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92화 (92/226)

92화

청안은 은석이 상대방의 정보와 생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흠. 그렇다면 최상급 악귀에 빙의된 것이 아닐까?”

반복된 악귀 타령.

일부러 사람 많은 곳에 부르고 계속 놀려 댄 걸 복수하는 거겠지.

은석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악귀가 아닌 건 확실해. 그건 확인했어. 그게 아니라 아주 약한 마법에 걸려 있더라고. 본인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걸 보면 걸린 지 오래된 것 같아.”

청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무서운 놈이네.”

“무섭다고? 최강호에게 마법을 건 자가?”

“원래 불같이 화를 내는 놈들은 헛똑똑이들이 많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거든. 앞에서는 금방이라도 죽일 것처럼 덤벼들어도 뒤돌아서면 끝이지.”

츄르의 영혼까지 뽑아 먹을 듯 쿡쿡 눌러 대며 말을 이었다.

“진짜 무서운 놈들은 절대 티를 내지 않는 것들이지. 그 최강호라는 자에게 마법을 건 놈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서 끈질기게 괴롭히지.”

“그 말은 최강호에게 원한이 깊다는 말이야?”

“모르지. 원한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모든 괴롭힘이 원한에서 시작하는 건 아니란다. 인간아.”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먹은 빈 껍질을 바닥으로 휙 던졌다.

“쓰레기통에 제대로 버려. 네 지옥에 이렇게 쓰레기를 버려도 좋겠냐?”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지옥에서 이 정도 쓰레기는 아주 예쁜 장식이지. 거기에 얼마나 쓰레기 같은 것들이 많은데. 풉!”

기분이 좋아졌는지 어느새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고개를 휙 돌려 의자에 앉아 있는 은석을 쳐다보았다.

“좁은 방 안에서 생각만 한다고 뭘 알 수 있겠느냐? 쯧쯧, 게으르고 게으른 인간이로다.”

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청안을 보며 피식 웃음을 뱉었다.

“하루 종일 거실에서 뒹굴거리는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책상 위에 올려 둔 휴대폰을 집어 들어 황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준아, 밤늦게 미안하다.”

“아닙니다. 아직 잘 시간은 멀었습니다. 총회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형님.”

“그래, 잘 다녀왔다. 다른 게 아니라 너 혹시 최강호 회장 집 주소 찾을 수 있어?”

그에게 전화를 걸기 전, 협회와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봤으나 최강호의 집 주소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형님. 혹시 형님도 검색해 보셨나요?”

“그래, 없더라고.”

“제가 있는데 왜 힘드시게……. 앞으로 제게 바로 연락 주십시오.”

은석이 살짝 미소 지었다.

“오냐, 다음부터는 바로 황희준 검색창을 이용하지.”

그의 말이 재미있는지 휴대폰 너머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장 알아보고 문자 보내겠습니다.”

“그런데 너 무슨 일이냐고 안 물어?”

은석이 어딜 가든 따라가고 싶어 하는 황희준이었다. 늘 이유를 물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 하하. 그게 말이죠. 안 실장님이 이유를 묻지 않고 바로 일 처리를 하시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그런데 궁금하긴 하네요. 왜 최강호 회장 집 주소가 필요하신가요? 형님?”

은석이 물어주길 기다린 것처럼 바로 이유를 물었다.

“식사 초대를 받았거든.”

“와! 형님. 대박입니다. 최강호 회장님과 식사라니.”

“문자 보내라.”

그대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러면 같이 가자고 찾아오지는 않겠지.’

띠링-

[형님, 최강호 회장 주소입니다. 부럽습니다. 혹시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되나요?]

* * *

이현을 소환해 즉시 최강호의 집 앞으로 이동했다.

그의 집은 나지막한 산이 감싸고 있는 고급 주택 단지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높다란 담벼락과 경계용으로 관리된 빽빽한 나무로 둘러싸인 저택.

골목 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 하나가 전부여서 단지 전체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강호의 집 앞은 유난히 더 어두웠다. 컴컴한 그의 집을 둘러보던 이현이 물었다.

“대장, 혹시 여기 사는 사람이 마법사인가요?”

“아니. 왜 뭐가 보여?”

은석은 암안 스킬을 사용해 이현의 시선을 따라 저택을 좌우로 살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짙은 어둠 속 거대한 문과 담뿐이었다.

“이렇게 큰 집 전체에 방어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방어 마법?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아, 그게 마법사들에게만 보이는 것입니다.”

“골치 아픈 거냐?”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걸 만든 마법사는 높게 봐야 D나 E 정도의 레벨 같습니다.”

“그래? 그럼 네가 없애면 되겠네.”

이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방어 마법 자체는 레벨이 낮지만 대신 마법을 보조하는 아티팩트를 무척 많이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최강호의 저택 모서리마다 강력한 아티팩트가 세워져 있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거기에 여러 겹의 방어진을 깔아 놓았네요. 이 정도면 뭐,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드나드는지 CCTV보다 더 잘 알겠는데요.”

“네 공간 이동으로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도?”

집에 방어 마법이 걸려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난감한 은석의 미간이 살짝 찌푸렸다.

“네, 아주 꼼꼼하게 설계해 놓은 마법입니다. 집 안에 도착하는 즉시 반응이 일어날 겁니다.”

“어떤 반응? 112에 전화라도 걸리나?”

답답한 마음에 아무렇게나 내뱉은 은석의 말이 재미있는지, 이현이 풉 웃음을 뱉었다.

“112에 전화는 안 걸리고요. 대신 집 안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마법을 건 본인이 직접 풀기 전까지 말이죠.”

은석은 팔짱을 끼며 대문 맞은 편 담벼락에 등을 기댔다. 악귀에 빙의되었다면 귀속령을 불러 쓸어버리면 그만인데…….

“갇히면 못 나온다…….”

집집마다 나무와 잔디가 가득했지만, 이상하게 풀벌레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그래서인지 은석이 내쉬는 숨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혹시 살아 있는 자가 아닌 영혼이 들어가도 마법이 반응할까?”

“아! 그 생각을 못 했네요. 하핫! 제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이현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지 머리를 긁어 대며 계속 웃었다. 은석의 귀력 상승으로 팀 고스트는 인간처럼 보이는 실체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본인 또는 은석의 의지에 따라 모습을 감출 수도 있었다. 당연히 살아 있지 않으니 방어 마법에는 걸리지 않을 터.

실체화된 모습은 CCTV에 잡힐 수도 있으니 이현은 자신의 모습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대장, 다녀오겠습니다.”

그대로 최강호의 커다란 대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예상대로 방어 마법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혹시 골목에 사람이 지나갈 것을 대비해 은석은 은신으로 몸을 숨겼다.

“동체 감응.”

눈을 감았다가 뜨자, 이현이 보고 있는 최강호 저택의 잘 꾸며진 정원이 나타났다.

‘대장, 안에서 보니 더 많은 아티팩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런 짓을 한 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최강호가 아무도 못 만나도록 하려는 게 분명합니다.’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방어 마법. 이현의 눈을 통하자, 그가 말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법은 집 전체를 돔처럼 감싸고 있었다. 정원 가득 반짝이고 있는 여러 가지 색깔의 아티팩트.

눈앞에 마치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엮여 있는 방어진이 나타났다.

이현이 빨랫줄처럼 축축 늘어진 방어진 앞에 섰다. 그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대장, 이거 보이십니까?’

거기엔 아주 작은 글씨의 마법어가 쓰여 있었다.

‘그게 뭐지?’

‘마법으로 아주 얇고 투명한 실을 뽑아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얇은 마법 붓을 이용해 글자를 쓰는 거죠.’

‘글자를 쓴다고? 왜?’

‘마법어 하나하나에도 마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실에 적는 건 굉장히 힘들지만 그만큼 마법 효능은 증폭되거든요.’

‘저주를 거는 자의 염(念)을 담는 것과 비슷한 원리군.’

‘상위 레벨 마법사는 이런 짓, 귀찮아서 절대 안 합니다. 주로 마력이 낮은 마법사가 하는 방법이지요.’

얼굴 모르는 마법사가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얇은 실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적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원한이 깊거나, 아니면 최강호를 자신의 손아귀 안에 두고 싶은 자겠지.’

그의 말에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굳이 문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현관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정원만큼이나 화려하게 꾸며 놓은 거실이 나타났다. 층고가 높아 더 웅장해 보이는 거실.

‘최강호 회장의 취향이 보기랑 다른 것 같네요.’

심플함과 반대되는 의미로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만한 공간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탄을 내뱉으며 구경만 했겠지만.

‘벽과 바닥에 반짝거리는 저건 다 뭐지?’

은석은 인테리어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현의 눈을 통해 본 최강호의 거실은 다른 의미로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이 집을 설계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고 싶네요. 전부 다 마법을 걸어 놓은 장치들입니다.’

‘마법을 걸어 놨다고?’

‘네, 아티팩트도 섞여 있고, 마법 종류도 여러 가지네요.’

이현이 근처 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자, 은석은 바로 정보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무기력감을 느끼게 하는 마법]

[깊은 수면을 유도하는 돌]

‘저게 다 마법이라고?’

‘대장도 보셨습니까? 네, 마법에도 종류가 다양하니.’

은석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마법 꼬라지하고는. 뭘 저렇게 덕지덕지 붙여 놓은 거야?’

‘그렇죠? 어떻게 보면 참 지독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최하급 마법을 이렇게 잔뜩 걸어 두다니.’

이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차라리 악귀 한 놈에게 빙의된 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이중 삼중, 아니 그 이상으로 온갖 잡다한 마법과 아티팩트를 잔뜩 구겨 넣은 최강호의 집.

최초의 S급, 헌터들을 위해 스스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 누구도 하지 않으려 했던 협회를 직접 만든 사나이.

그것이 지금까지 은석이 들어온 최강호에 대한 이야기였다.

‘용병 비리에 대한 대처도 이상하다 싶었더니 이런 게 걸려 있었단 말이지.’

그때,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은석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빠르게 좌우를 살피는 이현의 시선.

‘무슨 일 있어?’

‘아! 대장. 그게 집 안에 짐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짐승?’

‘네, 잠시만요. 아! 저기서 들리네요.’

거실에서 이어진 복도 끝에 위치한 방.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더욱 선명해졌다.

‘최강호의 방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자는 이현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낯선 소리에 잔뜩 긴장해 조심스럽게 방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침실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넓었다. 다른 가구는 없었고 커다란 침대 하나만 중앙에 놓여 있었다.

‘최강호일까요?’

침대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남자의 기괴한 모습에 이현과 은석은 할 말을 잃었다.

‘최강호 회장이군.’

온몸을 뒤틀고 있는 최강호는 던전 안에서나 볼 수 있는 야수로 변한 상태였다.

하울링을 하듯 소리를 지르다가 순식간에 다시 인간으로 바뀌어 신음을 흘렸다.

인간 최강호와 거대한 야수가 된 최강호 헌터가 몇 분 간격으로 나타났다 사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으윽. 으…….”

다시 인간으로 변해 괴로운 듯 신음을 흘렸다.

‘대장, 왜 저럴까요?’

이현의 물음에 은석은 만찬장에서 봤던 최강호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마법 중독: 맹목적 믿음]

그리고,

[나, 여……. 도, 체……. 날, 구해…….]

‘그의 본능인 것 같다.’

‘네? 본능이요?’

‘그래, 그는 지금 마법에 중독된 상태지.’

‘그렇지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겠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마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하고 있는 중인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