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6
타이탄 마을 (1)
[타이탄. 그것은 고대에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아온 거인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거대했고 강력했으며 순수했다.
순수.
그렇다. 그들은 순수했다.
본능에 충실했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무자비한 파괴 행위를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들은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했다.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서도 결코 과시하거나 다른 종족들을 지배하려 들지 않았다.
더불어 살았고, 또 그러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들의 힘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나타났다.
순수하고 순진한 그들의 마음을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더 약한 힘을 가진 주제에 타이탄을 부리려 했던 자들.
그것은 바로 인간이었다.]
“엥? 인간이 여기서 왜 나와?”
그리고 인간이 그 오래전에 천상에 머물고 있었다고?
잠시 이 서적의 신뢰도에 의심을 품었지만 일단은 계속 읽었다.
[물론 인간만이 타이탄을 이용하려 든 것은 아니다. 다른 종족들의 시도 또한 많았지만 그것을 성공하고, 가장 큰 사건을 일으킨 것이 인간일 따름이었다.
결과적으로, 인간 중 하나가 그것에 성공했다.
타이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존재인 타모스를 속여 파괴 행위를 일삼았고, 천상의 다른 종족들을 짓밟고 지배했다.
물론 거기서 파생되는 이득은 모조리 인간이 취했다.
타이탄이라는 강력한 존재의 아래 수많은 종족들이 노예처럼 부려졌고 공포정치, 철권 정치에 숨을 죽이고 살았다.
하지만 억압이 있으면 저항도 있는 법이다.
최강의 타이탄 타모스를 앞세워 위세를 떨치는 인간에게 분노한 다종족 연합의 저항군이 만들어졌다.
타모스에게는 도저히 비빌 수가 없었지만 그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조금이라도 타격을 주기 위해 게릴라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멍청한 놈들.”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감히 타모스를 암살할 자신은 없던 자들이 타이탄 마을을 습격해 여성 타이탄 하나를 죽인 것이다.
고작해야 여성체 타이탄 하나.
힘과 파괴력이 가장 큰 무기인 타이탄이다 보니 여성체의 경우 비교적 약한 편인 것이다.
그렇기에 성과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일로 인해 타모스가 폭주한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타모스의 연인이었으니까.
애초에 그가 인간의 말에 따라 전면에 나선 것도 바로 그녀를, 일족을 더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런 그녀가 죽었으니 타모스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의지도, 목적도 남지 않았다.
그때부터 타모스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더욱 무자비한 폭력과 파괴를 일삼기 시작했다.
자신의 연인을 그렇게 만든 세상에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그것은 인간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측근이자 참모의 역할을 하던 인간에게까지 불똥이 튄 것이다.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조용히 마을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 땅에서 가정을 꾸리고, 소소하고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반쯤 미쳐 버린 타모스는 이전보다 훨씬 폭력적으로 변했지만 인간을 보면 폭주를 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맞을 만했네.”
같은 인간이기는 하지만 이건 인정이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이게 다 내 탓이라며 은둔이라도 한다면 그건 호구 중의 개호구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타이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저항군의 바보짓에 혀를 찼다.
“얼씨구?”
계속해서 그를 읽어 나간 로칸은 일이 최악으로 치달았음을 확인했다.
타모스의 폭주에 세상이 파멸해 버릴 것 같자 천상의 모든 종족, 모든 강자들이 모여든 것이다.
[그들이 힘을 모아 타모스에 저항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기습, 암살, 함정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건만 타모스를 죽이는 데 실패한 것이다.
몇 차례 패퇴시키는 것은 가능했지만 죽이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것은 천상 전체에 타모스에 대한 공포가 더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의 공포를 기반으로 타모스가 ‘신’의 반열에 올라 버렸다.]
“놀랍군. 믿음만이 아닌 건가?”
그동안 해당 신에 대한 믿음만이 신성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던 로칸에게는 제법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믿음이 아닌 공포로써 신성을, 신위를 획득하다니?
놀라웠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믿음이라는 것도 결국은 의지의 발현이고, 공포 역시도 마찬가지 아닌가? 때문에 직접 지배하지 않고도 대량의 신성을 흡수할 수 있던 것이다.
[세상을 파멸시키려던 이가 신의 반열에 올랐다.
천상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된 셈.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해법이 되었다.]
“역시 그렇군.”
[신위를 획득한 자는 더 이상 지상과 천상에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타모스에게도 다르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의 육신과 영혼이 신들이 기거하는 어딘가로 빨려 들었고, 그렇게 조금은 허무하게 천상에 평화가 찾아오는 듯싶었다.]
“그냥 갈 리 없지.”
[하지만 타모스가 그 법칙에 저항을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강제력을 지닌 법칙에 신성으로 저항하며 파괴 행위를 자행했다.
세상은 다시 파괴와 공포로 물들고, 비명과 절규가 가득 찼다.
그렇게 되자 저항군도 어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마제스티 마스터급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았는데 신위를 획득한 타모스라니.
함정이든 뭐든 힘으로 박살 내며 밀고 들어오는 통에 저항 따위는 무의미해졌다. 그저 놈이 하루 빨리 ‘신계’로 올라가기를 숨죽여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천상의 절반이 파괴되었을 때 타모스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천상을 떠났다.
평화가 찾아오는 듯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거로군.”
거기까지 읽은 로칸은 어떤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신위를 획득한 타모스가 과연 세상에 대한 증오를 버리게 되었을까? 득도한 신선처럼 모든 업과 감정을 벗어던질 수 있었을까?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개입하려 들었을 터였다.
“타락.”
바로 타락이라는 이름으로.
타락의 힘을 얻었을 때, 기존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지니게 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파편일지라도 신이 가진 힘의 일부이니까.
타락의 신, 타모스.
그것이 신이 된 타이탄의 이명이었다.
“타이탄 전체가 놈을 믿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모테론의 자료에 따르면 타모스가 천상을 떠난 직후에는 그의 신성을 받아 절대자의 자리를 이어받으려던 타이탄들이 있었다. 타모스의 전투력에 질려버린 저항군이 싹을 자르기 위해 타이탄 사냥에 나섰으니까.
그 과정에서 타모스의 신성을, 타락의 힘을 받아들이고 미쳐 버린 놈들이 다수 등장했지만 타모스가 남긴 유산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기에 패배하고 말았다.
각 종족의 최강자를 향한 믿음.
약간 왜곡되긴 했지만 타모스를 처치했다는 것에 대한 찬양이 거대한 신성이 되어 그들에게 힘을 준 것이다.
반면 타이탄들은 공포도, 믿음도 잃은 상태였다. 소수 종족인 그들만으로는 다수 종족의 신성을 이겨 내기 어려웠다.
보통의 종족들은 살아남기조차 어려운 험지로, 혹은 지상으로 간신히 도망치고 숨어들어 종족이 말살되는 것은 면했지만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타모스에 대한 공포와 구전조차 잊힐 때쯤에야 탐험가에게 발견되어 이제 차근차근 교류와 소통을 이어 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젠장.”
타이탄들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나자 로칸은 기분이 묘해졌다.
이래서야 타이탄을 때려잡기 위해 날아온 자신이 나쁜 놈이 되는 것 같지 않은가?
악역을 마다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건 참 미묘했다.
“타락이라…….”
동시에 뭔가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만 더 떠올리면 뭔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는 끝인 건가?”
타이탄과 타락. 그것은 로칸이 천상에 올라오기 전 해결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관통하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다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열렸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예 천상과 관련된 메인 시나리오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만약 지상의 시나리오와 연결되는 방식이라면 어쩌면 지금 그 실마리를 찾아낸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이 과연 포기했을까?”
라그나로크 팀을 비롯해 타락을 추종하던 이들을 섬멸하고, 아직까지도 추적하여 말살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 결과 라그나로크 팀은 게임을 접었는지, 캐릭터를 새로 키우고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태일 만큼 철저하게 짓밟았다.
이 많은 인구가 접속하는 게임에서 거액의 현상금이 걸리고도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은지 한참이나 됐다는 것은 둘 중 하나의 이유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추종자를 쓰러뜨리고 타락한 타이탄을 잡는 것으로 정말 타모스의 계략이며 시도가 끝났다고 보아도 좋은 것일까?
로칸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웠다.
상대는 신이다. 고작 그 정도를 타격으로 보기도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삭초제근][퀘스트]
당신은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타락의 신에 대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시도가 반복되지 않도록 그의 흔적을 찾아 파괴하십시오.
-성공 조건 : 타락의 신의 흔적 파괴
-성공 보상 : 대량의 경험치, 고대의 신성
“이건……!”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타난 퀘스트.
로칸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연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타모스의 흔적이라…….”
여전히 애매모호한 말이었지만 이제는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신위를 획득한 신의 흔적이라면 무엇을 의미하겠나?
“제단인가?”
바로 제단이었다.
광풍이 그러하고 다른 신들이 그러하듯 세상 어딘가에 타락의 신, 타모스의 힘을 이어 받거나 그를 강림시킬 수 있는 제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장소가 그의 앞에 있었다.
“확실히 제단의 모습이었지.”
바로 자신이 들어와 있는 이곳, 비밀 공간의 위쪽이 흡사 제단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타이탄들의 거점과 아주 가까이에 있는 제단.
이 정도면 타락의 제단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일단은 나가 봐야겠군.”
돌아간 것인지 아니면 수색 중이거나 잠복 중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위쪽에서 느껴지던 진동은 이제 사라진 상태였다.
설령 놈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을 가하더라도 광풍 현신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버티거나 도망칠 자신이 있었기에 로칸은 뒤를 돌아 성큼성큼 나아갔다.
쿠구궁.
다시 기관을 작동시켜 입구를 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로칸을 감지하고 마중 나왔던 타이탄들이 그를 찾지 못하자 돌아가 버린 듯싶었다.
“흠, 확실히 제단은 맞는 것 같은데…….”
안전을 확보하고 주변을 둘러본 로칸은 확신했다.
유적처럼 보이는 이것의 정체는 버려진 제단이었다.
관리가 되지 않고 오랜 세월 방치되어 이미 반파 상태이긴 했지만 명색이 신의 제단이니 작동은 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가 사용하기 전에 선수를 치는 편이 좋았다.
“오라 폭격!”
마음을 정한 로칸은 즉시 힘을 일으켰다.
온 힘을 끌어모아 제단을 향해 쏟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