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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85화 (85/226)

85화

“……골렘?”

4m는 족히 넘어 보이는 커다란 스톤 골렘이었다.

크아아-!

은석을 향해 괴성을 내질렀지만, 공격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탓인지 걸어오는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록, 나와라.”

은석이 저승 훈련장에 있는 오크 군단장, 그록을 불러냈다.

은석과 그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스톤 골렘 사이에 나타난 그록은 거대한 골렘을 보자, 도끼를 치켜들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사이 굳은 몸이 풀린 듯 걸어오는 속도가 빨라진 스톤 골렘이 그록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콰광-

그록이 휘두른 도끼와 거대한 팔이 부딪쳐 내는 굉음이 던전 안에 울려 퍼졌다.

“우아악!”

그록은 오랜만에 싸울 만한 상대를 만난 것이 기쁜지 던전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 댔다.

“혼자 할 수 있겠지?”

“이 정도쯤이야!”

도끼를 휘두르며 스톤 골렘에게 달려가는 그록의 뒷모습을 보고, 은석은 다시 돌문 앞으로 다가갔다.

손을 내밀어 돌문을 밀자 예상과 달리 쉽게 열렸다. 은석의 키보다 낮은 입구라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아주 오래된 공방 같은 곳이었다. 넓은 방 중앙에는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커다란 나무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높이 30cm 정도 되는 조각상 하나가 있었고, 주변과 바닥에는 다른 조각상의 깨진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은석은 조각상을 보며 정보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죽은 드워프의 유골을 담는 조각상입니다.]

“유골함이군. 다 깨지고 이것 하나 남은 건가.”

테이블 위에 세워져 있는 조각상을 만지려는 순간.

“안 돼!”

은석의 앞에 나타난 드워프의 영혼.

“그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라!”

인상을 잔뜩 쓴 드워프가 은석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물론 드워프의 영혼은 자신의 목소리를 은석이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조각상을 지키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드워프 젠와바실런샤, 대장장이]

“감히 위대한 드워프의 조각상을 더럽히려 하다니!”

눈을 치켜뜨며 은석을 향해 삿대질하는 드워프 보란 듯 냉큼 조각상을 움켜쥐었다.

“우아악!”

드워프의 입이 쩍 벌어지며 분을 이기지 못해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더러운 놈! 감히 나의 신성한 조각상을!”

은석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거참, 시끄럽네. 듣자 듣자 하니까 기분 나쁘게 뭐가 자꾸 더럽다는 거야? 내가 너보다 깨끗하거든.”

자신의 눈을 정확히 바라보며 말하는 은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너, 너 내가 보이는 거냐? 어떻게……. 설마 너도 죽은 자인가?”

놀라는 드워프를 보며 씨익 웃었다.

“보이는 건 맞는데 죽은 건 아니야.”

“그렇다면 어떻게…….”

드워프는 죽은 자신을 보는 은석을 금방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았다. 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들고 있는 조각상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네 유골함이지? 그럼 다른 자의 조각상은 모두 깨져서 영혼도 사라진 건가?”

조각상의 용도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자, 손으로 입을 턱 막았다.

“맙소사, 신이시여. 어찌하여 저자가 위대한 드워프의 조각상에 대해 안다는 말입니까.”

순간 비틀거린 드워프가 나무테이블의 한쪽 끝을 짚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른 조각상은 없는 것 같고. 그럼 몬스터는? 몬스터는 없나?”

혼란스러워하던 드워프가 고개를 퍼뜩 들며 소리쳤다.

“몬스터라니. 신성한 드워프의 무덤에 몬스터가 있을 리가 있느냐.”

은석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의 던전은 마력만 가지고 있을 뿐, 처음부터 몬스터가 없는 던전이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던전 폭발이 일어나 조각상이 부서졌고 단 하나만 남게 된 것이었다.

‘드워프의 무덤인데 아직 하나가 남아 있으니 클리어되지 않은 거고. 골렘은 조각상을 지키는 존재일 테지.’

생각에 잠겨 있는 은석에게 드워프가 물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것이냐?”

“여기? 열쇠로 열고 들어왔지?”

열쇠라는 말에 드워프의 붉은 얼굴이 더욱 시뻘게졌다.

“열쇠라고? 더러운 오크 놈들이 훔쳐 간 그 열쇠로 들어왔다는 말이지. 갈가리 찢어 죽여도 모자랄 더러운 오크 새끼들.”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은석을 올려다봤다.

“그 열쇠는 어떻게 손에 넣은 거지? 설마 너도 오크와 한통속인 거냐?”

“아니, 내가 오크를 모조리 다 죽였거든. 그래서 열쇠를 가져왔지.”

순식간에 얼굴에 화색이 도는 드워프.

“오크 전멸이라. 죽은 후에 들은 말 중 가장 기쁜 소식이구나.”

껄껄 웃던 그의 귀에 들린 그록의 울부짖음.

“오크? 저건 오크의 소린데.”

드워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구 쪽으로 걸어가자, 은석은 빠르게 그록을 소환 해제했다.

한창 싸우던 상대가 갑자기 사라져 당황하던 스톤 골렘이 작업장 안을 기웃거렸다.

입구 앞에 멈춰 선 드워프가 골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오랜만에 일어났겠구나. 싸우는 소리가 들린 것 같던데 저자 말고 침입자가 더 있었느냐?”

말을 하지 못하는 스톤 골렘은 싸우던 오크가 사라졌다는 걸 알리고 싶은 듯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는 소리만 냈다.

조금 전 커다란 덩치로 괴성을 지르며 위협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한없이 순한 강아지 같은 모습에 은석은 헛웃음을 뱉었다.

“몬스터가 없다고 하더니, 여기 있네. 몬스터.”

가까이 다가온 은석이 스톤 골렘을 가리켰다.

“이건 몬스터가 아니다. 내가 만든 기계다.”

“뭐? 기계?”

드워프의 말에 은석은 조심스레 골렘의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드워프의 영혼과 함께 있는 것을 본 후부터 골렘은 은석에게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은석의 손길에 잠깐 머리를 흔들었지만 이내 얌전해졌다.

“진짜, 영혼이 없네. 허!”

손에서 느껴지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공허함 그 자체.

생력을 조금 흘려 넣어 봤지만 역시 그대로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영혼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 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거지?”

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드워프는 턱을 치켜들며 헛기침을 했다.

“드워프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대장장이인 나, 젠와바실런샤 님만이 가능한 일이지.”

의기양양한 드워프의 표정에 은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사이 스톤 골렘은 있던 자리로 돌아가 몸을 웅크렸다.

은석이 자신의 주인에게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직접 확인했지만, 여전히 스톤 골렘이 몬스터가 아니라 기계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 여긴 너와 저 스톤 골렘 둘 뿐인 거냐?”

“그렇지……. 동료들의 조각상은 모두 깨져 사라져 버렸고.”

드워프의 말에 은석은 짧은 한숨을 뱉었다. 인스턴트 던전의 유니크 아이템이라 잔뜩 기대하고 왔었다.

그런데 드워프의 영혼과 영혼이 없는 스톤 골렘뿐이라니.

‘차라리 연합 던전이나 돌걸.’

아쉬운 마음에 은석은 나가기 전 작업장 안을 한 번 더 휙 둘러봤다.

한쪽 벽에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채 걸려 있는 무기 몇 개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거 다 네가 만든 거야?”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 드워프.

“극히 일부지.”

오래되어 보이긴 해도 하나하나가 뛰어난 무기였다. 은석이 무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기사인가? 무기에 관심이 많은 걸 보니.”

은석은 대답 대신 아공간에서 귀검을 꺼내 드워프에게 보여 주었다. 검은 검신에서 푸른 오라가 흘러나오고 있는 귀검.

“오…….”

드워프는 감탄사를 뱉으며 귀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베일 텐데.”

은석의 말에 드워프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으냐. 이건 영혼을 베는 검이지. 아마 영혼을 다루는 주술사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고.”

단번에 귀검에 대해 파악해 낸 드워프. 은석이 놀란 표정을 짓자, 자랑을 이어 갔다.

“내가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고,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비록 지금은 혼령만 남은 상태라 보여 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숙이는 드워프를 보며 은석이 씩 웃었다.

“나와라.”

그의 명령에 오크 그록을 제외한 해머와 창왕, 승형 그리고 이현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귀속령에 놀란 드워프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무기 꺼내 봐. 여기 장인이 계신다.”

뜬금없는 은석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무기가 나타나자 눈빛부터 바뀌는 드워프. 가까이에 서 있는 해머의 망치를 유심히 살폈다.

“이건 누가 만든 거지?”

“아, 종로에 있는 무기 상점에서 구입한 겁니다.”

드워프가 혀를 쯧쯧 찼다.

“종로? 종로라는 자의 실력은 아주 형편없구나. 이런 걸 무기라고 만들어서 팔다니.”

그의 망치를 보며 손가락을 까딱까딱 좌우로 흔들었다.

“드워프의 견습생이 발로 만들어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해머가 발끈하며 대답했다.

“꽤 좋은 무기라고 들었습니다. 가격도 비싼 편이었습니다. 큰맘 먹고 구입한 건데…….”

드워프가 붉은 수염을 만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보는 눈이 없으니 이런 허접한 무기를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 거지.”

그의 독설에 곁에 서 있던 다른 팀원들이 자신의 무기를 슬그머니 뒤로 감췄다.

드워프는 계속해서 하찮은 것이라는 등 악담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만든 것 외에는 모두 쓰레기 취급하는 드워프 대장장이의 자존심이었다.

폭언이 이어졌지만 오랜만에 새로운 무기를 봐서인지, 그의 얼굴은 마냥 신나 보였다.

뒤쪽에 서서 그들을 쳐다보고 있던 은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하…….”

은석은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탄식을 내뱉으며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대장으로서 그동안 이런 무기를 사용하게 했다는 게 정말 미안하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당황한 팀원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에게 정말 화가 나는군. 지금 당장 나가서 최고의 무기를 구입하도록 하자.”

은석의 말에 드워프가 실소를 흘렸다.

“최고의 무기? 내가 여기 있는데 최고의 무기가 어디 있다는 말이냐.”

“맞아. 최고의 무기는 없겠지. 하지만 어쩌겠어. 네가 만들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정말 몹시 안타깝지만, 우린 인간 중에서 최고의 무기를 만드는 자를 찾을 거야.”

은석이 나가자는 신호를 보내자, 어리둥절한 표정의 팀원들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드워프가 다급히 나가려는 그들을 막아 세웠다.

“아니, 잠깐만. 벌써 가려고? 무기에 대해 아직 할 말이 많은데?”

은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하찮은 무기에 대해 더 들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렇다고 네가 만들어 주거나 고쳐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은석은 드워프의 곁을 지나쳐 입구로 걸어 나갔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스톤 골렘이 머리를 들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밖으로 걸어 나오는 은석의 뒤로 드워프가 허겁지겁 따라 나왔다.

“잠깐, 잠깐! 다시 보니까 그 정도로 급이 낮은 무기는 아니야. 조금만 손보면 전혀 다른 무기가 될 거다.”

은석은 놀란 척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다행이야. 정말 고마워. 그럼 무기상이 아니라 고치는 수리공을 찾아야겠군.”

드워프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요리조리 피하는 은석이 얄미웠다. 하지만 지금 그를 잡지 않으면 다시 기약 없는 고요 속에 갇히게 될 것이었다.

“내가 고쳐 주겠다. 흠. 시간은 없지만 한번 노력해 보지.”

은석이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평온히 쉬셔야 하는데, 저희가 잘못 찾아왔습니다. 얼른 나갈 테니 푹 쉬십시오.”

인사를 건넨 은석이 돌아서려 하자, 드워프가 소리쳤다.

“내가! 내가 하고 싶다. 제발 무기를 고치게 해다오. 여긴……. 너무 고요하다. 대장장이는 죽음보다 고요함이 더 두렵다. 내가 무기를 고치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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