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랭커 회귀하다-437화 (437/500)

# 437

타락과 공허 (1)

“이걸 어쩐다.”

유저 중 최초이자 마족으로 진영 변경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마계의 왕, 즉 마왕의 자리에 오른 로칸은 고민에 빠졌다.

신성 획득량이 대폭 증가하고, 마족들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상황인 것이다.

흩어진 ???의 숫자가 꾸준히 줄고 있었으니까.

로칸이 딱히 손을 쓰지 않아도 말이다.

“마계는 아니라는 건데……. 그렇다면?”

때문에 마계의 반신들을 모두 불러 전수조사를 했지만 딱히 그의 감각에 타락의 힘이 파악된 반신은 없었다.

심지어 그들 중 하나를 만나 격살했다는 보고조차 없었다.

애초부터 ???의 숫자가 적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 말은 곧 천계나 환마계, 유명계, 정령계, 혹은 중립지대 등 다른 곳에 있는 반신들이 그들을 마주했다는 뜻이다.

이미 얀켄의 사례를 통해 그럴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도 막상 이제 그들을 찾아내려니 여간 골치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

“천계와 당장 전쟁을 벌이는 게 능사는 아니겠군.”

때문에 로칸은 선뜻 병력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번 마계 전쟁을 통해 소모된 반신들과 그들의 신성이 회복되기를 기다릴 필요성도 없지 않았지만, 이대로 천족과 맞붙었다가 어디서 타락한 반신이 난동을 부리기라도 하면?

그들의 전쟁에 끼어들거나 마계로 흘러들어 온다면?

여간 곤란해지는 것이 아닐 터였다.

어쩌면 로칸의 눈과 감각을 속인 마족 반신이 있을 수도, 반신이 아닌 이들 중 타락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아예 천계에 타락자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분탕질이 일어날 터.

아주 잠깐 기다리는 것만으로 천족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회복기라 이거군.”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로칸은 곧 결론을 내렸다.

천계를 침공하고 라푸제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정체불명의 ???들을 모두 처리하면 그때는 가릴 것이 없어지겠지만, 그때까지는 마족들의 힘과 병력을 회복하고 천족 이외의 적들이 출현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방어를 굳히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사냥을 시작해 볼까?”

하지만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로칸의 스타일이 아니다.

일단 마계의 힘을 회복시키는 동안 자신은 따로 움직이겠다는 것이다.

이미 마왕의 위를 얻었으니 쓸 만한 반신 몇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괜찮았지만 귀찮을 뿐이다.

실제 그들 중에는 로칸도 인정할 만큼의 강자나 특수한 고유 신성을 쓰는 놈도 있었지만, 마족은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하니까.

마왕 타이틀의 효과 때문에 로칸 역시 천족 계열에게는 배척당하겠지만, 그래도 여럿이 우르르 몰려가면 더욱 경계받기 마련이다.

더구나 지금 그가 사냥하려는 것은 타락 혹은 공허의 힘을 사용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어지간한 마족 반신들은 그에 물들어 버릴 수 있었고, 실력 좋은 놈들도 다수를 사냥하면 버티기 어려워 질 수 있었기에 로칸은 단독 행동을 택했다.

핑그르르르.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약 육십여 마리의 ???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로칸에게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아이템이 있었다.

바로 욕망의 나침반.

그것을 사용하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의 방향이 나타났다.

“카이, 가자!”

뀨우!

어디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놈들이기에 특정 장소를 찾을 때처럼 무지개 전송기를 이용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찾아나서는 것은 무리겠지만, 카이가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대붕으로 변한 카이가 날갯짓을 한 번 할 때마다 축지법을 쓰듯 공간이 접히고 거리가 단축되니까.

그렇게 나침반을 손에 쥔 채 비행을 시작한 로칸과 카이를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왕이자 반신의 끝자락에 가까워진 그를 누가 감히 막을 수 있을까.

그들이 가는 길에는 사나운 비행 몬스터들도 많았지만, 굳이 감추지 않고 격을 드러내는 로칸의 앞을 가로막는 멍청한 놈들은 없었다.

본능적인 공포가 그들을 도망치도록 만들었다.

“여기라고?”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이동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욕망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장소에 도착한 로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침반은 분명 이 주변에 무언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가 바라보는 지상은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뿐이고, 다른 반신 급의 누군가가 살 만한 곳이 아닌 것이다.

아무리 중립지대라지만 은거한 기인 같은 자가 오두막이라도 짓고 살던 걸까?

일단 나침반의 바늘이 휙휙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 이동 중이라는 것은 알겠다.

‘쫓기는 건가? 아니면 그냥 폭주?’

로칸은 즉시 나침반에서 시선을 떼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이상 징후를 포착했다.

폭주든 추격이든 뭔가 흔적이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우지끈! 쿠구구구궁.

“저기구나!”

그때, 숲의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불도저로 밀어 버린 것처럼 나무들이 일렬로 쓰러지며 숲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로칸은 직감적으로 그쪽에 자신이 찾던 누군가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카이를 움직여 녀석을 빠르게 뒤쫓았다.

“엉?”

그리고 그 존재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멧돼지?”

숲을 파괴하고 있는 녀석은 다름 아닌 멧돼지였다.

다만 그 크기가 5m는 족히 될 것 같았다.

[타락한 땅의 신수 쿠쟈타][Lv 479]

“……신수?”

놈이 정체는 다름 아닌 신수였다. 유니콘과 같은.

반신 급의 레벨을 지닌 것도 놀라웠지만 신수 씩이나 되는 존재까지 타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이래서야 신이 아닌 모든 존재가 타락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놈은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사실에 로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쿠엉!”

그때, 쿠쟈타가 로칸을 발견했다.

이미 풀려 버린 눈으로 앞발을 높게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육중한 몸 전체를 이용해 땅을 굴렀다.

쿠웅!

꿀렁. 꿀렁.

지진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냥 지진은 아니다.

신성이 가미된 그 힘은 땅의 파도를 만들어 냈다.

땅이 부서지는 대신 워터 파크의 대형 파도처럼 출렁이며 로칸을 공격해 온 것이다.

딱히 땅을 밟고 있지 않아도 타격을 받을 만큼 그 대지의 파도는 거대했다.

“폭렬!”

콰아아앙!

척 보기에도 그 자체도 상당한 물리력을 지닌 것 같았지만 그런 것에 당해 줄 로칸이 아니다.

즉시 발밑으로 일어나는 땅거죽에 배틀 액스를 박자 무시무시한 폭발과 함께 놈의 공격이 상쇄되었다.

파앗.

그뿐 아니라 사방으로 비산하는 돌조각에 몸을 숨기고 놈에게 짓쳐 들었다.

노리는 것은 쿠쟈타의 미간.

“파멸의 일격.”

두꺼운 가죽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가공할 충격이 놈의 뇌를 뒤흔들었다.

“꺼억.”

쿠웅!

그 한 방에 쿠쟈타의 거체가 쓰러졌다.

그와 함께 로데오를 하듯 놈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무언가가 몸을 날렸지만, 주시하고 있던 로칸의 손에 목을 잡히고 말았다.

“키엣!”

발버둥을 쳐 보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고작 반신 급도 되지 못한 주제에 로칸의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 없을뿐더러, 놈이 자랑하는 타락의 힘 또한 로칸에게는 통하지 않았으니까.

[이름을 잃은 ??][Lv 444]

“어?”

그런 놈을 가만히 내려다 보던 로칸의 표정이 묘해졌다.

???으로 표시되던 녀석의 이름이 변해 있는 것이다.

쿠쟈타를 타락시키며 뭔가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갇혀 있던 공간에서 벗어나며 이름이 변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에게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일까.

당장 원인을 찾는 것은 무리였지만 그냥 넘길 사안은 아니었다.

“이름을 잃은 자라니…….”

뭔가가 떠오를 듯 말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이걸 어디서 들어 봤더라?

버둥거리는 놈을 붙잡고 가만 딴 생각을 하던 로칸은 자꾸 시끄럽게 구는 녀석의 목을 부러뜨렸다.

축 늘어지는 놈의 죽음을 확인하고,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 타락한 땅의 신수, 쿠쟈타를 지켜보았다.

“돌아갈 순 없는 건가?”

원흉을 잡아 죽이기는 했지만 이미 스며들어 버린 타락의 힘까지는 어찌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약탈이나 탐욕의 신성이 있었다면 놈의 신성 일부를 떼어 내 치료해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었다.

“키링.”

아직 몸의 통제권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는지 부들거리는 쿠쟈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 눈. 쿠쟈타는 그에게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죽여 달라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신수들은 기본적으로 그 지역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에 제 손으로 숲을 파괴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싶었다.

“미안하다.”

퍼억!

로칸은 두말 하지 않고 배틀 액스를 내리꽂았다.

로칸의 파괴력이라면 어디를 베어도 가죽의 영향을 받지 않고 놈을 베어 낼 수 있겠지만, 최대한 고통 없이 끝을 내기 위해 미간을 쪼개고 뇌를 터트렸다.

그제야 비로소 안식에 드는 쿠쟈타.

놈의 신성이 흘러들어 왔지만 그다지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마족 놈들을 때려잡는 것은 거리낌이 없었지만, 자신의 실수로 타락해 버린 신수를 잡는 것은 어딘지 찜찜함을 감출 수 없었다.

“쿠쟈타의 내단 사용.”

놈의 몸에서 내단을 뽑아낸 로칸은 즉시 그것을 섭취해 자신의 세계, 명부마도에 전송시켰다.

내단이나 힘의 정수, 심장 등을 섭취함으로써 자신의 세계에 해당 존재를 창조해 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덕분에 세계를 창조할 당시 영혼의 구슬과 힘의 정수를 잘 써먹었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같은 존재라고는 할 수 없고, 그곳에서 다시 사냥당할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는 어떻게 해 줄 수 없다.

그 정도로 미안함을 대신하며 다시 욕망의 나침반에 눈을 돌렸다.

“아직 진행형이라 이거군.”

아직 놈들의 숫자는 많이 남았다.

당장 여건만 맞으면 다섯으로도 499레벨의 반신을 타락 시킬 수 있는 놈들이니, 서두르지 않으면 천상에 어떤 혼란이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긴 하지만…….’

타락에 영향을 받지 않는 로칸의 입장에서야 한바탕 뒤집어지고 날뛰는 놈들만 찾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방치할 경우 전염병처럼 번지는 타락의 힘이 어떤 상황을 초래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450레벨이든 499레벨이든 타락자라면 어떻게든 때려잡을 자신이 있는 로칸이지만,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위험했다.

나중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은 사라진 ???들을 서둘러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핑그르르.

다시금 욕망의 나침반을 사용해 놈들의 위치를 추적했다.

찾고 죽이고, 찾고 죽이고.

그 과정에서 제법 여럿의 반신과 신수가 죽어 나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어차피 로칸 역시 신성을 쌓아 레벨을 올려야 했으니 일석이조라고나 할까?

[폭력의 왕 로칸][Lv 496]

앞으로 3레벨. 499레벨에 승급 퀘스트를 받아 수행하게 될지, 아니면 신성만 일정 수치 이상으로 쌓으면 신위를 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확인할 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