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도서관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흥분한 리자드맨 한 놈이 뛰어 들어왔다.
쑤욱-
막이 있는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그대로 사라져 건물 밖 공중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장면을 본 두 놈은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리자드맨이 사라진 위치에 서서 뾰족한 손톱을 들어 허공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놈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 어, 위험해!’
김은희의 눈에는 리저드맨의 손톱에 난도질당하고 있는 인영이 보였다.
희뿌연 인영의 모습이 점점 흐려져 갔다. 힘이 빠진 듯 무릎을 굽히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중우가 보호막을 믿고 우스꽝스럽게 팔을 휘두르는 리자드맨 앞으로 겁 없이 걸어갔다.
김은희가 소리쳤다.
“선배! 뒤로 물러서!”
김은희가 그를 붙잡기 위해 달려 나갔지만,
“아악!”
그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리자드맨의 손이 이중우의 오른팔을 잡아 뜯어내 버렸다.
팔이 뜯겨 나간 어깨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김은희의 얼굴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오른팔이 사라진 이중우.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 댔고, 이중우의 피를 뒤집어쓴 김은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가까스로 리자드맨을 막고 있던 흐린 인영 역시 사라졌다. 휘청대던 이중우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지려고 하자, 턱-
리자드맨이 이중우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놈은 이미 뜯어낸 그의 팔을 입 안에 넣어 씹어 대고 있었다.
“까아악!”
결국 김은희가 참고 있던 비명을 질렀다.
어제까지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던 화가의 손이었다. 이중우의 손이 리자드맨의 입 밖으로 튀어나와 흔들리고 있었다.
김은희의 비명에 팔을 삼킨 놈이 킥킥거리며, 나머지 한 손으로 이중우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머리를 뜯어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선배…….”
헌터도 아닌 김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 지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리자드맨이 양손에 힘을 주려는 순간.
서걱-
놈의 길고 커다란 머리가 잘리면서 동시에 리자드맨의 몸과 이중우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김은희가 빠르게 바닥을 기어 이중우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쥐고 있는 리자드맨의 손을 떼어 냈다.
이중우는 팔이 뜯겨 나갈 때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 여전히 어깨에서는 많은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어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김은희가 고개를 숙여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와아아-!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 대신 함성을 질렀다. 그 소리에 김은희가 고개를 들었다.
리자드맨이 서 있던 자리에 남자 한 명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김은돌……?”
은석이 김은희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혀 앉았다.
“괜찮아?”
은석을 보자, 김은희는 내내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 내며 엉엉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은석은 소매를 잡아당겨 피범벅인 김은희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누나, 어디 다친 거야?”
“아니, 내가 아니라 선배가……. 선배가 죽을 것 같아. 어떡해, 은석아.”
피를 멈추기 위해 김은희가 손으로 누르고 있었으나, 너덜거리는 어깨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은석이 주변을 돌아봤지만, 뜯긴 팔이 보이지 않았다.
“팔은?”
“저 X새끼가……. 처먹었어.”
김은희가 울면서 리자드맨의 잘린 머리를 가리켰다.
“음, 그럼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갑자기 이중우가 숨이 넘어가듯 컥컥거렸다.
은석은 피가 흐르고 있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생력을 이중우의 몸 안으로 흘려 넣었다.
금세 피가 멈추고 뜯겨 나간 피부가 아무는 것을 본 김은희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힐러로 각성한 동생을 헌터로서 마주하기는 이번이 처음.
늘 약하기만 한, 지켜 줘야 했던 막냇동생이었는데 이제는 듬직한 헌터가 되어 있었다.
낯선 은석의 모습을 쳐다보던 김은희.
“일어설 수 있겠어?”
치료를 마친 은석이 물었다.
“어. 일어설 수…….”
대답하며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후들거리는 김은희의 발목을 잡고 소량의 생력을 넣었다.
다리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덜덜 떨렸었는데, 순간 편안한 느낌이 들면서 안정되었다.
“내가 다시 올 거야. 어디 나가지 말고 여기 있어. 알았지?”
김은희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가라고 떠밀어도 안 나갈 거야.”
도서관 밖으로 나가던 중, 찢어진 채 너덜거리는 보호막이 은석의 눈에 띄었다. 투명한 것이 아니라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마법진?’
고개를 돌려 김은희에게 물었다.
“누나, 여기 헌터가 왔었어?”
“아니, 헌터는 네가 처음이야. 근데, 다른 게 왔었어.”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며 안쪽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소곤거렸다.
“맞지? 맞지? 동영상 속 그 헌터 맞지?”
“어. 대박! 나도 봤었는데, 실제로 보게 되다니.”
“대단하다. 리자드맨을 한칼에 죽였어.”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은석을 알아본 것이었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은석은 도서관 밖으로 나가 입구를 아예 숨겨 버렸다.
“하이드.”
이후 검은 코뿔소 한 마리를 소환했다.
“넌 여기서 사람들 지켜라.”
은석이 빠르게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2층에서는 해머와 창왕이 리자드맨들을 살육하고 있었다.
* * *
“살아 있는 사람들은?”
“각층에 있는 사무실 안으로 모두 피했습니다.”
“수고했다. 곧 길드에서 도착할 거야.”
“그만할까요?”
은석의 말에 창왕이 휘두르던 창을 멈췄다.
“아니, 더 빨리 죽여야지. 한 놈 잡을 때마다 경험치가 얼마나 올라가는데 이걸 공짜로 넘겨준다고?”
창왕이 씩 웃으며 다시 창을 휘둘렀다.
“희준이가 없는 게 아쉽네.”
곳곳에 죽어서 쌓여 있는 리자드맨의 사체를 보며 입맛을 쩝 다셨다.
악어 백보다 귀하다는 몬스터 가죽 백의 재료로 비싸게 팔리는 리자드맨의 가죽이었다.
“황희준 헌터님도 귀속령으로 만드시죠.”
창왕의 말에 은석이 킥 웃음을 뱉었다.
“진짜 그럴까?”
이야기를 나누며 2층의 마지막 리자드맨까지 베었다.
“이제 너희는 던전 입구로 가라. 마력 때문에 악귀와 잡귀들이 몰려와 있을 거다. 그놈들도 다 죽여 버려.”
“네, 알겠습니다. 대장.”
키아악-
1층에서 올라온 리자드맨 한 마리가 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귀검을 사선으로 내려쳐 반으로 갈라 버렸다.
“코뿔소. 나와.”
모습을 드러낸 검은 코뿔소들이 콧바람을 강하게 뿜어 댔다.
“남은 놈들이 더 올 거다. 여긴 너희들이 맡아라. 난 찾을 놈이 있으니까.”
은석이 맵을 부르자,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귀(鬼) 지도가 나타났다.
미술관 전체를 확대해서 보니, 던전 폭발이 일어난 지점으로 주변의 모든 귀물들이 몰려가고 있었다.
단 하나의 점만이 미술관 안에서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던전 마력에 홀리지 않았단 말이지.’
2층을 빠르게 둘러본 후,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2개의 전시관 중 먼저 제1전시실로 들어갔다.
그곳에 곧 소멸할 것처럼 흐려지고 있는 망자 하나가 몸을 한껏 말고 웅크리고 있었다.
망자는 마법사 복장을 하고 있는 헌터였다. 온몸에 리자드맨이 마구 할퀸 상처가 가득했다.
‘죽은 자가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했다라…….’
은석이 다가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망자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아직 마력이 남아 있었다는 뜻인데……. 죽었어도 헌터라고 남은 마력을 사람들을 위해 쓴 건가?’
헌터들은 죽은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마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물론 몬스터과 싸울 수 있는 마력은 아니었다. 이번처럼 마력을 이용해 약한 보호막을 만들거나 하는 정도일 뿐.
하지만 마력 덕분에 죽은 후에도 꽤 오랫동안 살아 있을 때의 기억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누나가 말하던 헌터가 이 녀석이군.’
남은 마력을 소진하고 몬스터에게 공격까지 당한 영향인지, 망자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은석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망자의 깊게 패인 상처에 생력을 아주 조금 주입했다.
그러자 곧, 흐릿했던 모습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아…….”
망자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은석을 보자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났다.
“너 뭐야!!”
“뭐라니. 생명의 은인님한테. 음, 이미 죽었으니 생명은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은석을 향해 공격하려는 듯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하는 행동에 은석은 어이가 없었지만 누나를 구해 줬으니 이 정도는 넘어가기로 했다.
“네가 사람들을 구한 건가?”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지, 죽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은석에게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내가 보여?”
귀신들의 반응이 어찌 하나같이 똑같은지…….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찍도 물어본다. 보이니까 살려 준 거지. 그러니까 묻는 말에나 대답해. 사람들을 살려 준 게 너야?”
“그, 그래.”
“죽었어도 마력이 조금 남아 있었나 본데, 마력을 써 버리면 일반인들처럼 빠르게 기억을 잃게 된다는 걸 알 텐데?”
망자는 입을 달싹이다가 대답 대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맵.”
눈앞에 나타난 맵을 확대했다. 노란색의 점 하나가 옆 전시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미술관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나 보군. 지박령인가? 그럼 일단 정리부터 한 다음에 다시 찾으면 되겠네.”
그때, 해머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 잡귀들도 모두 소멸했습니다.’
‘수고했다.’
‘그리고 길드 헌터들이 도착했습니다. 아마 곧 미술관 안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알았어. 소환 해제.’
은석은 다시 3층 도서관으로 뛰어 올라갔다.
보호막을 해제하고 도서관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김은희가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은돌아!!”
“누나, 길드에서 왔어. 곧 헌터들이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
“너는?”
“가야지.”
김은희가 은석의 옷자락을 잡았다.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아무리 김은희가 강한 척해도 일반인에게 몬스터란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친한 선배가 눈앞에서 죽을 뻔했으니 오죽할까.
“꼭 가야 해? 네가 잡으면 안 되는 몬스터였어?”
“그런 건 아닌데…….”
은석은 다른 길드의 헌터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가지 마. 나 무서워. 이대로 나 버리고 가면 집에 가서 죽는다.”
주먹을 치켜드는 김은희를 보며 은석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알았어. 안 갈게.”
* * *
“한울 길드입니다. 몬스터는 모두 죽었습니다. 시민분들은 천천히 밖으로 나오십시오.”
헌터들이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외쳤다. 그 소리에 숨어 있던 시민들이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은석은 의식이 없는 이중우를 안고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3층으로 올라오던 헌터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뛰어왔다.
헌터 하나가 이중우를 받아 들면서 물었다.
“다치신 분은 더 없습니까?”
“네, 다른 분들은 무사하십니다.”
“그럼 로비로 내려가십시오. 저희 한울에서 병원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걸어 내려오며 보니 한울 길드에서 리자드맨 사체를 한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아까운 내 마나석, 내 가죽…….’
눈앞에 두고 가려니 은석은 속이 쓰려 왔다.
그렇다고 던전에서처럼 내가 잡았으니 내 것이라고 가족 앞에서 핏대 세워 가며 싸우고 싶진 않았다.
로비에서는 한울 길드의 힐러가 시민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경중에 따라 바로 응급차로 이송되는 사람들도 보였다. 헌터는 안고 있던 이중우를 임시 침대 위에 눕혔다.
“몬스터에게 팔을 잃었다고 합니다.”
힐러가 급하게 피에 젖고 너덜거리는 옷을 들쳤다.
“어? 이분은 치료가 필요 없는데요.”
“네?”
“이미 완벽하게 치료가 끝난 상태예요.”
힐러의 말에 헌터가 옷을 들어 확인했다. 힐러의 말대로 작은 상처 하나 없이 완전히 아문 상태였다.
“그러네요……?”
헌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은석과 김은희를 찾았다.
“저기요! 이분 일행이시죠?”
김은희가 빠르게 걸어가 이중우의 옆에 섰다.
“맞아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가 아니라, 상처가 없습니다. 이미 치료가 끝났던데 누가 치료한 건가요?”
김은희가 난감한 표정으로 은석을 쳐다봤다.
그때였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김은석 헌터님!”
누군가 큰소리로 은석의 이름을 불렀다.
한울 길드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내심 불안했었는데, 역시나 은석의 예감은 적중했다.
“김은석 헌터님, 그동안 많이 바쁘셨습니까? 제 연락은 왜 그렇게 피하신 겁니까?”
껄껄 웃으며 다가오는 남자는 한울 길드의 백재현이었다.
‘음? 아! 내 몫은 챙길 수 있겠는데?’
저를 영입하지 못해 안달인 백재현. 이리 좋은 호구는 만나기도 힘들었다. 은석이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팀장님!”
“제 연락을 그렇게 피하셔도 이렇게 우연히 딱! 만나는 걸 보면 역시 우리는 인연이라니까요.”
“하하, 그런가 보네요. 우리 정말 인연인가 봅니다.”
[‘이건 김은석 헌터님을 영입하라는 하늘의 계시야!’]
백재현의 생각을 읽으며 은석은 웃음을 꿀꺽 삼켰다.
‘응, 그런 거 아니야.’
백재현을 어떻게 잘 구슬려 더 많은 몫을 떼어 낼까 고민하는 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