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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30화 (30/226)

30화

“불 좋지. 그런데 우리도 그 개미구멍 안에 같이 있는데? 불을 지르면 다 같이 죽자 이거냐?”

“그러네…….”

금세 시무룩해진 윤꽃샘.

그때 김정훈이 나섰다.

“아닙니다. 괜찮은 방법 같은데요.”

“편들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던전핵을 잡을 방법만 생각했었는데, 핵을 담고 있는 개미 알을 없애는 방법도 있었네요. 그런데…….”

말끝을 흐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김정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스트 던전에 들어온 후 어찌 된 일인지 마력이 전부 사라진 것 같습니다.”

“네? 마력이요?”

“처음 은빛 개미를 마주했을 때 싸우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는 개미를 피해서만 다녔고요.”

시무룩한 김정훈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 거야?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있는 거야?’

은석이 김정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제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전처럼 싸우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절대 믿을 수 없지만요, 이 아저씨가 힐러래요.”

은석이 김정훈의 몸 안으로 생력을 불어넣었다.

김정훈은 예전에 받았던 힐과 전혀 다른 낯선 느낌에 양손을 꽉 맞잡았다.

* * *

“그동안 개미들이 시체를 옮기는 시간을 체크해 왔습니다. 지상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후, 시체들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조금 전에 그런 소리가 들렸으니 곧 다시 개미들이 움직이겠군요.”

“네, 지나간 후에 여왕개미 굴로 가시죠.”

개미들이 모두 지나가길 기다리는 동안, 은석은 윤꽃샘에게 손도끼 휘두르는 법을 가르쳤다.

“아직까지 믿을 수가 없어요. 힐러라니.”

“야! 도대체 힐러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계속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음, 뭐냐. 힐러란 성스럽고……. 우아하고…….”

윤꽃샘의 말을 듣던 은석이 웃음을 터트렸다.

“됐고, 이거나 잡아.”

그녀에게 손도끼를 건넸다.

제대로만 내려찍으면 크기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무기가 도끼였다.

은석의 시범을 본 후에 죽어 있는 개미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찍었다.

쩌적-

죽었지만 여전히 단단한 개미의 껍질이 한 번에 갈라졌다.

“우와! 나 좀 멋있는데.”

“멋있게 한번 싸워 봐. 그렇게 헌터가 소원이었으니.”

스스-스

한 무리의 개미가 지나가고 있었다.

은석과 윤꽃샘, 김정훈은 벽에 바싹 기대어 섰다.

마지막 개미가 코너를 도는 순간을 기다렸다.

“지금입니다.”

김정훈의 신호에 빠르고 조용하게 움직였다.

목적지는 반대편 통로 끝에 있는 여왕개미의 굴이었다.

* * *

카아악-!

은석이 철근을 개미의 머리 안으로 찔러 넣었다.

검은 개미와 전갈 귀속령이 살아 있는 은빛 개미를 물어뜯었다.

“귀속.”

늘어난 검은 개미들이 몰려오는 은빛 개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은석이 죽은 개미 껍질을 끌고 와 통로를 막았다.

윤꽃샘 역시 은석이 가르쳐 준 대로 손도끼를 들어 개미 다리를 찍었다.

김정훈은 그 옆에서 화염으로 개미를 태웠다.

윤꽃샘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김정훈이 씩 웃으며 짝 소리가 나게 마주쳤다.

“오! 환상의 콤비 플레이.”

개미 껍질로 막은 통로 반대편에서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셋은 빠르게 뛰어 여왕개미의 굴 안으로 들어갔다.

“휘유, 엄청나군.”

김정훈의 말대로 여왕개미의 굴은 좁은 통로와 달리 굉장히 넓었다.

그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의 개미 알이 가득 차 있었다.

“저게 여왕개미인가요?”

김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석이 가리키는 곳은 여왕개미 굴의 중앙.

그곳에는 미라 같은 여왕개미가 동상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끊임없이 알을 쏟아 내고 있는 걸 보면 죽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아저씨, 던전 보스는 원래 이래요? 분위기가 완전 호러 영화 같은데요.”

윤꽃샘의 말대로였다.

여왕개미 굴은 마치 사진의 한 장면 같았다.

냄새도 없었고, 소리도 없었다.

일정하게 굴러떨어지는 알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스슥- 스슥-

일행이 들어온 입구 반대편에 또 하나의 입구가 있었다.

그곳에서 일개미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은석과 윤꽃샘, 김정훈은 빠르게 개미 알 사이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굴 안으로 들어온 일개미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씹고 있었다.

툭-

일개미가 씹던 것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까이 서 있던 윤꽃샘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개미가 씹다가 놓친 것은 인간 다리의 일부분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그때는 여왕개미의 식사 시간이었다.

김정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식사 시간이 지났어야 하는데. 내 계산이 틀린 건가? 더 정확하게 계산했어야 했어. 내 잘못이야…….”

김정훈은 개미굴에 떨어진 후 매일 은신처와 여왕개미 굴을 반복해서 오갔다.

던전 안이라 시계도 휴대폰도 무용지물이었다.

땅속에 있어서 해가 지고 뜨는 것도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는 오직 감각에 의지해 시간을 계산했다.

지상에서 시체들이 떨어지는 소리, 개미들이 죽은 사람들을 물고 옮기는 순간과의 간격, 그리고 여왕개미가 먹이를 먹는 시간을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떨어지는 소리가 난 후 78번 만에 개미가 움직였다. 저번과는 열 번 정도 차이가 나네.’

손가락을 꼽아가며 숫자를 헤아렸다. 물론 정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똑같은 경로를 움직이면서 개미들을 관찰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갔다.

‘탈출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김정훈은 점점 지쳐 갔다.

반복되는 일상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신이 개미들의 식량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명색이 헌터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 던전을 통과해도 죽지 않는 각성자가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내가 고스트 던전에 떨어진 것은 이곳을 클리어하라는 운명이다. 다른 헌터가 올 때까지 나는 완벽하게 가이드라인을 준비해야 한다.’

김정훈은 그렇게 버텨 왔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그토록 바라던 단 한 사람, 김은석이 온 것이었다.

“헌터님, 이러다가 들키면 어떡해요?”

윤꽃샘이 김정훈의 곁으로 다가왔다.

생각에 잠겨있던 김정훈이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곧 먹이 시간이 끝날 테니, 일개미가 통로를 빠져나가면 그때 공격하도록 하죠.”

은석이 보이지 않아, 김정훈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개미 알에 양손을 대고 그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이상하십니까?”

김정훈이 물었다.

“아닙니다. 그냥 좀, 이렇게 큰 개미 알은 처음 봐서 신기하기도 하고요.”

투둑-툭.

먹이 섭취를 마친 여왕개미가 조금 전보다 더 많은 알을 쏟아 냈다.

개미 알은 신기하게 자기 자리를 알고 있는 듯 스스로 바닥을 굴러가 위치를 잡았다.

“어? 저기!”

굴러가던 개미 알을 보던 윤꽃샘이 그 안에서 반짝이는 던전핵을 찾았다.

세워진 개미 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던전핵은 몇 번 더 깜빡이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주변의 개미 알을 빠르게 둘러봤다.

반대편 알 속에서 깜빡이는 던전핵을 다시 찾았지만, “저기! 던전핵!”

깜빡거리는 던전핵이 다시 사라졌다.

이번에는 윤꽃샘의 바로 앞에 놓인 개미 알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 그 생각뿐이었다.

윤꽃샘이 개미 알 속으로 손을 푹 찔러 넣었다.

그 모습을 본 김정훈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손은 개미 알을 뚫고 들어가 버렸다.

끼-엑-

개미 알에서 찢어질 듯한 괴음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여왕개미 굴을 나가던 일개미들이 괴성을 질러댔다.

윤꽃샘의 위치를 확인한 일개미 한 마리가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은석이 뛰어가 철근으로 개미 머리를 쳐 냈다.

퍼억-

반대쪽으로 휙 꺾인 개미의 머리를 향해 철근을 쑤셔 넣었다.

“귀속.”

은석의 귀속령이 된 검은 개미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은빛 개미와 싸우기 시작하는 은석의 검은 개미.

개미 알의 괴음을 들은 개미 무리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굴 밖에 있던 검은 개미들과 전갈을 불렀다.

“싸워라.”

은석의 명령에 검은 무리가 굴 입구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으아아! 아저씨.”

윤꽃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개미 머리에 꽂힌 철근을 뽑아내 힘껏 던졌다.

휘잉- 퍽!

은석이 날린 철근이 윤꽃샘을 공격하던 개미의 몸통을 그대로 뚫었다.

“이 새끼는 뭐 하는 거야!”

개미 알을 태워야 할 김정훈이 보이지 않았다.

은석이 윤꽃샘을 향해 뛰어가며 주변을 둘러봤다.

김정훈은 개미 알 사이에 서 있었다.

계획대로 손안에 화염은 피웠으나, 부들부들 떨고만 있을 뿐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꺄-악!”

윤꽃샘의 비명이 들렸다.

개미 더듬이에 맞아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벽에 부딪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신을 잃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검은 개미로 둘러싸인 은석이 살아 있는 은빛 개미에게로 다가갔다.

은석은 그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존재였다.

겁을 먹어 공격성을 잃은 개미들이 굴을 빠져나가기 위해 통로로 한꺼번에 몰려가 버둥거렸다.

“눈 떠 봐.”

은석이 윤꽃샘을 일으켜 흔들었다.

“아저씨, 저 죽을 뻔했어요.”

“절대 안 죽으니까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고.”

여전히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김정훈에게로 달려갔다.

은석이 개미들과 싸울 동안, 김정훈은 화염을 든 채 떨고만 있었다.

“개미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 같습니까?”

은석의 물음에 김정훈이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여왕개미가 사람들을 먹고 난 다음에 낳은 알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셨죠? 저도 봤습니다.”

“흐, 흐흑.”

은석의 말에 김정훈이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이미 던전에 떨어졌을 때부터 죽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구하고 싶었습니다……. 시신이라도 온전하게 가족들에게 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저는 몬스터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헌터니까 죽은 사람이라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지금 지키고 계시지 않습니까. 헌터님이 포기하지 않고 던전핵의 존재를 알아낸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여왕개미 굴까지 올 수 있었던 겁니다.”

김정훈은 여전히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의 시신조차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헌터님이 던전을 클리어하면 더는 사람들이 고스트 던전에 빠져서 죽지 않을 겁니다.”

은석이 김정훈의 뒤에 서서 양쪽 어깨를 잡았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시는 거지요.”

김정훈은 결심한 듯 양손에 힘을 모았다.

은석도 생력을 넣기 시작했다.

화-악!

김정훈의 손에서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연기도, 메케한 냄새도 없었다.

마법사가 지정한 것 외에는 태우지 않는 마법의 푸른 불꽃.

수천 개의 개미 알이 푸른 화염 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은석이 불에 타고 있는 개미 알을 천천히 살펴봤다.

‘저기다.’

화염 속에서 반짝이는 던전핵을 발견했다.

은석이 불타고 있는 개미 알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더 이상 옮겨 다닐 개미 알이 없어진 던전핵이 은석에게 잡혔다.

[은빛 개미굴의 핵을 잡으셨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푸른 화염 속에서 은석이 핵을 잡은 오른팔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잡았다!”

그런 은석을 보며 윤꽃샘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크. 저 얼굴이 던전에서 볼 법한 비주얼이냐. 화염이 무슨 스포트라이트도 아니고. 훈훈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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