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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95화 (95/226)

95화

팀 고스트를 바라보는 망자 최가(家)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 되도록 많은 놈을 소멸시켜라. 그리고 게이트가 열리면 바로 던전에 들어간다.”

“네, 알겠습니다.”

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원귀들을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4명뿐인데 저렇게 많은 것들을 다 상대할 수 있다고?

망자의 눈에 보이는 팀 고스트는 해머와 창왕, 승형 그리고 이현뿐이었다.

그들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망자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은석까지 해도 고작 다섯. 하지만 그들은 이미 상위 길드 헌터를 뛰어넘는 실력이었다.

“하, 대박이네. 뭐야. 저것들.”

팀 고스트가 베고 터트린 원귀가 연기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멸시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미처 흩어지지 못한 원귀의 잔혼이 희뿌연 연기처럼 그들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망자는 그중에서도 은석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손잡이에 낡아 보이는 붉은 천을 감아 놓은 평범한 검은 검.

하지만 검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오라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망자가 그것이 영혼을 베는 귀검인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본능으로 느끼는 것일 뿐.

강화복을 입은 팀 고스트의 움직임도 놀라움을 넘은 수준이었으나 은석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감탄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망자의 입에서.

“나도……. 싸우고 싶다.”

자신도 모르게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사이 빽빽하게 모여 있던 원귀들의 반 이상이 사라졌다.

빈 공간이 생기자 망자가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마침 그녀의 곁을 지나가는 귀물 하나가 보였다.

훅-

귀물의 얼굴을 향해 빠르게 주먹을 내질렀다. 살아 있었다면 고개가 휘청 넘어갈 만큼의 속도와 무게가 실린 주먹이었다.

역시나 타격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 귀물은 그대로 망자를 지나쳐 정자를 향했다.

“젠장…….”

이럴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싸우고 있는 팀 고스트를 보고 있으니 문득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혹시는 무슨, 하…….”

망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부러운 듯 그들을 쳐다봤다.

망자의 눈에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는 이현이 보였다. 그는 순간이동 마법진을 통해 다른 자들이 더욱 쉽게 사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망자가 이현을 향해 내달렸다.

“야!”

“깜짝이야! 뭡니까?”

원귀 하나를 창왕의 앞으로 보내고 있던 이현은 망자의 갑작스러운 고함에 깜짝 놀라 고개를 휙 돌렸다.

“나도 싸우고 싶어.”

앞도 뒤도 없는 망자의 요구. 이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봤다.

“네?”

“나도 싸우고 싶다고. 너도 싸울 수 있잖아. 나도 싸우게 해 줘.”

이현은 어이가 없어 콧방귀를 뀌었다.

“빨리 저승에나 가시죠.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얼쩡거리고 있다가는 잡귀에 휩쓸려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나도 헌터거든. 너보다 잘 싸울 수 있다고.”

“싸움은 무슨. 저리 비키십시오. 방해됩니다.”

이현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소매를 걷는 행동을 하며 망자가 버럭 소리쳤다.

“야! 너 몇 등급이야! 죽은 마당에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나 S급이었거든? 살아 있었으면 넌 나랑 얘기도 못 해. 알아!?”

이현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어려 보이시는데 무척 꼰대시네요.”

한마디 던지고 다시 원귀 사냥에 집중했다. 하지만 망자가 포기할 리가 없었다. 그의 곁을 맴돌며 끈질기게 졸라 댔다.

말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이현이 지팡이를 휘두를 때마다 슬쩍슬쩍 앞을 가로막았다.

참다못한 이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보세요. 왜 자꾸 이러십니까! 지금 노는 것처럼 보여요?”

“아니, 그러니까 싸울 수 있는 방법만 알려 주면 되잖아. 그럼 방해 안 한다니까?”

입술을 꾹 다물며 잠시 망설이던 이현이 은석을 가리켰다.

“우리는 전부 대장에게 귀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싸울 수 있는 거고요.”

망자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저 남자가 그런 힘이 있단 말이지?”

“뭐, 원한다고 모두 귀속되는 건 아니지만…….”

이현이 말꼬리를 흐렸지만, 그 말이 망자의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망자는 막 원귀 하나를 벤 은석의 근처로 다가갔다.

‘어후.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오싹하네.’

검에서 느껴지는 남다른 기운. 하지만 원귀가 아닌 일반 망자인 자신을 벨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기…….”

은석을 향해 말을 거는 순간.

휘익-

원귀 하나를 베고 그대로 휘두르는 귀검의 끝이 망자의 배를 스쳐 갔다.

“허억!”

스친 검 끝에 너덜거리는 옷자락이 베였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린 채 뒤로 물러섰다.

온몸을 관통하는 공포심. 죽은 후에 처음 느껴 보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은석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쭈뼛거리는 망자를 향해 은석이 검을 내밀었다.

“죽고 싶어?”

망자는 입만 뻥긋거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표정한 은석은 다시 말을 이었다.

“거치적거리니까 꺼져. 한 번만 더 다가오면 그땐 제대로 베어 버릴 테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요. 나도 싸우고 싶어서……요.”

이현과 달리 이상하게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은석은 망자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싸움에 집중했다.

잠깐 그의 분위기에 위축되었지만 이내 기분이 나빠진 망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봐……요! 내가 저들보다 더 잘 싸워요. 날 싸우게 해 줘요.”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고 멀리서 버럭버럭 소리만 지르는 망자. 그녀를 돌아보는 은석의 눈이 냉랭했다.

“저들? 저들이 누구지?”

그 눈빛에 망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싸우고 싶으면 싸워. 누가 막아?”

은석의 대답에 망자는 팔짱을 끼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들으라는 듯 한쪽 발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탁탁 찼다. 하지만 은석은 망자 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조금 전부터 그들을 지켜보던 이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장, 던전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때, 정자 근처에서 싸우던 승형이 외쳤다. 은석은 빠르게 정자를 향해 뛰어갔다.

달려가면서 힐끗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백훈섭이 오기 전에 클리어해야 한다.’

정자 바닥에 생긴 게이트. 승형은 바로 옆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보통 던전의 게이트는 문처럼 생겨 통과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것은 마치 작은 물웅덩이처럼 보였다.

거기에 진짜 물결처럼 잔잔한 일렁임이 계속되었다.

“들어갔는데 바로 물속이면 어쩌지…….”

죽은 자신이 익사할 일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는 물 공포증이 있었다.

도착한 은석이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승형에게 물었다.

“왜 안 들어가?”

머리를 긁적이는 승형.

“아, 그게 좀. 무서운 것 같아서…….”

그의 말에 은석은 픽 웃었다.

“소환 해제 없다. 뛰어들어 와.”

은석이 게이트 위로 발을 내딛자, 순식간에 아래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승형이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사이, 해머와 창왕도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하…….”

승형도 결국 한숨을 길게 내쉰 후, 눈을 질끈 감고 게이트 위로 발을 내디뎠다.

이현은 끈질기게 달라붙는 원귀 한 놈을 소멸시킨 후에 도착했다. 승형은 이미 게이트 아래로 사라졌고 이현만 남은 상황.

“내가 마지막이네.”

이현 역시 지금까지 본 것과 다른 게이트의 위치에 흠칫했다. 일렁이는 게이트로 몸이 반쯤 내려간 순간.

“나도 같이 가!”

근처에 서 있던 망자가 불쑥 튀어나와 그의 등에 찰싹 붙었다.

그대로 둘은 던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아래로 한참 떨어지거나, 깊은 물 안으로 연결되는 게이트일 것만 같았는데, 예상과 달리 들어감과 동시에 바로 바닥에 발이 닿았다.

머리 위에 동그랗게 떠 있는 게이트. 다음에 내려올 자들과 부딪힐 것을 예상해 빠르게 옆으로 움직였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이현이 내려왔다. 이상한 망자를 등에 붙이고.

달려와 등에 붙은 망자 때문에 이현은 던전 바닥으로 무릎을 퍽 굽혔다.

깜짝 놀라 눈만 껌뻑이고 있는 해머와 창왕 사이로 은석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망자의 뒷덜미를 잡고 거칠게 떼어 내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꺄악! 지금 여자한테 무슨 짓이에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몇 번 구른 후에 멈췄다. 벌떡 일어나 은석을 노려보는 망자.

“남의 등에 붙어 불편하게 하는 건 괜찮고?”

망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여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 냈다.

은석은 고개를 들어 던전 정보창을 바라봤다.

[분노한 정령을 죽이십시오. 제한시간은 3시간입니다.]

‘분노한 정령이라…….’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은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망자는 눈치만 살필 뿐 다가오지 못했다.

던전 밖에서 원귀들을 해치울 때 계속 얼쩡거리던 망자가 던전까지 따라 들어오자 신경이 쓰였던 해머가 이현에게 물었다.

“저 여자 누구야?”

“최강호의 딸이랍니다.”

“뭐? 각성자 협회장 최강호?”

“네.”

“그렇군. 몇 년 전에 죽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직 이승에 머물고 있었다니……. 그런데 왜 우리를 자꾸 따라다니는 거야?”

이현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싸우고 싶답니다. 계속 징징거리며 귀찮게 하는데, 미치겠습니다. 대장은 아예 무시하시고.”

해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고 싶을 거야. 내가 알기론 최강호 회장 딸도 S급이었거든.”

“진짜 S급요? 허, 거짓말이 아니었네.”

“그리고 아마……. 각성 전에는 복싱 국가 대표 선수였을걸?”

이현뿐만 아니라 곁에서 듣고 있던 자들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엄청나네요. 그런데 어떻게 죽은 건가요?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해머가 어깨를 으쓱했다.

“거기까진 몰라. 나도 한참 후에 들은 얘기라서.”

이현이 고개를 돌려 망자를 바라봤다. 망자는 그가 자신을 보자,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들어 흔들었다.

죽일 듯이 덤벼들다가, 금세 헤헤거리며 웃는 망자의 모습에 이현은 소름이 돋았다.

“S급들은 다들 반전이 있나요? 좀 무섭네요.”

그들이 망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은석은 스톤 골렘 돌돌, 오크 군단과 승형의 부대원, 그리고 채굴팀을 소환했다.

열심히 무기를 만들고 있을 드워프 발칸을 제외하고.

“팀 고스트 전체가 한자리에 모이기는 처음이지?”

바깥과 달리 던전 안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곳이었다. 근처를 얼쩡거리고 있던 망자는 팀 고스트의 등장에 혀를 내둘렀다.

“다시 봐도 저 소환수들은 놀랍다, 놀라워.”

은석의 소환수는 일반 네크로맨서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죽은 헌터들이 싸울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몬스터인 오크에 골렘까지…….

‘곡괭이 들고 있는 저것들은 뭐야?’

망자는 그저 헛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은석이 줄을 맞춰 서 있는 채굴팀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 던전은 속전속결이다. 최대한 빨리 마정석을 캐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팀장인 채굴에게 물었다.

“할 수 있겠어?”

채굴이 거무튀튀한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도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속도입니다.’

“오케이. 출발.”

100명의 채굴팀이 사방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어느새 그들의 곁에 다가와 몰래 이야기를 엿듣던 망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뭐? 채굴팀? 그럼 레이드와 채굴을 동시에 한다고? 클리어가 되지 않으면 마정석을 찾기 힘들 텐데, 대박.”

은석을 바라보는 망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도대체 저 남자 정체가 뭐야?”

은석이 팀 고스트 전체를 바라보며 외쳤다.

“이 던전의 보스는 정령이다. 어떤 종류의 정령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찾아서 클리어한다.”

“네! 알겠습니다.”

“쿠아악!”

그록을 필두로 한 오크 군단의 괴성이 던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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