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끄읍, 제가 모셔다드려야 되는데.. 크윽, 미안해서 어쩌지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백재현과 이미 인사불성이 된 조민우를 택시 안으로 구겨 넣었다.
백재현이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헌터님! 김은석 헌터님! 곧 저희 길드에서 던전 면접을 합니다.”
“던전 면접요?”
“면접 보시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어차피 던전에 들어가야 하니까. 저의 길드에 용병으로 지원해 주시면 어떨까 싶어서.”
은석이 백재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 주십시오.”
백재현이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 은석에게 내밀었다.
“연락 주십시오. 팀장님.”
택시를 보낸 후, 은석이 다온의 이름을 불렀다.
“다온아, 나와.”
“나 여기 있어.”
조금 전 은석의 모습에 주눅이 든 다온. 쭈뼛거리며 은석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너, 네 정체가 뭔지 알아?”
[하급 귀물, 석우]
간단한 정보지만 은석은 다온이 인간의 영혼은 아닐 거라 짐작했다.
“나? 다온이지. 엄마가 만든 예쁜 다온이.”
“엄마가 만들었어?”
“어. 엄마가 날 만들고 이렇게 말했어. 아가, 예쁜 우리 다온아. 네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란다. 저 물속에 들어가서 다른 아이가 멀리 흘러가지 못하도록 꽉 잡고 있어야 해.”
다온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빙의된 듯 전혀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온이 만들어진 마을 옆에는 넓었지만 깊지 않은 강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자주 빠져 죽었다.
어른들은 그 강에 물귀신이 산다고 겁을 줬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여름이 올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아이들이 빠져 죽었다.
물살도 세지 않은 강이었지만 희한하게 시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진짜 물귀신이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이 엄마를 찾아왔어.”
답답한 사람들은 마을 밖 무당을 찾아갔다. 더는 아이들이 빠져 죽지 않게 해 달라고.
만약에 빠져 죽더라도 아이의 시체만이라도 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엄마가 말했어. 다온아, 물속에 들어가면 꽉 잡고 있어야 해. 물귀신이 아이들의 영혼을 끌고 가지 못하게 힘껏 잡고 있어.”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난 착한 아이니까 진짜 꽉 잡고 있었지.”
“영혼을 잡았다는 거야, 시체를 잡고 있었다는 거야?”
무당은 사람들의 염(念)을 담은 길쭉한 돌을 준비했다.
돌에 아이의 형태를 새겨 넣고 다온이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다.
며칠 뒤 윗마을 아이가 또 물에 빠져 죽었다.
그곳에 다온을 던져 넣었다. 신기하게도 돌을 놓은 곳 근처에서 아이의 시체가 떠올랐다.
“지금도 아직 그 강 아래에 있는 거야?”
“어, 난 착하게 아직 거기 있는데. 이제 엄마가 시킨 대로 할 수가 없어.”
“왜?”
“이제 잡을 게 없어. 난 진짜 잘 잡을 수 있는데 더는 잡을 게 없어. 그래서 난 너무 심심해. 힝.”
다온이 코를 훌쩍였다.
“네가 던져진 강이 어딘지 알아?”
은석의 질문에 다온이 활짝 웃었다.
“왜? 소원 들어주려고?”
“어딘지 설명이나 먼저 해.”
다온이 은석의 앞으로 날아가, 이마 중앙에 희미한 손가락을 댔다.
화악-
순간 은석의 머릿속에 강과 주변 풍경이 펼쳐졌다.
“오케이, 내일 오후에 한번 가 보자.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
* * *
아침 운동을 마치고 거실에 들어온 은석의 눈에 한껏 늘어지게 누워 있는 청안이 보였다.
“아주 팔자가 늘어지셨어.”
누워 있는 청안의 옆에 선 은석이 발로 청안을 꾹꾹 눌렀다.
“상전이야. 상전.”
퍼억-
김은영의 주먹이 은석의 등을 강타했다.
“아프다고!”
“야! 우리 파돌이 왜 괴롭혀? 죽고 싶어?”
“파돌이? 이름이 뭐 그따위야.”
“은돌이 데려온 파란 눈동자 고양이. 줄여서 파돌. 괜찮지 않아?”
“나는 찰스라고 부르자고 했다.”
커피를 들고 부엌에서 나온 김은희가 말했다.
“촌스럽게 파돌이가 뭐야. 난 그냥 찰스라고 부를래.”
청안이 자신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이빨을 드러내며 갸르릉거렸다.
웃는 게 꼴사나워 보여 은석이 청안을 지그시 밟았다.
퍼퍼벅-
김은희와 은영, 두 누나의 주먹이 양쪽에서 날아들었다.
다온이 보여 준 장면 속 건물들을 검색했다.
인터넷 지도로 보자,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과 비슷한 장소가 나타났다.
“여기군.”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자동차 없이 가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희준이를 부를까.”
다온이는 황희준에게 보이지 않는 귀물이었다.
은석은 휴대폰을 들고 잠시 망설이다 도로 집어넣었다.
산 사람이 이런 귀물들과 얽히면 좋을 것은 없으니까.
이른 점심을 먹고 나섰지만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변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빨리 찾아야겠어.’
높은 절벽 옆으로 흐르는 강이 보였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다.
현재는 근처에 국도가 뚫려 있었다.
깊지는 않았지만 넓은 강의 수심은 가장 깊었던 곳만 제외하고 대부분 말라 가고 있었다.
그곳은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외진 곳으로 변했다.
“저거 때문이야. 저거 때문에 내가 더 심심해졌어.”
다온이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녹슨 팻말을 가리켰다.
표지판에는 <수영 금지, 익사 주의>라고 적혀 있었다.
표지판을 넘어뜨릴 것처럼 발로 차는 행동을 반복했다.
“이제는 여기서 익사하고 싶어도 못 하겠는데.”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성인 남자의 허리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
“이것도 곧 말라 없어질 것 같고.”
“물이 없어! 물이! 그래서 내가 너무 심심하다고!”
석우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다온의 기운이 달라졌다.
“해머, 나와라.”
“대장. 부르셨습니까.”
은석이 물 안을 가리켰다.
“저기 들어가면 작고 길쭉한 돌이 바닥에 있을 거야. 그거 가져와.”
“네.”
해머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참이 지났지만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해머의 모습에 은석이 강 쪽으로 걸어갔다.
고개를 내민 해머.
“대장, 안 움직입니다. 잡았는데 떼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 내가 직접 해야겠군. 수고했어. 소환 해제.”
은석이 신발을 벗고 직접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온이 석우가 위치한 물 위에 서서 즐거운 듯 킥킥거렸다.
천천히 걸어 들어가자, 웅덩이가 파인 것처럼 순식간에 수심이 깊어졌다.
‘이곳인가.’
무릎을 굽히고 손을 넣어 바닥을 더듬거렸다.
다온이 은석을 재촉하듯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보지 않고 석우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잠수를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은석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허리를 굽혀 머리를 강바닥을 향해 밀어 넣었다.
밖에 있던 다온이 물속에 가라앉은 석우 위에 앉아 있었다.
손을 뻗어 석우를 잡았다. 손안에 완전히 들어오는, 생각보다 작은 크기였다.
석우를 쥐고 일어서려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작고 긴 강돌일 뿐이었는데 잡히기만 할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은석은 점점 숨이 막혔다. 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고개를 들려고 했지만, 바닥에서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읍, 으읍!”
은석의 입에서 공기 방울이 빠져나왔다. 고작 허리밖에 오지 않는 마른 강에서 익사를 한다고?
움직이지 않은 손을 내려다봤다.
은석의 눈에 다른 모습으로 변한 다온이 들어왔다.
둥글둥글했던 손에서 길고 뾰족한 손톱이 생겨났다. 처음 만났을 때 잠깐 봤었던 이빨이 잔뜩 난 입은 그때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손톱과 이빨을 이용해 은석의 손을 꽉 물고 있었다.
숨이 찬 은석이 버둥거렸다.
‘저 새끼가.’
다온의 손톱이 자라며 은석의 손등을 파고 들어가자 찌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순간, 은석의 팔찌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손을 누르던 힘이 사라지자, 은석이 빠르게 물 밖으로 나와 고개를 들었다.
“후하, 흡……. 하.”
숨을 들이고 내쉬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며 다온을 찾았다.
“어디 있어? 나와!”
다온은 강물 속에서 눈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날 죽이려고 해? 죽고 싶어!”
숨이 막혔던 느낌이 생생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다온을 향해 더 크게 소리 질렀다.
“미안……. 진짜 오랜만에 꽉 잡을 게 생겨서 나도 모르게. 미안해.”
물속에서 봤던 악귀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은석이 팔찌를 들여다봤다. 푸른색의 문양이 팔찌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츄르라도 사다 줄까.’
어느새 달도 없는 깜깜한 밤이 되었다. 은석이 가방에서 랜턴을 꺼냈다.
“너! 한 번만 더 그딴 짓 하면 청안이 먹이로 줄 테니까. 꼼짝 말고 여기 있어라.”
기가 죽은 채 강가에 앉아 있는 다온에게 경고를 했다.
랜턴으로 강을 비추며 다시 걸어 들어갔다. 이번에는 손쉽게 석우를 건져 낼 수 있었다.
흐르는 강물에 마모되어 사람의 형체는 이미 사라졌고, 다온의 흐린 영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다온이 기쁜 듯 소리를 지르며 은석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은석이 석우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온이 조잘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 * *
“김은석 헌터님, 백재현입니다.”
“네, 팀장님.”
“저희 던전 면접 일정이 잡혔습니다. 혹시 마음이 바뀌신 건…….”
마음이 급했던 백재현이 아침 일찍 은석에게 전화했다.
한울 길드에게 은석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보게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데리고 오라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
“아닙니다. 저도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먼저 제안을 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지요.”
백재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3일 뒤에 레이드 일정이 잡혔습니다. 장소는 문자로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혹시 그때 같이 계셨던 분도 함께 들어가야 하나요?”
황희준에 대해 물었다.
“아니요. 이번에는 저만 갑니다.”
“그러시군요. 이번은 일반적인 던전 레이드가 아니라 따로 용병을 모집하지 않거든요. 혹시나 같이 들어가시길 원하시면 제가 말을 해 놓으려고 여쭤 봤습니다.”
“팀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전에 만났었던 조민우 헌터님도 이번 던전에 들어가시나요?”
“지원자들을 인솔하는 역할로 들어가십니다. 그건 왜…….”
“제가 조민우 헌터님의 팬이라.”
“아! 그랬었죠. 이번 던전에서 조민우 헌터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 보십시오.”
“네, 팀장님 덕분에 존경하던 헌터님과 같은 던전에 들어가 보네요.”
은석의 인사치레에 기분이 좋은 듯 백재현이 껄껄 웃었다.
전화를 끊고 은석은 곧바로 저승에 있는 무(無)의 훈련장을 들어갔다.
‘일단 좀 달리고 시작할까.’
길게 뻗은 조깅 트랙을 떠올리며 몸을 풀었다.
어느새 곁에 나타난 해머.
“오셨습니까. 대장.”
“그래, 훈련 시작하자.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몸 좀 풀어놔야지.”
끝이 보이지 않는 트랙을 셀 수 없을 만큼 달렸다.
더는 힘들어서 못 달리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최 차사가 나타났다.
‘저승차사라 그런가 용하네. 딱 달리기 멈추는 시간에 맞춰서 오다니.’
“스승님, 오셨습니까?”
해머가 최 차사를 보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어? 스승님?”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니 스승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너도 앞으로 그렇게 부르라는 표정이었다.
“그렇군요. 최성운 차사님. 오늘 훈련은 뭔가요?”
최 차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답 대신 바닥을 향해 손을 내밀며 명령을 내렸다.
바닥에서 검은 물체가 일렁이며 솟아올랐다. 형태를 갖춰 가는 연기는 늑대 형태의 악귀였다.
[최하급 악귀, 승냥이]
“저것은 악귀가 아닙니까?”
최 차사의 옆에서 꼬리를 말고 웅크린 채 끙끙거리는 악귀.
악귀를 발로 밀어 은석의 앞으로 보냈다.
“싸워 보아라.”
“네?”
“실전만큼 좋은 훈련은 없지.”
악귀가 살아 있는 은석의 냄새를 맡았다. 눈이 번뜩이며 은석을 향해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맡아 보는 사람의 향기에 저승차사의 존재도 잊은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