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72화 (72/226)

72화

샌드위치 접시와 콜라를 들고 방으로 가던 은석.

그의 눈에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청안이 보였다.

“안 자고 뭘 봐?”

“새벽에 홀로 외로울까 봐 이 몸이 친히 봐 준 것이다.”

“봐 주기는…….”

청안이 꼬리로 소파를 탁탁 쳤다.

“그런데 인간, 악귀는 잡을 생각이 없는 것이냐?”

청안의 질문에 은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곧 시작될 거야. 너도 바빠질 테니까 지금 그 여유를 마음껏 즐겨라.”

청안이 콧방귀를 끼며 몸을 돌렸다. 방으로 들어간 은석은 엄마 샌드위치를 먹고 오랜만에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잤다.

* * *

잠에서 깬 은석이 한껏 기지개를 켜며 휴대폰을 들었다.

“지금 몇 시지?”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을 확인하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깊이 잠든 모양이네. 알람 소리도 못 듣고.”

집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다. 은석은 그대로 가만히 누워 한동안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김은석

프로젝트명: 저승 헌터

클래스: 힐러(F등급)

히든클래스: 네크로맨서(저승형 Lv65)

[특성]

귀안(승계)

생력(승계)

귀력: 6500/6500

[스킬]

-패시브 스킬

정보탐색: Lv4

정신감응: Lv1

팔귀의 재생력

방어력: 환(幻)

[미확인]

-액티브 스킬

쉴드/하이드

푸른 화염

암안

패시브 스킬에 미확인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확인.”

[귀(鬼)들의 이동을 미리 감지할 수 있습니다.]

상태창에 ‘실시간 귀(鬼)감지’라는 스킬 이름이 나타났다.

귀신들의 이동을 감지한다고?‘

은석은 귀맵을 불러냈다.

여러 가지 색깔로 표시된 귀들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음, 일단 어딘가 던전이라도 나타나 보면 알겠지.”

히든클래스인 네크로맨서의 레벨이 벌써 65가 되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오르는 속도는 느렸다. 그럼에도 빠르게 레이드를 돌아서인지 벌써 65레벨.

‘채굴팀도 생겼고, 사막 전갈은 귀속을 해제하고 싸우기 좋은 놈들로 채워야겠어.’

고스트 던전에서 귀속시킨 사막 전갈의 해제를 명령하니, 보유 귀속령 리스트에서 이름이 사라졌다.

아공간을 열어 안에 넣어 놓은 물품을 확인했다. 던전에서 캐낸 마정석과 마나석, 각종 약초와 과일들이 가득했다.

“마정석과 마나석은 희준이 주면 알아서 팔 거고.”

그때, 안공진 실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는 오늘 오후 4시, 길드 도착 예정입니다.]

안 실장은 은석이 지금 던전 안인지, 밖인지 모르는 상태였다. 언제 길드로 올지 알 수 없으니 먼저 자신의 스케줄을 보내 준 것이었다.

안 실장의 문자를 확인한 은석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4시까지 바쁘게 움직여 볼까.”

이현과 함께 은석이 도착한 곳은 화가 이중우의 옥탑방 작업실 앞이었다.

“저기, 대장.”

이현이 문을 두드리려는 은석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도 작업실에 들어가 볼 수 있을까요?”

이현은 초조한 듯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그의 모습에 은식은 픽 웃음을 뱉었다.

“그래.”

동시에 이중우가 이현의 모습을 볼 수 없도록 사라지게 했다.

똑똑-

“화가님, 김은석입니다.”

문이 벌컥 열리고 환한 표정의 이중우 화가가 은석은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헌터님.”

좁은 작업실 안은 그동안 늘어난 작품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그림을 그렸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아 작업실에 들어선 은석은 짧은 기침을 몇 번 내뱉었다.

“아, 죄송합니다. 많이 지저분하죠. 정리한다고 했는데 공간이 좁다 보니……. 이제는 포기했습니다.”

이중우는 뭐가 즐거운 듯 껄껄 웃었다. 그런 이중우를 보는 은석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이현은 이중우 화가의 새로운 작품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가님, 작업은 잘되어 가십니까? 곧 전시회가 있죠?”

“네, 감사하게도 미술관에서 재전시를 하기로 했습니다. 작품 몇 점을 보여 줬는데 괜찮은 반응이었습니다.”

이중우가 왼손에 들고 있던 펜으로 옆머리를 쓱 긁었다.

“이제 왼손 작업도 익숙해지셨습니까?”

펜을 들고 있던 왼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두 분 덕분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그분도 여기 계시지요?”

작품을 보던 이현이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역시 조금은 느끼게 된 건가.’

이중우가 앞에 세워진 캔버스를 톡톡 쳤다.

“그분이 보여 주신 장면들을 잊어버릴까 봐 정말 열심히 그렸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지 않으신 건가요?”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잘 시간도 아깝더라고요.”

이중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가끔 잠이 들 때마다 꿈에 그분이 나오셨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랬군요.”

“이분이 아직 나를 도와주시려고 하는구나. 이전보다 더 열심히 작품에 매진했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말이지요…….”

“하하, 네.”

이현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그가 깊이 잠들어야만 가능했다.

어이없는 표정의 이현과 뿌듯해하는 이중우를 번갈아 보던 은석은 웃음을 꾹 참았다.

삑-

주전자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이중우는 믹스 커피 3잔을 타서 은석의 앞에 2잔을 놓았다.

은석은 옆에 서 있는 이현을 힐끗 쳐다봤다. 자신에게 커피를 주는 이중우에게 감동한 모습이었다.

함박 미소를 지으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종이컵을 두 손으로 잡아들었다.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오듯 종이컵에서 또 다른 종이컵이 빠져 올라왔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 이현의 얼굴에 행복함이 가득했다.

“그런데 헌터님, 갑자기 연락도 없이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은석이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혹시 작업실을 옮기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네? 작업실을요?”

느닷없는 은석의 질문에 이중우가 어리둥절해했다.

“여기가 좀 좁기도 하고.”

“아, 네. 좁기는 좀 좁죠. 그런데 제가 지금 당장 가진 돈이 없어서 옮기기는 좀…….”

“옮기실 생각은 있으신 건가요?”

이중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을 놓을 공간도 필요하니 옮기는 게 좋기야 좋죠.”

이중우는 그동안 미술 학원 강사로 틈틈이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하지만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로 한 이후에는 모든 일을 멈추고 작품에만 올인했다.

던전 폭발로 전시회는 망했고 그에게 남은 돈은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뿐이었다.

“저희 건물에 빈 사무실이 많습니다. 그쪽으로 옮기시죠.”

이중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그게 무슨, 말인지…….”

후배 김은희의 동생인 은석은 자신보다 한참 어렸다. 하지만 왠지 나이 차이 꽤 나는 형님을 대하는 기분이 들어 조심스러웠다.

“저는 이사할 돈이 없……습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오셔서 작업하시고 전시할 만한 공간도 있으니 작품 전시도 하십시오.”

“아니, 저기, 헌터님.”

이중우는 도통 은석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작업실뿐만 아니라 전시할 수 있는 공간까지 준다고?

이중우는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다.

은석은 하데스 길드의 5층을 작업실로 내어 줄 생각이었다. 그가 원한다면 1층 로비에 그의 작품도 전시하고 싶었다.

길드와 던전 안 풍경을 그리는 화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합이었다.

은석의 뒤에 서 있던 이현이 말을 걸어왔다.

‘대장, 하데스 길드에는 저승으로 가는 구멍이 있습니다.’

‘있지.’

‘안 실장님과 황희준 헌터님은 자주 오지 않으시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작업실이라면 계속 하데스 길드에 계셔야 합니다.’

은석은 이현이 염려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승으로 가려는 망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 바로 하데스 길드였다.

죽은 자들이 드나드는 공간에 살아 있는 사람을 부르려는 은석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함께해야 가장 조화로운 법이야.’

‘네?’

‘원귀나 악귀가 있는 곳에 사람이 사는 걸 봤어?’

‘못 봤습니다.’

‘산 자가 죽으면 망자가 된다. 이승과 저승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란 말이지.’

이현이 은석을 바라봤다.

‘나는 하데스 길드에 귀신들만 드나들게 할 생각은 없어. 귀속령이 아무리 원귀와 악귀를 소멸시킨다고 해도 생명력이 없는 공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악귀들이 찾아오기 마련이거든.’

‘아…….’

‘하데스 길드를 사람들이 가득하고 생명력이 넘쳐 나는 곳으로 만들 거다. 그래야 망자들이 저승으로 가기가 더 편해.’

은석의 생각을 이해한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도, 이중우 화가님과 이야기하기 더 편할 거고.’

이현이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너도 화가잖아. 내가 하데스 길드 로비에 네 작품으로 도배해 주지.’

은석의 말에 이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중우가 가만히 서 있는 은석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김은석 헌터님?”

“네, 화가님.”

“정말 제게 작업실을…….”

은석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화가님만 허락해 주시면 하데스 길드 5층을 작업실로 만들까 합니다. 그리고 전시는 1층 로비에서 하시면 되고요.”

이중우가 왼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그 역시 기사를 통해 은석이 태황 그룹이 만든 길드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엄청난 길드 건물에 감히 제 작업실을 만들다니요. 안 될 말입니다.”

이중우가 손을 내저었다.

“그냥 허름한 건물일 뿐입니다.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주하는 사람도 없고요. 화가님이 저 대신에 길드를 좀 지켜 주십시오.”

은석의 너스레에 이중우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데스를 맡고 계시는 실장님과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은석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화가님도 허락하신 걸로 알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저기, 헌터님.”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이중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건 이중우 화가님뿐만 아니라 박도현 화가님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중우가 은석을 잡으려고 내밀던 왼팔을 천천히 내렸다.

“조만간 하데스 길드의 안공진 실장이라는 분이 연락을 드릴 겁니다. 나머지는 그분과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중우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 은석의 손을 맞잡았다.

“이현 화가님, 하데스 길드의 식구가 되신 걸 환영합니다.”

* * *

“대장, 길드로 가면 되죠?”

“그래, 지하실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이중우 화가의 작업실 밖으로 나온 은석은 이현의 마법진을 이용해 하데스 길드의 지하실로 이동했다.

“레이드 때문에 한동안 못 왔더니 그새 먼지가 꽤 쌓였네.”

은석은 저승으로 가는 구멍 앞에 놓인 테이블로 걸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 과일과 마른 어포, 흰쌀 한 그릇과 물이 올려져 있었다.

말라 가는 과일은 아공간에 집어넣고 싱싱한 것으로 바꿔 올려놓았다. 먼지가 쌓인 물을 바닥에 버리고 새 물로 가득 채웠다.

커다란 향로 뚜껑을 열자, 다 타 버린 재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향로를 들어 저승 구멍 안으로 털어 넣었다.

“어! 대장. 거기는…….”

“뭐 어때. 가루니까 내려가다가 다 흩어질 거야.”

마지막 하나까지 깨끗하게 털어 낸 향로 안에 돌돌 말린 새 향을 집어넣었다.

“푸른 화염.”

손가락에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것을 향로 안에 넣자, 곧 지하실 가득 향 타는 냄새가 났다.

“흐음, 향냄새가 너무 좋습니다.”

눈을 감고 향냄새를 들이마시는 이현. 그 모습에 은석이 피식 웃었다.

“누가 귀신 아니랄까 봐.”

향로 뚜껑을 덮고 은석은 테이블 위에 쌓인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지하실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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