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랭커 회귀하다-405화 (405/500)

# 405

명부마도 (3)

세계 : 명부마도.

로칸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세계. 그 세계에서 신의 아들이라 불리며 인간들을 이끈 영웅, 가룬은 뇌전의 배틀 액스를 들고 인간들을 규합했다.

어설프지만 마을을 만들었고, 도시를 구성했다.

몇 개나 되는 도시를 연결시켜 작은 국가마저 이루어 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아직 발전되지 않은 문명과 문화, 기술로는 딱 거기까지밖에 이룰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고, 최초의 국가를 이루어 낸 업적을 인정받아 로칸에게 추가적인 신성마저 부여했지만, 로칸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에 20여 년, 총 사흘 간 약 80여 년의 생을 살아 낸 가룬은 자신이 다하지 못한 일을 후대에 맡기고 영면에 들었다.

그가 가졌던 뇌전의 배틀 액스는 그의 신물이 되어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증표이자 왕의 무기가 되었고, 이후의 일은 후손들에게 맡겨졌다.

‘역시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나.’

그것을 틈틈이 지켜본 로칸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만들어 낸 피조물이건만 고작 능력을 높이고 그럴싸한 무기를 쥐여 준 정도로는 약간의 영토를 확보하는 것밖에 이루어 내지 못했다.

인간의 특성상, 로칸교의 성향으로 볼 때 시간이 지날수록 몬스터의 영토를 빼앗으며 그 지배력을 높여 갈 테지만, 로칸이 바란 건 고작 몇 개의 도시가 뭉친 도시 국가가 아니었다.

때문에 다시 신성을 쏟아부었다.

두 번째 아바타를 창조해 내었다.

‘이번에는…….’

대신 이번에는 능력치만 조작하지 않았다.

능력치도 조금 더 높이긴 했지만 그보다 성격과 성향에 힘을 쏟았다. 아예 자신을 복사해 집어넣었다.

스킬을 하나라도 집어넣으려 하면 소모되는 신성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버리게 되지만 성격과 성향 정도라면 적은 신성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아예 성립된 정체성과 정신을 개조하는 것이라면 소모가 컸겠지만 갓 태어난 아기에게 약간의 암시와 같은 것을 거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아직 혼자서는 무리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로칸도 첫 번째 아바타의 생을 돌려보며 깨달은 바가 있었다.

로칸 자신이 지금처럼 활개치고 다닐 수 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문명 자체가 성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때그때 익힐 기술이 있었고, 이용해 먹을 병력이며 존재들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다른 종족들과 어느 정도 대등한 위치에 있었기에 할 수 있던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아주 작은 씨앗들을 무수히 뿌려 두었다.

[기술 : 대장(Lv 1)을 전수합니다.]

[신성 : 100,000이 소모됩니다.]

[기술 : 무두질(Lv 1)을 전수합니다.]

[신성 : 100,000이 소모됩니다.]

[기술 : 채집(Lv 1)을 전수합니다.]

[신성 : 100,000이 소모됩니다.]

[기술 : 요리(Lv 1)를 전수합니다.]

[신성 : 100,000이 소모됩니다.]

바로 기술들.

기존에는 보조 직업으로 익힐 수 있는 기술의 숫자가 정해져 있었지만 그랜드 마스터가 되면서 그 제한이 해제된 것이다.

그럼에도 기존에는 굳이 습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아이템들만 자신의 세계에 전달할 수 있었기에 스킬 창이 난잡해지는 것을 감수하고 습득해 세계 : 명부마도에 전달한 것이다.

너무 높은 레벨의 기술을 전수할 경우 이 역시 소모되는 신성의 양이 급격히 커졌기에 고작해야 1레벨의 스킬들일 뿐이지만 상관없다.

인간은 발전하는 동물이니까.

우선은 투쟁과 생존을 목표로 하지만 시간 가속을 통해 역사를 쌓는다면 기술은 저절로 진보할 테고 언젠가 더 로드의 세계와 비슷한 수준까지도 이를 수 있겠지.

때문에 로칸은 과감히 신성을 투자해 제반 요소들을 채워 넣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템을 내리는 일은 없었다.

신성의 소모가 아깝기도 했지만 두 번째 아바타를 왕가의 자손으로 설정하면 그만인 것이다.

문명이 성숙한 시기였다면 암투와 음모로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외부의 침략을 지키기도 버거운 시기.

새로운 영웅의 등장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시간 가속 1만 배.”

다시 시간을 가속했다.

자신을 빼닮은 두 번째 아바타가 이번엔 뭔가를 이뤄 주기를 바라는 마음만 남긴 채 다시 세계 : 명부마도에서 시선을 떼었다.

***

[폭력의 왕 로칸][Lv 454]

지상과 여러 차원을 돌며 신성을 회복시킨 로칸은 넉넉해진 신성만큼 상승한 레벨을 확인했다.

“경험치가 아닌 신성의 양에 비례하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하군.”

신성이 회복되자 레벨이 올랐다.

처음 1억이 넘는 신성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몇 레벨이었는지 확인해 두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아쉬운 대로 지금이라도 기록해 두는 수밖에.

물론 남 좋은 일은 할 수 없기에 공개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지만 연구를 위해 따로 창을 열어 기록해 두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반신 승급의 최소 조건인 1천만 신성의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449레벨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0까지 떨어지면 어떨지 모르지만 때때로 회복되는 신성이 있고, 이미 구축한 세계가 있으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제 뭘 한다.”

그렇게 며칠 만에 계획했던 일들을 뚝딱 해결해 낸 로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400레벨 이상의 존재들을 썰고 다니며 신성을 불려 볼 것인가, 아니면 무지개 전송기를 타고 각 차원을 돌아다니며 포교를 해 볼 것인가.

다른 차원의 지상에서는 로칸을 알지 못하니 쉽지 않은 작업이겠고, 국왕들을 쥐어 패서 국교든 뭐든 선포한다 해도 바짝 신성을 땡겨 올 뿐 제대로 된 신앙을 심어 주긴 어렵겠지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어차피 신성을 모으는 것 자체가 레벨 업을 위한 활동이 되었으니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누가 가르쳐 줬으면 좋겠군. 가오칸과 대련이라도 해 봐야 하나?”

그러나 그보다는 신성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가가 궁금했다.

당장은 신성이 저절로 움직여 그의 행동에 깃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능력치가 강화되고, 스킬의 위력이 증폭되는 정도랄까.

창조 스킬처럼 자신만의 무기가 될 무언가까지는 만들지 못한 것이다.

듣기로 신성을 이용해 또 다른 창조 스킬을 만들 수 있다고는 하는데, 어쩐지 고작 스킬 한두 개를 더 만드는 것은 신성의 진정한 활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칼튼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가 성숙하기를 기다렸다가 자신만큼 강해진 그들의 힘을 끌어오는 것은 너무 오래 걸렸고.

‘시간이 많은 건 아니야.’

로칸에게는 적이 많다.

당장 배신자인 1급 천족 라푸제가 언제 다시 마수를 뻗을지 몰랐고, 뱀파이어 로드가 어떤 암수를 가해 올지 몰랐으며, 유명계의 왕들도 슬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 냈을 터였다.

그때는 무슨 변명을 하든 자신이 그들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어쩌면 그들이 연합해서 로칸을 노려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은 자신 있지만 자신과 얽힌 어떤 곳이 공격당해도 이제는 신성에 금이 간다.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세계 : 명부마도는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아무 위험이 없겠지만, 지상을 공격당하기만 해도 상당한 신성의 손실은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지킬 것이 많으니 생각도 많아졌다.

“흐흐흐, 나답지 않았군.”

그러다 문득, 이 모든 상황이 어이없어졌다.

자신이 언제 그런 것을 따져 가며 난동을 피웠던가.

막으면 부수면 그만이고, 공격받으면 복수하면 그만이다.

애초에 그랜드 마스터일 때조차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던 놈들이 아닌가?

신성까지 얻은 마당에, 걱정만 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건 자신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자 머릿속이 맑아졌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또렷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강해지자.’

모든 것은 강해진 다음 생각해도 될 일이다.

그사이 지상이 파괴되건, 신전이 무너지건 나중에 재건하고 복구하면 될 일이다.

감히 자신을 노린 이들에게 제대로 된 폭력으로 응징해 준다면 과연 신성이 줄어들까, 늘어날까?

쉽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천상의 룬 북, 사용.”

로칸은 즉시 천상의 룬 북을 사용해 천상의 어딘가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사자왕의 영토.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자신처럼 세계를 키우고 있는 가오칸을 만났다.

***

“오, 로칸. 으흠, 벌써 마제스티 마스터가 된 건가? 대단하군.”

“한판 붙읍시다.”

자신의 변화를 즉시 알아보는 가오칸을 향해 대뜸 대련을 신청했다.

“그거 좋지.”

대체 무슨 일인지 생각인지 물을 법도 하지만 가오칸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두말하지 않고 대련을 수락했고, 둘은 곧 전투의 여파가 도시에 미치지 않는 어디론가 이동했다.

“젠장.”

그리고 잠시 후.

가오칸과 무려 3시간여를 치고받은 로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실전을 통해 신성을 깨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생각처럼 신성이 쉽게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성의 소모가 있긴 했지만 육체 능력을 강화하고 스킬 위력과 지속 시간을 증폭시키는 정도로는 이제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했다.

훨씬 매끄럽게 신성을 끌어다가 쓸 수 있었고 그 효용은 마치 천신의 무구를 사용해 증폭 효과를 받을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강해지긴 했지만 ‘특별함’이 없었다.

과연 이것으로 신성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해도 좋을까?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었다.

실제 전투력이야 어떻든 이건 신성을 쓰든 못 쓰든 비슷한 수준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만의 세계. 나만의 능력…….’

치열한 전투. 기존에는 같은 격을 지녔음에도 다소 위축됨을 느꼈던 가오칸을 상대로 이제 우위를 보이고 있음에도 로칸은 한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진정한 신성의 힘을 찾아내기 위해 끝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조금, 아주 조금 깨칠 수 있었다.

‘아!’

투기와 투지.

압도적인 힘과 폭력.

그 어떤 함정도, 수작도, 배신조차도 모조리 부수고 나아갈 수 있는 압도적인 폭력.

그것이 자신의 근원이었다.

세상에 대한 복수? 앞서가는 자의 도취감?

한때는 그런 것도 자신의 동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더 이상 그것이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이 되지 못했다.

적을 짓밟고 그의 세계까지 부수는 폭력의 힘.

더 로드(The Lord).

그리하여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원불멸의 절대자가 되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자신의 목표이자 모든 것이었다.

그의 세계인 명부마도 역시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금은 고작해야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하지만 조만간 동시에 성장해 나가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 종족들과, 세계와 부딪쳐 상대를 짓밟고 나아가야 할 지옥도를 만든 것에도 그런 무의식이 숨어 있었다.

학살의 신이 만든 세계가 ‘버텨 내면서 강해지는 세계’라면 자신의 세계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모두를 짓밟으며 강해지는 세계’였다.

로칸이 그 본질에 눈을 떴다.

이제야 싹을 틔운 정도에 불과했지만 깨닫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간에는 형언할 수 없는 격차가 존재했다.

콰아아앙!

“……이런 미친놈.”

쩔그렁.

광풍의 배틀 액스가 필살의 기운을 담은 가오칸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반으로 똑 부러지고 말았다.

부스스스.

그리고 가오칸이 자랑하던 사자검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포기를 모르는 도전자의 왕이 패배를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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