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 타모스의 부활 (1)
퍼억!
로칸의 배틀 액스가 이름을 잃은 ??의 머리를 터트렸다.
그대로 몸통을 가르고 사타구니 쪽을 통해 빠져나왔다.
상처를 접합할 수조차 없도록 상처 부위가 뭉개졌고 놈은 대번에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됐다.’
이것으로 퀘스트는 완료. 이제 오딘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휘익!
“나의 창은 표적을 놓치지 않으니!”
“흥!”
뒤를 돌아보자 녀석이 추적 기능이 있는 스킬을 사용해 한 자루의 창을 내던졌다.
감히 자신을 어찌해 보려는 것일까?
어림도 없는 일. 로칸은 가볍게 배틀 액스를 틀어 그것을 쳐 내려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
창의 방향이 조금 어긋나 있는 것이다.
놈은 스킬로 창의 방향을 조종 할 수 있으니 방심을 노린 것일까?
그 의도를 애초에 분쇄하기 위해 창을 쳐 내려는 그 순간, 창이 가속했다.
아예 자신에게서 멀어지며 다른 것을 꿰었다.
푸욱!
“……!”
바로 로키!
어째서 자신의 수하를 공격한 것일까?
로칸의 게이머의 감으로 그것을 파악했다.
“빌어먹을.”
한쪽에 열어 둔 퀘스트 창에 완료 표시가 뜨지 않았음을 확인한 것이다.
아직도 수치는 107을 기록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이 두 쪽으로 갈라 죽였음에도 말이다.
“돌아와라!”
그 순간 오딘의 창이 방향을 틀었다.
벽에 박히는 대신 크게 선회하여 오딘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로키, 아니 이름을 잃은 ??을 꿰고서!
트릭 마스터라는 이명처럼 남을 속이고 교란하는 마법에 특화된 로키가 마지막 순간,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자신과 이름을 잃은 ??의 모습과 위치를 완전히 바꾸었다.
저를 희생하는 대신 놈을 살려 제단에 바치고자 한 것이다.
어쩌면 로칸이 둘을 한꺼번에 베어 버릴 수도 있지만,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오딘의 스킬을 이용해 배달할 수 있을 테니까.
쐐애애액! 끼엑!
창이 더욱 속도를 올렸다.
덕분에 이름을 잃은 ??은 살아는 있되 배에 구멍이 뚫리고 말았지만 지금 그런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살아 있기만 하다면 대업을 완성할 수 있으니까.
“점멸!”
그러나 그것을 가만두고 볼 로칸이 아니다.
로키의 시체를 짓밟고 뛰어오르듯 공간을 도약하더니 회수되는 오딘의 창 앞으로 다시 나타났다.
로칸을 피하기 위해 멀리 선회하여 온 것이 화가 되었다.
“폭렬!”
그 찰나를 포착해 창을 움직여 보지만 로칸에게는 공간 전체를 집어삼킬 힘이 있었다.
배틀 액스가 허공을 찍자 주변 공간 전체가 휩쓸렸고, 감히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다.
[불완정한 신성 추적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대량의 신성을 획득합니다.]
[변형된 신성에 대해 깨우칩니다.]
[신성 저항력이 증가합니다.]
기분 좋은 퀘스트 알림이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변형된 신성에 대한 정보가 뇌리에 흘러 들어왔다.
변형된 신성.
타락, 또는 공허라고도 불리는 그것.
그 정체를 이제는 또렷이 알 수 있었다.
“이익!”
그 틈에 오딘이 움직였다.
이미 고기 조각이 되어 흩어져 버린 놈의 사체를 주워 모을 수는 없었다.
대신, 타락의 힘을 품은 다른 존재들을 제물로 바쳤다.
타락한 반신들의 시신.
제가 폭발시켰던 그것들 중 큼지막한 덩어리들을 자신의 쪽으로 당겨 제단 위로 던졌고, 마지막으로 파멸의 신이 원하던 살아 있는 제물을 그에게 선사했다.
“저의 몸을 바칩니다!”
오딘은 유저다. 살아 있는 생명이라고는 하나 그래 봤자 1회분의 목숨일 뿐이다.
어차피 파멸의 신이 원한 것은 영혼이 아니라 타락을 품은 육신에 불과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모자랐다. 불완전했다.
그러나 동시에 충분했다.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시키기에는.
불완전하게나마 파멸을 이 땅에 강림시키기에는 말이다.
-너의 희생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쿠과과과광!
폭발. 그것도 대폭발이었다.
파멸의 제단은 더 이상 토굴에 갇혀 있지 않았고, 땅이 열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천상보다 아득한 어딘가로부터 거대한 힘이 강림했다.
[잊혀진 파멸의 신 타모스][Lv ???]
여전히 레벨은 알 수 없지만 그의 신명이 분명히 드러났다.
잊혀진 파멸의 신.
본디 파멸의 신으로 신위를 얻어 신계에 올랐으나, 이제는 잊혀져 타락해 버린 존재.
인간들은 그들을, 그들의 힘을 얻은 존재를 타락자라 불렀지만 신들은 그들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공허에 먹힌 자들.
공허는 다름 아닌,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고 스스로가 만들고 관리하던 세계마저 파멸해 버린 신들의 세계를 뜻하는 것이었다.
[잊혀진 파멸의 신 타모스가 육신을 얻어 천상에 강림했습니다.]
[혼돈과 파멸의 시대가 열립니다.]
[그를 막지 못한다면 세상은 파멸을 맞이할 것입니다.]
[신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지상과 천상의 일에 개입합니다.]
동시에 전체 공지가 나타났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발동했다는 뜻이다.
세상을 파멸시킬 수 있는 존재.
지상과 천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모든 것을 소멸시킬 존재가 강림한 것이다.
고깃덩이처럼 수십 개의 사체가 모여 어떤 형상을 이루었다.
타이탄.
과거 영광을 누렸던 타모스의 예전 모습이 빚어지고 있었다.
“까고 있네.”
이것은 소년 만화가 아니다.
놈의 변신과 합체를 기다려 줄 이유 따윈 로칸에게 전혀 없었다.
“파괴의 신성.”
로칸은 즉시 신성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놈을 베어 갔다.
파멸의 신? 그래 봤자 화신체일 뿐이다.
고작 타락한 반신의 시체와 반신의 자격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자멸해 버린 멍청이가 수십의 시체 따위로 제대로 된 신격을 강림시킬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반신 대 반신의 싸움이라면 자신이 질 리가 없지.
츠즈즈즈즛!
로칸의 일격이 살덩이에 꽂혔고, 곧 힘 싸움이 시작되었다.
파멸의 신에게서 비롯된 신성인지라 그 밀도가 굉장히 높았지만 신성이라면 이쪽도 밀리지 않는다.
로칸 역시 신위에 가까운 이가 아니던가.
파괴와 파멸. 두 신성은 치열하게 대립했고, 일차 승부는 무승부로 끝났다.
콰과과광!
“크윽.”
로칸의 몸이 멀찌감치 튕겨져 나갔다.
신성의 폭발로 인한 충격인지라 이차 공격을 즉시 감행할 수도 없었다.
그사이 놈이 몸의 구성을 완성했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었다.
[잊혀진 파멸의 신 타모스의 불완전한 화신체][Lv 496]
좀 전의 격돌로 상당한 신성을 소모했을 텐데도 놈의 레벨은 무려 496이었다.
만약 제대로 강림했다면 499쯤 되었을까, 아니면 그보다 높았을까?
확실한 것은 이정도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다른 신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는 공지가 있었지만, 로칸은 기회를 나누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기서 끝낸다.’
이미 마계를 평정한 그이다.
그렇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타이틀 공허를 품은 자의 효과로 타락에 영향을 받지도 않으니까.
-고작 인간 따위가 설치는구나! 나는 최강의 종족의 몸으로 신위에 오른 파멸의 신, 타모스다!
“최강의 종족? 까고 있네. 그걸 초월한 게 나다, 이 새끼야.”
콰앙! 쾅! 쾅!
로칸과 타모스가 맞붙었다.
하늘이 쪼개지고 땅이 뒤집어지는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거인과 인간의 대결이었지만 쉽게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둘의 전투 능력은 팽팽했다.
‘이게 되려나.’
오히려 순수한 힘에서는 로칸이 밀렸다.
종족 초월의 효과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튕겨 나가고 처박혔겠지만 극한의 컨트롤을 이용해 공격을 흘리고, 비껴 막으니 그럭저럭 상대할 만은 했지만.
“대적자 설정, 타이탄!”
지정한 종족에 한해 30% 상승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보일 수 있는 대적자를 발동시켰다.
아직도 놈이 ‘타이탄’으로 인정받을지는 알 수 없지만 시도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그러자 한결 공격을 받아 내는 것이 수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광풍의 무구가 아쉽군.’
만약 광풍의 배틀 액스만 무사했다면 무혼 각성으로 타이탄에게 압도적인 위력을 보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꼭 좋았으리라는 보장도 없긴 했다.
세트 효과와 무혼 각성의 힘을 쓰지는 못하지만 폭군의 배틀 액스로 무기를 바꾸면서 기본 대미지가 2배가량 상승한 상태이니까.
“뒤잡기!”
“휘돌리기!”
“백 스텝, 반격!”
콰앙! 쾅, 쾅!
잡생각도 잠시, 로칸과 타모스는 치열한 전투를 이어 갔다.
대적자 효과로 로칸의 상황이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크게 우위를 점하거나 압도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로칸도, 타모스도 조금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둘 다 기술도 뛰어나긴 했지만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을 선호하는 타입이다 보니, 지지부진한 싸움의 전개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제법이구나!
“너도 제법인데?”
콰아앙!
싸움이 길어질수록 서로를 인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한쪽은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자였고 다른 한쪽은 지키는, 아니 지키기보다 군림하려는 자였으니까.
서로의 목적이 워낙 반대 방향에 있었기에 둘 중 하나가 무릎 꿇기 전까지는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학살의 신이 한 팔 거들 것을 요청합니다.]
‘응?’
그때 학살의 신, 광풍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타이탄의 천적인 그가 움직인 것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일종의 록(Lock)이 해제된 것은 예상할 수 있지만 대체 어떻게?
로칸이 의문을 품을 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광풍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학살의 신이 자신의 권능을 부여해 주겠다고 합니다.]
‘권능이라.’
그것을 받는다고 사도 같은 게 되는 건 아니겠지?
순간 망설여졌지만 적어도 그가 아는 광풍은 그럴 위인이 아니다.
로칸이 나중에 신위를 얻어 신계에 올랐을 때, 제대로 한 판 붙기 위해서라도 그런 얕은 수작을 꾸미고 자신의 신성을 늘리려는 시도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까.
“좋습니다.”
로칸이 받아들였다.
수락의 말을 내뱉자 하늘에서 한줄기 빛이 떨어져 그를 비추었다.
[권능 : 타이탄 학살자 효과를 받았습니다.]
단 하나의 권능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적어도 타이탄인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타이탄과 전투 시 모든 능력치가 200% 증가합니다.]
[타이탄과 전투 시 모든 공격력/방어력이 100% 증가합니다.]
상황이 바뀌었다. 타이탄과 천적인 광풍의 권능이었으니까.
적어도 타이탄을 대상으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획득하며 단숨에 타모스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근데, 저걸 타이탄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
이제는 공격을 펼치며 잡생각을 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키메라처럼 다른 이들의 육신을 끌어모아 만든 육체였지만 타이탄으로 인정되는 것이 한편으로 신기한 것이다.
영혼 때문일까, 신성 때문일까.
어쨌든 시스템의 판정 덕분에 이득을 보고 있긴 하지만, 언젠가 한번 비슷한 실험을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로칸이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부서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