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이름조차 생소한 스킬, 연단술.
보통 서양의 연금술에 빗대어 동양의 비술로 환약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알고들 있었다.
물론 숙련도에 따라 그런 환약도 만들 수 있지만, 연단술은 재료에 따라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스킬이었다.
각성하기만 했을 뿐, 헌터로 활동하지 않는 지태웅은 그의 스킬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않았다.
남자의 말에 그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제 스킬이 연구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지태웅의 질문에 만족한 듯 휴대폰 너머의 남자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전화로 나눌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병원 근처로 가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까지 아신다고요?”
지태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분 나빠 하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가지신 스킬이 그만큼 굉장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정도의 기본 조사는 당연한 겁니다.”
남자의 말에 대답 대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태웅의 흔들리는 마음을 눈치챈 상대방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연단술이 마력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아십니까?”
* * *
두 시간 후,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병원 근처 작은 카페로 들어서는 지태웅.
평일 오후라 골목 안 카페에 손님은 남자 한 명뿐이었다.
선이 굵고 부리부리한 인상을 가진 남자는 생긴 것만큼이나 목소리가 우렁찼다.
“드디어 선생님을 뵙게 되는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지태웅은 당장에라도 전화를 끊기 전 남자가 했던 말에 대해 묻고 싶었으나, 일단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가 내미는 명함에는 <불산 길드, 헌터 관리팀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 저는 명함을 가져오지 못했는데…….”
남자가 껄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명함에 나온 것보다 선생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니 필요 없습니다.”
그의 말이 귀에 거슬려 지태웅은 이마를 찌푸렸다.
“제가 근무 중에 잠시 나왔습니다.”
“아! 네, 빨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선생님, 환자 치료하러 들어가셔야 하니…….”
남자는 말을 하며 가방 안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연단술이라는 스킬과 여러 가지 활용 방법에 대해 정리한 것이었다.
“선생님의 스킬이기는 하지만, 레이드를 뛰어 본 적이 없으시니 정확히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모르실 겁니다.”
파일을 읽고 있는 지태웅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연금술에 빗대어 불로장생의 묘약을 만드니, 이런 말들이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높은 숙련도를 가진 마법사들만이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던전 몬스터와 식물을 이용해 만드는 마력 치료제입니다.”
지태웅이 궁금했던 단어가 드디어 나왔다.
지구에 던전이 생기고 동시에 마력이라는 힘이 나타났다. 마력을 가진 헌터들은 위협적인 몬스터로부터 사람들을 지켰지만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아직 마력에 의해 다칠 경우, 완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나마 마력이 있는 헌터들은 괜찮은 편이었다.
일반인들이 던전 폭발이나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몬스터에게 공격당하거나 마력에 노출되면 치료는 무척 힘들었다.
의사인 지태웅 역시 잘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마력 치료제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마력이 담긴 것으로 마력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니.
하지만,
“치료제를 만드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던전 안으로 들어가야겠군요.”
던전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지태웅에게 그것보다 두려운 것은 없었다.
남자가 그의 질문에 큰 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국내 1위의 길드, 저희 불산이 선생님과 같은 인재를 모셔 가려고 하는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선생님께서 던전에 들어가셔서 직접 재료를 구하실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불산 길드의 헌터들이 던전에 들어가 재료를 구해 올 겁니다. 선생님은 연구실에서 마력 치료제 연구에만 집중하시면 된다는 거죠!”
지태웅은 빨리 들어가 봐야 한다는 자신의 말도 잊은 듯, 한참 동안 남자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병원이 아닌 불산 길드 연구팀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 * *
“도대체 언제까지 이것만 만들어야 하는 거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불산 길드에서 일한 지 6개월쯤 지나고부터였다.
계약할 당시 남자가 말한 요구 조건은 단 하나.
마력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숙련도를 올려라.
그러기 위해서 불산 길드에서 제공하는 약제법에 따라 포션을 만들고 기능을 업그레이드시킬 것.
그들이 요구하는 포션만 일정량 이상 만들어 낸다면 그 외에는 모두 연구자의 재량에 따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6개월간 지태웅이 만든 것은 단 하나, 불산 길드에서 원하는 마력 진정 기능이 있는 포션뿐이었다. 그리고 기능을 조금 더 강화시킨 버전의 포션.
매일 아침 그날 만들 포션의 재료를 가져다주는 직원이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저기요, 얼마 전에 제가 부탁드렸던 재료는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이번에도 레이드가 힘들어서 구하지 못한 건가요?”
그는 늘 여러 종류의 재료를 구해 달라고 부탁했고, 직원은 언제나 레이드가 끝나면 가져오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어쩌죠? 이번에 피해가 너무 커서 재료를 구할 시간이 없었다고 하네요. 다음에 들어가는 팀에게 꼭 구해 달라고 말해 두겠습니다.”
직원이 평소보다 상자 하나를 더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신에 마력 진정 포션의 재료를 더 많이 가져왔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직원은 지태웅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도망치듯 연구실을 나가 버렸다.
“하, 이건 아니지. 내가 포션 만드는 기계도 아니고…….”
자신을 스카우트했던 남자와 통화를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 역시 매번,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연구실 안에서 서성이며 생각에 잠긴 지태웅.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될 것 같다는 결론은 내렸다. 그는 남자가 있는 헌터 관리팀 사무실을 찾아갔다.
똑똑-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손잡이를 당겨 보니 잠겨 있는 상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저녁 8시가 넘었다.
‘시간이 이렇게 된 줄도 모르고, 나 참…….’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미처 시간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었다. 한 것은 없지만 기운이 쏙 빠지는 느낌이 들어 지태웅은 터덜터덜 연구실로 다시 돌아왔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덥석 계약한 내가 미친놈이지…….”
중얼거리며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아무도 없어야 할 연구실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포션 도둑?’
지태웅은 쉽게 만들어 내는 포션이었지만, 그가 만든 것은 시중에서 꽤 비싼 가격으로 팔릴 고급품이었다.
안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 보니 소리가 나는 곳은 연구실이 아니라 포션 보관실이었다.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진짜 포션을 훔쳐 가는 거야?’
소리에 놀란 지태웅은 후다닥 보관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보관실 입구 바닥에 포션 몇 병이 깨져 있었고, 안쪽에 남자 하나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이봐! 당신 누구야! 여긴 아무나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야. 당장 나가! 당장!”
남자가 서 있는 곳은 최근에 지태웅이 연구 중인 강력한 진정 기능이 있는 포션을 넣어 놓은 보관함 앞이었다.
“당장 나오라고!!”
지태웅이 한 번 더 소리치자, 남자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주먹으로 보관함을 세게 쳤다.
콰앙-!
마력에도 끄떡하지 않는 특수 유리로 제작한 것이라 깨질 리가 없었다.
“경비 부르기 전에 당장 나가!”
고함을 지르며 보관실 안으로 들어가던 지태웅은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포션 도둑이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는데, 그는 다름 아닌 불산 길드의 대표 헌터인 윤혁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최고의 헌터 윤혁.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윤혁은 그가 알고 있던 얼굴이 아니었다.
“윤혁 헌터님? 얼굴이 왜…….”
그의 얼굴 곳곳이 순식간에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뿐만 아니라 목과 손도 같은 상태였다.
지태웅이 옆에 놓여 있는 포션 하나를 집어 그에게 내밀었다.
“헌터님, 이, 일단 빨리 이것부터 드십시오.”
윤혁의 이상 증상을 보자마자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동안 그가 만든 포션은 모두 윤혁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여기에 있다가는 앞으로 계속 윤혁의 치료제만 만들다가 끝나겠구나.’
그동안 왜 자신이 원하는 연구 재료를 구해다 주지 않고, 숙련도만 들먹였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윤혁은 지태웅이 건네는 포션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열쇠.”
“네?”
“이거 열라고, 새끼야.”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번뜩이는 광기는 감춰지지 않았다.
“윤혁 헌터님,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미완성 포션입니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닥치고. 빨리 열어라.”
열쇠는 보관함이 올려져 있는 테이블 아래에 걸어 두었다.
밑에 있다고만 하면 끝날 일이었지만, 의사이자 연구자로서 지켜야 할 양심에 지태웅은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한 포션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확실한 약을 드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참을성이 뚝 끊어진 윤혁이 성큼성큼 걸어와 지태웅을 번쩍 들었다.
그대로 몸을 돌려 잠긴 보관함을 향해 집어 던졌다.
“으윽!”
보관함 모서리에 옆구리가 찍힌 지태웅은 바닥으로 떨어져 신음을 뱉었다. 윤혁은 다시 그를 집어 들어 힘껏 내던졌다.
그러기를 여러 번. 보관함은 끄떡없었지만 반복해서 부딪히고 떨어진 지태웅의 몸 곳곳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의식이 끊어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지태웅을 계속해서 던졌다.
그때, 보관실에 들어온 누군가가 그 장면을 보고 소리쳤다.
“대표님! 지금 이게, 무슨…….”
“이 새끼가 열쇠를 안 주잖아. 내 걸 내가 마시겠다는데 지가 왜 난리야!!”
남자는 씩씩거리는 윤혁을 진정시킨 후, 바닥에 쓰러진 지태웅의 옷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태웅은 가쁜 숨을 내쉬며 힘겹게 눈을 떠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계약 초기, 윤혁과 인사를 나눌 때 만났던 그의 비서였다.
“김 비서님…….”
지태웅의 목소리에 김 비서가 얼굴 가까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왜 열쇠를 안 주셔서 이런 일을 당하십니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열쇠가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중요해요?”
그의 말이 맞았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그까짓 연구자의 양심이 뭐라고…….
팔을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 테이블 쪽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래에 걸어…….”
그의 말을 들은 김 비서가 벌떡 일어나 테이블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열쇠 찾았습니다.”
보관함을 열어 가장 최근에 만든 포션 하나를 꺼내 윤혁에게 건넸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지태웅의 걱정과 달리, 한 병을 비운 윤혁의 상태는 빠르게 진정되기 시작했다.
“지금 마신 포션, 제작 레시피 찾아봐.”
윤혁의 명령에 김 비서가 옆방에 켜져 있는 지태웅의 노트북을 뒤졌다.
“네, 있습니다.”
김 비서의 외침에 윤혁이 쓰러져 있는 지태웅의 곁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청렴하고 고매하신 의사 선생님은 필요 없겠는데?”
윤혁은 바닥에 누워 있는 지태웅의 가슴을 세게 짓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