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은석은 지하실을 빠르게 빠져나가 1층으로 올라갔다.
그대로 양팔을 옆으로 쫙 펼치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의 손이 통과하는 원귀와 악귀에게 생력이 흘러들어 갔다.
동시에 은석의 생력을 느낀 놈들이 달리는 그를 향해 몰려들었지만,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1층만 돌았는데 꽤 많은 놈들이 걸렸네.”
은석의 손이 닿은 악귀들의 흉측한 모습이 점점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변하고 있는 악귀의 뒤로 해머와 창왕, 승형의 무리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이제 무대로 나가 보실까.”
은석이 웃으며 이마를 덮은 앞머리를 쓱 쓸어 넘겼다. 생력을 거두고 건물 입구를 통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저기! 누군가 나옵니다!”
은석의 모습이 보이자, 사람들이 일제히 카메라를 돌렸다.
“저길 보십시오. 귀신들로 가득한 저 안에서 사람이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저, 저게……. 으악!”
카메라를 보며 실시간 중계를 하던 BJ가 은석의 뒤를 따라 나오는 악귀들을 보자 비명을 질렀다.
“귀신! 귀신이다!”
사람들의 눈에 악귀의 흉측하고 기괴한 모습이 보인 것이었다.
“귀신이 보인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럼 저게 뭐야!? 어! 귀신이 아니면 저게 도대체 뭐냐고!”
귀신의 모습에 놀란 듯 악다구니를 쓰며 말을 했다.
“귀신이 아니야. 저건 몬스터다. 고스트형 몬스터야.”
“뭐? 몬스터?”
고스트형 몬스터라고 말한 BJ가 급하게 카메라를 자신 쪽으로 돌렸다.
“여러분, 대한민국 3대 흉가로 알려진 이곳은 흉가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방송 최초로 알려 드립니다! 여기는 고스트형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었습니다!”
그의 영상에 댓글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만족스러운 BJ가 자신감 있게 주차장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은석을 향해 카메라를 돌렸다.
“지금 던전 안에서 나오는 저 사람은 누구일까요?”
BJ가 눈을 찡그리며 은석을 자세히 살폈다.
“어? 나 저 사람 알아! 누구지? 맞다! 김은석. 김은석 헌터야. 여러분, 김은석 헌터가 여기 있습니다.”
김은석이라는 말에 주위에 있던 다른 BJ들이 웅성거렸다.
“왜 김은석 헌터가 저기에서 나올까요? 역시 제 추측이 맞았다는 증거입니다. 저곳은 흉가가 아니라 던전이었습니다. 김은석 헌터는 지금 홀로 던전 레이드를 뛰고 있는 중인 겁니다.”
새벽이었지만 너튜브의 효과는 굉장했다.
실시간 검색어에 은석의 이름이 올라갔고, 연관 검색어에 하데스 길드가 등장한 것이다.
BJ가 지르는 고함을 들으며 은석은 자리를 잡았다.
‘이 위치면 카메라에 가려지는 게 없었지?’
카메라에 잘 보이도록 넓은 주차장 중앙에 자리 잡은 은석의 주위로 악귀들이 괴성을 지르며 둘러쌌다.
오랫동안 썩을 대로 썩은 악귀의 형상은 인상을 찌푸릴 만큼 흉측했다.
악귀의 낯선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것도 있었지만, 몬스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당할까 다들 조심했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실시간 방송을 이어 갔다.
“여러분, 지금 김은석 헌터가 고스트형 몬스터와 싸우려고 합니다. 톰톰 님, 후원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응원에 용기를 내어 조금 더 앞으로 나가 보겠습니다.”
파앗-
은석이 귀검을 꺼내 푸른 화염을 입혔다. 환한 보름달이 적당한 필터링 역할을 해, 검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이 더욱 신비스러워 보였다.
그 장면이 인터넷에 전송되자, 댓글 창에서 소리 없는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BJ 역시 댓글을 읽어 볼 생각도, 진행할 말도 잊은 채 은석의 모습만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스릉-
은석은 평소보다 더 빠르고 과감하게 악귀들을 베기 시작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휘두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그의 주변에 수십 개의 푸른 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생력에 홀려 버린 악귀들은 소멸된다는 두려움도 잊은 듯 은석에게 달려들었다.
“저 장면이 지금 실화입니까? 저건……. 몬스터를 살육하는 헌터가 아니라 마치 검무를 추는 무사 같습니다. 굉장합니다.”
그들은 보지 못하지만 건물 안팎에서 수많은 악귀들이 빠르게 소멸되고 있었다.
은석의 머릿속에 레벨이 올랐다는 알람이 몇 번이나 들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은석이 마지막 악귀를 베자, 또다시 알람이 들렸다.
‘대장, 클리어했습니다.’
동시에 해머와 창왕이 임무를 마쳤음을 알려왔다.
‘아, 저. 네, 저도 모두…… 죽였습니다.’
정신 감응을 처음 사용해 보는 승형이 쭈뼛거리며 마지막으로 보고했다.
이로써 하데스 건물의 1차 리모델링이 끝났다.
은석은 최대한 멋있고 여유로운 포즈로 검을 아래로 내려쳐 화염을 사라지게 했다.
“오…….”
사람들은 어느새 관람객이 된 듯 촬영도 잊은 채 낮은 목소리로 탄성을 흘렸다.
쇼맨십은 이걸로 충분한 듯싶어 은석은 은신 스킬을 사용해 몸을 숨겼다.
갑자기 눈앞에 서 있던 은석이 사라지자, BJ들이 일제히 주차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김은석 헌터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것도 헌터의 능력일까요?”
은석은 떠들썩한 BJ들을 내버려 두고 지하실로 내려왔다. 이내 고스트 팀도 그의 곁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수고했다. 먼저 내려가 있어.”
소환 해제한 후, 조금 전 저승 구멍을 막아 놓은 테이블을 치웠다.
은석이 구멍을 향해 발을 내밀었다.
[저승 입구입니다. 저승 헌터 프로젝트 사용자는 원하는 저승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저승 훈련장.”
그 순간, 구멍에서 피어오르던 투명한 막이 그를 감싸고 아래로 끌어당겼다.
* * *
저승 훈련장을 거쳐 방으로 돌아온 은석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이른 아침.
쾅- 쾅-!
방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 진짜!”
겨우 눈을 뜨고 문을 열자 김은영이 스프링처럼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은석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휴대폰을 그의 눈앞에 들이미는 김은영.
“은돌! 너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짜증 가득한 얼굴로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인터넷 포탈 뉴스 첫 화면을 가득 채운 은석의 이름이 보였다.
새벽, 은석은 잠들기 전 안공진 실장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실장님, 제가 할 수 있는 청소는 마쳤습니다. 나머지는 실장님께 맡기겠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은석의 문자를 확인한 안공진 실장은 미리 작성해 둔 하데스 길드 설립에 대한 정식 보도를 각 언론사에 돌렸다.
그 시간 너튜브에서는 흉가에서 고스트형 몬스터를 죽이는 은석의 영상 조회수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흥분한 김은영이 제자리에서 종종 뛰면서 물었다.
“너……. 진짜 태황 그룹 회장이 만든 길드에 들어간 거야?”
게다가 하데스 길드의 공식 대표는 태황 그룹의 회장, 윤꽃샘이었다.
세 가지 이슈가 한꺼번에 터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대답 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은석이 답답한 김은영이 다시 물었다.
“야! 빨리 대답을 해. 진짜야? 진짜 그 길드에 들어간 거야?”
“어.”
“우와……. 대박. 그런데 너 왜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오늘 하려고 했어.”
김은영에게 대답을 해 주며 기사 몇 개를 클릭해 읽었다.
대부분 하데스 길드의 설립과 태황 그룹, 길드의 유일한 헌터인 김은석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흠. 희준이 섭섭하겠는데.’
황희준은 던전보다 길드 내의 업무를 맡기로 했다.
컴퓨터에 능숙하고 ‘저승에서 온 헌터’ 운영도 본격적으로 해 보고 싶다는 그의 의지였다.
그래도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걸 보니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휴대폰을 휙 낚아챈 김은영이 거실로 뛰어나가며 비명을 질러 댔다.
“엄마! 은돌이가 진짜 하데스 길드에 들어갔대요. 진짜 죽인다. 내 동생!”
“아휴, 걱정돼서 어떡한다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김은영의 호들갑과 함께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려 왔다.
열린 방문 사이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은석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따르릉-
그때, 윤꽃샘으로부터 연락이 와 목을 가다듬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오! 유명인. 지난밤에 엄청난 사고를 치셨던데.”
은석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공식 데뷔로 아주 멋져. 출발이 아주 좋아. 대장 덕분에 태황 그룹 주가도 쭉쭉 올라가고 있어.”
“그렇습니까?”
“회사 꼰대들이 노인네가 길드를 만든다고 어찌나 말들이 많았는지. 쯧! 대장 덕분에 코를 한 방에 납작하게 만들어 줬어. 땡큐!”
“별말씀을요.”
“신고식은 끝났고, 안 실장에게 연락 왔는데 오늘 오후부터 공사에 들어간다고 하더군. 대장의 다음 일정은 뭔가?”
“벌써 공사를 하신다고요? 정말 추진력이 대단하시군요. 저는 봐 둔 팀원이 있어서 만나 보려고 합니다.”
“그럼 조만간에 하데스 길드의 새로운 헌터를 만날 수 있는 건가?”
“네, 곧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윤꽃샘과의 통화를 끝낸 후, 은석은 안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은석입니다.”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네, 혹시 건물 사용에 대해 원하시는 부분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빠르고 세심한 안 실장의 업무 처리. 윤꽃샘의 안 실장에 대한 무한 신뢰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세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안 실장이 전화 녹음 버튼을 눌렀다.
“건물 양쪽에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말라 죽어 가는 그 나무 말입니까?”
“네, 자르지 마시고 나무 치료하시는 분께 보여 주십시오. 좋은 나무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하실은 저만 들어갈 수 있게 마력 도어락 하나만 설치해 주십시오. 설정은 나중에 제가 가서 하겠습니다.”
“네.”
“지하실 바로 위에 제가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방 안에 지하실과 연결되는 계단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필요한 것은 없으십니까?”
“네, 충분합니다. 다른 층은 안 실장님 계획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해하기 힘든 요청도 있었지만 안 실장은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캐묻지 않았다. 은석은 그런 안 실장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안 실장님.”
“곧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은석이 저승에 있는 승형을 불렀다.
‘승형.’
‘말씀하십시오.’
‘최 차사님께 이승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봐. 그리고 병사 몇 명을 하데스 길드 건물로 보내. 악귀가 다시 몰려들 수도 있으니까 공사하러 오는 인부들을 보호하게 해.’
‘네, 알겠습니다. 대장.’
다시 침대에 누워 상태창을 불러냈다.
갑자기 들이닥친 김은영 때문에 잠은 달아났지만, 다시 침대에 누웠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김은석
프로젝트명: 저승 헌터
클래스: 힐러(F등급)
히든클래스: 네크로맨서(저승형 Lv50)
[특성]
귀안(승계)
생력(승계)
귀력: 5000/5000
[스킬]
정보탐색: Lv4
정신감응: Lv1
팔귀의 재생력
방어력: 환(幻)
쉴드/하이드
푸른 화염
[귀속령]
+고스트형
+몬스터형
+인간형
흉가에 머무는 귀들을 소멸시키면서 레벨이 꽤 올랐다.
“정보탐색 Lv4는 망자가 죽었을 때의 상황을 볼 수 있다는 걸 확인했고.”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미확인 메시지를 알리는 알림이 떴다.
“열어 봐.”
[레벨 상승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
[‘어둠을 볼 수 있는 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간형 귀속령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둠에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는 눈, 암안이라는 꽤 마음에 드는 액티브 스킬이 생겼다.
두 번째 보상은 팀 고스트의 모습을 더는 검은 인영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희미한 인영보다는 나을 것 같기는 한데……. 해머와 창왕은 얼굴이 드러나면 곤란하겠지?’
승형과 병사들의 경우는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 상관없겠지만, 헌터로 활동했던 해머와 창왕은 달랐다.
가족과 친구뿐만 아니라 길드에 소속되었던 자들이라 혹시라도 동영상이나 사진에 찍히게 된다면 죽은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었다.
“강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