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아이고……. 힘들다.”
병실에 도착한 은석이 그대로 침대 위로 엎어졌다.
병약한 김은석의 몸은 튼튼했던 은석에게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계였다.
자신을 낳고 버린 부모는 사랑을 주지는 못했지만 대신 건강한 몸을 남겨 줬다.
몸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했기에 체력 단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비록 F급이었지만 젊은 헌터들 못지않은 뛰어난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은석에게 이런 비리비리한 몸은 너무 낯설었다.
‘계단을 오르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다니.’
고개를 들어 시계를 봤다.
조금 전 은석이 저승으로 간 후로 겨우 삼사 분 정도 흘렀을 뿐이었다.
저승의 시간은 찰나라는 염라대왕의 말이 떠오르며 최 차사와 훈련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설마.. 훈련장의 시간은 다르겠지?”
멍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 은석의 귀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던데. 우릴 못 보는 건 아닐까?”
“아니야. 저 형 정말 유명해. 못 볼 리가 없어.”
은석이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누구야? 남의 병실에.”
분명 의사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한 후 모두 병실을 나갔다.
그런데 병실 구석에 모여 있는 저 꼬마들은 뭐지?
“꼬마. 남의 병실에서 뭐 하는 거야? 어?”
아이 세 명이 구석에 머리를 맞대고 서 있었다. 가장 큰 아이가 초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이놈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대답도 안 하고 말이야.”
은석이 으름장을 놓았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이 병원에 입원한 아이들인 모양이었다.
은석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봐! 내 말이 맞지? 우리 볼 수 있다니까.”
또다시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야…… 꼬맹이들.”
은석이 아이들에게 다시 말을 건네는 순간, 구석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허억! 뭐야?”
놀란 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귀신?”
저승에서 김은석이 말했던 귀신을 보는 능력이었다.
은석이 한숨을 내쉬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진짜 귀신을 보다니…… 설마설마했는데.”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병원에는 귀신이 많다고 하던데…… 설마 다 보이는 건 아니겠지?”
그때, 은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형.”
조금 전에 들었던 목소리 중 하나였다.
은석은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못 들은 척했다.
‘가라. 귀신아. 아직 너희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형, 안 자는 거 알아요. 일어나 봐요. 우리 전에도 만났었잖아요. 힝…….”
아이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은석이 콧바람을 강하게 내쉬며 이불을 확 걷었다.
“왜? 뭐 때문에 자꾸 부르는 거야?”
“어! 형. 일어났네요. 헤헤.”
“이놈. 어른한테 형이라니. 내가 장가만 제대로 갔어도 너만 한 아들이……”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내가 지금 아저씨가 아니구나.’
“형, 지금도 아파요? 나중에 올까요?”
“아니, 지금 말해. 나중은 없어.”
귀신인 아이들을 또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은석의 대답에 아이들이 다시 의견을 나눴다.
뭐가 맞지 않는지 그들끼리 투덕거리기 시작했다.
귀신이었지만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났다.
“무슨 일인데. 빨리 말해 봐.”
은석을 형이라고 부르던 남자아이가 입을 열었다.
“병원에 이상한 게 있어요. 며칠 전부터 자꾸만 사람들이 사라져요. 옆 병실에 친구 한 명도 없어졌는데 그거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 사람이 사라지면 경찰한테 말해야지. 왜 나한테 얘기하는 거지?”
“아!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니고.. 헤헤헤.”
아이가 혀를 쏙 내밀며 멋쩍게 웃었다.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부터 병원에 이상한 존재가 돌아다닌다고 했다.
아기 영은 겁이 많아 자신들이 머무는 곳을 잘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큰일인 것 같기는 한데…… 그런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야?”
“전에 힘든 일 있으면 형한테 말하라고 해서…….”
은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뭐야. 귀신한테 시달렸다면서…… 귀신 때문에 힘들었다는 놈이 어려운 일 있으면 자기한테 말하라고 했다고?’
갑자기 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어깨가 무너질 듯 아파 은석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숙였다.
힘겹게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누른 후 자리에 누워 몸을 한껏 웅크렸다.
“형…….”
“꼬마야, 아저씨가 지금 좀 많이 아프니까. 조금 있다가 다시 와라.”
간호사가 문을 열자, 아이들은 병실에서 사라졌다.
[김은석의 기억이 전이되는 중입니다. 부작용으로 메스꺼움, 두통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쯧! 이런 건 좀 빨리 알려 줘야지.’
은석은 이내 정신을 잃었다.
* * *
눈을 뜨니 주변이 어두웠다. 간호사가 나가면서 병실 불을 끈 모양이었다.
‘얼마나 잠들었던 거지?’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기억 전이라…….’
정신을 잃기 전 시스템이 알려 준 두통의 원인은 김은석의 기억이 전달되는 과정이었다.
은석의 머릿속에 김은석의 인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의 삶과 함께 또 다른 생이 자리 잡았다.
진짜 김은석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낮에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중년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
어렸을 때 보육원 원장님을 엄마라고 불러 본 이후로 처음 말해 보는 단어였다.
왠지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으아앙!”
감상에 젖으려는 그때, 병실 밖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리 가! 엄마! 엄마! 으앙!”
아이의 울음 속에는 무언가를 향한 공포심이 가득했다.
‘이 새벽에 누가 애를 이렇게 울리는 거야.’
은석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혀엉! 혀……엉!”
이번엔 그와 이야기를 나눴던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문을 열었다.
분명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병원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복도 양쪽을 살펴봤다. 누군가 왼쪽 복도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게 보였다.
은석은 병실로 다시 돌아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는 짧고 낡은 솔.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병실 문을 열고 왼쪽 복도 쪽으로 걸어가던 중에 야간 근무 중인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은석이 멋쩍은 듯 살짝 웃어 보이자 이십 대로 보이는 간호사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새벽 두 시의 병원 복도는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적막했다.
휴게실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게걸스럽게 무언가를 씹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쩝쩝쩝.
‘이 새벽에 어느 미친놈이 시끄럽게 처먹는 거야?’
은석은 솔을 등 뒤로 숨기고 천천히 휴게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헌데…….
쩝쩝쩝.
계속해서 씹고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은 휴게실 음료 자판기 옆이었다.
은석은 자판기에 붙어 살그머니 걸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비쩍 마른 남자의 등이 보였다. 남자는 헤져서 넝마 같은 검은 천을 두르고 있었다.
양손에 무언가를 잡고 미친 듯이 뜯어 먹고 있는 중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본 은석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것은 손이었다.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남자는 허겁지겁 작은 손을 잡아 누가 뺏어 먹을까 급하게 다시 입 안으로 가져갔다.
퉁.
은석이 놀라 뒷걸음질을 치면서 건드린 음료 자판기가 짧게 울렸다.
먹는 데 정신이 팔렸던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검은 얼굴 속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남자의 머리 위에 뜬 붉은 글자.
[최하급 원귀, 걸귀]
인간들은 귀신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지만, 엄연히 귀신들도 등급이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귀신이라고 부르며, 원한과 분노에 따라 모습이 변하는 것들까지 포함해 ‘귀물’이라고 한다.
이승을 떠나지 못해 인간 사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대부분의 귀물과 달리,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보통 원귀와 악귀로 구분 짓는다.
원한으로 죽은 후 바로 원귀가 되는 경우도 있고, 오랜 시간 귀물로 이승을 떠돌다가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게 되면서 원귀로 변하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것은 악귀이다.
악귀는 그 힘부터 귀물, 원귀와 차원이 달랐다.
주로 빙의를 통해 인간들 속에 숨어 살며 악행을 저지르는데 그중 가장 위험한 단계를 흉악귀라고 불렀다.
“먹는다! 먹는다! 먹는다!”
은석의 존재를 알아차린 걸귀가 우걱거리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처음 보는 원귀의 모습에 은석은 빠르게 뒤쪽으로 이동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수 캔을 잡아 걸귀를 향해 던졌다.
찌극, 퉤!
걸귀가 삼켰다가 다시 뱉어 낸 찌그러진 캔이 그대로 분리수거함으로 들어갔다.
“먹는다! 먹는다! 먹는다!”
낯선 모습에 잠깐 공포를 느꼈지만, 움직임이 느린 걸 확인하고 나니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굶어 죽은 사람은 죽은 후에도 먹는 것에만 집착한다.
그런 것들이 걸귀가 되는데 대부분 하급이나 중급 귀물에 속하는, 힘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걸귀가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며 머물던 자리를 벗어났다.
떠난 공간에 찢어진 환자복과 먹다 남은 영혼의 일부분이 보였다.
‘어? 너?’
거기엔 은석을 형이라고 부르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양손이 없어진 채 공포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이미 죽은 몸이라 영혼이 다 먹힐 때까지는 아프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허나, 공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아이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영혼을 먹어 치워 하급 원귀가 된 모양이군.”
아이의 모습을 본 은석의 안광이 분노로 번뜩였다.
은석을 향해 느릿하게 걸어오던 걸귀가 그 모습에 멈춰 섰다.
힘없는 악귀일수록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법.
걸귀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것은 다른 영혼들과 전혀 다른 존재다.
먹을 수 없는 것. 그러니 다시 돌아가자. 먹다 남은 아이의 영혼을 먹어야 한다.
푸욱!
돌아서는 걸귀를 향해 은석이 청소 솔을 찔러 넣었다.
키에엑!
걸귀가 괴성을 질러댔다.
“이 새끼가 어디 먹을 게 없어서 애들을 처먹어? 이거나 먹어라!”
청소 솔을 뽑아내 그대로 다시 뒤통수를 찔렀다.
키에에엑-
조용한 새벽의 병원 복도에 살아 있는 사람은 듣지 못할 괴성이 울려 퍼졌다.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뚫린 구멍에서 검은 물이 흘러내렸다.
“윽! 냄새 어떡할 거야!! 적당히 가려서 먹어. 새끼야!”
은석이 다시 한번 더 걸귀의 정수리에 청소 솔을 쑤셔 넣었다.
키에- 케에엑-!
걸귀가 바닥에 쓰러져 녹아내리는 것처럼 흐물거렸다.
머리에 청소 솔을 꽂은 채 아이를 향해 기어갔다.
“먹, 는다……. 머……억는…….”
휴게실 바닥 전체로 걸귀의 잔해가 퍼져 갔다.
흉한 만큼 냄새 또한 지독했지만 던전을 돌며 수많은 몬스터의 사체를 보아 왔던 은석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어가는 걸귀를 뛰어넘어 떨고 있는 아이의 앞에 가서 앉았다.
남자아이는 손이 없다는 것도 잊은 채 은석의 다리를 잡으려고 팔을 움직였다.
은석이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위험하니까, 잠깐 뒤로 물러나 있을래. 승호야?”
남자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음료 자판기 뒤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여전히 썩은 물을 뿜어내며 기어 오고 있는 걸귀를 보며 은석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먹고산다고 별별 일을 다 해 봤는데. 이제 귀신까지 잡아 보는구나. 인생 한번 스펙타클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