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다른 자들이 키 큰 헌터가 느끼고 있는 고통을 알 리가 없었다.
붉은 무늬가 아름다운 꽃잎 속에서 그의 왼쪽 다리가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
꽃잎 안쪽에서 찐득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것 때문에 다리의 피부와 근육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던 헌터.
“저, 저기…….”
그제야 바닥으로 뚝뚝 흘러내리는 피 섞인 끈적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미친…….”
살짝 벌어진 꽃잎 사이로 보이는 헌터의 허옇게 드러난 왼쪽 다리뼈.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헌터는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팀장님! 어떻게 합니까?”
상체를 뒤에서 안아 끌려가지 않게 당기고 있던 헌터가 김성혁을 찾았다.
금호 길드 헌터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하, 진짜 짜증 나네.”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내뱉으며 등 뒤에 꽂아 둔 검집에서 칼을 빼내 들었다.
“줄기를 자르시려고요? 다른 놈들이 달려들어서 힘듭니다.”
대답 없이 칼을 꺼내 들고 헌터의 곁에 다가선 김성혁.
푹- 서걱-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키 큰 헌터의 상체를 잡고 있던 남자는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의 팔 안에는 헌터의 잘린 상체가 안겨 있었다.
“으악!”
놀란 남자가 시신을 내던졌다.
김성혁이 자른 것은 몬스터의 줄기가 아니라 헌터의 몸이었다.
몬스터는 헌터의 하체를 그대로 꿀꺽꿀꺽 삼켰다. 김성혁의 행동에 헌터들이 경악해 입을 쩍 벌렸다.
“왜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미쳤습니까!?”
눈을 부릅뜨며 달려드는 헌터들을 보며 김성혁이 혀를 쯧쯧 찼다.
“구했다고 쳐. 그럼 뭐 어떻게 할 건데. 이미 다리 하나가 녹아서 뼈밖에 없잖아.”
가장 앞에 선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네가 업고 던전 돌아다니면서 몬스터 사냥 할 거야?”
동료를 죽인 김성혁에게 분노해 달려든 헌터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그를 보며 김성혁이 픽 웃음을 흘렸다.
“대답해. 조금 전 그 기세는 어디 간 거야? 내가 살렸으면 네가 클리어할 때까지 저놈, 책임질 거였어?”
뒤에 서 있는 헌터들을 바라봤다.
“여기 힐러 있어? 니들 회복 포션 많아? 도대체 뭘 믿고 살리니 못 살리니 헛소리들이야.”
김성혁의 말에 나서서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은석은 한 걸음 물러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기고 있네. 김성혁 네가 죽여 놓고 너희들을 위한 것이다? 핑계 한번 그럴싸하군.’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은석의 눈에 막 죽은 키 큰 헌터의 영혼이 보였다.
잘린 몸 안에서 연기처럼 빠져나와 형태를 갖춘 헌터는 김성혁을 향해 죽일 듯 달려들었다.
정신을 잃어 가던 그때, 자신을 향해 칼을 내려치는 그를 본 것이었다.
“이 새끼야아아! 감히 네가 날 죽여?!”
극도의 분노로 헌터의 얼굴이 붉게 변해 갔다. 그때, 김성혁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누런 연기들이 헌터의 영혼을 향해 날아왔다.
“뭐, 뭐야!”
연기는 순식간에 망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옭아맸다. 금방이라도 악귀로 변할 듯 분노하던 망자가 당황해 소리를 질러 댔다.
“구해 줘! 나 좀 구해 줘!”
물론 그의 절규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은석뿐이었다.
‘연기가 망자를 잡았어?’
하지만 그는 죽은 헌터를 구해 줄 생각이 없었다.
잡고 있는 망자를 연기가 어떻게 할지, 그 움직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살려 줘어어!”
망자를 잡은 연기가 빠르게 김성혁의 품 안으로 사라졌다.
이내 다시 나와 김성혁을 에워싸기 시작한 연기는 조금 전보다 색깔이 짙어 보였다.
‘죽은 자를 흡수하는 걸 보니 역시 악귀의 종류인가.’
그것을 바라보는 은석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 * *
“그래도 사람이 할 도리는 해야겠지. 시신은 내가 묻어 주고 오겠다.”
훈계를 마친 김성혁은 바닥에 떨어진 헌터의 상체를 잡아 들었다. 죽은 자의 몸에선 선홍색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몬스터를 살육하고 동료들의 죽음을 수도 없이 봐 온 헌터들이었다. 그럼에도 싱글벙글 웃으며 피가 흥건한 시체를 덥석 안고 가는 김성혁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저렇게 즐겁지?’
은석 역시 그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승형.’
‘네, 대장님.’
모습을 감춘 승형이 은석의 앞에 나타났다.
‘저기 시신 안고 가는 남자 보이지?’
‘네.’
‘따라가 봐. 가까이는 다가가지 말고. 악귀와는 조금 다른 놈이 붙어 있는 것 같다.’
‘알겠습니다.’
승형이 거리를 두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김성혁이 멀어지자, 금호 길드 헌터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은석은 그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어차피 김성혁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
‘빙의된 놈들은 아직 폭주할 기미는 없어 보이고…….’
처음에는 팀 고스트를 불러내 바로 악귀를 소멸할까 했었다.
하지만 아직 김성혁에게 붙어 있는 ‘목령의 수호’에 대해 모르는 상태였다.
‘섣불리 시작했다가 멀쩡한 헌터들까지 죽을 수도 있으니 일단 어떤 놈인지 알 때까지만.’
그때, 승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놈이 멈췄습니다.’
그 소리에 은석이 동체 감응 스킬을 사용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도착한 김성혁. 바닥에 시신의 상체를 놓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승형이 뒤쪽에 서 있어 김성혁이 뭘 하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옆쪽으로 이동해 봐.’
은석의 명령에 조심스럽게 옆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김성혁이 걸어가는 승형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승형의 눈을 통해서 마주한 그의 두 눈은 검은 눈동자가 사라지고 탁하고 노란색만 가득했다.
김성혁의 손에 죽은 자의 피가 잔뜩 묻어 있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카악!”
승형의 존재를 정확하게 알아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승형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망자를 잡아간 누런 연기가 몰려들었다.
‘소환 해제.’
은석은 빠르게 승형은 돌려보냈다.
‘후……. 들고 있던 게 뭐였지?’
자세히 살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긴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들어왔어. 팀장 새끼 말에 속아서…….”
“우리 주제에 연합 레이드는 무슨. E랭크나 들어갔어야 하는데. 젠장.”
“씨……. 말로만 듣던 식물형 몬스터인 탄화(呑花)를 여기서 보다니, 재수가 없으려니까.”
“탄화? 저놈 이름이 탄화인가요?”
“특별한 이름은 없어. 인간을 삼켜서 잡아먹는 꽃이라고 그렇게 부르더라고.”
“많이 위험한가 보죠?”
“새끼야! 넌 아까 집에 갔다 왔냐?”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금호 길드 헌터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하지만 김성혁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여전히 싱글벙글거리며 걸어오는 그가 보였다.
은석이 승형을 통해 보았던 이상한 눈동자가 아니었다. 막 던전에 들어왔을 때보다 더 기운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팀장 저거 미쳤어? 뭐가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까지 불러?”
황당한 반응은 금호 길드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던전 안에서 기운이 넘치면, 사냥을 해야지.’
은석이 아공간에서 귀검을 꺼내 그러쥐었다.
* * *
김성혁을 보자 헌터들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석은 모습을 감춘 팀 고스트를 소환했다. 지금 그들이 해야 할 것은 몬스터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깨우는 것이었다.
해머와 창왕, 승형을 보며 은석이 말했다.
‘주변에 있는 꽃을 밟아. 모두 깨워서 공격하게 만들어.’
말이 끝나자마자, 꽃밭으로 뛰어 들어가는 그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건에 접촉할 수 없는 일반 영혼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잔뜩 화가 난 식물형 몬스터인 탄화가 아가리를 벌리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아악! 저기 왜 저래? 누가 건드린 거야!?”
평온하던 꽃밭에서 수십 개의 탄화들이 헌터들을 향해 뻗어 나왔다.
사방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놈들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기분 좋았던 김성혁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지만, 이내 칼을 꺼내 들고 공격을 명령했다.
은석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하지만 다량의 몬스터가 깨어난 탓인지 은석 주변의 꽃들도 공격을 시작했다.
서걱-
줄기가 잘린 꽃이 바위 위로 툭 떨어졌다. 꽃잎 안에 잔뜩 고여 있던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리자 바위가 녹아 움푹 파였다.
‘저것 때문에 다리가 녹은 거였군.’
은석이 베는 동안, 팀 고스트는 분주하게 꽃밭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꽃들이 공격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금호 길드 헌터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겁먹은 그들과 달리 김성혁은 쉬지 않고 탄화의 줄기를 베어 나갔다.
하지만 실상은 그의 실력이 아니라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 주고 있는 누런 연기 덕분이었다.
은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김성혁을 감싸고 있는 연기에 집중했다. 마치 쉴드 스킬처럼 방패막이 되어 김성혁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는 연기의 보호를 받으며 힘들이지 않고 줄기를 툭툭 잘랐다.
‘허! 이것 봐라?’
나무귀신의 정체는 아직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김성혁을 보호해 주고 있다는 것.
하나둘씩 상처를 입고 쓰러지는 헌터들과 달리 그는 다친 곳 하나 없었다.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이유가 저거였군.’
아공간에 귀검을 넣는 순간, 분홍색의 탄화 한 놈이 팔을 삼킬 듯 튀어 올랐다. 덥석 잡아 손안에 푸른 화염을 피워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그만해.’
은석이 팀원들을 소환 해제했다.
꽃을 밟는 자가 없어서인지 남은 것들을 죽이고 나자,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주변의 많은 탄화들을 없앤 덕분에 베이스캠프로 쓸 구역을 얻을 수 있었다.
김성혁을 포함한 3명의 헌터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부상을 입었다.
그는 회복 포션을 꺼내 다친 경중에 따라 마시게 했다.
“팀장님, 포션이 부족합니다. 어쩌죠?”
꽃잎에서 흘러나오는 액체에 녹은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해 한 병을 통째로 마셔도 회복되지 않았다.
금호 길드에서는 애초에 회복 포션을 넉넉히 준비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김은석을 죽이고 빼앗으면 된다는 김성혁의 생각 때문이었다.
“제발, 제발……. 포션 좀 줘요. 아파 죽겠어요…….”
오른손의 반이 녹아 뼈가 드러난 상태인 헌터가 고통을 참지 못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김성혁이 은석을 치기 위해 연합 레이드에 들어가자고 꼬드긴 자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아직 죽어선 안 되지.’
김성혁은 주변을 돌아보며 은석을 찾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잘린 꽃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저 새끼, 진짜 놀러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혼자 뭐 하는 거야?’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은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김은석!”
은석이 고개를 들어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꽃 모으기에 집중했다.
“저 새끼가……. 야! 김은석!”
은석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왜.”
“너 힐러잖아? 힐러가 헌터들이 저 모양인데 지금 이러고 있어?”
은석은 무슨 말을 하냐는 표정으로 김성혁을 쳐다봤다.
“내가 힐러인 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힐러라면 다친 헌터들을 치료해야 하는 게 임무야, 새끼야. 그것도 몰라? 빨리 와서 치료해!”
너무나도 당당한 김성혁의 요구. 은석은 피식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이봐. 김성혁 헌터님. 지금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들어올 때 분명 각자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네가 주최한 연합 던전이잖아. 치료는 힐러인 네가 책임져야지!!”
그사이 동료들의 비명에 마음이 급해진 헌터 하나가 그들의 곁으로 뛰어왔다.
“팀장님. 치료는 어떻게……?”
조심스럽게 묻는 헌터를 향해 김성혁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새끼야! 보면 몰라? 부탁하고 있잖아!”
마지막 꽃 하나를 옮긴 은석이 고개를 들었다.
“부탁? 그게 부탁이었나?”
피식거리며 웃는 은석을 바라보는 김성혁의 주위로 누런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그의 감정을 대변하듯 금방이라도 은석을 공격할 기세였다.
“그리고 아직 잘 모르나 본데, 나 힐러 아니야.”
“미친 새끼……. 이제는 힐러가 아니야?”
마냥 여유로운 은석의 대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 나 네크로맨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