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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5화 (15/226)

15화

“여기가 확실해?”

은석이 이문성에게 물었다.

그들은 허름한 지하 창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여기다. 저기 보이는 문이 김호철의 창고다.”

이문성이 쓰레기가 쌓여 있는 낡은 문을 가리켰다.

은석이 쓰레기를 옆으로 밀치며 문 앞까지 내려갔다.

주변을 살펴보니 CCTV도 없었고, 도어락 역시 번호를 누르는 평범한 것이었다.

“여기 비싼 것들 모아 놓은 데 맞아? 왜 이렇게 허술해.”

“건물이 후진데 최신식으로 이것저것 달아 봤자 눈에만 더 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럴 수도 있겠네. 이렇게 쓰레기로 막혀 있는 문 안에 엄청난 게 들어 있다고 누가 믿겠어.”

은석이 도어락을 눌렀다. 경쾌한 알림음이 울렸다.

“번호.”

“5039785.”

은석이 마지막 번호를 누르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철문이 스르르 열렸다.

창고 지하로 들어간 은석.

눈앞에 보이는 장면에 할 말을 잃었다.

쾅!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도대체 이게 다 뭐야.”

이문성은 이곳을 김호철의 컬렉션이라고 불렀다.

정확하게는 그가 죽인 헌터의 물품을 모아 놓은 창고였다.

공간은 건물 지하 전체를 사용하고 있어 굉장히 넓었다.

사방의 벽을 따라 유리 장식장이 들어서 있었고, 중앙에는 커다란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컴퓨터, 다른 테이블에는 여러 종류의 아티팩트와 가격을 적어 놓은 종이가 정리되어 있었다.

“정리 잘하는 미친놈이네.”

유리 장식장을 둘러보던 은석의 눈에 익숙한 이름이 적힌 종이가 보였다.

<이문성>

이문성의 이름과 사망한 날짜, 그의 무기인 해머가 보였다.

“헌터들 중에 미친놈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은석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망한 헌터에 따라 정리한 것과 달리 테이블 위에는 여러 종류의 아티팩트가 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이건 뭐지?”

“거래 사이트에 올리려고 준비 중이던 물건들이다.”

그 속에서 이문성이 이야기했던 정령의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은석이 보석을 집어 들었다.

“이거 맞지?”

“그래.”

은석이 보석을 주머니에 넣은 후 휴대폰을 꺼냈다.

창고 안의 전경을 비롯해 헌터의 이름과 무기를 클로즈업해서 꼼꼼하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김은석 컬렉션.”

은석의 말에 이문성이 어리둥절했다.

이문성의 이름이 적힌 장식장 문을 열었다.

던전에 들어갈 때 입었던 그의 강화복과 무기를 꺼내 은석의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건 왜 가져가는 것이냐? 도둑질이다.”

은석이 이문성을 돌아봤다.

“도둑질? 헌터님. 이거 헌터님 물건이에요. 기억 안 나세요?”

“아!”

멋쩍은 이문성이 테이블 위에 놓인 아티팩트를 살펴보는 척했다.

그의 흔적을 지운 후, 은석과 이문성은 창고 지하를 나왔다.

“잠시만.”

은석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준이냐?”

“네,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꽤 괜찮은 기삿거리가 하나 있는데. 너 개인 사이트를 운영 중이라고 했지?”

은석의 말에 황희준의 목소리가 커졌다.

“형님, 무엇이든지 제보해 주십시오. 제가 맛깔나게 써서 올리겠습니다.”

황희준이 취미 삼아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 ‘저승에서 온 헌터’.

헌터계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고 폭로하기 위해 그가 만든 것이었다.

그동안은 해킹을 통해 수집한 소식들을 올렸지만, 헌터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가 있었다.

은석이 기사거리에 목마른 황희준에게 김호철과 그의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급하게 펜을 찾아 적는 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이거 완전 대박 기삿감인데요. 던전 안에서 몬스터 대신 인간 사냥을 한 헌터. 제목 어떻습니까? 형님.”

황희준은 빨리 글을 써 올리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내가 컬렉션 장소를 찍은 사진을 보낼 테니까 그것도 올려. 네 사이트에 올린 다음에는 각성자 협회에도 올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쓰고 퍼트리기가 제 전공입니다.”

“그래, 기대할게.”

황희준이 기뻐서 날뛰는 소리에 은석이 픽 웃음을 흘렸다.

* * *

“병원이 어디지?”

전화를 끊은 은석이 물었다.

이문성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아졌다.

“서정 병원.”

버스 제일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은석과 이문성.

“아픈지는 얼마나 됐지?”

“3년 정도.”

“고생했겠네.”

이문성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나을 수만 있다면 이런 고생쯤이야.”

망자가 되어 이승을 떠도는 시간이 길어지면 살았을 때의 기억을 천천히 잃어 가다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결국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알 수 없는 분노만 남아 이승을 떠도는 원귀가 되어 버린다.

“목적이 뚜렷해서 아직 원귀가 되지 않은 거군.”

“가끔은 김호철에 대한 분노 때문에 차라리 악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복수하기에는 그게 더 나을 수도…….”

은석이 말끝을 흐렸다.

다음 정류장이 서정 병원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문성의 아내가 지내는 병실은 6인실로 늘 시끌시끌했다.

아내는 제일 안쪽 커튼이 쳐져 있는 곳에 누워 있었다.

“보살피는 사람은 없나?”

이문성에게 물었는데 반대편에 앉아 있던 보호자가 대답했다.

“친정 엄마가 있어요. 방금까지 있었는데, 물 뜨러 가셨나? 그런데 누구세요?”

“이분 남편의 직장 동료입니다.”

“그러시구나. 남편이 헌터라던데 던전 들어가서 실종된 지 꽤 됐다고 들었어요. 혹시 찾았어요?”

은석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안타까워서 어째…….”

던전에서의 실종은 곧 사망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이문성의 아내 곁에 서서 궁금해하는 반대편 보호자가 보지 못하도록 커튼을 바짝 당겼다.

이문성이 잠든 듯 누워 있는 아내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미영아, 얼굴이 왜 이래…….”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은석이 보기에도 아내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몹시 초췌했고 피부가 검었다.

“살려, 살려 주십시오. 정령의 보석으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은석을 올려다보며 이문성이 간청했다.

은석만 들을 수 있는 이문성의 끅끅거리는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은석이 주머니에서 정령의 보석을 꺼냈다.

[정령의 눈물로 만든 보석. 간절한 소원 하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은석에게 보이는 보석의 정보창.

“이건 간절한 소원 하나만 들어주는 거다.”

“아내가 건강하게……. 그것만 빌어 주시면 됩니다.”

은석이 이문성 아내의 손바닥을 돌려 정령의 보석을 그 위에 올려 두었다.

“그건 내 소원이 아니라 네 소원이지.”

이문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은석의 손에서 하얀빛이 흘러나왔다.

이문성이 아내의 손을 덥석 잡았다.

무심하게 통과해 버렸던 조금 전과 달리 아내의 차가운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내의 손과 정령의 보석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문성이 눈을 꽉 감고, 그의 소원을 말했다.

눈을 감은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짙은 녹색 빛이, 꽉 잡은 그들 손가락 사이에서 뿜어져 나왔다.

정령의 보석이 아내의 몸 안으로 스며들면서 곧 거무튀튀했던 혈색이 돌아왔다.

목에 가래가 걸린 듯 거칠고 짧게 내뱉던 숨이 잠을 자듯 안정적으로 바뀌어 갔다.

달라지는 아내의 모습에 이문성이 조금 전보다 더 큰 울음을 터트렸다.

은석은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걸어 나가는 은석의 곁을 의사와 간호사가 뛰어갔다.

병명도 알지 못하고 몇 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가 순식간에 회복된 것이었다.

병원 밖으로 나온 은석에게 황희준의 문자가 도착했다.

[형님, 각성자 협회 게시판에도 올렸습니다]

“자식, 빨리도 썼네.”

황희준이 준 링크를 열자, 그가 찍은 사진과 자극적인 황희준의 글이 나타났다.

업로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댓글 수가 꽤 많았다.

댓글을 읽기 위해 새로 고침을 하자 글과 링크가 사라지고 없었다.

“빠르네. 벌써 삭제했어?”

황희준이 다른 아이디로 링크를 올렸지만, 그것 역시 빠르게 사라졌다.

몇 번의 업로드와 삭제를 반복한 후 결국엔 협회에서 게시판을 닫아 버렸다.

하지만 이미 퍼질 대로 퍼진 황희준의 기사는 진짜 인터넷 기사로 새롭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기사를 읽던 은석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김호철은 살인죄로 경찰에 체포될 것이다.

백훈섭은 자신을 배신한 김호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은석이 콧노래를 부르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어 번 울렸을 뿐인데 빠르게 전화를 받는 상대는 각성자 협회의 이상균 부장이었다.

“여보세요.”

이상균이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발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사무실을 나와 어디론가 뛰어가는 것 같았다.

은석은 그가 다시 말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무슨 일입니까?”

“안녕하십니까. 이 부장님. 김은석입니다.”

“무슨 일이요?”

다짜고짜 전화한 이유만 묻는 이상균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가득했다.

“많이 바쁘신가 봐요? 전화하기 힘드시면 제가 찾아뵐까요?”

찾아온다는 은석의 말에 이상균이 급하게 답했다.

“아니……. 안 바빠요.”

“그러시구나. 제가 며칠 전에 부장님이 소개해 준 인스턴트 던전에서 나왔는데요.”

“그런데? 뭐? 안 죽고 나왔으면 됐네.”

“혹시 기사 보셨어요? 각성자 협회에 올라와 있던데.”

김호철 컬렉션에 대한 기사 이야기가 나오자, 이상균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게 왜?”

“아니, 부장님. 소개를 해 줘도 그런 사람을 소개해 주십니까? 저 사람이 제 몫까지 다 훔쳐가 버려서 완전 빈털터리로 던전을 나왔습니다.”

이상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백훈섭과의 통화로 단 하나의 마나석도 가져오지 못했고, 보스 아이템 역시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다.

은석과의 거래는 인스턴트 던전을 소개해 준 거로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내게 원하는 게 뭡니까?”

“목숨 걸고 크게 한 건 하려고 위험한 인스턴트 던전에 들어간 건데……. 이건 아니잖아요.”

“빙빙 돌리지 말고 빨리 말해요. 나는 직장에 매인 몸이라 한가한 당신들과 다릅니다.”

은석이 픽 웃었다.

“AS를 해 주셔야죠. 인스턴트 던전이 꽝이었으니 각성자 협회의 용병 자리라도 소개를 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억지를 부리는 은석의 말에 이상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한 번 했으면 됐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까? 등급도 낮아서 들어갈 곳이 없다는 말 못 들었어요?”

“그럼 뭐……. 저도 어쩔 수 없네요. ‘저승에서 온 헌터’ 사이트에서 제보도 받던데, 삼촌과의 관계를 거기에라도 알려야죠.”

이상균이 다급하게 은석의 이름을 불러댔다.

“은석 씨? 은석 군. 이봐요, 왜 이러시나. 알았으니까 내가 한번 알아보지. 삼촌도 F등급인데 용병으로 일했잖아. 은석군은 나이도 어리니까 가능성이야 충분하지. 조금만 기다려 봐요. 지금 그, 그 기사 때문에 시끄러우니까.”

화를 눌러 참는 듯 이빨을 꽉 깨물며 말을 이었다.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제가 어려서 활기가 아주 넘치거든요.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대답 없이 전화를 탁 끊어 버리는 이상균.

은석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깜짝이야!”

킥킥거리며 웃는 은석의 옆에 이문성이 갑자기 나타났다.

“병실에 안 있고 여기는 왜 왔어?”

“아내가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장모님도 금방 오셨고.”

“소원 성취했네.”

“네……. 덕분에.”

은석이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성불하십시오. 헌터님.”

이문성에게 얼른 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곁에 있고 싶습니다.”

“어?”

느닷없는 이문성의 말에 은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개소리야. 네가 왜 내 옆에 있어. 귀신 따위 관심 없으니까 고 투 헬. 저승으로 꺼져.”

“저는 싸우고 싶습니다.”

이문성의 눈빛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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