기 전에 담당하고 있었던 환자였다.
“아…….”
자신을 본다는 건 그 역시 이미 사망했다는 뜻.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거리는 지태웅의 마음을 눈치챈 남자가 큰 소리로 웃었다.
“제 명이 다 되어서 이렇게 된 겁니다. 선생님.”
지태웅은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선생님은 이러고 계십니까? 죽은 사람 같지는 않은데.”
남자가 지태웅을 쳐다보며 갸웃거렸다.
“아, 네. 어쩌다 보니 이러고 있네요.”
머쓱한 듯 헛웃음을 흘리는 지태웅을 보고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아이고! 선생님. 죽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몸 옆에 딱 붙어 계셔야 합니다.”
“하하. 옆에 있으면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그럼요! 영혼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영혼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니…….”
지태웅이 물었으나 남자는 시간이 없다는 듯 앞서 걸어가며 외쳤다.
“빨리 가십시다. 선생님! 병실이 어딥니까? 빨리! 빨리요!”
남자는 손짓을 하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지태웅도 남자의 뒤를 따라 복도를 뛰어갔다.
“903호 맞나요?”
“맞습니다.”
남자는 맞다는 말을 듣자마자 병실 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넓은 병실 한쪽에 자리 잡은 1인용 침상. 지태웅은 그곳에 잠을 자듯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
“누가 우리 선생님 잘생긴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쯧!”
멍이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은 얼룩덜룩한 상태였다. 남자는 지태웅의 모습이 안쓰러운 듯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었다.
“저도 죽은 후에 이곳저곳을 떠돌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네…….”
남자가 왜 그렇게 자신의 몸을 뚫어지게 살피고 있는지 궁금한 지태웅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몸에는 영혼이 드나들 수 있는 아주 작은 문이 있습니다. 깨알만큼 작은 점처럼 생긴 문은 온종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지요.”
남자가 지태웅을 힐끗 돌아보고 씩 웃었다.
“믿기 힘드시죠? 하지만 살아서 봤던 우리가 죽어서도 만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남자는 다시 그의 육체로 시선을 돌렸다.
“가끔 장난으로 툭 쳤는데 사람이 죽거나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죠? 운이 나쁘게도 몸 안에서 움직이던 영혼의 문을 정확하게 쳤기 때문입니다.”
“아, 그래서 영혼이 빠져나간 건가요?”
“그런 셈이죠. 반대로 죽지 않은 자가 영혼의 문을 찾는다면?”
남자의 질문에 지태웅의 눈이 반짝였다.
“다시 살 수도 있겠군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어디 가지 말고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 합니다. 이 문이라 게, 워낙 작고 빠르게 움직여서 찾는 게 쉽지 않거든요.”
이야기를 마친 남자는 입을 굳게 다물고 지태웅의 몸을 천천히 훑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지태웅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남자는 왜 남의 일에 이렇게 열심일까. 귀신이라 시간도 많으니까 심심해서?
궁금함을 참지 못한 지태웅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어르신. 제가 담당의였다고는 하지만 중간에 그만뒀고……. 제 기억에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죽은 늙은이가 왜 이렇게 남의 일에 오지랖 넓게 나서냐 이거죠?”
남자는 눈가 주름을 깊게 지어 보이며 웃었다. 당황한 지태웅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오지랖이라니. 그게 아니라…….”
“하하. 압니다. 무슨 뜻인지. 음, 선생님께는 제가 여러 환자 중 한 명이었겠지만 제게는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한 번쯤은 쉬자고 할 만한데 남자는 꼿꼿이 서서 지태웅의 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들 3개월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3개월 남았다고, 죽을 준비를 하라고…….”
“아, 그건.”
의사의 입장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압니다. 그분들로서는 최선의 말이라는 걸요. 하지만 갑자기 3개월 남았으니 돌아가셔서 주변을 정리하라는 말은 참 냉정하게 들리더군요.”
남자는 그때 생각이 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은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모두 죽습니다. 알고 있지만, 금방 받아들이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저곳 병원을 찾아다녔었죠.”
“진단이 의심스러우셨습니까?”
“아니요. 다른 말을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해 주신 분이, 선생님이셨죠.”
지태웅은 그제야 남자에 대해 정확히 기억났다.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
모든 걸 알고 찾아온 남자의 눈빛은 담담했었다. 그런 사람에게 굳이 몇 개월 살 수 있다고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젊으셔서 저는 다른 분과 같은 말을 하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러셨죠.”
“치료를 시작하시면 지금보다 더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와 함께 한번 힘내 보시겠다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지요.”
“기억하시는군요.”
“이 말은 다른 의사분들도 자주 하시는 말씀이신데, 이게 왜…….”
남자가 따뜻한 눈빛으로 지태웅을 바라봤다.
“그 쉬운 말을 저에게는 아무도 해 주지 않더군요. 저는 그 말이 듣고 싶었습니다. 가망이 없더라도 희망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하시는 선생님의 선한 눈빛이 참 좋았고요.”
남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3개월이라고들 했지만 저는 1년 8개월을 더 살았고요.”
‘아, 내가 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구나.’
환자들 중 하나로만 생각했던 남자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었다.
갑자기 연구 욕심에 환자를 버리고 간 것만 같아 지태웅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선생님을 원망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제게 희망을 주신 선생님을 이렇게라도 도와드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죽을 때, 선생님 얼굴 한번 보고 가고 싶다 생각했었거든요. 하하…….”
남자가 왜 이렇게 열심인지 알게 된 지태웅은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답답했다.
연구자의 양심이라고 열쇠를 건네지 않았던 자신이, 정작 연구에 눈이 돌아 자신만 바라보는 환자들은 잊고 있었다.
‘꼴좋다. 지태웅.’
자신의 모습에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어르신. 혹시 저승차사에게서 도망치신 건가요? 왜 아직 병원에 계시는지…….”
지태웅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죽음의 순간을 맞닥트렸다.
검은 양복을 입은 저승차사가 망자를 인도하거나, 그들이 나타나기 전에 도망치는 자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바닥에서 불쑥 솟아오른 검은 손에 잡혀 끌려 내려가기도 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다려요? 뭘…….”
지태웅을 돌아보는 남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우리 집 할망구가 오늘내일합니다. 평생 제가 몰았던 차만 타고 다녔던 사람이라 저승 가는 길도 제가 모셔 가려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러시군요.”
“그 덕분에 이렇게 선생님도 만나고, 도와드릴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하하하.”
그 순간.
“선생님! 여기! 여깁니다.”
남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지태웅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빨리 뛰어 들어가십시오!”
남자의 말대로 아주 작고 빛나는 점 하나가 지태웅의 눈썹 사이에서 반짝였다.
“뛰어, 지금 뛰어들라고요?”
“네, 저 점을 향해 뛰어드시면 됩니다. 빨리요! 곧 사라질 겁니다.”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남자가 말하는 대로 그의 얼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전에도 여러 번 육체 안에 들어가기 위해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진짜다.’
자신의 몸 안으로 영혼이 스며들어 가고 있음을 느끼는 지태웅의 귓가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태웅 선생님, 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행복하게만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