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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랭커 회귀하다-369화 (369/500)

# 369

천족의 비밀 (1)

‘이쪽 방향이면…….’

탈루바의 대저택을 빠져나온 로칸은 욕망의 나침반이 새로 가리키는 방향을 통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데, 그 방향이 좀 이상하다.

모테론이 죽기 전 무언가를 숨겨 놓았다면 당연히 도시 밖이거나 자신의 집안 비밀 장소쯤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로칸이 가야 하는 방향은 수도의 중심, 그것도 황궁의 방향이 아니던가?

자신도 모르게 뭔가 다른 것을 욕망한 것은 아닐까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믿어 보기로 했다. 그 끝에 일단 도달해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속도를 높였다.

“여기?”

핑그르르.

욕망의 나침반이 다시 제자리 회전을 하며 목적지 도달을 알렸을 때, 로칸이 위치한 곳은 다소 의외였다.

황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코앞에 둔 작은 조각상이 최종 목적지인 것이다.

“진짜 여기라고?”

천신의 석상이 사냥하는 수많은 악마 조각상들 중 하나. 게다가 보스급도 아니고 졸개의 형상을 한 그것이 로칸의 눈앞에 있었다.

은근한 신성력이 느껴지지만 다른 석상들에 비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약한 기운이다.

로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각상을 살폈다. 정말 여기에 뭔가 있다면 이 조각상이 단서가 될 터였다.

“없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고대의 문양이 새겨진 곳도, 반지가 꽂힐 만한 곳도 없었다.

“이게 꽂힐 만한 구멍이라고는……. 아, 구멍?”

허탈해하던 로칸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쳤다.

아예 생각을 반전시켰다.

왜 꼭 조각상에 구멍이 뚫려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 뭔가를 끼울 만한 구멍은 반지에도 나 있지 않은가?

생각을 뒤집은 로칸은 그 반지를 조각상의 손가락에 끼웠다. 다시 자세히 살피니 손가락 중 하나에 반지 자국처럼 옴폭 들어간 부분이 딱 한 군데 있던 것이다.

파아아앗.

그 순간, 조각상의 힘이 반전되었다.

미약하게 흐르던 신성력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가 싶더니 정반대의 기운이 한순간 솟구쳤다.

마기.

악마의 조각상답게 강렬한 마기가 뿜어진 것이다.

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새까만 게이트가 생겨났다.

뱀의 아가리처럼 음험해 보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로칸은 언제든 광풍 현신을 발휘할 준비를 하며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스르르륵.

로칸이 사라진 직후, 게이트도 빠르게 닫혔다.

사악한 마기가 사라지고 조각상은 반지를 끼운 채 원래대로 미약한 신성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그리고 잠시 후,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황궁 내부로부터 일단의 무리들이 몰려나왔다. 이젠 다시 마주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한 기운을 감지해 낸 것이다.

하지만 로칸이 사라진 자리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설마, 또 어떤 놈이?”

초조함이 엄습해 왔다. 겨우 틀어막았던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졌다.

“탈루바 놈의 집으로 가자.”

나타났던 무리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병력을 움직였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단속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

지이잉.

워프 게이트를 통해 어떤 공간으로 들어온 로칸은 전신을 긴장시켰다. 언제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공간이다 보니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로칸의 그런 긴장을 비웃듯 아무 것도 나타나는 것은 없다. 길이 복잡하지도 않았고, 함정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저 벽화가 이어진 길이 쭉 늘어서 있을 뿐이다.

“동영상 촬영 시작.”

이런 건 담아 놔야지. 나중에 분석을 해야 할 수도 있었기에 일단 벽화 자체를 찍어 두었다.

천천히 그 모습과 의미를 담아 가며 길을 갔다.

“어……?”

그리고 그 벽화 안에 담긴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시작은 악마들이었다.

태초에 악이 있었다.

강력한 힘과 악의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

하지만 싸움이 계속될수록, 힘을 숭상하는 경향은 강해졌지만 그 수는 급격히 줄어 갔다.

믿음은 강했지만 숫자가 터무니없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악마들은 꾀를 내었다.

당근과 채찍.

약한 자들을 달래며 신성을 바치게 만들 놈을 뽑자.

다친 자들을 치료해 다시 싸울 수 있게 만들 놈을 뽑자.

악마들 중 한 놈이 뽑혔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그 일을 할수록 점점 신성이 불어나는 것을 느꼈다.

싸우지 않고도 강해지는 쾌감을 맛보았다.

악마는 깨달았다.

싸움과 죽음만을 추구하지 않아도 강해질 수 있구나.

악마는 욕심이 생겼다. 이건 오롯이 자신이 행한 일로서 생겨난 것이다.

이 신성을 다른 이들과 나눌 필요가 없지 않은가?

어느 날, 그 악마는 자신을 따르는 악마들을 이끌고 그들의 땅을 떠났다. 아주 먼 곳에 터전을 잡고 같은 일을 행했다.

토착민들을 치유하고,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었다.

싸움을 중재하고, 때로는 시련을 내리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지게 만들었다.

혹시나 신성을 가지고 도망친 자신을 알아보는 자가 있을까 모습은 물론 힘의 색까지.

박쥐 날개 같던 악마의 날개를 풍성한 깃털이 달린 날개로, 새까만 마기에서 새하얀 신성으로.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세탁했다.

자신들의 피를 토착민들과 섞으며 근본마저 바꾸려 들었다.

천신이라 불리게 된 악마를 따라 나선 이들이 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피를 이은 강대한 존재들이 있어야만 언제 침략해올지 모르는 악마들의 공세로부터 버텨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직 최상위 기득권층만큼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 들었다. 토착민들과 피를 섞지 않고 자신들의 순혈을 유지하며 강한 힘을 이어 갔다.

지도부로서 강력한 힘을 유지하도록, 혹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기 위해서.

“이게 진짜라고?”

거대한 비밀을 엿본 로칸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과연 사실일까? 누가 이만한 공을 들여 거짓말을 늘어놓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 이건 상식의 틀을 부수는 것이다.

보통 천사와 악마는 전혀 다른 종이거나 오히려 천사가 타락해서 악마가 된다고 여기지 않던가?

한데 원래는 다 같은 마족이었고, 그중 도망친 자들이 천족이 된 것이라고?

선민의식이 가득하고 마족들을 증오하는 천족들의 평소 모습을 생각할 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죽인 건가? 치부를 감추기 위해?”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순수 천족’이라는 것도 결국 토착 원주민과 마족의 결합으로 태어난 것이고 심지어 황족의 경우 여전히 마족의 핏줄을 이어 가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

이것은 정체성은 물론 정통성과도 연관된 문제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순수 천족들이 마족의 핏줄이 이어진 황제를 받아들이려 할까?

물론 순수 천족들 또한 남을 비난할 만한 순수성은 지니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보아 오던 그들이라면 역사를 날조해서라도 스스로에 대한 선민의식을 지키려 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도망쳐 온 마족과 결합한 토착민들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든지 하는 식의 주장으로 말이다.

“하지만 황족들은 커버 칠 수가 없지.”

하지만 순수 마족인 천족 황제는 어떨까? 그 어떤 말로 변명을 할 수 있을까?

로칸은 어렵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비밀을 알아차린 모테론을 죽이기 위해 황실 근위병들을 보내기까지 한 것이겠지.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다른 순수 천족들은 본인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특별함을 지키기 위해서 황족을 끌어내리려 들지 모른다.

그 진실을 깨닫자 로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건 써먹을 수 있겠군.”

이 정도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겠다. 반 황제파에게 큰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천족 사회를 뒤흔들 무기를 손에 쥔 로칸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갱신된 퀘스트 내용을 확인했다.

[모테론의 원한4][퀘스트]

억울한 죽음을 당한 천족 고고학자 모테론의 원한을 풀어 주자.

-성공 조건 : 천족 고고학자 모테론의 복수 0 / 1

-성공 보상 : 고고학자의 유산

-실패 페널티 : 없음(저주 무효화)

모테론의 죽음을 조사하는 2차 연계 퀘스트가 끝나고 모테론의 비밀을 조사하는 퀘스트까지 단숨에 완료되었다.

이제 네 번째 퀘스트. 드디어 보상이 드러났다.

“고고학자의 유산?”

하지만 알 수 없는 건 똑같았다.

고고학자의 유산이라니, 어쩐지 잡동사니가 한가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포기 버튼을 터치하지는 않았다.

실패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자신이 하려는 일에서 겸사겸사 같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혹시 아나? 고고학자이니 고대의 물품을 잔뜩 가지고 있을 테고, 그중에 쓸 만한 놈이 있을지.

기대는 하지 않지만 중복되는 퀘스트를 거부할 이유도 없었기에 방법을 모색했다.

모테론의 복수와 천족의 분열을 동시에 꾀할 수 있는 방법을.

로칸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다시 바깥으로 나온 로칸은 반지를 회수하고 일단 몸을 숨겼다. 자신이 어떤 장소에 들어갔다 나온 사이 뭔가 낌새라도 챈 것인지 탈루바의 저택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나이트메어에 의해 로칸을 만나고 제압당했던 게 모두 꿈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마기를 느낀 건가?’

로칸은 단번에 상황을 짚어냈다. 워프 게이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 활성화된 마기라면 황궁의 천족들이 인식할 만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 탈루바가 죽임을 당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 400레벨이 훌쩍 넘는 천족 근위병들은 한참을 그의 저택에 머무르다 사라졌고, 로칸은 자신의 계획이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탈루바의 생존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반황제파의 수장격인 2급 천족 라푸제를 만나기 위함이다.

“폴리모프 캔슬.”

“웬 놈이냐!”

“침입자다!”

“이 기운은……?”

하지만 그 정도 되는 인물을 그냥 만날 수는 없다.

고레벨의 은신이라 해도 들킬 것이 분명하고 순수 천족의 모습으로는 ‘급’이 달라 만나 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과감하게 폴리모프를 풀고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신수 사냥꾼의 타이틀 효과가 자동으로 발동되며 천족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본능적인 거부감과 두려움을 이끌어 냈다.

그렇기에 로칸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손바닥을 편 채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고, 로칸을 향해 무기를 겨눈 순수 천족들도 함부로 공격을 가해 오지는 못했다.

저항할 의사가 없다고는 하나 그에게서 풍겨 오는 광기의 기운이 무시무시했으니까.

“라푸제 님을 만나고 싶다.”

그렇게 광기로 상대를 질식 시킬 듯 어마어마한 기운을 뿜어내면서 로칸이 하얗게 웃었다.

라푸제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담 요청 방식이지만 로칸이었기에 이해가 되었다.

잠시 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라푸제 님께서 만나 보겠다고 하신다. 따라오도록.”

인간 계급으로 따지면 공작급에 해당하는 2급 천족 라푸제가 로칸을 만나 보겠다 결정한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 마나 동결 주문이 펼쳐진 접견실에서 보기로 했지만 난동을 부릴 생각은 없기에 상관없었다.

“그래, 나를 보자고 했다고?”

그곳으로 들어서자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순수 천족 하나가 상석에 앉아 로칸을 내려다보았다.

은밀한 회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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