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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39화 (39/226)

39화

“후와, 엄청나네. 이건 뭐, 마법의 집이야?”

은석이 감탄을 내뱉었다.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집 안을 둘러보기 바빴다.

거실 한쪽에 위치한 엔틱한 부엌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따뜻한 빵과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여러 개의 문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침실인 곳도 있었고 운동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방도 보였다.

분명 밖에서는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방마다 넓은 창이 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창마다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은석을 따라 들어온 창왕이 창밖을 바라보며 웃음을 뱉었다.

“바다군요. 놀랍습니다. 어떻게 이런 곳이…….”

“엄청나네. 성주가 자신감 넘치게 줄 만해.”

바다가 보이는 방을 나와 다른 문을 열어 보니 오래된 도서관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본 방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크기의 도서관이었다.

2층으로 된 도서관 내부는 수천 권의 장서가 꽂혀 있었다.

1층에는 긴 테이블이, 도서관 제일 안쪽에 위치한 방에는 작은 테이블과 침대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여기 마음에 드네.”

은석은 침대와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인 그곳이 마음에 쏙 들었다.

“대장!”

해머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은석이 나가서 보니 마지막 문 앞에 모두 모여 있었다.

“입구에서 봤던 구멍이 여기도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반지를 넣는 구멍이 보였다.

성주의 반지를 끼우자 스르륵 문이 열렸다.

“허억!”

집 안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더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안에는 엄청난 양의 금은화를 비롯해 각종 보석과 귀중품이 쌓여 있었다.

“이건 도대체…….”

은석은 양쪽으로 산처럼 쌓여 있는 금화 사이를 걸어 들어갔다.

“이번 던전은 꽝이 아니네. 진짜 럭키였어.”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느새 그를 따라 들어온 해머 역시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굉장하네요. 대장.”

은석이 독특한 문양의 금화와 보석을 한 주먹 쥐어 아공간 안에 넣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현금화시키냐는 건데.’

은석이 해머와 창왕을 보며 말했다.

“이제 여긴 팀 고스트의 숙소다. 각자 방은 알아서들 골라. 집 밖에 나가면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장소도 있고 편안하게 쉴 곳도 있다. 복지 죽이지 않냐?”

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머와 창왕이 사라졌다.

잔뜩 들뜬 표정으로 각자 마음에 들었던 방 앞에 서 있었다.

“여기가 마음에 듭니다.”

마치 자신만의 첫 방을 가진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영혼은 먹지도, 잠들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다.

살아 있었을 때의 기억이 남아 배가 고프거나 피곤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이승에서 혼령으로 머물 때 그들은 늘 길거리를 헤매거나 건물 한구석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죽은 그들에게 쉴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은석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렇게 좋냐? 문에 이름이라도 새겨라.”

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기하게도 방문에 해머와 창왕의 이름이 나타났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마법의 집이 아니라 귀신 붙은 집 아니야?”

은석이 거실 구석구석을 훑었다.

“귀신은 안 보이는데. 최 차사님, 뭐가 보이십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무서워라. 귀신 붙은 집이라니. 밤에 화장실도 못 가겠는데요.”

은석의 농담에 최 차사가 피식 웃었다.

“저승차사에 귀신이 둘, 거기에 저승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의 말에 은석이 싱긋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가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빵과 커피를 마셨다.

“귀신이 만들어서 그런가? 맛은 있네. 이리 와서 다들 먹어. 배고프지는 않아도 어떤 맛인지는 알잖아. 최 차사님도 드십시오.”

식탁에 둘러앉은 저승차사와 은석, 그리고 그의 귀속령 둘.

최 차사가 커피 잔을 들며 신기한 듯 말했다.

“저승에서 커피를 마시다니……. 이것이 너희들이 말하는 이계의 힘이냐.”

은석 역시 커피 한 모금을 삼켰다.

“마법이 아니면 귀신이겠죠. 뭐든 간에 좋습니다.”

해머와 창왕도 빵을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팀원도 생겼고 휴식도 했으니 이제 훈련을 시작해 볼까.”

최 차사가 어느새 다 마신 잔을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창왕이 기다렸다는 듯 기대에 찬 눈빛으로 벌떡 일어났다.

은석과 해머는 한숨을 내쉬며 남은 커피를 최대한 천천히 마셨다.

무인이었다는 최 차사와 창왕은 죽이 잘 맞았다.

은석과 훈련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검술을 선보인 최성운 차사.

덕분에 평소보다 더 길고 긴 훈련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웠다.

“아, 엄마 김치찌개 먹고 싶다.”

그대로 잠이 든 은석의 귀에 누군가의 함성이 들렸다.

“역시 정말 최고야. 꺄!! 나의 최애!”

거실에서 들리는 김은영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

은석이 이불을 뒤집어썼다.

쾅-

방문이 부서져라 열고 들어온 김은영.

“야! 은돌! 빨리 나와서 TV 봐 봐! 지금 누가 나오는 줄 알아?”

“나 피곤해. 나가라.”

김은영이 이불을 확 젖혔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 윤혁이 나온다고.”

‘윤혁?’

은석이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미간을 찌푸린 채 TV에 나오는 윤혁을 노려보는 은석.

“그래, 너도 헌턴데 윤혁을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지.”

김은영이 은석의 옆에서 온몸을 흔들며 윤혁의 이름을 외쳤다.

* * *

아침 첫 비행기로 윤혁이 온다는 소식에 공항은 전날 저녁부터 인산인해였다.

“저기 윤혁이다!”

누군가의 외침.

수많은 카메라가 동시에 플래시를 터트렸다.

윤혁의 팬들이 그의 이름을 외치며 함성을 질렀다.

불산 길드 헌터들이 출국장을 먼저 빠져나왔다. 곧이어 선글라스를 쓴 윤혁이 나타났다.

“윤혁! 윤혁!”

모습을 드러낸 윤혁이 서서 손을 흔들었다.

선글라스를 벗자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반달눈이 깊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여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윤혁의 얼굴을 한 장이라도 더 찍기 위한 셔터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윤혁 헌터님, 이번 일본 원정 레이드 성공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던전 몬스터로 힘드셨을 일본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어서 기쁠 뿐입니다.”

일본 오사카 지역에 생긴 던전.

클리어를 실패한 일본이 윤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미 이전에도 몇 번 일본 레이드를 한 적이 있었던 윤혁.

이번에도 보란 듯이 그들이 실패한 던전을 클리어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윤혁이라는 헌터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게 엄청난 거지.”

“저렇게 대단한 헌터가 겸손까지 하다니……. 역시 윤혁은 난 놈이야.”

궁금한 것이 많은 기자가 경쟁적으로 손을 들었다.

윤혁이 가장 가까이 있는 기자를 가리켰다.

“힘든 싸움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기자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국민 여러분들이 걱정해 주신 덕분에 아주 건강합니다.”

양팔을 들어 보이는 윤혁.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때, 윤혁의 곁에 서 있던 그의 비서가 나섰다.

“헌터님은 휴식하셔야 합니다. 불산 길드에서 곧 기자 회견을 마련할 것이니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윤혁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후 비서를 따라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리무진에 올랐다.

문을 닫고 차 안에 준비된 와인을 병째로 들이켜고 있는데, 운전석 사이를 막고 있던 가림막이 내려갔다.

조수석에 탄 비서가 윤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번에 일본에서 드신 마력은 어떠셨습니까?”

“별로야.”

다 마신 와인 병을 바닥에 던졌다.

“후, 대단한 놈이라고 들었는데 소문이더라고. 죽이는 데 고생만 했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윤혁이 다른 와인을 집어 들었다.

“그렇습니까.”

윤혁이 비서를 향해 팔을 내밀었다.

팔뚝에 길게 그어진 상처가 보였다.

“왜 상처가……. 힐러는 뭘 했습니까?”

“힐도 받고 회복 포션도 마셨는데 이러네. 뭐가 문젤까?”

비서는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알아보겠습니다.”

“내가 없던 동안 다른 소식은 없고?”

태블릿을 꺼내 윤혁에게 건넸다.

“이번 신입 레이드에 섭외해 놓은 용병입니다.”

윤혁이 이력서의 사진을 확대해 용병의 얼굴을 확인했다.

“레이드가 언제지?”

비서가 일정을 살폈다.

“이틀 후에 E-랭크 던전입니다.”

“이 새끼, 마력은 괜찮아?”

“네, 확인해 봤습니다. 소문이 좋지 않아 길드에 스카웃되지 못했을 뿐. 용병을 할 실력은 아니라고 합니다.”

“좋아. 진행해.”

“네, 알겠습니다.”

윤혁이 눈을 감는 것을 보고 비서는 가림막을 올렸다.

“김은석 이 새끼는 어떻게 던전에 데리고 들어가지…….”

윤혁은 중얼거리며 잠이 들었다.

* * *

“아……. 왜 벌써 가는 건데. 더 오래 잡아 뒀어야지.”

리무진으로 들어가는 윤혁을 보며 김은영이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 안에서 만났던 윤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예의 바르고 겸손한 최고의 헌터. 그게 네가 잡은 설정이군. 그럼 그것부터 깨 줘야겠지.’

은석은 윤혁의 숨겨진 본성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부드러운 눈웃음도 사악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방으로 들어온 은석은 잊고 있었던 휴대폰을 아공간에서 꺼내 들었다.

“날 찾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

휴대폰 전원을 켜자,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렸다.

엄청나게 쌓여 있는 전화와 문자들.

“이상균,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전화질이야. 백재현도 역시나 끈질기게 매일 연락 왔고. 모르는 번호는 전부 길드인 건가?”

전화를 달라는 여러 길드의 문자가 와 있었다.

전부 영상을 보고 스카우트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은석이 가장 먼저 황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형님.”

씩씩하게 전화 받는 황희준.

“아픈 데는 없고?”

“형님 힐 덕분에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그럼, 일 좀 해라.”

“말씀만 하십시오.”

“현기주 알지?”

“네, 천상의 힐러 아닙니까?”

“그래. 현기주의 용병 리스트에 내 이름 좀 넣어 놔라. 용병만으로 레이드를 뛴다고 하니 의심 살 걱정은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던전이 열리면 바로 들어가는 명단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빠를수록 좋겠지.”

“네, 형님. 다른 거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전화를 끊으려던 은석이 말을 이었다.

“윤혁 알지?”

“그럼요. 대한민국 사람이 윤혁 모르면 간첩이지요.”

“윤혁에 대해 조사 좀 해 봐. 언제 어떻게 각성자가 되었는지, 그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형님, 드디어 가장 높은 곳을 향한 질주를 시작하시는 겁니까. 역시 형님의 목표는 남다르리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 시작의 발판을 깔아 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소설을 쓰는 황희준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형님.”

대답이 없다는 것을 눈치챈 황희준이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

기다린 듯 다시 울리는 벨.

처음 보는 전화번호라 바로 거절 버튼을 눌러 버렸다.

두어 번 다시 울렸지만 길드일 거라고 생각했다. 받을 이유가 없었다.

띠링-

[대장, 윤꽃샘입니다.]

눈에 익은 이름이 적힌 문자였다.

다시 울리는 전화.

“여보세요.”

“대장, 오랜만이야.”

그녀의 목소리에 은석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어떻게 제 연락처를 아시고.”

“내가 자네를 먼저 찾아간다고 하지 않았나. 하하하.”

병실에서 들었던 호쾌한 웃음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통화가 힘든 건가?”

“아, 제가 얼마 전에 던전에 들어갔다 왔습니다.”

“역시 우리 헌터님은 부지런해.”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저를 찾으신 건가요?”

“내가 그때 큰 선물을 준다고 했었지.”

“농담 아니었습니까?”

윤꽃샘이 더 큰 소리로 웃었다.

“고스트 던전에서 내 이미지가 어땠길래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난 정말 진지했었는데.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내일 만나서 얘기하지.”

띠링-

그때, 황희준에게서 문자가 왔다.

[형님, 내일 오후, 현기주가 던전에 들어갑니다.]

“어르신, 내일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던전에 다녀와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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