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3
명부마도 (1)
명부마도.
지옥 악마의 길.
비슷한 여러 해석도 있지만 흔히 수라도라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말이었다.
위대한 정복자이자 잔혹한 지배자가 될 이의 발자취를 의미하게 될 것이기도 한 그 이름은 이미 한 영웅의 탄생을 예언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일단은……. 시간 가속 1만 배.”
[시간 가속x10000을 실행합니다.]
[1일간 총 신성 : 100,000을 소모합니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사용 가능한 신성의 잔량을 살핀 로칸은 일단 가볍게 시간 가속을 사용했다.
소모 신성은 100,000으로 지금까지 사용한 것들에 비하면 적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이게 1단위로 소모되는 비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 : 명부마도에서 1의 신성을 획득하셨습니다.]
[세계 : 명부마도에서 1의 신성을 획득하셨습니다.]
하루에 100,000이나 신성이 들어가는 것에 비해 획득하는 신성은 고작해야 가속 전 시간 기준으로 하루에 1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세계 : 명부마도의 1년이 365일이니, 하루에 27~28 정도의 신성밖에 수급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중에 점점 연간 획득 신성의 양이 많아진다면 버는 것이 더 많아질 테고 시간 가속의 배율을 낮춘다면 훨씬 적은 신성을 소모하게 될 테지만, 당장은 투자를 해야 할 때였기에 쓰린 속을 부여잡고 지를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빡빡하군. 내가 너무 질렀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막 마제스티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막대한 신성을 쌓은 로칸임에도 이미 대부분의 신성이 소모되어 버린 상태였다.
남은 신성은 고작해야 1천만 남짓.
남들은 아예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도 있을 정도이긴 했지만 단숨에 신성 수급 모델을 만들어 낼 계획을 가지고 있는 로칸에게는 한없이 부족한 수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시간 가속이 특정 종족이 아닌, 전체 세계의 시간을 가속하며 지켜보는 것이기에 신성의 소모가 적은 편이라는 것에 감사해야 할 정도.
그렇게 로칸은 상당한 신성을 소모해 가며 인간들이 처참히 무너지고 짓밟히는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예상대로군.”
인간들은 약했다.
다른 종족들은 물론 어지간한 동식물조차도 이겨 내지 못했고, 조금만 면역이 떨어져도 집단으로 병에 걸리거나 죽어갈 만큼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근성이 있었다.
생존 욕구와 본능만큼은 그 어떤 종족보다도 뛰어났고, 학습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처음에는 지능도 낮고 무기는커녕 싸우는 법조차 알지 못하던 인간들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싸우는 법을 알게 되고 무기와 도구의 활용법을 알게 되었으며 점차 주변 동식물들을 사냥, 채집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을 줄 알았으며 같은 종족끼리 서로 뭉쳐 대항하는 법을 익혀갔다.
그것은 현실 세계와 같았지만 그보다 월등히 빠른 것이었다.
[게임 설정]에서 비롯되는 [퀘스트]가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을 제시해 주었으니까.
게임 초보가 튜토리얼을 하듯, 천천히 하라는 대로 하다 보면 최소한의 생존 방법쯤은 알 수 있었기에 그들의 성장은 다른 어떤 종족보다도 빠를 수밖에 없었다.
“쩝, 너무 멀게 잡았나?”
그 과정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로칸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세계의 설정은 창조주이자 관리자인 반신의 마음대로다. 그것은 문명의 발전 정도도 마찬가지.
때문에 문명이 어느 정도 발전한 시점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로칸은 아예 진화가 덜 된 시기부터의 인간을 설정했다.
시간 가속과 퀘스트를 염두해 둔 설정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오래 걸린다는 느낌을 스스로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사용해 버린 신성이고 설정인 것을.
그리고 원래 쌀이 익으려면 밥을 끓이고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이미 문명을 얻어 충분히 편안한 상태에서 과연 인간들이 신을 찾을까? 그런 이들도 있겠지만 그 수가 절대 다수이기는 힘들 터였다.
로칸이 배경을 이렇게 잡은 것에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켜보던 로칸은, 그들이 뭉쳐 부족을 이루고 조금이나마 주변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을 때 남은 신성을 털어 최초의 간접 개입을 시도했다.
[특정 인물의 잠재력을 설정합니다.]
[신성 : 500,000을 소모하시겠습니까?]
신성을 소모해 이제 막 태어날 아기의 잠재력을 조작했다.
인간과 인간 부족이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웅’이 필요하니까.
그가 알아본 바로, 개연성을 해치는 개입일수록 작은 일에도 더 많은 신성을 소모해야 하기에 이미 활동 중인 인간 대신 이제 막 태어날 아기의 잠재력을 수정한 것이다.
“쩝, 더럽게 많이 잡아먹네.”
그럼에도 50만이나 되는 신성이 소모되었다.
일정 수준까지는 생각보다 적은 신성이 소모되었지만 잠재력이 일정 수치를 넘어가자 한 단계의 능력을 올릴 때마다 신성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신성을 아낀다고 멈춰 버리면 실컷 신성을 쓰고도 어중간한 인물이 태어나고 만다.
그것을 알기에 로칸은 신성을 크게 투자했다.
[신성 : 1,000,000이 소모합니다.]
무려 1백만.
그러자 시스템이 아주 특별한 존재의 탄생을 알려 주었다.
[당신의 세계에서 영웅적 인물이 탄생했습니다.]
[신성 : 10,000을 획득했습니다.]
“오호, 이런 것도 있군.”
더 로드의 업적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도 변형되어 적용되는 것일까? 영웅의 탄생을 축하하며 약간의 신성을 한 번에 채워 주었다.
[영웅 가룬이 신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신성 : 10을 획득했습니다.]
[세계 : 명부마도에 신에 대한 믿음이 퍼져 나갑니다.]
[세계 : 명부마도에서 3의 신성을 획득하셨습니다.]
“이거 재미있네.”
그뿐이 아니다. 로칸이 신성을 투자해 생성한 인물이 활약을 할수록 미미하지만 추가적인 신성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세계 전체에서 수급되는 신성의 양마저 증가했다.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영웅이 등장하며 신의 존재를 인간들이 더욱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시간 가속 해제.”
[시간 가속을 해제합니다.]
로칸은 그 즉시 시간 가속을 해제시켰다.
그 짧은 사이에 벌써 갓 태어난 아이는 소년이 되어 있었지만 그 정도면 딱 적당하다.
[하계에 신물을 하사합니다.]
[신성 : 100,000을 소모했습니다.]
로칸은 다시 한번 신성을 소모해 어떤 물건을 내려 보냈다.
아주 간단한 연출과 함께.
‘이 정도면 되려나.’
쿠르르릉!
그것은 벼락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 날, 인간의 마을 한가운데에 굵은 벼락이 떨어졌다.
“헛, 이건……!”
“오오오오! 이건 하늘이 내린 무기다!”
“신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무기를 내리셨다!”
벼락이 사라지고 난 뒤 남은 것은 큼지막한 도끼 한 자루였다.
뇌전 속성이 깃든, 고작해야 레어 등급의 배틀 액스일 뿐이지만 로칸이 사전 작업으로 옵션질을 많이 해 놔서 저레벨 대에서는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신물을 내려 보내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신성이 소모되기도 하지만 해당 무기를 본인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데 왜 하필 벼락이고 도끼일까.
사실 로칸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다.
일단 벼락과 뇌전 속성을 선택한 것은 가장 연출이 극적이기 때문.
불바다가 된 곳에서 화염 속성의 무구가 생겨나거나 유적, 바위 틈 따위에서 무속성의 무구를 발견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 로칸의 목적은 단순한 전달이 아닌 신에 대한 믿음을 확보하는 것이었기에 연출이 필요한 것이다.
‘도끼는 단점도 많지만 강점도 많지.’
창이나 검이 다루기에는 가장 좋다. 그러나 약해 빠진 초식 동물을 사냥할 것이 아니기에 로칸은 도끼를 선택했다.
몬스터의 두꺼운 가죽을 베어 내고 지역을 평정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근력과 동시에 두꺼운 가죽도 너끈히 베어 낼 수 있는 날카롭고 든든한 무기가 필요하지 않겠나?
로칸의 기준에서 그런 역할을 할 만한 것은 역시 도끼밖에 없었다.
더구나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자신의 첫 번째 아바타는 자신처럼 힘과 체력에 강점이 있는 영웅이었다.
스킬 따위를 직접 이어받지는 않았지만 남들보다 압도적인 육체 능력이 지녔으니 도끼만 쥐여 주어도 자신이 어떤 식으로 전투를 치러야 할지 알게 될 터였다.
“시간 가속, 1만 배.”
[시간 가속x10000을 실행합니다.]
[1일간 총 신성 : 100,000을 소모합니다.]
일단은 여기까지.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가룬이 벼락의 도끼를 번쩍 들어 올리는 것까지 확인한 로칸이 자신의 세계에서 겨우 눈을 떼었다.
“벌써 시간이……?”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는 사이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나 버린 상태였다.
꼬물거리는 인간들이 소소하게 벌이는 일들이 제법 재미있어서 만약 시간 가속마저 없었다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것만 들여다볼 것 같았다.
“타임머신이 따로 없군.”
마치 이 자체가 시뮬레이션 게임 같아서 그런지 로칸도 푹 빠져들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억지로 관심을 껐다.
시간 가속 배율을 낮추고 천천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신의 종족들에게 소소한 퀘스트도 주고, 신물을 하사하거나 신탁 등을 내려 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시간에 사냥을 해서 신성을 채워 넣는 것이 더 이득일 수 있었다.
나중에 세계가 크게 성장을 하게 된다면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초반에는 말이다.
‘오히려 덕질하듯 보고 있으면 쓸데없는 신성 소모가 있을 수 있지.’
그런 이유로 로칸은 다음 계획을 시작했다.
마제스티 마스터가 되기를 고대하면서 세워 둔 계획.
이것만 뜻대로 된다면 소모한 신성쯤은 금방 다시 채울 수 있으리라.
“후우, 어떻게든 되겠지.”
파아앗.
로칸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지상이었다.
지상 중에서도 인간 왕국의 수도이자 황궁.
그 옥좌에 앉아 오직 황제만이 설정할 수 있는 명령을 실행시켰다.
“국교 선포.”
[레스토니아 왕국의 국교로 선포할 신앙을 선택해 주십시오.]
[국교는 해당 국가의 성향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로칸교’를 국교로 선포하시겠습니까?]
[로칸교 성향 : 폭력, 철권, 힘, 투쟁, 전투]
바로 국교 선포.
종교란 특정 신을 믿는 종교이니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름이 붙는 것이 좀 민망하긴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이것이 가장 직접적이고 즉시적으로 신성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로칸교를 국교로 선포하겠다.”
[믿을 수 없는 업적! 당신은 황제인 동시에 신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타이틀 ‘짐이 곧 신이다’를 획득하셨습니다.]
[짐이 곧 신이다][유니크]
당신은 레스토니아의 황제이자 곧 신앙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전설적인 위업을 전해 들은 이들이 당신을 신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타이틀의 등급은 더 많은 이들이 당신의 종교를 믿을수록 진화합니다.
[보유 효과]
로칸교를 믿는 이들이 많을수록 더 많은 신성 획득
레스토니아에 소속된 NPC들의 강제 개종
정치 결과가 신앙심에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