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34화 (34/226)

34화

가디언 길드 팀원의 말에 김성혁의 두 눈이 더 이글거렸다.

‘졸지에 실력 없는 속물이 되어 버렸군. 김성혁.’

김성혁이 은석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 초보 새끼가 뭘 알고 하는 소리야, 아니면 그냥 지껄여 보는 거야?’

답답한지 스태프가 들고 있던 물병을 빼앗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은석이 조용히 물었다. 황희준은 김성혁의 무례함에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 은석이 답답했다.

‘형님! 내가 헌터계의 숨은 고수다. 왜 이렇게 말을 하지 않으십니까. 무엇 때문에 저렇게 굽신거리시는지…….’

혼자 멋대로 상상하고 있는 황희준의 두 눈에 안타까움의 눈물이 고였다.

‘이놈은 또 무슨 생각을 하길래……. 어쭈, 쇼하고 있네.’

황희준은 그를 바라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김성혁을 막아 준 헌터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함께 레이드를 뛰었으면 좋겠군요.”

“저야 불러 주시면 언제든지 달려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은석의 곁에 딱 붙어 선 황희준.

“형님, 그냥 한번 뜨시죠?”

“뜨기는 뭘 떠?”

“아니, 형님 실력이면 여기 가디언 헌터들 모두 무릎 꿇릴 수 있지 않습니까?”

은석이 황희준을 힐끗 쳐다봤다.

“희준아, 여기가 강호 무림도 아니고 무슨 무릎을 꿇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해야지. 쓸데없이 성질부려 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

머쓱해진 황희준은 머리만 벅벅 긁었다.

‘그런 건 던전 안에서 해야 하는 거지.’

“저보다 겨우 세 살 형님이신데, 가끔은 한 20년은 차이 나는 삼촌 같습니다.”

그의 말에 픽 웃음이 나왔다.

“내 영혼이 아저씬가 보네.”

* * *

다음 날 아침, 조깅을 마치고 들어오는 은석의 앞에 김은영이 인상을 잔뜩 쓰고 서 있었다.

“깜짝이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녀는 대답 대신 은석의 코앞에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김은석 헌터님, 이 영상에 대해 할 말이 없으신가요?”

김은영의 휴대폰에서 동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것은 어제 은석이 가디언 길드의 던전 브레이크 현장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장면이었다.

“뉘 집 자식인지 몰라도 잘생겼네.”

그녀를 옆으로 밀며 거실로 들어서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은석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벌써 출근하셔야 할 아버지까지 계신 걸 보고 은석은 무슨 말을 할 건지 직감했다.

김은영이 가까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 이제 아빠한테 혼났다.”

그대로 쪼르르 걸어가 엄마 옆 자리에 앉은 김은영.

“혹시 아침도 안 드시고 저 기다리신 거예요?”

4명 모두 밥 한 숟가락 뜨지 않은 상태였다.

‘동영상을 모두 보셨구나…….’

처음 각성자가 되었을 때 은석은 가족들에게 등급이 낮은 힐러이기 때문에 전투에 나설 일이 없다고 설득했다.

그런데 그렇게 싸우는 동영상을 보셨으니.

‘저런 표정을 지으실 만도 하지.’

아버지가 가만히 서 있는 은석을 불렀다.

“이리 와서 앉아 봐라.”

아버지 맞은편에 앉으면서 은석이 먼저 물었다.

“보셨습니까?”

이왕 알게 되었으니 더는 숨길 필요도 없었다. 아버지가 가벼운 한숨을 쉬며 말을 시작했다.

“영상을 보니 처음에 네가 했던 말과 많이 다르더구나. 내가 알기로는 힐러는 그렇게 싸우지 않는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거냐?”

청안은 소파에 앉아 아침밥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청안은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걸 느꼈는지 슬그머니 일어나 은석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선 제가 F등급 힐러인 것은 맞습니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힐러가 어떻게 그렇게 싸운…….”

김은희가 중간에 끼어들자, 아버지가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던전에서 꽤 괜찮은 검을 발견했습니다.”

“검? 네가 들고 있던 그 검은색 검 말이냐?”

은석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힐러라도 던전 안에서는 자기 몸을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열심히 체력 단련을 하는 거고요. 다행히 검 덕분에 힐러지만 전투 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김은희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의심 가득한 눈빛을 쏘아 댔다.

“그 말은 앞으로도 쭉 동영상에 나온 것처럼 싸울 거란 말이냐?”

은석이 아버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싸울 겁니다. 저는 몬스터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헌터입니다. 힐러라는 핑계로 물러서 있지 않을 겁니다.”

단호한 은석의 표정과 대답.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 말이지…….”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리 강경하니 은석은 헌터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걱정은 되지만 스물다섯이나 되는 아들의 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네 의지는 잘 알겠다. 다만, 영상에서처럼 혼자 나서서 싸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구나.”

아버지의 허락에 은석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시민들이 위험한 상황이라 그랬던 거고요, 던전에 들어가면 혼자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부모님과 김은희는 여전히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그들과 달리 김은영은 무척 신나 보였다.

“김은석 헌터님, 헌터들의 인기가 연예인보다 높은 이때! 작은 SNS 하나 만드시는 건 어떠십니까?”

헌터용 SNS를 대신 운영해 주겠다며 아침 식사 내내 은석을 졸라 댔다.

* * *

그 시각, 불산 길드의 윤혁은 아침 일찍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길드의 대표인 윤혁은 건물의 제일 위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벽을 모두 없앤 넓은 공간 한쪽에 놓여 있는 책상. 아침 일찍 사무실을 찾은 윤혁이 그곳에 앉아 노트북으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고 있었다.

“오늘도 당연히 헌터 검색 순위 1위는…….”

검색창에 윤혁, 자신의 이름을 쳐서 넣었다.

곧 1위부터 10위까지 인기 검색어가 좌르륵 모니터에 떴다.

“뭐야, X발.”

욕지거리를 내뱉는 윤혁.

“왜 내 이름이 하나도 없어.”

몇 번이고 다시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하지만 모니터에 뜨는 것은 처음 들어 보는 김은석이라는 이름뿐이었다.

몬스터를 잡는 동영상과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글만 가득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만으로도 충분한 헌터군요.

-헌터로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인가요?

-저분과 같이 레이드를 했습니다. 실력 오집니다.

영상 아래에 달린 칭찬 일색인 댓글들.

그중에 몇 개의 댓글이 윤혁의 눈에 거슬렸다.

-윤혁을 뛰어넘겠는데.

-외모는 이미 이긴 거 아닙니까?

-솔직히 실력도 나을 듯. 윤혁이야 뭐, 마력 덩어리 쏘아 대는 것밖에 더 있냐? 화려함이 다르네. 화려함이.

윤혁이 노트북을 들고 그대로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진 노트북이 산산조각이 났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 감히 누굴 비교해.”

누구보다 못하다는 말에 민감한 윤혁이었다.

불산 길드의 막내아들.

금수저를 넘어서 최강 다이아몬스 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그에게 없는 단 한 가지는, 재능이었다.

“거지 같은 새끼들이……. 김 비서!”

윤혁의 비서인 김도운은 조금 전부터 문밖에 서 있었다. 안에서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리자, 김 비서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예전에 그가 던진 물건에 맞을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윤혁의 목소리에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얼굴이 붉어져 씩씩거리고 있는 윤혁의 앞에 섰다.

“누군지 알아봐.”

알아보라는 대상이 누군지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윤혁의 질투심.

출근 전 아침 뉴스를 검색하던 김 비서의 얼굴에 그늘이 졌었다. 윤혁이 은석에 대해 물어보기 전에 이미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 놓았다.

그게 윤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김 비서는 쥐고 있던 종이를 책상 위에 펼쳤다.

“이름은 김은석입니다.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헌터이며, 현재 소속된 길드는 없습니다.”

“길드가 없어? 저 정도면 서로 모셔 가려고 안달일 텐데…….”

“마력 측정 결과 등급은 F, 직업은 힐러라고 합니다.”

고개를 들어 비서를 노려보는 윤혁.

“영상 못 봤어? 저렇게 몬스터를 죽이는 놈이 F급 힐러라고?”

“네, 헌터 등록증에는 그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윤혁이 들릴 듯 말 듯한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X발. 역시 마력 측정기가 문제였어. 내가 F등급이라고 나온 것도 말이 안 되는 거였으니까.”

“네? 잘 안 들립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됐고. 전화번호 알지?”

“네, 여기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전화해 봐. 불산 길드에서 계약하고 싶다고 당장 여기로 오라고 해. 불산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데 제깟 놈이 거절할 수 있어?”

김 비서가 자신의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스피커 버튼을 누른 후 은석의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가 울린 후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은석 씨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안녕하십니까. 헌터님. 저희는 불산 길드의 헌터 관리팀입니다.”

은석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헌터님? 불산 길드입니다.”

“그래서요?”

냉랭한 은석의 목소리에 윤혁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김 비서 역시 잠시 당황한 듯 음, 어라는 단어만 내뱉었다.

“영상을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저희 불산에서는 헌터님의 뛰어난 전투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 비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 너머에서 들리는 은석의 콧방귀.

“제가 불산에서 테스트를 받았었나요? 평가는 무슨 평가를 해요. 건방지게.”

건방지다는 단어를 들은 윤혁이 벌떡 일어섰다.

금방이라도 휴대폰을 집어 던질 듯 보였다.

김 비서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제발 조용하기를 간청했다.

“제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네요. 죄송합니다. 불산 길드에서 김은석 헌터님께 스카우트 제안을 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불산 길드에 들어갈 마음 없습니다.”

뚜-

거절 의사를 말한 뒤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으악! 이 개새……!”

윤혁이 비서의 휴대폰을 들어 힘껏 던졌다. 그대로 방탄유리에 부딪혀 처참히 부서진 휴대폰.

비서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감히 불산 길드의 제안을 거절해? 이 새끼, 지금 용병이야?”

“네, 협회에 등록된 용병으로 레이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협회에 용병 요청하는 던전이 언제야?”

“곧 신입 교육용으로 던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때 용병을 신청할 거고요.”

“협회에 미리 말해 놔. 무슨 일이 있어도 김은석 저 새끼, 불산 길드 용병 명단에 넣으라고.”

“알겠습니다.”

비서는 부서진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사무실을 나갔다.

윤혁은 주먹에 마력의 힘을 실어 두꺼운 원목 책상을 내려쳤다.

콰광-

원목 책상이 큰 소리를 내며 두 동강으로 부서져 내려앉았다.

“내가 모조리 다 들이마셔 먹어 줄 테니까. 기다려라. 건방진 새끼.”

* * *

“불산 길드 헌터 관리팀? 웃기고 있네. 윤혁이 전화하라고 했겠지.”

은석이 죽기 직전에 본 것은 사람을 죽여 흡입하는 윤혁이었다.

그의 목을 잡는 순간, 손에 마력 측정기라도 있는 듯 은석의 레벨을 비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윤혁의 별명이 ‘무한의 마력’이었지.’

윤혁은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마력을 알아낼 수 있었다.

손에서 나온 연기가 육체를 뒤덮으면 순식간에 사람이 연기로 변했다.

그리고 그것을 흡입했다.

‘그렇게 채운 마력으로 최고 헌터의 자리까지 올라간 거겠지.’

상대방의 생명과 마력을 빼앗는 스킬, 그것이 은석이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아직 호랑이 소굴에 들어갈 때는 아니지.’

은석이 황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형님.”

눈앞에 휴대폰을 놔두고 그의 전화만 기다린 듯 빠르게 받는 황희준.

“너 인스턴트 던전 나온 거 입찰받을 수 있겠어?”

“그럼요. 컴퓨터로 하는 것 중에 제가 못 하는 건 없습니다.”

180도 다른 자신감 넘치는 황희준의 목소리. 던전 밖에서 황희준의 목소리는 늘 자신감이 넘쳤다.

“그럼 내가 돈 보내 줄 테니까 인스턴트 던전 하나만 사라.”

“요즘 나오는 던전이 많이 없어서 가격이 비싼 편입니다. 형님.”

띵동-

은석은 대답 대신 황희준의 계좌로 마나석을 판 돈을 입금했다.

“그 정도면 낙찰받을 수 있겠어?”

“예전 같았으면 충분했지만……. 뭐! 제 능력을 한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형님. 제가 따끈따끈한 인스턴트 던전 하나 잡아오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황희준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풀었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다음 날 아침,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형님, 이틀 뒤에 생기는 인스턴트 던전을 낚아챘습니다. 장소는 현재 기차가 서지 않은 폐역입니다. 오후 7시에 게이트가 열리니까 제가 4시까지 형님 댁 앞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전에 내가 준 단검 잊지 말고 꼭 챙겨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