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저 새끼, 누구야?”
가디언 길드 팀장 김성혁이 소리쳤다.
던전 안이든, 밖이든 현재 이곳의 주인은 가디언 길드다.
‘다시 살아난 몬스터 때문에 미치겠구만, 웬 미친놈까지 나타나?’
김성혁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클리어 실패에 대한 책임과 비난을 감수하고 계획한 던전 브레이크였다.
누가 던전 공략을 실패했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김성혁이 선택한 것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활약상을 보여 주는 것.
전문 영상 기사를 근처 건물과 구경꾼들 사이에 미리 심어 두었다.
인기 있는 BJ를 섭외해 실시간 방송도 내보내고 있었다.
내일이면 인터넷에는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가디언 길드에 대한 비판이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혼란을 빠르게 제압한 김성혁의 활약에 관한 기사와 동영상이 넘쳐날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말이다.
‘저 새끼가 다 망치고 있잖아.’
이빨을 꽉 깨물며 은석을 노려보는 김성혁.
그의 눈에 은석의 곁으로 가지 못한 채 멀뚱히 서 있는 황희준이 들어왔다.
“야! 가서 저 새끼 끌고 와.”
황희준이 가디언 길드 헌터들에게 양팔을 잡힌 채 끌려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제가 뭘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큰소리쳤지만 김성혁의 눈빛에 기가 죽어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김성혁이 눈동자를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는 황희준 앞으로 다가갔다.
“저 새끼, 누구야?”
“네?”
“뭘 ‘네’야? 조금 전에 네가 저 새끼 따라다니는 거 다 봤어.”
“아, 은석 형님 말이군요.”
“은석 형님?”
“네, 제가 모시고 있는 김은석 헌터님이십니다.”
김성혁이 고개를 돌려 가디언 길드 스태프를 향해 소리쳤다.
“각성자 협회에 연락해서 김은석이라고 등록된 헌터 있나 알아봐. 나이는 이십 대.”
다시 황희준을 노려보는 김성혁.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어느 길드 소속이야?”
“저요?”
김성혁이 눈에 힘을 빡 주며 쳐다봤다.
“네 형님 말이야.”
“저희 은석 형님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십니다. 워낙 실력이 출중하시고 솔로 플레이를 좋아하시는 외로운 방랑자라고나 할까요.”
김성혁이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지X한다. 솔로 플레이를 해? S급이라도 된다 이거야?”
은석의 등급을 알고 있는 황희준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새끼 봐라. 입 다물어? 진짜 S급이야 뭐야!”
가디언의 스태프가 김성혁의 곁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팀장님, 찾았습니다. 이름은 김은석이고 각성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F등급의 힐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뭐? F급 힐러? 제대로 알아본 거 맞아? 네 눈깔에는 저게 F급 힐러로 보이냐?”
불같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스태프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게, 협회에는 그렇게 등록되어 있다고…….”
짜증 가득한 발길질로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통 하나를 힘껏 걷어찼다.
김상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누구 하나 그에게 말을 건넬 엄두도 내지 못했다.
‘X발, 진짜 F급 힐러라면 그게 더 쪽팔리잖아.’
김성혁은 점점 더 미칠 것 같았다.
길드 내 입지를 다지기 위해 몇 달을 준비한 무대였다.
그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듣지도, 보지도 못한 놈에게 빼앗기게 생겼다.
그것도 무려 F급에게.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본 은석은 구렁이의 긴 이빨을 피하는 중이었다.
은석을 향해 내리꽂히는 구렁이의 이빨.
해머가 등을 타고 올라가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바닥을 향하던 구렁이의 머리에 가속도가 붙었다.
콱-
두 개의 이빨이 그대로 땅속 깊숙이 박혀 버렸다.
바닥에 붙어 꼼짝달싹도 못 하게 된 구렁이의 몸통 위에 해머가 서 있었다.
“대장, 터트릴까요?”
“그래, 안에 숨어 있는 악귀 놈을 끄집어내야지.”
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해머가 망치를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던 상체가 펑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김상혁이 욕을 내뱉었다.
“저건 또 뭐야? 염동력? 손도 안 대고 몬스터를 터트린다고?”
해머가 무기에 반동을 주기 위해 뒤로 넘겼다.
“대장, 마지막입니다.”
해머의 말에 은석이 보호막을 발동시켰다.
“쉴드.”
해머의 마지막 공격에 구렁이의 몸통이 큰 소리를 내며 터졌다.
갈기갈기 찢어진 껍질이 사방으로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덜너덜해진 몸통이 양쪽으로 쩍 갈라졌다.
그 안에는 하급 악귀가 온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해머가 악귀의 머리채를 잡고 몸통 밖으로 꺼내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은석이 악귀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급 악귀 주제에 저런 보스 몬스터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고개를 들어서 은석을 노려봤다.
악귀의 눈에 그가 만만해 보였던 걸까.
눈을 번뜩이고 이빨을 드러내며 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걱-
귀검으로 악귀를 사선으로 베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자신의 잘린 몸이 연기로 사라지는 것에 놀란 악귀.
“인간이 널 소멸시키다니. 놀랍지?”
악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내며 이내 사라졌다.
[하급 악귀를 소멸하였습니다.]
악귀의 소멸과 동시에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던 구렁이의 사체도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은석이 주변을 둘러보니 귀물과 원귀들은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단 하나만 빼고.
“조금 전에 잡귀 찌르던 놈 맞지?”
은석이 해머에게 물었다.
해머 역시 망자의 기척을 느끼고 그를 보고 있었다.
“맞습니다.”
“데리고 와.”
해머가 망자에게 다가갔다.
몇 마디 나눈 후 해머와 함께 은석의 곁으로 온 망자.
[망자 유가(家), 33세, A급 헌터, 기사(창술)]
[‘이자는 어떻게 악귀를 죽일 수 있는 거지?’]
망자가 해머에게 물었다.
“저자는 살아 있는 사람인데 나를 볼 수 있습니까?”
“눈이 있으니까 볼 수 있지.”
은석의 대답에 망자가 화들짝 놀랐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죽었으면 저승에 가야지. 혼자서 무슨 허튼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은석이 자신을 보는 것도 모자라, 질문까지 한다는 것이 신기한 망자.
“혹시 당신은 무당입니까?”
망자는 죽은 자신을 볼 수 있는 은석이 무당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의 질문에 은석은 어이없는 한숨을 뱉었다.
“꺼져. 해머, 가자.”
잘못 말했음을 눈치챈 망자가 은석을 잡았다.
“미안합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망자의 사과에 은석이 다시 물었다.
“다른 놈들처럼 도망가지 않았다는 건 우리를 기다린 거 아니야? 뭐가 궁금한데?”
망자는 입을 꽉 다물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저기, 제가 죽었다고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왜 초면에 반말하십니까? 나이도 저보다 어린 것 같은데.”
옆에 서 있던 해머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너도 반말해. 됐지?”
간단명료한 은석의 대답.
망자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당신들은 악귀와 싸울 수 있는 겁니까? 저는 악귀를 죽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합니다. 그리고…….”
해머를 쳐다봤다.
“저자도 저처럼 죽은 자인 것 같은데…….”
해머가 가슴을 한껏 내밀며 턱을 치켜들었다.
“내 부하가 되면 가능해.”
“네?”
“음, 부하는 그렇고 팀원으로 바꾸자. 우리 팀이 되면 싸울 수 있어.”
“어떻게 하면 팀이 됩니까?”
질문하는 망자에게 저승 헌터 시스템을 통해 귀속 제안을 보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놀란 망자.
“이, 이게 뭐죠? 귀속령?”
“내 귀속령이 되면 싸울 수 있지. 어때? 생각 있어?”
망자가 기분이 나쁜 듯 메시지를 손으로 치우는 행동을 반복했다.
“……저는 누구에게 속해서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귀속령을 노예라고 생각했는지 망자의 인상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 모습에 은석이 픽 웃었다.
“싫으면 말고.”
그때, 뒤에서 은석을 부르는 황희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몬스터와 싸울 때보다 더 골치 아픈 사회생활을 하러 가 보실까.”
* * *
“형님. 가디언 길드의 김성혁이라는 팀장, 성격이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황희준은 가디언 길드 쪽으로 걸어가는 내내 걱정스러운 듯 한숨을 내뱉었다.
은석은 대답하지 않고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김성혁, X랄 같은 성격은 여전한가 보네.’
은석은 이미 김성혁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 가디언 길드의 용병으로 그와 레이드를 몇 번 뛴 적이 있었다.
그때는 팀장이 아니었지만, 팀장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성질이 더러웠었다.
‘일반 헌터일 때도 그랬는데 팀장까지 달았으니 X랄이 풍년이겠지.’
은석의 예상대로 김성혁은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 보였다.
[김성혁, B급 헌터, 탱커]
[‘저 새끼는 누구야?’]
은석이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가 바닥에 닿을 것처럼 깊숙이 숙였다.
“가디언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김성혁뿐만 아니라 황희준과 가디언 길드 사람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나서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가디언 길드 헌터분들이 너무 위험한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은석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사과하는 은석의 모습에 잠깐 놀랐지만 역시 그냥 넘어갈 김성혁이 아니었다.
“이 새끼야.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이 감히 내 구역을 넘봐?”
은석이 다시 한번 더 고개를 숙였다.
“맞습니다. 가디언 길드 사냥에…….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지난번 던전에서 잡아 본 놈이었고, 더 늦었다가는 크게 다치시는 분까지 나올 것 같아서 실례인 줄 알지만 뛰어 들어갔습니다.”
“허! 이 새끼 봐라. 사과하면 끝인 줄 알아?”
황희준이 은석의 앞으로 나섰다.
“이보십시오. 저희 형님이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습니까? 위험한 것 같아 도와주려고 목숨 걸고 싸운 사람한테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황희준의 뒤에 서 있던 은석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잘한다, 황희준. 조금만 더 해라. 분위기를 보아하니 가디언 길드 쪽에서도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넌 저리 비켜, 새끼야.”
김성혁이 황희준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팀장님, 이제 그만하시죠. 몬스터도 잡았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이렇게 화를 내십니까.”
가디언 길드 헌터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헌터와 스태프들 사이에서 김성혁의 태도를 비난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
가디언 길드가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와 싸우고 있을 때.
은석은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남자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김성혁 팀장이 잘 나오게 잡아. 다른 헌터들은 필요 없고.”
“이쪽에서는 그림이 잘 안 나오는데…….”
“그림은 상관없어. 어차피 다른 곳에서도 우리처럼 찍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일반인이 찍은 것처럼 적당히 어설프게 찍으면 돼.”
남자들의 말을 들은 은석이 주변을 천천히 돌아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싸우는 장면에 따라 표정이 변하거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영상만 집중해서 찍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 이 새끼 봐라. 고의로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켰다는 거잖아. 사람들 목숨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이거지.’
은석의 두 눈에 안광이 번뜩였다.
“너희들은 억울하지도 않아? 우리가 다 잡은 물고기를 저 새끼가 낚아채 갔는데도?”
김성혁을 말리던 헌터가 그들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팀장님, 저 사람이 마나석을 빼 가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위험한 저희를 도와준 겁니다. 낚아채기는 뭘 낚아챘다는 말씀입니까?”
헌터의 물음에 김성혁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이유를 말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김성혁이 왜 그렇게 은석에게 화를 내는지 말이다.
“마나석이라뇨. 이 던전은 가디언 길드의 것입니다. 저는 절대 그런 것에 욕심을 내서 저 뱀과 싸운 것이 아닙니다.”
은석의 말에 황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손뼉을 쳤다.
“혹시, 시민분들이 찍고 계신 동영상 때문에 그러시는지…….”
은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헌터가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저희는 홍보를 이용해서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실력 없는 속물들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