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랭커 회귀하다-462화 (462/500)

462 신들의 도시 (4)

“저건 또 뭡니까?”

“월드 크래프트? 큭큭큭, 너, 어지간히 얕잡아 보인 모양인데?”

“……얕잡아 보여요?”

로칸의 물음에 광풍은 헐떡이며 웃기만 할 뿐,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저거 그거야, 새싹 밟기.”

“새싹 밟기?”

“그래. 이제 막 신계에 오른 신의 기를 죽이고 신성을 강탈하려는 수작이지.”

“기를 죽이고 신성을 강탈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곧 답을 주기는 했지만 영문 모를 소리뿐이다.

월드 크래프트가 대체 무엇이길래?

로칸이 의아해하자 한바탕 웃어 젖힌 광풍이 다시 말을 덧붙였다.

“일종의 내기라고나 할까? 너를 골탕 먹이고 신성도 뺏으려는 개수작이라는 거지. 처음에는 룰을 잘 몰라서라도 꽤나 갈팡질팡하거든.”

“그러니까, 월드 크래프트가 뭡니까?”

“아, 그거? ‘세계끼리의 전쟁’이라고나 할까? 신들끼리 자기 세계의 인물들을 소환해서 겨루는 거지.”

“예? 그거 금지라면서요.”

“그냥 신을 처죽이는 게 금지지. 월드 크래프트는 싸움 좋아하는 신들을 위해 만든 유희 같은 거야. 진짜로 서로의 세계 좌표를 찍어서 쳐들어가면 적어도 어느 한쪽은 파탄이 나겠지만 저건 일정한 신성을 걸고 겨루는 스포츠 같은 거거든. 물론 신마다 세계의 속성과 강함에 차이가 있으니 어느 정도 공평한 선에 맞추는 보정이 이루어지지만.”

“그게 무슨…….”

설명은 들었지만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세계끼리 부딪친다? 그럼 그 안에서 세계의 주민들이 죽는 건? 다시 부활이 가능한 건가? 어쨌든 죽으면 서로 손해 아니야?

혼란스러워하는 로칸에게 광풍은 무언가를 소환해 던져 주었다.

작은 책자.

표지에 월드 크래프트라고 적혀 있는 것이, 일종의 게임 설명서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로칸은 얼른 그것을 읽어 보았고, 곧 깨달았다.

“이거…… 더 스타잖아?”

“응? 더 스타? 그게 뭔데?”

“아, 별거 아닙니다.”

각자의 세계 주민들을 유닛으로 소환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게임 방법은 같았다. 각자의 세계관을 설정하고, 그게 맞는 주민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주민들을 소환하는 비용은 전장 내에 배치된 마나석을 캐서 충당해야 하고, 소환한 주민 유닛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상대의 항복을 받아 내거나 모든 건물을 파괴하면 승리하는 것까지 똑같았다.

씨익.

그것을 확인한 로칸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게임이라면 빠지지 않고 즐겨본 로칸이기에 현실에서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인 ‘더 스타’라면 질리도록 해 보았으니까.

아무리 세계 설정조차 잡지 않은 상태라지만 대충 맵만 봐도 배치와 조합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뻔하게 보였다.

[신들의 수호자가 대결 성사 여부를 판단합니다.]

[대결이 승인되었습니다.]

[48시간 이내에 폭력과 파괴의 신이 대결을 선언할 경우 월드 크래프트가 진행됩니다.]

그때 대결이 승인되었다는 알림이 추가로 나타났다.

좀 전에 만났던 신들의 수호자 카이스만이 승인했다는 것이 좀 의외이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어쨌든 그와 분쟁이 있었고, 자신은 그에게 똥을 뒤집어쓰게 만들었으니까.

신들의 분쟁을 조율하는 입장에 있는 그로서는 충분히 인정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48시간이라는 것은 로칸에게 충분한 탐색과 연습의 시간을 주겠다는 뜻과 같았다.

“이거 재미있네요. 내기라고 했죠? 그럼 신성은 얼마까지 걸 수 있는 겁니까?”

“그거야 조율하기 나름이지. 근데 진짜 하려고? 그거 은근히 귀찮고 짜증나던데. 각자의 세계가 얼마나 강한지 따위는 보지 않고 다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서 시작하거든. 자원을 투자해서 강화시키는 것도 가능하지만 혼자서 썰고 다니는 것도 불가능하고.”

광풍은 월드 크래프트가 영 성격에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런 전략 시뮬레이션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긴 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찾아가서 뚝배기를 깨 버리면 어때? 그럼 저 귀찮은 게임은 취소될 텐데. 물론 사회봉사 명령을 받긴 하겠지만……. 흐흐, 그럼 나도 같이 가서 한바탕 휘저어 놓으면 되지.”

그래서일까, 그는 전혀 다른 제안을 했다.

48시간이 되기 전에 놈을 찾아 묵사발을 내 놓으라는 것이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수작을 걸지 못하도록 박살을 내 놓으면 저절로 월드 크래프트는 취소가 될 것이고 벌을 받아 공허나 잡으러 다니게 될 것이라고.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하지만…….’

사실 그 또한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승리할 자신도 있고, 그 덕에 공짜 신성도 왕창 뜯어낼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이유가 무언가?

로칸은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 마십시오. 이참에 제대로 보여 드리죠. ‘유저들의 전략’이라는 것을.”

로칸은 광풍에게 이야기해 즉시 월드 크래프트를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확인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하계의 투기장처럼 전용 경기장이 있는데, 그곳에 자신의 세계를 등록하고 설정을 마치면 그 세계관을 바탕으로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주민들을 사용할지, 그들이 어떤 능력과 힘을 지녔는지 등까지 세밀하게 설정을 해야 했기에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이미 머릿속에 일종의 가이드가 있는 로칸이었기에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미세한 조정에는 심혈을 기울였다.

능력을 부여하는 정도에 따라 주민을 소환할 수 있는 자원의 값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디 테스트를 해 보실까?”

거기에 또 한 가지. 하급, 중급, 상급의 수준으로 연습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었기에 몇 판이고 연습 경기도 치러 보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그리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경기 결과와 과정을 분석해 약간의 미세 조정이 있긴 했지만 처음 설정만으로도 상급 난이도를 가볍게 클리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계의 신들 중 절반가량이 상급 난이도에서도 허덕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방심은 하지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 녀석을 발라 줄지 잠시 현실로 돌아가 다양한 프로게이머들의 전술을 연구하고 연습하기까지 했다.

다음 날, 로칸은 48시간까지 끌 것 없이 대결을 받아들였다.

“하급 트롤 신 크로무슈와 월드 크래프트 대결을 시작하겠다.”

딱히 어딘가에서 대기할 필요도 없었다. 선언을 마치자마자 로칸과 크로무슈 두 신은 월드 크래프트 경기장으로 이동되었고, 마주한 둘의 사이로 하나의 창이 나타났다.

[대결에 걸 조건을 제시해 주십시오.]

“용케도 도망치지 않았군, 흐흐흐!”

로칸이 초짜라고 생각한 걸까? 녀석은 트롤 특유의 덧니를 드러내며 느글거리게 웃었고, 로칸 역시 사악한 미소로 마주했다.

누가 도망치고 싶어질지는 붙어보면 단번에 결판이 나겠지.

“신성을 걸지. 10억, 어때?”

이번에도 먼저 조건을 제시한 것은 크로무슈 쪽이었다.

10억 정도의 신성이면 초짜 신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는 수준이었지만 녀석은 작정한 듯 크게 걸고 나선 것이다.

보통 친선전의 경우 1억 남짓이 평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판돈이 꽤 큰 편이었다.

그러나 로칸은 한술 더 떴다.

“쪼잔하게 10억? 1백억쯤은 걸어야지. 쫄리면 뒈지시든가.”

움찔.

1백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베팅에 크로무슈도 움찔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급 신인 그에게 1백억이면 거의 밑천을 털어 넣는 수준인 것이다.

일단 신위를 얻은 신인 만큼 1백억 신성을 잃는다고 타락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하급이 아니라 최하급 수준으로 떨어져 신성을 연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로또다.

그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언제 1백억이라는 신성을 모으겠나?

스스로 신위를 쟁취한 것도 아니고, 세습하듯 부모의 신성을 물려받아 신위에 오른 하급 종족신에 불과했기에 한순간 탐욕의 빛이 번들거렸다.

설마하니 아직 신계에 적응도 못한 애송이 신에게 지겠냐는 안일한 생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좋아! 받아들이지.”

결국 미끼를 덥썩 물었다.

[월드 크래프트가 시작됩니다. 5, 4, 3, 2, 1.]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두 신은 관조자이자 조작자로서 위치했고 그들의 의지에 따라 일꾼 생산 기지와 일꾼들이 조작되었다.

마우스 컨트롤이 아닌 의지로서 조작하는 것이기에 반응 속도는 더 스타보다 빠르다.

사용자에 따라 마이크로 컨트롤이 아니라 나노 컨트롤이 가능해진 것.

컨트롤 중심의 플레이로 콘셉트를 잡은 로칸에게 유리하다면 유리한 방식이었다.

‘일단 정찰부터.’

일꾼을 생산하고 마나석을 채취하던 로칸이 돌연 일꾼 한 명을 빼돌렸다.

일대일 대결이고 각자의 스타팅 포인트가 정해져 있는 만큼 대부분의 신들이 정찰에 대해 간과하고 있었지만, 더 스타로 다져진 경험이 풍부한 로칸은 정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상대의 전략에 맞춰 이쪽의 대응 방식을 달리할 수 있으니까.

‘역시.’

그렇게 이동시킨 일꾼으로 놈의 기지를 살피자 대충 견적이 나왔다.

‘초짜군.’

한 마리도 말해 크로무슈는 초짜였다.

기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정찰 일꾼을 방치했을 뿐 아니라 일꾼이 숨어들어 다른 일꾼 하나를 잡아 낼 때까지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뒤늦게 일꾼 여러 마리의 작업을 멈추고 공격을 해 왔지만 로칸은 정찰 일꾼을 빼돌려 가뿐하게 그들을 농락했다.

여러 방향으로 움직여 싸먹는 형태도 아니고 그저 뒤를 쫓는 것에 불과했기에, 트롤 종족임에도 초기 이동 속도를 동일하게 맞춰진 월드 크래프트에서 같은 일꾼을 단순 추격으로 잡아 내는 것은 무리였으니까.

그렇게 일꾼들이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원의 격차는 벌어졌고, 그사이 상대의 건설 상황을 훤히 들여다 본 로칸은 빠르게 병력을 늘렸다.

‘멀티도 없고, 병력도 없고, 테크도 늦고.’

놈이 플레이하는 방식이 마치 더 스타가 나온 초창기 ‘초반 러시 없음!’을 외치던 초보들의 플레이와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뽑아낸 병력은 궁사.

도끼를 들고 설치는 로칸의 성향으로 볼 때 그의 세계도 근접 계열 전투 직업 일색일 것 같지만 그건 오해였다.

‘폭력’, ‘파괴’, ‘승리’에 집중했을 뿐 그 방법에 집착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을 상대가 아는지 모르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막사를 추가로 건설해 궁수를 더 뽑아내고 단숨에 몰아붙였다.

타이밍 러시.

이제야 겨우 한 마리의 트롤 전사가 생산되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적의 기지를 향해 내달렸다.

일꾼 몇 마리까지 섞은 상태로.

“끄악!”

그 타이밍에 맞춰 처음 보냈던 정찰용 일꾼이 트롤 전사에게 사냥당했지만 상관없다. 이미 일꾼은 제 역할을 마치다 못해 넘치도록 한 상태였으니까.

“쏴라!”

그렇게 두 번째 트롤 전사가 생산되었을 때, 로칸의 궁수와 일꾼들이 적의 본진에 기습적으로 들이닥쳤다.

‘일꾼들은 가드하고 궁수들은 트롤 전사를 끌어들여라.’

당황한 크로무슈가 트롤 전사들을 움직여 그들을 공격해 보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어지간한 공격은 즉시 회복해 버리는 것이 트롤 종족의 특성이었지만 그 효과가 제대로 적용될 리 없었으니까.

나중에 자원을 사용해 재생 능력을 강화하기 전까지는 그저 조금 회복 속도가 빠른 정도에 불과했기에 트롤 전사들은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궁수들의 화살에 꿰여 죽었다.

설령 유닛 자체의 강함에 약간 차이가 있다 해도 다구리엔 장사 없는 법이다. 적어도 이 월드 크래프트 내에서는.

‘일꾼부터 일점사.’

놈의 건물에서 트롤 전사 한 마리가 추가로 생산되고 있기는 하지만 의미는 없다.

그 전에 일꾼들이 전원 사살되었고, 뒤늦게 등장한 트롤 전사 역시 제대로 포효 한 번 질러 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승리하셨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경기는 크로무슈가 불쌍해질 만큼 압도적인 경기력의 차이로 끝이 났다.

‘단숨에 끝내 주마.’

5판 3선승제의 경기였지만 놈의 실력을 확인한 순간부터 승부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로칸은 이 게임을 질게 끌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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