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렇게 이상균은 협회 앞 포차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헤어진 지 네 시간이 지나서야 낯선 남자와 함께 포차 안으로 들어왔다.
이상균이 보이자 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하하하, 무슨 인사를. 앉으십시오.”
이상균과 남자가 자리에 앉았다.
“이분은 저의 상사님이신 정종렬 과장님이십니다.”
은석이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김은석입니다.”
정종렬이 앉은 채로 은석의 인사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이상균이 메뉴판을 꺼내 정종렬 앞에 펼쳤다.
“과장님, 오늘 특별히 드시고 싶은 안주라도 있으십니까?”
메뉴판을 쓱 훑어보더니 은석에게 넘겼다.
“헌터님 드시고 싶은 거로 하시지요. 저는 여길 자주 와서 뭐든 상관없습니다.”
은석이 메뉴판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보육원 생활 19년, 보육원을 나와 홀로 세상에 적응한 지 21년째다.
우둔해 보이는 외모였지만 눈치 하나로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었다.
포자 사장에게 물어 평소 시키는 안주와 술, 그리고 포차에서 가장 비싼 안주 몇 개를 더 주문했다.
작지 않은 테이블을 가득 채운 술과 안주를 보자, 그제야 정종렬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한잔 받으십시오. 과장님.”
은석이 양손으로 술을 채웠다. 그보다 서너 살은 어릴 것 같았지만 그런 것쯤은 상관없었다.
“오늘따라 술이 답니다.”
“저도 정 과장님과 오랜만에 술을 마시니 꿀물을 마시는 것 같습니다.”
이상균의 아부가 슬라임처럼 정종렬에게 착착 붙었다.
기분이 좋아진 정종렬이 은석에게 물었다.
“들어보니 F급이라면서요?”
“네…… F급입니다.”
“쯧쯧쯧, 젊은 양반이 어쩌다가 각성을 해도 꼭 그런. 내가 모르는 것처럼 보여도 다 보고 있었습니다.”
정종렬이 남은 술잔을 비웠다.
“그래, 던전에 들어가고 싶다고요?”
던전이라는 말에 은석의 눈이 반짝였다.
“네,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마력으로는 힘들다고 하시더군요.”
탁.
술잔을 소리 나게 내렸다.
“이 정종렬 앞에서 그런 걱정은 접어 두시고.”
정종렬의 눈치를 살피던 이상균이 끼어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김은석 헌터님, 던전 한 번당 얼마씩 수수료로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것이 불법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은석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들이 제시한 금액을 챙겨 주며 은석은 협회 용병으로 던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상균과 정종렬은 틈틈이 술자리에도 은석을 불러냈다.
물론 그와 술을 마시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많이도 처먹었네.”
“응? 뭐라고?”
어느새 다가온 이상균이 비틀거리며 물었다.
“하하하, 아닙니다. 2차 안 가십니까? 이 정도로 양이 차십니까, 형님들. 2차는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오! 좋지, 좋아. 오랜만에 은석 동생이 사 주는 술 한번 먹어 볼까.”
근처 주막에 들어간 세 사람.
술을 먹지 않는 은석은 연신 비워지는 그들의 잔을 채우기에 바빴다.
“요즘 은석 동생이 던전에 들어가느라 아주 바쁘지?”
“모두 형님들 덕분입니다.”
“무슨 소리. 꾸준히 살아남아 주는 동생 덕분이지. 그건 그렇고 혹시 말이야.”
눈을 감고 흔들거리는 정종렬을 슬쩍 보던 이상균이 조용히 말했다.
“혹시 인스턴트 던전에 들어가 볼 생각은 없는가?”
헌터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처음 들어보는 던전 이름이었다.
“인스턴트 던전요? 그게 뭐죠?”
“이거 진짜 아끼는 사람 아니면 절대 알려 주지 않는 정보야. 감사한 줄 알아.”
은석이 이상균의 술잔을 넘치도록 채웠다.
“그럼요. 형님 말고 저를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렇지! 그걸 모르면 개새끼지.”
이상균이 잔을 넘어 흘러내리는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인스턴트 던전이라는 게 말이지.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던전이야. 각성자 협회에서 입찰에 올리기는 하지만…….”
이상균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은석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모두 다 협회에서 관리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럼...”
“정식 입찰이 아니라 원하는 개인들에게 직거래로 던전을 주는 거지.”
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돈 주고 던전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구린 게 있었잖아.’
이상균과 정종렬에게 수수료를 입금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었다.
은석은 왠지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져 앞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 목이 타지. 이런 엄청난 비밀은 아무나 알고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럼 누가 인스턴트 던전을 구입하나요?”
“돈 많고 구린 놈들이나, 돈 많고 심심한 놈들이겠지.”
“누가 구입하는지는 모르시나요?”
“어, 몰라. 거래하는 사이트가 있거든. 우리가 빼돌린 인스턴트 던전을 사이트에 올려놓으면 개인이 사 가는 거지. 우리는 돈만 챙기면 되고, 걸릴 위험도 없고.”
“그런데 말입니다. 형님, 던전을 어떻게…….”
차마 빼돌린다고 말하지 못한 은석이 머뭇거리자 이상균이 별것 아니라는 듯 웃었다.
“인스턴트 던전이란 게 말이지. 삼 일 안에 클리어 해야 되거든. 왜, 가끔 뉴스에서 어디서 출몰한지 모르는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하잖아.”
“네..”
“그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인스턴트 던전에서 나오는 거야.”
이상균이 은석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멍하니 이야기를 듣던 은석이 얼른 술병을 잡았다.
“감지가 힘든 곳에 생기는 던전은 각성자 협회에서 빠르게 찾기 힘들어. 그런데 우리는 그걸 찾아내는 사람을 알고 있거든.”
“누가…….”
이상균이 손가락을 들며 쉿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이상 알면 다쳐. 동생. 그러니까, 할 거야 말 거야.”
일반 던전은 클리어 후에 일주일만 그 형태가 유지된다.
일주일 동안 던전 내 마정석을 채굴하고 죽은 몬스터의 사체를 수집하는 후반 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인스턴트 던전은 일반 던전과 달리 나타난 지 삼 일이 지나면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브레이크가 일어난 후 사라져 버린다.
던전 클리어 후 빠르게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후반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속전속결로 공략해야 하는 던전이었지만 길드에서는 인스턴트 던전을 기다렸다.
나오기만 하면 서로 앞다투어 높은 금액의 입찰액을 써넣었다.
일반 던전과 같은 등급이라도 몬스터의 심장에서 나오는 마나석의 마력이 훨씬 높았고, 유니크한 아이템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곳이었다.
이상균이 제안한 암암리에 거래되는 인스턴트 던전의 경우, 각성자 협회에 등록된 것도 아니고 누가 들어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위험한 만큼 큰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살아서 나온다는 보장도 없는 곳.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몇 년을 고생해 이제야 던전 레이드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던전을 공부해서 얻은 생존 능력 덕분에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내가 주는 돈이 적다 이거지. 목숨 내놓고 더 많이 벌어 오라는 속셈을 모를 줄 아냐.’
이상균이 술을 마시며 곁눈질로 은석을 쳐다봤다.
‘새끼, 푼돈 받기 감질나서 큰마음 먹고 알려 줬구만. 덥석 물고 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해.’
슬그머니 한쪽 눈을 가늘게 뜬 정종렬이 이상균과 눈빛을 교환했다.
“형님.”
한참 후에 은석이 말했다.
“어, 그래. 결정했고? 역시 인생 한 방……”
“저는 괜찮습니다. 좋은 기회 주셨는데…… 아무래도 저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의외의 대답에 이상균이 막 집어 들던 안주를 든 채 물었다.
“아니, 왜. 이 좋은 기회를.”
“정말 좋은 기회이긴 한데. 제가 전투계도 아니고 겨우 F급 힐러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은석의 대답에 틀린 말은 없었다.
이상균이 못내 아쉬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정종렬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있었다.
* * *
드르륵.
포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저녁 시간 전이라 포자 안에는 은석 혼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상균과 정종렬이었다.
은석이 일어나 예전과 마찬가지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바닥을 향하고 있는 은석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은석을 본체만체 자리에 앉는 정종렬과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이상균.
이들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술값을 계산하는 자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무척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려져서 그런가, 완전 아저씨들이네.’
이상균이 아르바이트가 주고 간 물을 컵에 따르지도 않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목이 타는지 큰 소리로 맥주를 주문했다.
“그래, 김은석 씨의 조카라고?”
“네.”
“김은석 씨의 조카가 우리를 왜 찾아왔지? 그런 걸 들고 말이야.”
이상균이 은석의 앞에 놓인 사진을 턱으로 가리켰다.
“등록실에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힐러로 각성했습니다. 삼촌처럼 좀 많이 낮은 등급으로요.”
마침 생맥주가 오자, 이상균이 급하게 마셨다.
그 모습에 정종렬의 인상이 더 사나워졌다.
“저는 정말 헌터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터무니없는 등급을 받고 보니 너무 허무하더군요. 그때 삼촌이 제게 부장님과 실장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좋은 분들이라고, 찾아가면 좋은 자리 마련해 주실 거라 하셨습니다.”
납작 엎드린 은석의 태도에 이상균과 정종렬의 긴장이 조금 풀린 듯 보였다.
은석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아르바이트생을 불렀다.
메뉴판을 펼치고 늘 시켰었던, 그들이 좋아하는 안주와 술을 콕콕 집어서 주문했다.
“삼촌이 좋아하시는 음식들이라고 알려 주셨어요.”
술이라면 껌뻑 넘어가는 이상균과 정종렬이었다.
잔이 비어 있지 않도록 채워 주는 은석이 마음에 들었고, 안주가 떨어지기 전에 또 다른 메뉴를 주문하는 센스를 흡족해했다.
“아주 잘 배운 친구구만.”
술만 마시던 정종렬이 말했다. 그의 말에 이상균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렇지요? 실장님. 김은석 씨 조카라고 할 때부터 어찌나 마음이 가는지. 마치 오랜만에 제 조카를 만난 기분이더라니까요.”
“그래, 김은석도 아주 훌륭한 친구였지.”
김은석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은석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 사실을 짐작하는 듯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좋은 분위기를 망쳤네요.”
“그래, 아직 소식은 없나?”
“불산길드 용병으로 들어간다고 정말 좋아하셨는데……. 생사라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균과 정종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김은석 씨가 실종되었다는 기록을 보고 정말 놀랐네. 참 좋은 헌터였는데.”
‘그래, 좋은 헌터였지. 너희들에게 꼬박꼬박 입금해 주는.’
은석이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훔치며 코를 훌쩍였다.
“오늘 두 분을 찾아온 용건은…….”
은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자세를 똑바로 잡고 비장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저도 던전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들어가야지. 헌터가 되었으니 들어가면 되지 않는가?”
“아시지 않습니까? 저같이 형편없는 각성자는 용병으로도 원하지 않습니다.”
“흠……. 김은석 씨도 우리가 힘을 써 줘서 헌터 생활을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지.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지금 실종 상태고.”
이상균과 정종렬이 서로 술잔을 채워 주며 씩 웃었다.
“용병으로 일할 수 있도록 내가 한번 힘써 보도록 하지. 그런데 용병으로 일하려…….”
은석이 이상균의 말을 잘랐다.
“용병이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저는 인스턴트 던전에 들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